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 "한서린 동사"
상태바
중국동포 "한서린 동사"
  • 운영자
  • 승인 2003.12.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워 죽겠다" 13차례 구조요청 전화도 헛일
법무부의 장기 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해 농성을 해오던 중국동포가 체불 임금을 받으러 나간 뒤 하루만인 9일 새벽 서울 도심 거리에서 동사한 채 발견됐다. 이 중국동포는 숨지기 전에 112와 119에 여러차례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으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오전 5시20분께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고가 근처 길가에서 중국동포 김아무개(46)씨가 쓰러져 숨져 있는 것을 환경미화원 김아무개(55)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숨진 김씨의 휴대전화에는 오전 1시15분부터 1분43초 동안 119에 전화를 걸었고, 1시18분부터 4시25분까지 6초~4분여 동안 13차례나 112에 전화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경찰청 112신고센터의 녹음테이프에는 숨진 김씨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종로4가에서 창덕궁 쪽으로 가고 있는데 추워 죽겠고 힘이 없어서 못 걷겠다”며 “사는 데가 기독교 100주년기념관 쪽이니 순찰차를 보내달라”고 했다. 경찰은 “집도 가까우니 택시를 타고 집에 가라”고 한 뒤 “휴대전화로는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니 공중전화로 다시 걸라”고 요구하자, 곧이어 전화가 끊겼다.

112신고센터 관계자는 “김씨가 술에 취한 듯 횡설수설하고, 종로4가가 워낙 넓은데다 집도 가까워 택시를 타고 갈 것을 권유한 것”이라며 “112신고는 신고자가 신원과 위치, 상황 등을 정확히 말해야 접수가 가능한데 김씨의 신고는 공식 접수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김씨가 먼저 도움을 요청한 119구조대의 관계자는 “‘순찰차를 보내달라’고 해 위치를 물었으나 김씨가 횡성수설해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112로 전화하라고 일러주고 전화를 끊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중국 헤이룽장성 출신으로, 지난 2000년 7월5일 국내로 밀입국해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해왔으며, 다른 중국동포들과 함께 서울 종로5가 기독교 100주년기념관에서 정부의 불법 체류자 강제추방에 반대하는 농성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김씨의 동료 강아무개(57)씨는 “김씨가 남양주와 대전, 동두천 등에서 일했으나 받지 못한 돈이 많아 농성 기간 동안에도 돈을 받으러 바깥을 드나들었다”며 “8일 새벽 ‘동두천에 돈 받으러 간다’며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동포의 집’ 관계자는 “이날 오전 10시30분께 김씨의 휴대전화로 중국에 있는 아들이 전화를 걸어와 김씨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며 “김씨의 어머니와 부인, 아들이 오는 20일 한국으로 들어오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겨레]2003-12-10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