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는 ‘미녀삼총사’ 중에서 제일 예쁜 후꾸모토 쥰꼬선생의 수업을 들은 적 있습니다.
실은 멋도 모르고 이수를 했는데, 수업 들으러 가니 남자는 까마귀 혼자였습니다. 수업 첫날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니 모두들 요란한 박수로 맞이해 줍니다. 준꼬선생은 지금까지 페미니즘에 관심을 준 남학생은 까마귀가 처음이라며 까마귀의 활약에 기대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까마귀는 까치 무리에 잘못 끼운 느낌입니다. 까마귀가 노랑질을 안치고 사전에 ‘페미니즘’이 뭔지 사전을 뒤져봤더라도 이런 일은 안 생겼을 겁니다.
게으른 자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별 수 없이 한 학기 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기로 했는데, 수업 시간에 교수님은 자꾸만 객관적인 입장이 필요하다며 문제마다 시시콜콜 까마귀의 의견을 청구합니다.
침묵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가 있어야지요.
“대남자주의 경향에 대해 김군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군은 한국계이니 혹시 대남자주의 경향이 심한 거 아니에요?”
“김군은 결혼하면 남자와 여자는 꼭 합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합방이란 결혼의 전제일까요?”
“김군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섹스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남자들은 왜 기생집 출입을 하는 걸까요?”
“김군은 여자 친구가 있나요? 여자 친구와 데이트 할 때 자주 지각하나요?”
“중국 남자들은 집에서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하고 한다는데, 김군도 결혼하면 그럴 수 있나요? 그렇다면 김군과 결혼하는 여자는 참 행복하겠어요.”
“우리 일본 남자들은 세상에서 제일 못난 놈들이거든요. 무뚝뚝하고, 관심이 없고, 그저 목욕하고 잠이나 자고 먹을 줄 밖에 몰라요.”
교수님은 시간마다 열심히 세상 남자들의 나쁜 행위를 성토했지만, 그래도 귀여운데 없지 않았습니다. 40 대의 교수님이 애교가 얼마나 많은지, 20대의 까마귀가 막 반할 정도였습니다.
까마귀는 개인적으로 교수님에게 호감이 참 많았습니다.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여자를 노처녀로 가만 놔두다니 일본남자들이 이해가 안 갔습니다. 한국 남자들 같으면 적어도 99 번은 찍어볼 거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 말에는 여자는 남자가 하기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뉴스에 의하면 30%의 일본남자들이 앉아서 오줌을 눈다고 합니다. 이 통계수치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까마귀는 단순히 남자구실을 못하는 남자들이 많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어느 날 까마귀는 끝내 참지 못하고 쥰꼬선생에게 아슬아슬한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교수님, 대단히 실례라고 생각하면서도 꼭 한번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교수님은 이렇게 예쁘시고 매력적인데, 왜 지금까지 결혼을 안 하셨습니까?”
그러자 교수님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십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외동딸이에요. 우리 집 부모님들은 내가 모셔야 해요. 어머니가 80고개를 넘어섰는데, 지금도 나와 같이 살아요. 내가 시집가면 남자 집 부모님들을 모셔야 하는데, 그럼 나를 키워준 우리 어머니는 얼마나 외로울까요? 우리 일본은 여자가 시집을 가면 성씨도 남편 성씨로 바꿔야 해요. 저는 너무 싫었어요. 시집 못 가봤지만 혹시 팔려가는 느낌이 아닐까요?”
까마귀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남녀는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일궜으면 그 가정은 양쪽 부모를 모두 모실 동등한 권리가 있어야 마땅한 거 아닌가요? 그리고 나는 남자들 시중을 드는 거 싫어요. 어느 남자의 시중을 들자고 이 세상에 온 거 아니거든요. 나의 눈에 비낀 남녀의 관계는 마치 불평등조약 같이 보여요.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인간과 인간은 기본적으로 평등해야 한다고 봐요. 틀렸나요?"
까마귀는 다시 한번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누가 우리 여자들이 남자 없이 못 산다고 하던가요? 누가 여자는 나약한 존재라고 하던가요? 누가 우리를 머리만 길고 견식이 없다 했나요? 그건 모두 바보같은 남자들의 편견이지요. 나는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고 남자들 못지 않게 독립된 여자예요. 솔직히 혼자 사니 너무 편하고 좋아요. 자식이 없어도 좋아요. 나에게는 고양이가 있으니깐.”
교수님은 가방에서 고양이 사진을 꺼내 까마귀에게 보여주며 열심히 고양이 자랑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교수님은 페루샤 고양이와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까마귀는 저도 모르게 교수님의 사는 모습이 너무 멋지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