물론 누구라도 타향이나 외국이나 돈벌이를 떠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러듯이, 처형도 떠날 때는 옛날 시집살이 마따나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 바보 삼년이라고 그저 한국서 모든 것을 참고 벙어리 일 년, 귀머거리 일 년, 바보 일 년 해서 딱 삼년만 꾹 참고 돈 앞에 머리를 숙이고… 딱 삼년만 악착같이 돈을 벌고…딱 삼년만 돈을 모아서… 집으로 돌아가려 결심하였으나…세상사가 결심대로, 인간의 뜻대로 되는 법은 없는 가부다.
10 년이 넘어도 돌아오지는 않고 말로만 “금년에 간다, 명년에 간다, 아니면 금년 구정 전엔 꼭 돌아간다는 소리는 들리던데…” 간다는 년이 아이 셋 더 낳더라고… "고향에 살구나무는 피고지고 몇 십번 하였으나 처형은 돌아 올 줄 모르더라…집에 처형부는 기다리다 지치고 지쳐서 노래방에만 갔다 하면 "…돌아온다! 그 약속에 내 청춘이 시든다…" 하고 고래고래 가슴을 쥐여 뜯으며 감정을 돋궈 목청이 쉬도록… 마이크가 째지는 소리가 나도록 불러 대더라. 그리고 밤이면 밤마다 술병을 품고 사는 주정배가 되여 버렸다.
그런데 내가 재작년에 한국에 나와서 보니 ㅎㅎ 처형은 세 방을 얻어 놓고 한국서방을 얻어서 한 살림 잘 차려 놓고 깨알이 쏟아지는데…나는 기막혀서 솜뭉치로 가슴을 두드렸다. 형님이 불쌍하다고… 그래도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하고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형님 애들 봐서라도 꼭 돌아오겠지, 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형님. 처형이 떠난 12년을 혼자 애들을 키워가며 아들딸 다 장가 시집 모내고 인젠 저 혼자 외로이 지내는 형님이 불쌍하였다.
그러나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고 안방에 가면 마누라 말이 옳다더만 처형이 말을 들어 보면 처형도 또 억울한 점이 많다. 기껏 돈을 벌어 아들의 뒷바라지에 다 밀어 넣었다는 것이다. 처음 삼년 번 돈은 아들이 중국청도에서 식당을 챙겨 주었는데…일 년도 다 안 돼 싹 말아 먹고…아들이 중국서는 못살겠다고 자기도 한국에 보내 달라고 하니 또 아들이 한국에 나오는데…2 년 번 돈을 싹 밀어 넣고… 아들딸 결혼식에 거금을 지원하고…
더욱이 한국에 온지 오래고 자본주의 자유화 물에 젖을 때로 젖은 처형은 아직도 시들지 않은 성욕을 참을 수가 없어서 한국남자를 얻어 간단한 살림을 차렸단다. 물론 처형도 건강하고 무병한지라 성욕 또한 없을 리 만무하지 않는 가. 그나마 한국에 있는 동안만 같이 살고 그 후엔 이유나 미련두지 않고 갈라진다는 선약이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경제적인 살림에도 도움이 된다니…(집세나 생활비라도 남는다는 것.)
그러나 그것이 말이 간단하지 인간의 정이란 같이 살면서 더욱 깊어지는 것…인젠 떨어 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는 모양이 된 것 같더라.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더니만 처형도 남편은 그립지 않지만도 자식만은 그립고 보고 싶어 어떻게 딸마저 한국에 데려 내오려고 하였지만… 인젠 한국서 뼈빠지게 번 돈 아까워서 딸을 보고 한국에 나오라 하면서도 돈만은 보내 주지 않았더라…돈을 들이지 않고 한국에 올수 있는 방법은 유일하게 결혼하는 것이었다. 위장결혼도 아니고 진짜 결혼을 말이다. 딸은 그만 한국에 엄마 보러 가는 것이 급했던지 이것저것 따지고 캐고 조사할 시간도 없었던지…대충 불알만 가진 한국남자와 결혼하여 한국에 왔고… 아버지도 딸이 결혼하면서 초청하여 온 가정이 12 년 만에 겨우 서울에 모여 앉게 되였다. 12 년 만에 말이다.
그런데 그 응당 부등켜안고 기뻐하여야 할 12년만의 상봉. 우리 처형네 가족대모임은 기쁨의 웃음 리는 들리지 않고 술잔이 오고가는 술병을 들고 붓고 마시는 즐거움도 가뭇없이 사라지고, 형식상 조용히 묵묵히 예의상의 억지 인사만 오고 가고 술판은 싱겁고도 싱겁게 마무리 되었고, 술상은 울상으로 끝나 버리더라.
그리고부터 온 가정의 대모임은 두 번 다시없었고…처형의 식구들은 그 누구도 모임을 조직하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부득불 모이게 되는 그런 喜 事 나 傷 事 마저 오고 가기를 꺼리고 서로 만나기 두렵고, 가족모임이 있을까봐 쑥스러워 하는 것 같더라.
그 원인인즉 딸이 결혼하여 온 한국 남자란 분의 나이가 장인의 나이가 동갑이 되고 어머니가 한국서 만난 동거남의 나이는 처형의 나이 보다 6살이나 어린 사내였던 것이다. 그렇게 처형의 집안은 장인이 장인의 나이가 아니요. 사위가 사위 같지를 못하더라…거기에 연하남과 동거를 하던 처형은 인젠 그 사내와 떨어 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다고…인젠 부끄러운 것이 없이 우리와 말한다. 조강지처 아니 조강지부 본처형부는 그저 묵묵히 조강지처를 바라보며 한탄한다. 이젠 18번도 바꿔야 할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몇 미터 앞에다 두고…사랑할 수가 없는 이 마음…"
이렇게 처형의 서울 돈벌이는 처형의 가정을 제 하가 제 하가 아니고 이상이 이상이 아닌 이상한 가족이 되여 버렸다. 서울의 돈벌이는 상봉은 기쁨이 아닌 슬픔으로 만들었고 아름다운 서울에서의 가족의 대모임은 한번만으로 족하였고, 그리고 아무리 우리민족의 대모임 추석이거나 구정이라 할지라도 처형네 가족은 모일래야 모여지지 않는다 . 그도 그럴 것이 술상에 앉으면 모두들 울상이 되여 버리니…
세상이 요지경이라고 하더니만 이렇게 요 지경이 된 것은 나도 처음 본다. 과연 우리 조선족은 한국바람에 얻은 것이 돈일지는 몰라도 잃은 것은 가정파탄 - 행복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대한민국에 그 동포정책이 그 조국 땅에 그어놓은 휴전선 3 -8 선처럼 우리 가슴을 멍들게 하였고, 그 몹쓸 민족정책이 우리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민족이 통일이나 되면 우리 조선족은 두만강을 마음대로 건널 수 있을지… 그때면 이런 이산가족, 이런 우리처형과 같은 21세기 새로운 이산가족이 존재 하지 않을까 싶다만…
오~ 우리민족 ! 찢어진 민족 ! 離 散 민족이여 !
지구촌에 유일무이한 백의민족, 이산민족이여 !
3-8선은 우리 민족을 갈라놓더니만 대한민국 민족정책 離 散 된 우리민족을 또 갈라놓고, 인젠 우리 가슴도 찢어 놓고 있구나!
그리고 그 민족정책이 새로운 이산가족을 계속해 생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