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오징어를 굽는다 . 바다 내음이 소금끼에 절어져 불 위에서 타 번질 때, 묘한 기분이 된다. 소주 마시는 행위가 어떤 제식과 무슨 관련이 있겠느냐 만은, 압축됐던 기분을 가스 불에 달궈 오징어 정취로 풀어본다.
절차가 약간 복잡하다. 먼저는 삶는다. 압착되었던 오징어가 말려진 대로 또 한번 물을 만난다. 물과의 뚜렷한 친화성을 못 잊어 오징어가, 부푼다. 흰 물거품과 비릿한 격조, 터무니없이 컸던 그 공간의 이야기가 가마솥에서 끓는다. 주방에 서린 김은, 오징어에게서 흩어진 점점의 하소연이다.

건져낸다. 흥건하게 적셔 진 몸뚱이에 물기가 번뜩인다. 오징어는 편안한 자세다. 흡반도 열 개 그대로 건재 한다. 좀 지나는가 싶더니 물기가 사라진다. 오징어가 더 부풀었다. 대신 보다 나근나근하다. 껍질은 검은 것 같기도, 푸른 것 같기도, 형용이 잘 안된다. 그래도 껍질이다. 서두르지 않고 벗겨낸다.
가스불이 타오른다. 적당히 앞뒤로 뒤집는다. 쌉사름하고 약간 날카로운 냄새가 연기로 피어난다. 가스불은 유별나게 푸르스름하다. 그 빛깔을 밖으로 내밀면서 요염한 노란색을 입기도 한다. 그 푸르스름이 오징어의 껍질 색깔과 얼마만큼 닮았는지는 딱히 모르겠다. 상쾌하면서도 위압적인 냄새의 향연, 그 시간 속에서 오징어는 그렇게 굽혀진다.
추억도 대충 그렇다. 정열이 박제되고 느낌에 곰팡이가 끼던 날, 버린 것이 아마도 추억쯤 될 듯 싶다. 그것이 살아 오징어처럼 늘어지면, 그 열 개의 흡반처럼 완악하게 과거를 들출 것 같은 불안감, 아예 그래서 버리기로 했다.
관조의 우울한 회색 눈빛, 그렇게 어제를 잊고, 그저께를 잊고, 그 전의 것도 잊어버리면 더 잊을 수 없는 것까지 잊혀 질 것이라 위안했다. 근사한 최면이 기어이 정확하다고 판단 될 무렵, 마음에서 일어난 하찮은 너울이 머리를 강타했다.
내 오늘 오징어를 보니, 그 내음, 그 비릿함에 허파가 찔린다. 푸르스름한 껍질 역시 벗겨지고 몸뚱이만 불길에서 뒤집혀져 후끈한 안주로 된다. 유혹하는 냄새다.
물속에서 끓어 가다가, 한층 부풀려지고 다시 벗겨지고 나중에 불 위에서 탄다. 껍질의 푸르스름 대신 불길의 푸르스름이다. 바깥 쪽 노란, 빨간 불길에 얹어져 까맣게 그슬린다.
내 또한 기억을 부풀리고 벗기고 불 위에서 굽힌다. 날카롭고 비릿한 감각을 연기로 휘감아 올린 다음, 겸허하게 술잔을 든다.
“버릴 수 없는 것은 따로 있다오” 술친구의 한마디는 과연 심오하였다. 목을 젖혀 술잔을 털어 넣으며 위장을 관통하는 뜨거움, 만끽한다.
오늘, 오징어를 구웠다. 추억도 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