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젊은 부부가 수영복을 입은 채 어린아이를 안고 수영장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어린아이의 옷을 다 벗기고는 그대로 물 속에 집어던졌다. 나는 깜짝 놀라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린아이는 손과 발을 휘두르며 물 속에서 버둥거렸다. 조금 지나자, 아이의 아버지가 들어가서 아이를 들어올렸다. 잠시 아이를 두 손으로 잡고 마주보며 어르더니 다시 물 속에 던졌다. 아이는 또 발버둥을 쳤고, 잠시 후 그 아버지는 또 어린애를 건져 올렸다. 아내는 그러는 광경을 바라보며 웃고만 있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물었다.
“왜 어린아이를 물 속에 집어던져요? 큰일나게.”
그러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큰일날 것 없지요. 어린애는 원래 물 속에서 자랐으니까요.”
그래도 불안하게 여기고 있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일찍부터 이렇게 물 속에 혼자 놔 둬야 수영을 배우게 되지요. 사람은 다 자기 능력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어느 교수가 들려준 이스라엘 사람 이야기이다.
2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아이가 마당에서 뛰어오다가 넘어졌다. 선생은 그 아이를 보고 말로 일어나라고 하였다. 아이는 일어나서 아팠던지 무릎을 바라보았다. 한 쪽 무릎에 빨간 피가 조금 나왔다. 그러자 그 아이는 앙― 하고 울었다. 선생은 역시 말로 울지 마라며 화장지를 꺼내어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는 스스로 무릎의 피를 닦았다.
마침 이곳을 지나가다가 이 모습을 본 학부모(學父母) 한 어머니가 원장에게 이르고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아이가 넘어졌는데 일으켜주지도 않고 피가 나는데 닦아주지도 않으니, 선생이 너무 애정이 없는 게 아닌가요?”
그러자 원장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지요. 오히려 선생이 교사의 직분에 충실한 것이지요. 그 정도는 그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일러주는 것이 교육입니다.”
그러고는, 아이를 일으켜 주고 닦아주면 그것은 어머니가 할 태도이지 교육자가 취할 태도는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다.
오해를 받을 번했다는 어느 유치원 교사의 이야기이다.
3
용돈을 벌 일을 부탁하러 온 젊은이에게 중소기업체 사장이 물었다.
“자네는 아버지가 재벌인데 무엇 하러 일을 하려 하는가?”
그러자 그 젊은이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 용돈은 제가 벌어야지요. 아버지가 재벌이니까 덕을 보기는 하지만….”
그 아버지에게 한 친구가 권했다.
“나이도 들고 돈도 벌었으니 이제 인생을 즐기며 살게나. 적어도 자네 아들 정도만이라도.”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자식이야 재벌의 아들이니 그럴 수 있지만, 나의 아버지는 가난하다네. 그러니 그럴 수가 없지.”
해방 뒤 한글학회 큰사전의 출판 경비를 대준 미국 재벌 록펠러 집안의 이야기이다.
4
시골에 갔다가 한 늙은 부부를 만났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이렇게 권했다.
“이제 자식들한테 가서 사시지 왜 이렇게 고생하십니까? 자녀들도 다 여유롭게 산다면서요.”
그러자 노인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자기 삶은 자기가 사는 거요. 자식은 자식대로 살아가게 둬야지 괜히 가서 부담스럽게 할 게 없잖아요? 우리도 우리끼리 사는 게 훨씬 더 마음 편하고.”
그러면서, 아이들이 보고 싶으면 찾아가고, 저희들도 오고 싶으면 찾아온다고 하였다. 정은 풀어가며 살 수 있지만, 인생은 대신 할 수 없으니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라 하였다.
사람이 이 세상에 혼자 왔다가 혼자서 가듯이, 인생도 자신이 스스로 엮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은 무엇보다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깨우치고 가르치는 일이 먼저이고 기본이다. 어느 부자가 방학 때마다 자녀들에게 국토순례를 하게 하고, 어떤 재벌이 외국 유학을 마치고 온 아들을 현장소장까지 속이고 말단 사원으로 일을 시켰다는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