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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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당선'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6.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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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작의 고통 감내해야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조성래의 시인마을소묘 <24>

 

 
  부산소설가협회가 지난 7일 중구 중앙동 모 음식점에서 원로 소설가들의 문학적 행로를 기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맞은 편 왼쪽부터 소설가 이규정, 최해군 윤진상 씨.


감나무 가지 위에서 까치가 운다.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앞산과 들이 뿌옇게 흐려 보인다. 반가운 소식이 올려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문을 닫으려는데 장독대 옆의 사립문이 열린다. 자전거를 타고 온 우편배달부가 눈을 털며 들어선다. "좋은 소식이네요." 전보 쪽지를 내민다. 뭘까? 떨리는 손으로 전보 쪽지를 받아든 순간, 깜짝 놀란다. 신춘문예 당선이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아 살을 꼬집어본다. 분명 현실이다. 오오, 나에게 이런 행운이 오다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축복이구나. 눈 내리는 하늘로 얼굴을 쳐들고 기뻐 날뛰며 어쩔 줄을 모른다.

이런 장면은 과거에, 신춘문예에 응모한 사람들이 한 번쯤 그려보던 꿈이다. 아니, 실제로 당선된 사람들이 당선 통지를 받았던 경험담이기도 하다.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에는 이 기쁜 소식을 대부분 전보로 통지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나 이런 전보를 받을 수는 없었다. 수천 명의 응모자 가운데 부문별로 한 명씩만 뽑는 신춘문예 당선자는 그야말로 희귀했다. 피나는 수련과 몇 번의 고배를 마시지 않고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자리였다. 그래서 당선 통지는 하늘로부터 선택된 자들만이 받을 수 있는 영예 비슷한 것으로 생각했다. 흔히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이나 오늘날의 고등고시에 비유될 정도였다.

지금도 신춘문예는 통과하기 어려운 등용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수준이 과거에 비해 조금 처지는 느낌이다. 그것은 당선작들이 누구나 동의할 만큼 우수작이 아니라는 데서 금방 확인된다. 근본 이유는 문학 지망생들이 줄어든 반면 신춘문예를 실시하는 신문은 늘어난 탓일 것이다. 또 문학에 대한 사회 일반의 열정이 많이 식었고 그 관심이 영상매체 쪽으로 옮겨간 요인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춘문예 출신자들에 대한 문단의 대우는 유별나다. 어쨌든 신인상 제도에 비해 훨씬 어려운 경쟁을 뚫고 공인받은 승리자인 것이다.

문제는 등단 이후의 활동이다. 화려한 등단 경로로만 보자면 신춘문예 출신들이 단연코 훌륭한 작품들을 꾸준히 양산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소수의 문인들을 제외하고는 세월의 물살에 떠밀려 그 문학적 위상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등단작이 곧 마지막 작품이 되어 홀연히 사라진 예도 있다. 그래서 한때 '현대문학'에서는 신춘문예 당선자도 1회 더 추천받아야 정식 문인으로 인정했었다. 신춘문예 당선이 만능이 아니라, 꾸준한 문학 활동을 해낼 만한 역량이 있는지의 여부가 고려되었던 것이다.

실로 문학의 길은 멀고도 먼 길이다. '문인'이란 호칭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작에 따른 남다른 고통과 외로움을 감내해야 한다. 젊은 날의 문재(文才)가 노년의 원숙함으로 깊어지기까지는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걸음걸이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도중하차하지 않고 끝까지 창작하는 노작가의 올올한 모습은 이제 막 문단에 들어오는 젊은 작가 이상으로 큰 의미를 부여받는다. 이들이야말로 문학 동네를 지키는, 우듬지 넉넉한 나무인 까닭이다.

지난 12월 7일 부산소설가협회는 중앙동 어느 음식점에서 작은 잔치를 마련했다. 올해 고희를 맞이한 이규정, 윤진상 두 작가의 문학적 행로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이규정 작가는 이번에 발간된 창작집 '멀고도 먼 길'을 일일이 사인하여 후배들에게 나누어주며 고마워했다. 참 따뜻한 인정이었다. 윤진상 작가도 아직 식지 않은 소설의 열정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한편, 후배 작가들은 올해 고희를 맞이했지만 이미 고인이 된 윤정규 작가에게 꽃다발과 술잔을 헌정했다. 모름지기 작가는 생사를 초월해 한 좌석에 모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부산의 최고령 작가 최해군 선생도 참석하여 두 작가의 노고를 치하했다. "이제 우리의 고희는 70세가 아니라 90세가 되어야 한다"고 노익장을 과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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