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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인구는 길림성 조선족인구의 70%, 전국 조선족인구의 42%를 차지한다. 연변의 조선족인구의 변화상황에 대한 분석과 연구는 전반 조선족인구문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의의를 갖고있다.1. 연변의 조선족인구
① 조선족인구의 변화
연변의 조선족인구 통계표를 보면 조선족인구는 지난 세기 50년대부터 40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하다가 90년대 이후부터는 점차 감소된것을 알수 있다. 1953년부터 1993년까지의 40년간 조선족인구는 해마다 평균 8.82만명(성장률 1.18%)씩 증가돼 도합 32.34만명이 증가됐다. 그러나 1994년의 인구는 전해보다 0.37% 줄어들었다. 그러나 1995년의 통계에서는 500명 증가된것으로 나타났다.
연변의 조선족인구는 1995년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했다. 1999년까지 인구가 도합 1.34만명 감소되였는데 평균 해마다 2,200명(0.26%)씩 감소되였다. 그러나 같은 해 길림성의 인구의 증가률은 1.05%에 달했다.
2000년에 진행된 제5차 전국인구보편조사자료에 따르면 길림성의 총인구는 2,728만명, 연변의 총인구는 221만명이였다. 제4차 전국인구보편조사 때보다 각기 262만명과 13만명이 늘어났으며 증가률은 각기 10.63%와 6.24%,로서 10년간 해마다 평균 0.98%와 0.59%씩 증가한셈이였다. 조선족인구는 이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는바 조선족인구는 80만 1,210명으로 10년전인 제4차 인구조사 때보다 2만 269명 줄어 증가률은 -2.47%, 해마다 평균 0.24%씩 줄어든셈이였다.
90년대에 들어와서 연변의 조선족인구는 그 증가속도가 다른 민족에 비해 훨씬 뒤떨어졌다.
1953년부터 1999년까지 연변 조선족인구의 변화
총인구수 증가량
1953년: 53만 8,200명 ―
1993년: 86만1,600명 32만3,400명
1994년: 85만 8,400명 -3,200명
1995년: 85만 8,900명 -2,700명
1996년: 85만 4,000명 -7,600명
1997년: 85만 2,900명 -8,700명
1998년: 85만 1,400명 -1만 200명
1999년: 84만 8,200명 -1만 3,400명
② 조선족인구의 자연증가률의 변화
1990년 연변의 조선족 출생인구는 9,340명, 1996년의 출생인구는 4,340명이였다. 인구의 자연증가률이 지속적으로 하강되는 가운데서 1996년에는 1990년보다 4,990명을 적게 낳은것이다. 따라서 인구의 자연증가률이 급속히 내려갔다. 1999년에는 출생인구가 3,740명으로 1996년보다 590명 적게 낳았다.
1995년에는 그 전해보다 약간의 증가세를 보였지만 조선족인구의 마이너스성장은 1993년부터 시작되였다고 말할수 있다. 만약 이러한 추세로 발전한다면 앞으로 10년간 조선족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될것이며 따라서 여러가지 사회문제가 나타나게 될것이다.
2000년 이전에는 인구발전이 증감의 기복이 있었지만 2000년 이후는 직선으로 하강될것으로 예상된다.
③ 조선족인구수의 기계적증가.
개혁개방후 사람들의 관념과 의식은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농촌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농촌을 떠나 도시와 해외로 진출했다.
연변통계국의 제5차 전국인구보편조사 자료에 따르면 연변을 떠난지 반년이상 되는 인구는 연변 총인구의 16.4%를 차지했다. 그중 성외로 나간 조선족은 4만 725명으로 53.1%를 차지했다. 다시 말하면 조선족인구의 5.08%가 타성으로 나간것이다.
중한수교 이후 섭외혼인수도 급속히 증가되면서 조선족인구의 기계적변동이 가속화되였다.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연변에서 섭외혼인을 한 사람은 도합 1만 8,885명, 그중 조선족녀성이 95.3%를 차지했다.
섭외혼인은 당지의 인구발전에 대한 영향과 사회적인 역효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있다. 연변의 일부 지역, 특히는 변강 향진의 조선족 남녀비률은 심각한 실조상태에 처해있다.
훈춘시 산아제한위원회에서 조사한데 의하면 훈춘시 산하11개 향, 진의 미혼 로총각은 1,427명, 그중 조선족총각이 924명로서 64%를 차지하고있다. 국경지역의 향, 진에 대해 조사한 결과 도문시 량수진에는 결혼 적령기를 넘은 로총각이 277명, 훈춘시 춘화진에는 157명, 화룡시 남평진에는 42명이였다. 화룡시 삼합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 남녀비률이 110: 1이였다.
2. 연변 조선족인구 마이너스성장의 원인
① 저생육률과 저증가률의 결과
길림성 조선족녀성의 총생육률은 1964년부터 뚜렷하게 내려갔다. 1963년에는 6.71이였으나 1964년에는 4.55로서 전해보다 32.19% 감소되였으며 전국의 평균치(6.18)보다 23.38% 낮았다. 60년대 후반기에는 4.0좌우밖에 되지 않았다.
1963년에 연변조선족자치주 산아제한위원회가 설립되였으며 《정면교육을 위주로 하고 경쟁을 하지 않으며 강박명령을 엄격히 방지하고 절육기술력량을 조직하여 농촌을 지원하는》방침을 내오고 산아제한활동을 벌렸다. 조선족군중들은 산아제한정책에 적극 호응하여 나섰으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주동적으로 생육절제수술을 받았다. 《문화대혁명》기간 산아제한사업은 약간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선족녀성의 총생육률은 지속적으로 하강되는 추세였다. 이와 같이 연변의 조선족들은 전국적으로 산아제한정책을 보편화하기에 앞서 자발적으로 산아제한을 실행하였다. 1974년부터 조선족녀성들의 총체적 생육률은 2.0 이하였으며 전국의 한족의 생육률에 비해 엄청나게 낮았다.
90년대초 연변 조선족의 생육률은 1.55로서 길림성의 평균 생육률보다 0.3 낮았다. 90년대 말 연변의 조선족의 생육률은 1.1좌우였다. 즉 10년간 가임년령의 조선족녀성들은 평균 아이를 0.45명 적게 낳은 셈이였다. 결과적으로 연변의 조선족들은 길림성의 인구제한사업에 큰 공헌을 하였지만 역효과도 컸다.
1990년부터 2000년 사이 연변 조선족인구의 출생률은 원래의 24.01% 5.16%로 내려갔으며 자연증가률은 12.89%부터 -1.89% 내려갔다. 2000년의 사망률은 7.0‰로서 연변의 평균수준과 한족들보다 1.24 와 1.87 높았다.
② 타지방에로의 인구류동
연변의 조선족인구는 타지방으로 나가는 수자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개혁개방후 날로 많은 조선족농민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해외로 진출했다. 2000년 연변의 인구조사 통계 자료에 따르면 타성으로 나간 조선족인구는 4.1만명이였다. 특히 조선족녀성들의 섭외혼인은 조선족인구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93년부터 2001년까지의 섭외혼인 중 조선족녀성이 95.3%를 차지하였다. 그중 미혼녀성이 53%, 리혼한 녀성이 47%였다.
대량의 생육적령기의 가임년령 녀성들이 해외로 나가면서 연변 조선족인구의 성별 비례는 균형을 잃었다. 국경지역의 성별 비례는 더욱 심각한 불균형상태이다.
1953년에 진행된 제1차 전국인구보편조사 자료를 보면 연변에서 조선족인구가 60.17%란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지만 2000년 제5차 전국인구보편조사에서는 36.26%로 내려갔다. 이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것은 같은 시기 한족의 인구비중은 37.4%에서 60.7%로 상승한것이다.
③ 생육관념의 갱신과 생육주기의 연장
녀성들의 사회적지위와 문화자질이 높아짐에 따라 새 세대 녀성들은 기성 세대들처럼 평생 자식을 키우고 가무로동을 하는데만 만족해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활동에서 자기의 가치를 실현하려 하며 부단히 신생사물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세계관, 가치관에 일련의 변화가 일어났다. 많은 조선족녀성들은 늦게 결혼하고 늦게 생육하고 적게 생육하는 산아제한의 창도자와 실천자로 되였다.
통계에 의하면 연변의 조선족녀성중 84.68%이상의 녀성들은 법적인 결혼년령을 넘어 결혼하며 95.61%의 녀성들은 산아제한을 실천하고있다. 두번째 아이를 낳는 녀성은 극히 적으며 자녀 셋 이상을 낳은 녀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족녀성들의 평균 생육수가 적어짐과 동시에 생육주기가 상대적으로 연장되면서 불가피적으로 마이너스성장의 악과를 빚어내게 되였다.
3. 인구의 마이너스성장을 완화시킬데 대한 대책과 건의
연변은 전국과 마찬가지로 대다수 민족의 인구는 부단히 증가하는 상황이다. 반면에 조선족들은 일찍부터 저출생률, 저사망률, 저증가률의 안정된 인구재생산을 실현하였다. 연변의 조선족인구는 이미 정지, 혹은 감소의 상태에 처해있다. 연변의 조선족인구는 시간적으로 보면 마이너스성장이 전국보다 40년, 길림성보다 20년 앞서 실현하였다. 조선족인구문제가 전반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작용은 결코 평범치 않다.
인구의 마이너스성장을 완화시키는 방법:
1) 연변의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고차원의 생활을 지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난하고 락후한 고향을 떠난 사람이지만 만약 연변이 경제가 발달하고 생활수준이 향상된다면 자연히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량호한 경제조건과 생활환경은 연변 인구의 향심력으로 된다. 그러므로 인구와 경제 및 산업구조와의 관계를 잘 처리함으로써 인구의 기계적류동을 방지해야 한다. 또한 조선족군중들을 잘 인도하여 쌍방향의 류동을 실행하게 함으로써 인구 마이너스성장의 속도를 완화시켜야 한다.
2) 인구 자연변동의 관성과 자연법칙을 존중해야 한다.
인구의 기계적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균형적인 성별비례를 유지해야 한다.
1984년 중공중앙에서는 국가 산아제한위원회 당조의 《산아제한사업에 관한 상황보고서》를 비준 이첩할 때 《소수민족의 생육정책에 대해 적당히 처리해야 한다. 인구가 천만명 이하의 민족은 두번째 아이를 낳게 하고 개별적인 상황에서는 세번째 아이를 낳는것을 허용해야 한다. 그러나 네번째 아이를 낳는것은 비준하지 말아야 한다. 이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은 민족자치지방의 인민대표대회와 정부, 해당 성, 자치구에서 당지의 실정에 근거하여 구체적으로 제정한후 상급 인대 상무위원회 혹은 인민정부의 비준을 받고 실행해야 한다.》라고 지적하였다.
민족지구에서는 본 지방의 실정에 알맞는 인구정책을 제정해야 하며 인구사업의 중점을 인구의 수자를 제한하는데만 국한하지 말고 인구의 자질과 인구의 생활질을 높이는데 두어야 한다.
조선족은 우리나라에서 인구가 백만명이 넘는 18개 소수민족중의 하나이며 전국 55개 소수민족중에서 인구가 13번째로 많은 민족이다. 조선족의 인구발전의 변화는 전반 연변의 조선족농촌인구의 교육질뿐만 아니라 가정의 교육비용 지출, 농촌의 로동년령인구, 로년부양계수 등 여러 면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있다. 해당 부문과 단위에서는 구체적인 사업과정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갖고 상응한 조치를 제정하여 인구의 마이너스성장으로 말미암아 초래되는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잘 조절하고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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