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공동체의 시공간적 전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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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공동체의 시공간적 전개에 대하여
  • 전유재
  • 승인 2007.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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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형성발전 공간성과 시간성의 동시적 조망으로 접근 가능하다. 공간성(空間性)은 확보를 그 기본으로 하고, 시간성(時間性)은 전개를 그 근거로 한다.

 

공간성부터 먼저 따져본다. 조선반도에서 만주지역으로 이주해간 조선족1세들에게 있어서 공간의 확보가 가장 큰 명제였다. 말하자면 삶의 터전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되었던 것이다. 공동체 기틀을 잡기 위한 노력이 공간의 확보를 중심으로 나타났고 이 과정이 공동체 형성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공간성의 제1원리는 확보의 지향성에서 잘 나타난다. 지난 한세기 동안, 더 소급한다면 산업혁명 이후 제국의 영토확장 흐름에 의해 조선반도 역시 그 와중에 큰 수모를 겪었다. 물리적 힘을 근간으로 한다면 일반적으로 전쟁의 방식을 빌리게 된다. “영토 확장”이라는 단어를 유심히 따져본다면 재미있는 논리를 발견하게 된다. 확장이라는 것도 결국은 기존 공간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될 수 있는 공식이다. 일례로 일본이 자국의 힘을 키운 전제 하에서 침략전쟁을 발동하고 조선반도를 평탄한 사실, 거기에는 공간확보의 기저로부터 전개된 공간확장의 논리가 들어있다.

 

공간의 확보는 무엇보다도 우선된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스탈린이 수십만의 고려인을 연해주로부터 중앙아시아로 몰아낸 역사나, 관동대지진이 발생 후 “조센징이 지진을 틈타 도쿄와 요코하마 도처에서 불을 지른다”는 유언비어와 함께 대학살이 이루어진 사건 등등은‘공간의 소멸’을 위한 극단적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생존공간의 말살이 그 본질로 된다. 그 것이 그토록 중요하기에 모택동과 그의 혁명적 동지들은 세상이 놀란 ‘2만 5천리 장정’을 감행, 공간 확보에 성공했다.

 

역시 같은 맥락으로, 도전과 응전의 대응관계에 의해 일군의 무리가 두만강을 건너 만주를 중심으로 공간확보에 나서면서 조선족이 생겨났다. 백의민족은 중국에서 공간확보의 제1조건을 일단 성공시켰다. 조선족 2, 3세부터는 공간확보 보다는 공간 재구성이 더 큰 과제였다.

 

그래서 시간성을 마저 따져본다. 공간의 재구성은 시간성으로 다시 풀이가 된다. 모택동이 무장혁명 근거지를 마련하고 소비에트정권을 세워 해방구 내에서 토지개혁을 먼저 추진한 것이나, 송강이 양산박에 자리를 잡자 영웅들이 구름처럼 모여 더 나은 천하를 논한 것이나 모두 시간성의 범주 내에서 해석이 된다.

 

시간성의 제1원리는 발전의 문제에 역점을 두고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노력에서 체현된다. 확보된 공간을 기반으로 상승을 도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조선족 공동체 성격규명에 있어서 제 2단계인 발전의 단계에 해당된다. 과거와 현실에 있어서도 조선족의 기본 생활터전인 동북3성에서 농민의 농지 이탈, 자녀의 교육문제, 출산율 저하에 따른 우려, 기업가 육성 등 문제는 전부가 시간성의 범주에서 논의 가능한 사항이다. 공간성에 대한 대 긍정은 곧 시간성에 대한 대 긍정으로 바통이 이어져 삶의 터전 기반 위에서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지속성을 나타낸다.

 

시간의 지속적인 전개는 무엇보다도 현실과 미래를 위한 준비와 직결된다. 징기스칸의 몽고가 아시아-유럽대륙을 호령하며 황색돌풍을 일으키다 지금의 상태로 퇴보한 것이나, 만주족이 중원을 차지하고 북경에 입성하여 淸나라 수 백년 만에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나 모두가 시간의 지속적 전개과정에서 대응이 바람직하지 못했던 데서 비롯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조선족도 시간성의 문제에서 저절로 자유로울 수는 절대 없다. 소리 없는 시간성이 소리 있는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막강한 힘의 한 측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들의 묶음 앞에서 지금을 고찰해볼 자리를 가져보는 것, 여기에 큰 고민이 있다. 조선족 3세로부터 5세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실존의 문제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공간 재구성과 새로운 공간 확보의 딜레마가 현실로 다가왔다.

 

따라서 시공간의 역동성(Dynamic)을 마저 추적해보게 된다. 이 역동성은 사실 현실적 존재상태로 조선족에게 그대로 다가와 있다. “여기, 지금, 앞으로도”의 문제가 된다.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동북3성에서 서서히 이동의 물결을 타고 심양 서탑으로, 북경 왕징으로, 서울 가리봉으로 조선족들이 흘러 들어가면서 새로운 결집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작은 단위로서 조선족 내부에서의 새로운 공동체가 점차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시공간의 역동성 제1원리는 ‘형성과 발전의 동시성(同時性)’이라 할 수 있다. 즉 한쪽으로 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발전 역시 뚜렷하게 보여주는 특징으로 요약이 된다. 이러한 상대적 소규모의 공동체는 나름대로의 특성이 개별적으로 나타난다. 심양서탑의 경우는 형성된 시간이 꽤나 길고 조선족과 한족 위주의 기반에서 출발했고, 북경 왕징은 조선족, 한국인, 한족의 특징이 같이 융화된 모습을 보이며, 서울 가리봉은 조선족과 한국인이 서로 어우러지는 양상이 보다 뚜렷하다. 북경 왕징과 서울 가리봉은 형성된 시기가 심양 서탑보다는 늦은 편이다.

 

시공간의 역동성은 직관적 관통이 결여된 사고로는 다다를 수 없다. 크게 보아, 세계화와 지방화라는 것도 시간성과 공간성의 논의출발과 각각 부합되며, 세계화와 지방화를 동시에 추진하자는 것은 시공간의 역동성으로 사고 전환을 요구하는 발상이다. 또한, 그 어느 국가나 반드시 제시하는 전제로서의 ‘평화와 공존’ 역시 공간의 확보 및 시간의 지속적 전개, 다시 말해 공간성의 제1원리와 시간성의 제1원리를 통시적으로 적용하겠다는 의지의 다른 한 표현에 불과하다.

 

현실적 시대흐름은 시공간의 역동성을 요구한다. 자본의 논리가 세계의 화폐로 통용되는 과정에서 물리적 폭력행사를 넘어선 진보를 보아낼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자본우위의 논리가 모든 것을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만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시공간의 동시(同時) 조망이 역동성의 기본 접근 시각으로 정확히 자리잡으면, 단지 “우리는 동북3성을 떠나야 하느냐, 아니면 지켜야 하느냐?”, “디아스포라를 표방한 조선족의 발전방식 모색”등등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포괄적 논의의 배경에서 논구하면, 전자는 시간성을 무시한 소행이고 후자는 공간성을 배제한 논리이다.

 

현대사회는 강요에 의한 인구의 유동보다도 자본의 흐름을 좇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물리적 영토확장보다도 물질적 부의 축적을 위한 추세에 내맡기는 경향이 우위에 있다. 그래서 새로운 공동체도 따로 생기고 새로운 이합집산이 일어난다.

 

어떠한 특별논리 하나만 내세우다가 다른 한쪽은 망각하는 논리적 오류로는 지금을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자각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공간성만 주장하거나 시간성만 고집하는 편협함을 벗어나 시공간의 역동성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고구상과 현실적 감각이 보다 훌륭한 공동체, 조선족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게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공간의 확보와 시간의 지속적인 흐름, 시공간의 역동성이 다 같이 고려되어 한 층 성숙된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理想을 꿈꿀 때, 그 꿈은 바람직한 현실성을 확보할 것이다.

 

2007.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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