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님의 작전 순서를 따르면, 우선 [남성 초혼]에 청혼광고를 등록하고, 다음에 [여성 초혼]에서 사냥감을 물색하기로 되어있습니다.
까마귀님은 [여성 초혼]에서 꽃 구경을 하느라 그만 순서를 깜빡 했습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다른 거는 몰라도 실수는 절대 용서 못합니다. 실수는 자비심으로 이어집니다. 자비심은 자아염오로 이어집니다.
자아염오는 다시 우울증으로, 우울증이 심해지면 한겨울에 한강으로 뛰어듭니다.
-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재털이에 절반 남은 꽁초를 비벼 끄고 [ 남성초혼]을 클릭합니다. 나도 빨리 올라가 청혼광고를 하나 올려놔야지요.
그러고 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난생처음 쓰는 청혼 광고입니다.
- 내 신세도 참 기구하구나. 친구 놈이 오작교에 광고를 냈다고 웃을 때는 언제고? 어쩌면 나도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오작교’ 하니, 연변의 <청년생활>잡지가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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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유학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언젠가 어머니가 <청년생활>잡지를 몇 부 부쳐온 적이 있습니다. 잘 알겠지만 <청년생활>은 연변의 대중문화 잡지인데, 연변에서 유일하게 밥벌이를 하는 잡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잡지에는 청춘 남녀들을 대상으로 한 <오작교>란이 있었습니다. 40원 정도면 광고를 낼 수 있었는데, 거기다 광고를 낼 생각은 없어도, 아가씨들의 파일을 연구하는 거는 특별한 재미였습니다.
솔직히 <청년생활>에 오작교를 내놓고 볼게 뭐 있습니까?
하여튼 그때 대학시험에 낙방하고 할일 없는 나는 방구석에 들어박혀 오작교의 파일을 연구하는 것이 유일한 재미였다고 할까, 바보처럼 혼자 실실 웃다가 어머니에게 들킨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부쳐온 잡지를 받아들고 너무 고마웠습니다. 역시 우리 어머니만큼 이 둘째를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 나는 건, 나만이 오작교에 흥취가 있는 거 아니었습니다. 까마귀가 아직 잡지를 읽어보기도 전에 집에 놀러 왔던 친구들이 들고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돌고 돌아서 마지막에 누구 손으로 갔는지 종무소식입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청년생활> 잡지사로 청혼 편지가 많이 날아간 거 틀림이 없습니다.
문제는 까마귀의 어머니가 잡지를 부치면서 그만 종이가 없었는지, 아니면 그게 편하다고 생각했는지 하여튼 잡지의 공백에다 저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잡지를 읽어본 친구들이(특히 아가씨들) 칭찬이 자자합니다.
“어머님이 글을 참 잘 쓰시네요. 까마귀님, 빨리 서둘러야겠어요..”
까마귀님은 정말 쥐구멍에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 어머니 문필이 좋은 건 알지만, 뭐라고 썼는지 아십니까!
“너도 이젠 나이가 적지 않으니 일본에서 알 맞는 대상을 찾아보거라. 객지에서 혼자 생활하자니 얼마나 힘들겠냐. 곁에 사랑하는 여자라도 있으면 마음 고생이 덜 할거 아니냐. 혹시 아직 사귀는 아가씨가 없으면, 엄마 친구의 막내딸도 일본에서 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소개해줄까.”
그때, 까마귀의 나이는 25살, 어머니의 말씀을 들었더라면 지금 쯤은 나도 소학교를 다니는 졸개 한 놈이 생겨, 부지런히 이 애비의 술 심부름을 다니겠는데 말입니다.
후회막급입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