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이야기를 참 잘 했습니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시골에 있었는데, 마을에는 전기가 없었습니다. 대신 해가 지면 집집마다 등잔불을 썼습니다. 그래선지 어둠 속에서 한들거리는 빨간 등잔불은 지금도 나에게는 동년시절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어머니는 등잔불 밑에서 세 남매를 안쳐놓고 도레미를 가르쳤고, 러시아 동화책을 읽어줬으며 재미나는 이야기도 참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어머니가 들려준 <서울 아가씨와 시골총각>의 이야기는 지금도 인상이 깊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잘 생각이 안 나지만, 왜 그 이야기만은 아직도 머리에 남아있는지, 아마 어린 나에게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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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느 오붓한 마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옛날 이야기는 대체로 이런 식으로 시작되지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대강 대한민국 건국전의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서울에 사는 어느 대단한 부잣집에 곱게 자란 예쁜 아가씨가 있었답니다.
어느 날 아가씨는 친구들과 시골로 산 놀이를 갔습니다. 친구들과 산에서 신이 나게 뛰어다니며 놀던 아가씨는 풀숲에서 왕나비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아가씨는 첫눈에 반해 열심히 왕나비를 쫓아갑니다.
하지만 쉽게 잡힐 나비도 아니었습니다. 잡힐까 하면 도망가고, 잡힐까 하면 도망갑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아가씨는 왕나비를 쫓아 고개를 넘고 시냇물을 건너 산속 깊숙이 들어가 버렸습니다.
산 속에서 나비는 어딘가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그녀는 산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심산 속에 혼자 남은 부잣집 아가씨는 외롭고 무섭기만 했습니다 . 다행히도 해질무렵 아가씨는 외딴 농가 집을 발견하고 찾아 들어갔습니다.
농가 집에는 점잖은 늙은 총각이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심심 산속에 갈 데도 없고 또한 외롭고 무서웠던 터라 아가씨는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노총각에게 부탁합니다.
그러자 총각이 잠시 주저하더니 말합니다.
“보다시피 남자 혼자 사는 집입니다. 하룻밤 묵어가도 됩니다만, 아가씨와 같은 양반집 규수가 묵어갈 곳은 아닙니다.”
아가씨는 총각의 신사적인 모습에 한시름 덜었습니다. 인간보다 호랑이가 더 무서웠던 시절이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어쩌면 총각의 어딘가 늠름하며 믿음직한 모습에 반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어서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하며 서산에 노을이 깃들었습니다. 아가씨는 총각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저녘을 지어드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부엌으로 내려가 쌀독에서 하얀 쌀을 바가지로 퍼내는 아가씨는 신기하기 그지 없습니다. 곱게 자란 그녀는 지금까지 받쳐 올린 밥만 받아먹다 나니, 제집 쌀독이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앞마당에서 새파란 야채를 뜯는 아가씨는 참 신기했습니다. 오이를 따면서도 신기했고, 고추를 따면서도 신기했고, 무우를 뽑으면서도 신기했습니다.
- 그야 그렇지요. 제가 언제 이런 일을 해봤겠어요..^^
고추를 따다 머리를 쳐드니, 서산에 비낀 노을이 너무 멋집니다. 아가씨는 그만 시골의 풍경에 푹 취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난생 처음 하는 일에 아가씨는 그만 홀딱 반하고 말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서울이 좋다고 하지만, 알고 보니 다들 좋은 척 하는 거였습니다.
어이~ .. 서울양반들, 틀렸습니까..^^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