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중국 길림성 서란시조선족제1중학교 3학년 2반 구미령 학생이 보내온 글 2편을 싣는다. 동북평원의 길림과 하르빈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서란 지역에는 우리동포 3만 여명이 살고 있다. 구미령 학생의 글을 통해 우리는 동포들 삶의 단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어느 날 우리 학급에 김꽃순이라는 여자애가 전학해 왔다. 꽃순이, 이름만 들어도 진짜 촌티가 줄줄 흘렀다. 새까만 눈알 ,오뚝 솟은 코, 앵두 같은 입, 다들 북조선여자애들은 예쁘게 생겼다더니 못생기진 않았다. 어찌 자기나라 -조선에서 공부하지 않고 우리 이곳에 왔을까? 꽃순이는 반에 들어서자마자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꽃순이라고 합니다.”말투까지 괴상해서 반의 친구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그는 머리를 갸우뚱거리다가 선생님이 배치한 자리에 앉았다. 수업시간에도 얼마나 활발한지 다들 혀를 내둘렀다.
첫 시간이 끝나자 선생님이 조용히 나를 부르더니 우리 숙소에 걔가 들어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난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돌봐주겠다고 대답했다.
점심시간, 나는 꽃순이를 데리고 우리 숙소식당으로 갔다. 식모가 꽃순이를 보고 한 달 식사비용을 얘기했더니 그는 펄쩍 뛰는 것이었다. “이렇게 비쌉니까, 우리 조선의 몇 배나 됩니다.”
주인집 아줌마도 한심한 듯 아무 말을 못했다. 식모는 아마 이런 철딱서니가?, 하고 고깝게 생각했을 것이다.
꽃순이는 주저주저하며 말했다.
“그럼 돈은 내일 드리겠습니다.”
밥도 얼마나 잘 먹는지 세 공기나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것이었다.
“얘 비싸긴 해도 기막히게 맛있다.”
꽃순이가 희죽이 웃었다.
그 다음날 내가 아침 일찍 학교 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걔가 들어서니 나를 보고 인사를 해왔다.
“안녕, 잘 잤니?”
(자식, 인사성은 밝아가지고…)
나는 건성으로 “응-”하고 대답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그는 나를 끌며 얼른 가자고 하였다.
식당에 들어서자 눈치 빠르게 공기에 밥을 뜨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밥을 공기에 꼭꼭 눌러가며 뜨지 않는가?
“얘, 밥이 너무 많아.”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밥값도 싼 것 아닌데 많이 먹어야 본전을 하지!”하는 것이었다.
난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한 면으로, 꽃순이가 얼마나 배를 곯았으면 이 정도까지 되겠냐 하는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나는 이렇게 물었다.
“꽃순아, 넌 왜 북조선에 있지 않고 여기 왔니?”
꽃순이의 대답은 당돌했다.
“오고 싶어서 왔지 뭐!”
그 말에 나는 더 궁금해났다.
“왜 왔니? 거기가 넘 살기 힘들어서 왔지? 그런데 어떻게 건너왔어? 넌 운수도 좋다. 잘못 걸리면…”
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꽃순이가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왜 왔긴? 오고 싶어서 왔다니깐. 더 이상은 묻지 마!”
꽃순이가 나갔다 들어오자 장난꾸러기 남자애들이 또 수작을 피웠다. 물 반쯤 담은 컵을 문 턱 우에 올려놓아 영문도 모르고 교실에 들어서던 그가 물오리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다들 박장대소하였다.
그런데 꽃순이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서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웃음을 거두고 그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한참이나 서있던 꽃순이가 교실이 떠나갈 듯 꽥 소리를 질렀다.
“누가 한 짓이야, 못된 자식! 이리 못나와?”
누구도 찍소리 하지 못했다. 그처럼 쾌활한 꽃순이가 이토록 성낼 줄이야!
“한 번 더 이런 이러기만 해봐라!”
그 애는 성내며 제 자리에 들어가 버렸다.
어느 하루 옆자리 친구가 꽃순이의 책을 뒤지다가 가족사진인 듯한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는 보고 넘 웃긴다며 애들에게 공개하고는, 또 사진에 있는 얼굴들에다 수염이요, 토끼귀요 별 이상한 것들을 다 그려 놓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꽃순이가 들어왔다.
그는 낙서가 된 자기네 가족사진을 보더니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너희들 진짜…”하며 밖을 뛰쳐나갔다.
우리가 너무했단 것을 느끼면서 후회할 때는 벌써 엎지른 물이 되어버렸다.
자습시간 우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선생님의 호된 꾸중을 기다렸다.
선생님의 표정은 엄숙했다. 우리를 둘러보다 이렇게 꾸중했다.
“참, 실망했습니다. 동무들이 어떻게 꽃순이에게 이럴 수 있습니까? 그 사진은 이국타향에 있는 꽃순이의 부모형제들을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사진입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들의 한순간의 즐거움이 그한테 그렇게 아픈 상처가 될 줄이야?
선생님은 무겁게 말씀하셨다.
“꽃순이는 이제 떠난답니다. 더 이상은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합니다. 아무리 얼려도 마음이 돌아서지 않습니다. 친구들이 만일 진심으로 꽃순이가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지금 교무실에 가서 꽃순이에게 잘못을 비십시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나는 여럿 애들과 부리나케 교무실로 향했다. 꽃순이는 그때까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먼저 일을 저지른 남학생이 꽃순이한테 빌었다.
“꽃순아, 미안해. 다시는 그런 장난 하지 않을게, 제발 가지마.”
다들 너도나도 가지 말라고 말렸다.
그제야 꽃순이는 눈물을 훔치며 가지 않겠다고 대답하였다.
다음날 모든 학생이 다 교실에 들어섰건만 상학종이 울릴 때까지 꽃순이의 그림자만은 나타나지 않았다.
온 하루 긴장된 마음으로 꽃순이가 교실에 나타나기만 기다렸지만 설마 했던 일은 현실로 되어 버렸다.
후에 우리는 꽃순이가 끝내 어디론가 떠나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꽃순이가 떠난 것에 대해 모두 슬퍼하고 자책들을 하였다.
나는 아직 꽃순이가 무슨 사연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른다. 아, 그런 애를 도와주지 못할망정 괴롭히기만 했으니…?
(꽃순아, 제발 돌아오렴, 우리와 같이 공부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