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대사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남경에 오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손중산과 장개석일 것이다. 이곳에서 손씨와 장씨는 중국민국을 세웠고 남경을 도읍으로 정했었다. 물론 그 초석을 다진 사람은 손중산이다. 그는 수천 년의 중국 봉건왕조를 무너뜨리고 중국 근대사를 개척하여 세계적 명성을 얻은 위인이다. '남자의 머리 태를 잘라버리게 하고 묶어놓은 여자의 쪽발을 풀어헤쳐' 서방 근대문명의 바람을 세차게 몰고 온 중화민국의 개국신사이다.

▲ 남경비행장 일각 | ||
그 바람을 맞고 나는 남경 녹구(祿九)비행장 입국에 서있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을 맞는 녹구비행장입구는 너무 좁았다. 장개석이 거쳐 갔을지도 모를(실은 아니다) 비행장의 건물도 인천국제공항에 비하면 너무 간소해 보였다. 그냥 소박하고 아담하다는 생각뿐이다.
남경 녹구비행장은 1995년 2월 28일에 정식 시공해서 그해 7월 1일 대만이 중국에 귀속되던 날에 개통을 했다고 한다. 시내로부터 비행장까지는 29키로나 되는 고속도를 닦아놓아 상해홍교비행장, 포동비행장과 함께 이미 화동지구 주요 화물운수중심지로 된 것이다. 금년에 녹구비행장은 싱가포르 장의비행장의 10.8억 위안 거액투자를 받아들여 장강삼각주의 주간선 비행장으로 건설하려 하고 있다. 녹구비행장의 주식 35%는 이미 홍콩기관국(机管局)이 소유하고 있는데 외자인입과 그들 비행장의 규획, 관리, 상업 등 방면의 풍부한 경험은 녹구비행장의 건설에 중요한 역할을 놀 것으로 전망된다. 2006년 녹구비행장을 거쳐 출입국한 인수는 627만 명, 화물운수는 15~16만 톤으로 추정된다.
얼굴이 둥글둥글하고 목소리가 서근서근한 사십대 중반의 사내가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다. 한 손에 생화를, 다른 손에는 '한국귀빈들을 환영합니다.'라는 피켓팅을 들고 서 있다가 낯익은 조명권사장과 먼저 인사를 하였다. 생화묶음은 유일한 여성 장성성 여사에게 돌아갔다.
우리는 15인승 되는 승용차에 올랐다. 연변의 소형버스 쑈찐버이(小金杯)와 비슷한 차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남경 당지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값은 20여만 위안이라 한다.
중년사내가 자기를 소개해서야 나는 그가 바로 우리 가이드를 책임진 강소성 중여여행사의 마승술(馬勝述 )선생임을 알게 되었다. 남경시 정부관원 중국인이 나와 맞아줄 줄 알았는데 한국(조선족)인이 아닌가? 유창한 한국말에 이상한 느낌마저 들었다. 연변이나 동북삼성에서면 몰라도, 여기는 넓디넓은 대륙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한국인도 조선족도 아니었다. 정말 중국인이었다.
"어디서 한국말을 배웠어요? 전혀 중국사람 같지 않은데요?"
나는 혀를 찼다. 함경도 방언까지 섞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저는 고향이 평양입니다."
"그럼 북한사람?"
"허허, 아닙니다. 화교이지요. 아버지가 6.25전쟁이 끝난 후에 북한에 눌러살다가 80년대에 귀국했고, 90년대에 우리 가정은 남경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오, 그렇군요. 남경이 어때요, 살기 좋은가요?"
"너무 좋은 고장입니다."
마 선생은 습관처럼 허허거렸다. 아니 말 한마디 하고 웃는 것이 습관이었다. 나는 남경의 좋은 점 몇 가지를 말해보라고 하였다.
"아시다시피 남경은 북경과 상해의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 역사문화 대도시인데다가 기후도 따뜻하고 공기도 좋으며, 상해처럼 물가도 비싸지 않고, 시민들도 순박합니다. 개혁개방 후에 경재도 엄청나게 발전하였습니다."
마 선생은 또 흰 이를 드러내며 허허, 웃었다.
가면서 보니 고속도 양쪽으로 새로 지은, 고급스런 아파트와 별장과, 기타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평당(1미터ⅹ1미터) 6~7천 위안하는 아파트라고 한다. 백 평이면 6~70만이다. 거기에 인테리어까지 하고 나면 100만 위안이 든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남경시 공무원들의 노임은 높은 편이 아니었다. 대학교수도 2~4000 위안, 일반 공무원은 1~3000천 위안 노임을 받고 있다. 일전 한 푼 쓰지 않고 30년 꼬박 노임을 모아야 아파트 한 채를 산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부동산에 얼마나 많은 거품이 낀 것일까? 700여만 인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끝없이 들어선 건물을 보는 내 마음은 결코 평온치 안았다.
마 선생이 계속 가이드를 했다.
"다들 삼국지를 봤겠지요? 남경은 절강성과 인접해 있는데 옛날 3국시기 손권이 세운 오나라에 속했고 절강은 월나라에 속했습니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자주 싸움을 했지요…두 나라가 인접해 있는 곳에 큰 호수가 있습니다. 태호(太湖)라는, 면적이 어마어마해요. 자그만치 2400㎢가 되거든요. 허허, 싱가포르 나라 면적이 685.4㎢이니 얼마나 커요? 3배도 더 되지요. 허허, 중국은 이렇습니다."

삼국지에서 오나라(남경)는 촉과 대등한 관계로 그려져 있는 나라이다. 손권하면 계속되는 불행으로 주군의 자리가 계속 바뀌는 혼란 속에서도 탁월한 영도력을 발휘하여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위나라에 대응해 촉과 힘을 합치는 외교적인 성과를 거둔 훌륭한 지도자로 그려져 있다.
그는 군주로 평생 호화롭게 살다간, 또한 촉나라 제갈량과 힘을 합쳐 장강 적벽에서 위나라 조조의 대군을 몰살시킨 영웅호걸로 묘사되어 있다.
조조는 적벽대전 전에 오림에서 이런 시를 읊었다고 한다.
술잔은 노래로 마주해야 하리.
우리 살이 길어야 얼마나 되나.
견주어 아침이슬에 다름없건만
가버린 날들이 너무 많구나.
하염없이 강개에 젖어 보지만
마음속의 걱정 잊을 길 없네.
무엇으로 이 시름 떨쳐 버릴까
오직 술이 있을 뿐이로다.
푸른 그대의 옷깃
아득히 그리는 이 마음
오직 그대로 하여
이리 생각에 잠겨 읊조리네.
사슴의 무리 슬피 울며
들의 쑥을 뜯는구나.
나에게 귀한 손님 오면
거문고와 피리로 반기리.
밝고 밝은 저 달빛
어느 날에 비추임을 그칠까
그 달빛 따라 오듯 이는 시름
끊을 수가 없구나.
논둑길 넘고 밭둑길 건너
그릇 되어 서로 헤어져 있네.
헤어짐과 만남 함께 이야기하며
마음은 옛정을 떠올린다.
달을 밝고 별 드문데
까막까치 남으로 나네.
나무를 세 번 둘러봐도
의지할 가지 하나 없구나.
산은 높음을 싫어하지 않고
물은 깊음을 싫다 않으리.
주공은 입에 문 것을 뱉어가며
천하의 인심 얻기에 힘썼네 .
조조의 시에는 인생을 논하며 오나라를 평정하고 천하의 군주가 되려는 웅심이 숨어져 있다. 그런데 후에 고찰해 보니 적벽(赤壁)은 남경 양즈쟝(장강)지역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한(武漢) 일대에 있었다. 또, 그런데 우한과 남경은 현재의 접경지대이니 우한 역시 옛날 오나라 땅에 속해 있었으리라 생각이 된다.
역사는 역사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나는 우연히, 그런 역사가 휩쓸고 간 퇴적지에 왔었고, 새삼스레 역사와 현실의 오묘를 교감하면서 오나라 낯선 땅 관광에 몇날며칠은 바삐 돌아야 했었다.
40분 쯤 달리자 저 멀리 남경 성곽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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