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고향 같아요” 미소
우리 민족의 발원지는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일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계에선 ‘우리 조상이 바이칼에서 3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중앙아시아를 넘어 터키 쪽으로 서진했고, 또 하나는 몽골·투바·부르야트·부탄 등을 거쳐 동남아로 내려갔으며, 나머지 하나는 만주를 거쳐 한반도와 아메리카로 동진했을 것’이란 주장(강원대학교 사학과 주채혁 교수)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런 학설을 뒷받침해 줄 수 있을 흥미로운 ‘발자취’는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단법인 ‘한중문화 청소년 미래숲센터’ 주관(삼성전자·경희대 후원)으로 지난 11월 방한한 중국 소수민족 대표 청년지도자들이 그 주인공. 한족(漢族)·바이족(白族)·먀오족(苗族)·투족(土族)·징족(京族)·노족(怒族)·장족(藏族) 등 56개 민족이 어우러져 구성된 ‘다민족 국가’ 중국에선 생김새·풍속·습관에서 우리와 유사점을 가진 민족들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 韓氏와 수이족 韋氏는 한 집안”
‘물가에 산다’ 해서 수이족(水族)으로 불리는 구이저우성(貴州省) 소수민족 대표 웨이주치옹(韋族·여·31)씨도 그 중 하나다. 수이족을 소개하면서 “우리와 한국인은 같은 핏줄이라고 여긴다”고 운을 뗀 그녀는 “평소에도 한국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막상 와보니 유사한 점이 너무 많아 신기했다”며 웃었다.
구이저우성 공청단(공산청년당) 수이족 자치위원회 서기인 웨이씨는 “한국에서 건너온 성씨인 한씨(韓氏)와 수이족을 대표하는 성씨인 웨이씨(韋氏)는 같은 집안”이라며 “따라서 (자신의 지역에서) 한씨와 웨이씨는 서로 결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韓)에서 왼쪽 변을 뺀 글자가 웨이(韋)라는 사실이 두 집안 간의 관계를 말해준다”며 “한씨와 위씨가 한 핏줄이란 사실은 수이족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역사”라고 말했다.
소수민족 방한 행사를 주관한 ‘미래숲센터’ 권병현(權丙鉉·전 주중대사) 공동대표는 “한반도에 살던 한(韓)씨가 삼한시대에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학설이 있다”며 웨이씨의 이야기에 힘을 실어줬다.
웨이씨에 따르면 “중앙무대에서 한족(漢族)과 투쟁을 벌이던 수이족이 싸움에서 패해 중국 남서부 외지로 밀려 내려왔다”는 것. “양쯔강 물길을 따라 피신, 정착해 살아옴에 따라 ‘수이족(水族)’이라 불렸지만, 동이족과 수이족은 원래 같은 뿌리였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자신들의 조상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그녀는 “한국에 와서 물김치를 먹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맛과 색깔·모양에서 수이족의 물김치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수이족 아기에게도 몽골반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있다”고 답한 웨이씨는 “한국의 갈비구이와 수이족의 고기구이도 굽는 방식과 맛이 일치한다”며 “고추를 즐겨먹고, 매운 음식을 좋아하며, 개고기를 즐긴다는 점에서 수이족과 한국인은 서로 통하는 예사롭지 않은 관계”라며 웃었다.
어원커어·몽골어, 한국어와 어순 같아
중국 동북방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어원커족(鄂溫克族)도 우리와 흡사한 풍습을 갖고 있는 또 다른 민족이다. 웨이씨와 함께 한국을 찾은 어원커족 당위원회 주임 투홍원(♥宏文·37)씨는 “어순이 비슷하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며 “어원커족과 한국인 모두 알타이 퉁구스어계여서 유사한 문법을 지니게 된 듯하다”고 말했다. 투씨에 따르면 ‘나는 너를 사랑해’란 어원커말은 ‘비(나는) 쉰두(너를) 또른지란(사랑해)’. 어원커 언어는 영어나 중국어처럼 주어+동사+목적어 방식이 아니라, 주어+목적어+동사의 방식을 사용해 우리말과 같은 어순을 취한다는 것이다.
어원커족은 만주를 무대로 활동하던 여진족의 한 갈래. 오랜 역사를 통해 우리와 자주 접촉해왔던 그들 역시 한국인과 유사한 풍습을 갖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서낭당. 투씨에 따르면 어원커족들은 한국인들처럼 산이나 숲길을 갈 때 돌무더기를 쌓아올리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어우바오(敖包)’라 불리는 이 돌무더기는 ‘나그네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녔다는 점에서 우리의 서낭당과 흡사하다. 투씨는 “어원커족들은 매달 음력 13일날, 어우바오 앞에서 제사를 지내며 나그네의 안전을 기원하는 풍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소수민족 중에 우리와 유사한 민족을 꼽자면 몽골족을 빼놓을 수 없다. 몽골 문학연합회 부주석 마잉(馬英·36)씨는 “몽골말의 어순도 한국어와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마씨는 “I love you를 몽골말로 ‘비 참모더 하이스타이’라 한다”며 “‘나는(비) 너를(참모더) 사랑해(하이스타이)’라는 한국어와 어순이 같다”고 말했다. 마씨는 “몽골에선 예전에 조선인을 부를 때 ‘소롱고트’라고 불렀다”며 “몽골 사람의 성(姓) 중에 소롱고트란 성이 있다는 사실은 두 민족 간의 긴밀한 관계를 시사해 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몽골에도 한국의 서낭당 같은 돌무덤이 있고, 아이들의 엉덩이엔 몽골반점이 있다”며 “한국인과 몽골족은 친척관계”라며 웃었다.
소설가 이윤기씨는 ‘어워’라 불리는 몽골식 서낭당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것은 학습을 통한 낯익음이 아니었다. 몽골의 돌무더기 ‘어워’는 어린 시절 내가 금줄을 두르거나 조약돌을 주워 쌓던 서낭당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웨이주치옹·투홍원·마잉, 세 사람은 몽골반점 이야기가 나오자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겐 우리와 다른 점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사내아이를 낳고 나서 대문에 고추를 매달지만, 수이족이나 어원커족은 ‘분만 직전에’ 고추를 매단다는 것이다. 아기의 성별에 관계없이 대문에 고추를 건다는 점도 우리와 다르다. 몽골족 대표 마잉씨는 “몽골에선 고추 대신 빨간 천을 막대기에 묶어 문 밖에 내건다”고 말했다.
“중국 CCTV, 1시간 동안 특별방송”
부단장 자격으로 행사에 참여한 조선족 김금자(金錦子)씨는 “이들 소수민족과 한국사람 간엔 적지 않은 유사성이 있지만, 젊은이들은 관련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며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 문제를 상당히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민족적 뿌리 찾기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관한 ‘미래숲센터’ 권병현 공동대표는 “이번에 방한한 소수민족 대표들은 시장·의원·당서기·현장 등 요직을 맡고 있는 중국의 청년 엘리트들”이라며 “이번 기회를 통해 앞으로 한·중 양국간 청소년 교류가 활성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11월 10일 한국을 찾은 중국 소수민족 대표들은 11월 16일까지 7박8일 간 머무르며 삼성전자·현대자동차·경희대·롯데월드 등을 둘러봤다. 이 행사엔 중국 관영 CCTV·신화사 등 주요 언론사 기자들도 동행, 1시간짜리 특집 프로그램으로 제작해 중국 전역에 방영할 예정이다.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bom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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