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나의 얼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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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나의 얼룩아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6.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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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시>
너였구나,

싸늘한 가을 길거리에 굳어진 몸으로 하늘나라로 간게

흰 몸에 노랑 털이 박힌 얼룩이 너였구나

네 이름이 뭔지, 니가 왜 이 마을을 떠돌아다니는지

난 몰라

그러나 네가 몇 마리 너랑 비슷한 강아지들과,

내가 사는 동네 휘젓고 다니는 것 볼 때마다 안쓰러웠어.

주인에게서 버림을 받았는지

네가 집을 나왔는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니가 이렇게 차에 치여 쓰러진 길거리에 피 흔적 남기고

아침 길거리에서 저 세상으로 간걸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구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네.

선뜻 니 곁에 다가갈 수 없었어

출근 시간 늦었다는 핑계로

네 곁을 스쳐 지나면서 니 눈을 보았어

어딘가 멀리 바라보는 듯,

누구를 원망하는 듯한 눈빛에 

난 황급히 머리를 돌렸어.

한참 가다가 뒤돌아 본 너는

그냥 그 모습대로 누워있구나.

다가가서 네 시신이라도 거둬주고 싶지만

난 분명 담이 작은 여자였어.

무서웠어.

피 흘린 너의 머리를 만질 용기가 안 났어.


얼룩아,

이렇게 네 이름을 붙여놓고 불러본다

부디 니가 가는 하늘나라에는

차가 없었으면 좋겠구나.

인간 문명의 산물인 차에 치워

추운 가을날 아침에 저 멀리로 떠나버린 너

네 곁엔 니 친구들도 없고

네 곁을 스쳐 지나는 많은 학생들의 발걸음 속에서

나는 왠지 슬퍼진다

왠지 쓸쓸 해진다

다음 생애에 혹시라도 네가 강아지로 태어난다면

부디 맘 좋은 주인 아래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랑을 받으며

네 수명 다 할 때까지 살다

하늘나라로 가기를 바래.

그리고 미안해,

내가 너의 주검 버려둔 채 스쳐지나서, 

정말 미안해.


2005년 9월 29일에 얼룩이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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