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 사기 당한 조선족 집단 거주지 ‘희망촌’
한국 가려다 재산 날리거 나 産災당한 후 귀국
대부분 파출부·보조금 등으로 근근이 살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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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연길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조선족 집단 거주지 ‘희망복지촌’. 콩·배추·옥수수 밭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함석 대문이 달린 빨간 벽돌 건물 5개 동이 4~5m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소형 텔레비전, 앉은뱅이 밥상을 제외하곤 변변한 가재도구 하나 없는 20여평 방에서 주민 강성옥(여·44)씨를 지난달 말에 만났다. 외동딸(18)과 함께 이곳에 살면서 다른 마을 가정집 파출부로 일하며 생계를 잇고 있는 그는 갸름한 얼굴이지만 눈가, 입매에 주름이 깊게 패어 있었다.
남편과 함께 러시아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던 강씨는 1992년 6개월치 생활비와 맞먹는 돈을 빚내 남편을 한국에 보냈다. 그러나 남편은 가짜 한국인 브로커에 속아 돈만 떼이고 다시 돌아왔다. 빚을 갚기 위해 남편은 1999년 다시 한국행을 택했다. 그러나 또 사기를 당하고, 집까지 팔았다. 잇단 사기에도 불구하고 코리안 드림을 떨치지 못한 남편은 또다시 2000년 한국에 갔다가 2002년 크리스마스에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원망 많~이 했습네다. 왜 한국에 나가려고 했는지, 차라리 러시아서 그렇게 일했으면 벌써 부자가 됐을 텐데….” 차분하던 강씨 목소리가 떨리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 ▲ 한국인 이윤식 목사가 2000년부터 중국 길림성 연길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는 복지시설‘희망복지촌’주민들. 희망복지촌에는 한국에서 사업에 실패하거나 사기를 당해 오갈 데 없는 사람 등 조선족 200여명이 살고 있다. /오윤희기자
- 이곳 희망복지촌엔 강씨 같은 사람이 많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연변 지역에서 행상과 막노동을 하거나, 돈을 벌려고 한국에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와 오갈 데 없이 떠돌던 조선족들이다. 건물 5개 동에 각각 10세대씩 모두 50세대, 200여 명이 살고 있다.
희망복지촌은 한국인 이윤식(67) 목사가 회장으로 있는 복지법인 ‘연변희망복지실업유한공사’가 지난 98년 4만평 부지를 사들여 건립했으며 2000년부터 주민을 받고 있다.
주민들 중 리순자(74) 할머니에게도 사연을 들어봤다. 리 할머니 역시 코리안 드림에 빠진 아들들과 헤어지면서 이곳에 왔다. 은행원 둘째아들과 살던 리 할머니는 1992년 둘째아들이 한국에 가려다 한국인 브로커에게 사기당하는 바람에 막내아들 집으로 옮겼다. 하지만 막내까지 한국에 가버려 2001년 며느리·손녀와 함께 희망복지촌에 흘러들어왔다.
선천성 척추 디스크로 몸을 숙일 수 없는 박진선(46)씨는 같은 병으로 허리를 아예 펼 수 없는 어머니와 함께 이곳에 왔다. 한국에 갔다가 지난해 말 희망복지촌에 온 김학규(46)씨의 오른손은 언제나 주머니에 들어가 있다. 공장에서 일하다 다쳐 손가락 셋을 잃었기 때문.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이젠 “한국 사람들이 무섭다”고 했다.
희망복지촌은 이들에게 주거공간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장애인 등에게 약간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수입원이 부족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50가구를 더 입주시키려고 짓던 건물도 재정 부족으로 중단된 상태다.
이윤식 목사는 “한국인이 같은 민족(연변 조선족)에게 범한 잘못을 조금이라도 보상하는 길이라 생각해서 희망촌을 꾸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연길=오윤희기자 oyounh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