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성찰과 부활, 그리고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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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성찰과 부활, 그리고 비상
  • 엄정자 기자
  • 승인 2019.10.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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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숙 시인의 제3 시집 『날개는 꿈이 아니다』의 해설
글 / 일본 엄장자
김화숙 약력 : 중국 심양 출생,  길림사범대학 철학과 졸업, 중국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교사 역임. 월간 '문학세계' 등단(2014년),  대한민국통일예술제 해외작가상, 제12회 세계문학상 해외문학상 시 부문 대상 수상(사)세계문인협회 일본지회장, 시집 '아름다운 착각'(2015년), '빛이 오는 방식'(2017년), '날개는 꿈이 아니다'(2019년)
김화숙 약력 : 중국 심양 출생, 길림사범대학 철학과 졸업, 중국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교사 역임. 월간 '문학세계' 등단(2014년), 대한민국통일예술제 해외작가상, 제12회 세계문학상 해외문학상 시 부문 대상 수상(사)세계문인협회 일본지회장, 시집 '아름다운 착각'(2015년), '빛이 오는 방식'(2017년), '날개는 꿈이 아니다'(2019년)

[서울=동북아신문]김화숙 시인은 2014년 한국 월간 문학세계의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면서 한국 시단에 등단하였고 그다음 해인 20159월에 도서출판천우에서 시집 아름다운 착각을 펴냈다. 2년 후인 2017년에 제2 시집 빛이 오는 방식을 펴냈고 한국 ()세계문인협회의 제12회 해외작가 시 부문 대상을 수상 했다. 그리고 또 2년이 되는 2019년에 제3 시집 날개는 꿈이 아니다를 펴냈다.

이제는 당당히 한국문단에 발을 붙인 김화숙 시인은 출신 경력상 남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중국 심양에서 태어난 이민 3세이고 1999년에 일본에 이주하여 현재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교포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한국 시단에서 등단하였고 수차 문학상을 수상 하였고 6년이라는 짧디짧은 시간 안에 3권의 시집을 펴냈다는 것은 한국문단에서도 중국조선족문단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예이다. 그는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를 어우르며 혜성같이 한국문단에 나타난 별 같은 시인이다.

3 시집을 준비하면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 안에 기쁨의 샘이 있다면 여직 써낸 글들은 윗물을 퍼낸 것에 불과할 것이다. 샘의 깊은 물이 이제야 서서히 올라오고 있는 느낌이다. 조만간 삶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한 성찰이 깃든 시가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3 시집이 드디어 세상에 탄생을 고했다.

시집을 앞에 두고 시인의 깊은 성찰을 거쳐 영혼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른 시들은 어떤 시들인지, 그 시들에는 어떤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두근두근 기대감에 심장이 뛰고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이제는 성숙단계에 들어선 김화숙 시인, 이제부터 그의 시 세계에 한번 깊이 빠져보려고 한다.

1. 시로 시를 말하는 시인

우선 그의 시 목말을 읽어보면 그가 왜 시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키워드가 보인다.

 

화살처럼 등 뒤에

꽂혀있는 눈길이 있다

길다면 긴 세월

그 눈길로부터

자유로워진 적 없다

삶이 벽에 부딪쳐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그 눈길은 나를

일으켜 세워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목말일부

시인의 등 뒤에길다면 긴 세월’ “꽃혀있는 눈길이 있다”. 그러면 시인을 지켜보는 이 눈길은 누구의 것일까? “길다면 긴 세월 그 눈길로부터 자유로워진 적 없다면 그것은 시인과 가장 가까운 사람의 시선일 것이다.

김화숙은 신인문학상 당선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딸을 낳았을 때 성공한 여성이 되어 딸 삶의 본보기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시인의 이 말을 감안(勘案)하여 그녀가 어머니라는 시점에서 이 시를 읽으면 그것은 시인의 분신인 딸의 눈길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삶의 벽에 부딪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왜 그 눈길이 시인을 일으켜 세워 앞으로 나아가게하는 동력이 되는지 그 원인도 자연히 알 수 있다. 그런 눈길이 지켜보고 있어서 시인은 멋진 엄마의 모습으로 설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김화숙은 시인이 되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렇게 김화숙이 시인으로 성장하는 사이 딸도 성장하여 엄마의 부속체(付屬體)로부터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자라나 이제는 엄마를 초월해 더 먼 세계를 내다보려고 한다. 그래서 시인은 이제는 그 시선이/ 나의 등을 타고 올라/ 더 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등을 더 굽혀야겠다.”라고 다지고 있다. 딸의 앞을 막기보다 딸이 오르기 쉽게 등을 굽혀주고 딸이 딛고 올라설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위해서 시인은 시를 쓰고 시집을 낸다. 이렇게 보면 목말은 김화숙 시의 원초적 근원을 보여주는 시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가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는 것은 수많은 어머니의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살면서 힘들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어머니들은 자식이 눈앞에 삼삼거려서 다시 힘을 내서 일어난다어머니들은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자식을 키우고 자신이 디딤돌이 되어 자식이 올라서게 하고 버팀목이 되어 자식을 바쳐준다그런 어머니의 본능적이면서도 헌신적인 모습이 잘 그려져서 읽어내려가는 사이에 눈물이 맺히게 된다

어머니였기 때문에 어머니가 느낄 수 있는 감성을 시로 쓸 수 있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늘

소리 나는 쪽으로

눈길을 돌렸었지만

이젠 소리는 귀에 맡기고

자주 눈을 감는다

감은 눈으로

내 안에 길을 낸다

아버지가 가꾸던

텃밭을 날던 나비며 잠자리

교실 난로에다

고구마를 구워먹던

유년의 친구들

사라져간 고향마을을

마음속 산책길에서

다시 만난다

사라진 것은 없고

단지 이사를 한거였어.

―「눈을 감으면전부

사람들은 누구나 추억이 있다이 시를 읽으면 우리는 저도 모르게 따라서 눈을 감고 옛고향옛일옛친구들을 떠올리게 된다그리고는 그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억 속에 남아있음에 새삼스레 놀라게 된다오랜만의 향수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것만으로도 이 시는 훌륭한 시이지만 이런 일반 감정을 넘어서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 한층 깊은 뜻을 느껴볼 수 있다

시인이 되기 전의 김화숙은 주위를 많이 의식하고 표면적인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일반인이었다. 하지만 시인이 된 그는 외적인 것보다 마음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아버지’ ‘유년의 친구들’ ‘고향마을’, 이런 머릿속의 기억들이 마음속이라는 새집에 이사하여 시의 소재가 되었다. 일반 사람들의 기억이 머릿속에 저장된다면 시인의 기억은 마음속에 저장된다

살아온 세월만큼 마음속의 집에는 그만큼 많은 기억이 살고들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의 시적 소재는 꺼내고 꺼내도 마르지 않는 것이다. 시를 쓴 시간에 대비해 봐서 놀랄 정도의 많은 시를 써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다가 김화숙은 마음속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혜안을 지니고 있다. 이런 능력이 김화숙을 다산 작가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시인이 시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시가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가 삶이 된 김화숙은 이 어려운 창작과정마저 형상화하여 시로 그려내었다.

 

시상이

도토리 떨어지듯

머리 안에 떨어지면

사춘기 소녀처럼 화들짝

상상은 부풀어오르고

시상이 시어로 몸을 바꾸어

비단결 같이

곱게 빠져나가고 나면

바람 빠진 타이어가 되여

책상 앞에 한동안

우두커니

구겨져 있다.

―「창작의 길전문

무심히 주위를 살펴보다가 무심히 옛 기억들을 떠올리다가 잠깐!” 뭔가에 스톱이 걸릴 때 시상이 생긴다. 멍하니 쳐다보던 나무에서 도토리 한 알이 이마 위에 떨어지듯이 그렇게 시상이 머리 안에 떨어지면서 상상을 깨운다. 상상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무형인 대신 마음껏 부풀릴 수 있는 자유로움을 가지고 있다. 그런 상상이 시어라는 옷을 입고 밖에 나올 때 사람들은 그 시적 형상을 볼 수 있다.

시상이 참신할수록 시적 상상이 풍부할수록 그 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러잡을 수 있을 것이고 예술적 향수享受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라서 시가 빠져나가면 시인은 마음속의 빈자리 때문에 일시적인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렇듯 시를 쓰고 나면 바람 빠진 타이어같이 속이 비는 것이 모든 시인의 공통점이라 창작이 끝나면 공백기를 가지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김화숙은 공백기가 별로 없이 금방 새롭게 바람을 채워 넣는 우점(優點)을 가지고 있다. 시 창작과정까지 시적 형상으로 승화시킬 정도로 시에 심취되어있으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시는 삶 그 자체이다.”(나의 문학관,문학세계20192)라는 시인의 말 그대로 시에 몰입해서 사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지는 시이다.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시를 잘 음미해보기 바란다

김화숙 시인에게 시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시는 심장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참새와 시를 읽으며 그런 감명을 받았다. ‘은 원래 생명체가 아니다. 그런 벽 구멍에/ 참새가 들어와 살면서/ 참새가 죽은 벽의/ 심장이 되었다.” 참새가 울고 참새가 뛰어다니고 그렇게 벽은 생명체로 변한다.

김화숙도 시를 쓰기 전에는 그저 일반인이었다. 삶의 고단함에 구멍 난 가슴에/ 바람만 드나들더니/ 어느 날부터/ 그곳에 시가 들어와/ 집을 마련했다그렇게 시를 쓰자 가슴 뛰는 소리가/ 맑아져갔고 가슴의 구멍도 메워지었다. 인생에 목표가 생겼고 의미가 생겼고 즐거움이 생겼다. 참새가 있어서 벽이 생명을 갖게 되듯이 시가 있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이제 그의 인생에서 시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그러면 그는 어떤 시를 쓰고 싶은 것인가?

시가 꽃이 되지 못하는 이유에서 시인은 염좌의 꽃을 빌어서 자신의 시론을 펼친다.

시인은 염좌가 힘든 환경 속에서 더 예쁜 꽃을 많이 피운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자기의 시에 대해서 평하고 있다.

스무 해 가까이 키우는 염좌는 집안에 들여다 놓았을 때잎은 두텁고 컸지만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그런 염좌가 귀찮아 베란다에 그대로 두고물도 제대로 주지 않았을 때염좌는 꽃을 피웠습니다폭설로 눈 속에 묻혔던 해꽃을 가장 많이 피웠습니다”.

따뜻한 집안에서 시련 없이 산다면 편히 살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을 터이고 그만큼 세상에 대한 이해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절실한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바람 불고 땡볕이 쪼이는 베란다에서 산다는 것은 그만큼 시련이 많다는 소리이고 세상에 내던져진다는 뜻이다. 그러니 살아가기 위해서 염좌는 자연히 바람이 불지 비가 올지 눈이 올지 걱정을 하며 살아남기 위해서 분투했을 것이다.

시인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사에 부대끼고 시련을 겪어보고 방황도 하고 고독도 경험해 보아야 삶의 절실함을 알 수 있게 될 것이고 세상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의 부조리 불평등이 눈에 들어올 것이고 현실에 대한 분노의 외침을 토로하고 싶은 간절함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염좌에게 꽃은

춥고 목이 말라 죽을 수도 있다는

절실함의 언어였습니다

내 시가 아직

꽃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의 방황과 고독의 깊이가

땅에 닿지 못했나봅니다.

―「시가 꽃이 되지 못하는 이유일부

염좌의 꽃이 살고 싶은 나무의 절실한 갈망의 표현이라면 는 인간의 내심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영혼의 소리여야 할 것이다. 그런 절실함이 영혼의 외침으로 터져 나올 때 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을 것이고 독자들도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실도피보다는 현실에 부딪혀 보려는 시인의 현실주의적인 시학을 적절히 표현하였다.

또한이 시는 시련을 겪은 사람이라야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될 것이라는 인생의 철리를 가르쳐주고 있다이 시는 현실에서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사람들을 격려해주고 있다시인의 원래 목적을 초월해서 많은 사람에게 깨침을 주는 뜻깊은 시가 되었다

이같이 김화숙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시인이 되었고 무엇을 써왔는가에 대하여, 그리고 시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 한번 성찰함으로써 자기의 시론을 구축하였다. 이제 6년의 시력(詩歷)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시인이 이같이 완전한 자기 시론을 세웠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 시가 시론으로서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에서도 사람들에게 삶을 성찰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더욱 탄복할만한 일이다.

김화숙 시집 "날개는 꿈이 아니다"의 표지

2.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깨닫는 삶의 본질

사람은 죽고 인생은 유한하다.”라는 명제는 시인이 오랜 세월 고민하여 얻어낸 결론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태어났으며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시인의 내심 속에서 되풀이가 되어 감기고 감기다가 시문(詩門)이 열리면 시가 되어 풀어져 나왔다.

 

바다는 해의 무덤

죽은 해가 아니었더라면

그 많은 해를 삼킨 바다는

불바다가 되어 다시

해를 출산하지 못하겠지

 

밤은 나의 무덤

그렇지 않고서야 매일 아침

전날 흑백영화 같은 생이 아닌

새롭고 경이로운 나를

만나지는 못하겠지.

―「무덤에서 깨어나다전문

무덤에서 깨어나다는 제목만 보면 너무 충격적인 시이다. 무덤에서 깨어나는 것은 흡혈귀인데, 처음에는 그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시를 읽어내려가면서 독자는 전혀 그런 진부한 내용이 아님을 알게 된다.

예로부터 바다나 밤에 대한 시는 많으나 김화숙 시인 같이 독특한 시각으로 쓴 시는 별로 없다. 바다의 석양 하면 사람들은 처연하면서도 장엄한 아름다움을 상기한다. 그래서 흔히 사람들은 바다에 지는 해를 인생의 석양으로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동요에서는 피곤해서 자러 간다고 귀엽게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시에서 바다의 지는 해는 완전히 죽은 해라고 묘사되고 있다. 해가 죽어서 바다를 태워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바다는 아침에 다시 해를 출산할 수 있고 따라서 밤은 나의 무덤이기 때문에 나는 모든 죽은 것을 버리고 새롭고 경이로운 나를만날 수 있다.

죽음과 부활은 자연의 섭리이다. 지는 해와 뜨는 해, 밤과 낮은 이런 자연 섭리의 대표적 현상이다. 시인은 이 섭리를 빌어 자기에 대한 완전한 부정 철저한 성찰이 있어야만 새로운 로 태어날 수 있다는 철리(哲理)를 말하고 있다. 시인의 남다른 철학적 세계관을 표현하는 시이다.

이와 비슷한 세계관을 담은 시로 삶과 죽음의 동거를 들 수 있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선하게 사는 것

톨스토이식 죽음의 극복법이다

내일 죽을 수도 있고

오늘 죽을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있다

축복이고 기적이다

―「삶과 죽음의 동거일부

삶과 죽음의 동거,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흔히 잊어버리는 현실이다. ‘은 표면에 드러나지만 죽음은 이면(裏面)에 숨어있기 때문에 못 본 척 외면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이고 기적이다”. 그런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 죽음을 외면하고 잊어버리기 때문에 축복이고 기적이라는 것을 모르며 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시인이 짬만 나면 걷고 뛰며/ 몸을 챙기는것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살아있는 기간을/ 긍정과 활기, 감동과 창조로/ 채워감으로서 죽음을/ 극복해가고싶기 때문이다. 사람이 열심히 사는 것은 죽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죽음을 직시하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본질로부터 삶의 의의를 도출해낸 철리적(哲理的)인 시이다.

 

사랑이 얼마나 위태로우면

결혼이란 울타리를 만들어

가두어 놓을까

죽음이 얼마나 두려우면

종교를 만들어

윤회를 꿈꿀까

삶이 얼마나 허망하면

시인이 되어

고독에 의미를 부여하고

생의 완성을 시도하려 할까

결혼과 종교, 시인의 길도

허상일 수 있지만

극치를 향한 삶은

욕심이기 전에 본능이다.

 

―「극치전문

삶과 죽음은 인생의 본질이다. 그 누구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은 그 본질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 사랑은 왜 영원하지 않은가? 사람은 왜 죽는가? 나는 왜 고독한가? 이런 원초적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결혼이고 종교이고 이다. 설사 결혼이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종교가 죽음을 막아주지 못하고 시가 고독을 사라지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인간은 그래도 노력하게 된다.

행복하려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삶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종교에 의지하고고독한 삶에 윤택을 주고 생기를 주고 싶어서 시를 쓴다. 이 시는 그런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를 초월하려는 본능을 찬양하고 있다. 삶의 극치는 죽음이다. 그래서 그 극치를 향해서 가면서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 부단히 노력하는 인간의 본능은 긍정할만한 것이고 이런 본능이 있어서 인류는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선에서 살아야 한다. 이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진실이라서 그 때문에 인간은 늘 모순 속에서 살게 된다. “사랑하면서 사랑을 의심하고/ 살아가면서 삶을 논하고/ 죽어가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오늘을 잘 살고 있으면서/ 문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는/ 내일을 걱정하는/ 끝없는 모순의 삶”(모순에서 길을 찾다)을 살고 있다.

이같이 모순적인 삶은 불안을 부르고 그래서 사는 것이 힘들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사람은 이 행복이 깨어질까 걱정하느라 행복을 만끽하지 못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시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길은 항상 있다.”라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모순 속에서도 거기에서 해탈할 수 있는 이 있다는 것은 내일에는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아무리 불안하고 힘든 삶이라도 길은 항상 있다.”라는 것을 믿고 내일의 태양을 기다린다면 사람은 오늘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비보에서 암으로 죽은 제자의 비보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지만 죽음은 현실이며/ 삶과 동행하는 친구이기에/ 누군가의 죽음은/ 삶의 손실이 되지만/ 내 삶을 견고하게/ 무장시켜 주기도 한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삶의 본질을 깨달았기 때문에 시인은 많은 시에서 현실에서의 탐욕 집착 같은 무용한 욕심을 버릴 것을 권고했다. 주먹의 의미에서는 주먹을 꼭 쥐고/ 세상에 태어난아기같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삶에서 밀어내고 싶다라고 하였고 진리 앞에서가지고 있는 것들을/ 훌훌 버리지는 못하더라도/ 더 이상 욕심내지는 말자라고 자신을 경계하고 있으며 답 아닌 답에서 비록 삶의 흔적들을 끝없이 버리며 살아왔지만/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숙명처럼 따라붙는 낮달처럼/ 버려도 버려진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딱 한번뿐인 생이라는 걸/ 순간도 잊지 않고 사는 것이라고딸에게 가르친다. 답 없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후회 없이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시인의 인생 모토가 보인다.

인생은 기나긴 여행이다. 그 긴 여행에서 사람은 많은 후회도 하게 된다. 그럴 때 떠오르는 것이 시간여행이다.

 

한발 한발 길을 가듯

하루 하루 살아왔기에

시간여행이란

살아버린 어느 구간을

거슬러 걸어보는 일이라 여겼다.

문학의 길을 돌아보며

두문불출 고민하다가 알았다

시간여행이란

수직으로 내려가는 일

생의 뿌리 끝까지 내려가

실뿌리 하나 하나까지

살펴보는 일

삶의 열정과 의욕을

충전시켜줄 그 무엇을

다시 찾아가는 길임을.

―「시간여행전문

시간여행’, 하면 사람들은 판타지를 떠올린다. 오늘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 보다 행복한 오늘을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은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인과관계 원리로 지난날의 착오가 지금의 불행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은 인생의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지나간 발자취를 따라가며 과거를 추억하게 된다. 과거의 행복했던 일, 슬펐던 일, 힘들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오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화숙은 이런 횡단적인 여행이 아니라 생의 뿌리 끝까지 내려가는 종단적인 여행을 하였다.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서 과거에 돌아갈 때 시인은 미래를 위해서 생의 뿌리까지 내려갔다. ‘과거를 고친다는 것은 판타지로서 자기 위안일 뿐이지만 생의 뿌리를 살펴보는 일은 미래를 위하여 나아갈 삶의 열정과 의욕을/ 충전시켜줄힘을 얻는 것이니 어느 것이 더 생산적인지는 뻔한 일이다.

일반 사유를 초월한 시인의 미래지향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시이다. 과거에 매어 오늘만 생각하는 사람은 한치 보기에 제자리걸음만 하게 될 것이나 미래를 생각하고 삶의 근본적인 의미를 아는 사람은 미래를 향하여 쑥쑥 나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여행만이 아니라 시인은 현실에서의 여행을 통해서도 오로지 산과 들을 맛보고 오리/ 눈동자까지 파랗게 물든/ 젊은 나무가 되어/ 돌아오리라”(여행수첩)라고 자연 속에서 젊음을 되찾고 부활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고 도시의 소음 속에서 벙어리가 된 풀벌레소리 파도소리/ 숲속을 지나는 바람소리/ 풍경소리 새소리같은 자연의 소리를 들었을 때 자연의 소리가 마중물 되어/ 고갈되던 내안의 소리가/ 꾀꼴새 노래되어 흘러나온다여행목적)라며 여행의 목적은/ 내안의 소리를 깨우는 일/ 살아있음을 감지하고/ 감탄하고/ 축복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자연 속에서 마음을 치유하고 또다시 열심히 살아가려는 삶의 의욕을 표현하였다.

 

김화숙 시인은 이같이 자기의 시에서 죽음이라는 인생의 본질을 말해주는 무거운 주제를 취급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무겁고 어두운 기운이 아니라 열정과 의욕을 부르는 밝은 기운을 전해주고 있다. 그의 시는 사람들에게 왜 에 가치가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어서 읽고 나면 저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이게 되고 힘과 신심을 얻게 되고 미래를 믿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화숙의 시가 독자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시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3. 디아스포라의 삶의 방식

김화숙 시인은 한국문단에서 데뷔했으나 전형적인 디아스포라 삶을 사는 시인이다. 중국에서 이민 3세로 태어났고 일본에서 재일교포로 살고 있다. 그의 인생 전체가 디아스포라이기 때문에 그런 소수자의 정서가 그의 시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나무의 뿌리는

땅속 흙을 먹고 살고

비의 주소는 하늘이지만

그 뿌리 또한 땅에 있다

나는 나의 뿌리를

어디에 내려놓을지 몰라

늘 가지고 다닌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어디를 가든 이방인이기에

뿌리 내릴 곳을 찾아

방황하며 산다

나의 뿌리는

꼬리인양 잘 숨겨져

안으로 길을 낸다.

 

―「디아스포라의 삶

나무의 뿌리는 땅속에 내려있고 는 하늘에서 내리니 하늘이 주소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도 땅의 수증기가 올라가서 만들어진 것이니 결국 뿌리는 땅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의 뿌리는 어느 땅에도 내릴 수가 없어서 늘 가지고 다닌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이방인이다. 태어난 곳에도 지금 사는 곳에도 완전히 뿌리를 내릴 수 없어서 방황할 수밖에 없다. 디아스포라의 삶이 너무 진실하게 그려지었다.

어느 땅에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는 결국 안으로 길을 낸다.” 그러면 으로 낸 길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

그 해답을 김화숙은 내 아버지란 산문시에서 하고 있다. 시인은 자기의 필명을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김화숙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하면서 아버지가 언어를 잃으면 민족을 잃는 것이다 습관처럼 말씀하시며/ 중국 조선족 잡거지구에다 조선족학교를 세워 평생을 지켜왔기 때문에 그도 한글을 사랑한다고 하였다.

이런 시인의 한글사랑은 아버지 평생 삶의 흔적을 지키는 일이고/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며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다. 즉 김화숙의 민족의식의 뿌리는 한글을 지켜온 아버지에게서 이어받은 것이고 그렇기에 그가 으로 낸 길은 아버지에게로 통하고 있으며 고국으로 통하고 있다. 이런 의식이 그의 문학의 근간(根幹)이 되고 있으며 그래서 나의 문학은 고국을 향한 부르짖음”(나의 문학관)이라고 단언한 것이다.

김화숙 시인의 고국에 대한 사랑은 동생이 보내온 사진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울산 사는 동생이

간절곶 일출사진을 보내왔다

소금 먹은 바닷바람이

몸통을 통과하더니

날개 떨어진 곳이

몇 번 파닥거렸다

간절곶을 가보지 않았더라면

간절의 의미와 새날의 기운을

사진 몇 장에서

되새김질을 못했을 것이다

그곳에 다시 서있지 않더라도

언제나

나의 간절한 기도이며

하루를 시작하는 힘이다.

―「동생이 보내온 사진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새벽에 온다라는 말이 있다. 동북아에서 가장 해가 일찍 뜨는 간절곶은 울산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명소로서 새해 첫날을 먼저 맞이하고자 하는 이들이 찾아가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 여행자들 속에 시인도 있었을 것이다.

간절곶을 가보지 않았더라면/ 간절의 의미와 새날의 기운을/ 사진 몇 장에서/ 되새김질을 못했을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독자들은 시인이 그곳에서 해돋이를 본 경험이 있다는 것은 보아낼 수 있다. 그곳에서 시인은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시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보았을 것이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였을 것이다. 간절곶이 이같이 시인에게 있어서 의미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동생도 누님에게 일출 사진을 보냈을 것이다.

고국에서 제일 먼저 해가 뜨는 곳이라서 간절곶은 고국의 아침을 상징하며 그래서 시인은 그곳에 다시 서있지 않더라도/ 언제나/ 나의 간절한 기도이며/ 하루를 시작하는 힘이다.”라고 간절곶을 생각한다.

고국에 있지 않아도 고국의 아침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시인의 마음에 간절곶의 첫 햇살이 밝게 스며드는 느낌이다. 재외동포라서 더 간절한 간절곶 해돋이이다.

 

한국으로 고국여행 갔을 때

이촌역에서 전차를 기다리다

올여름 첫

매미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제는 집근처 단골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다

매미 울음소리에 화들짝했습니다

매미의 절규는

고국의 하늘을 끌어왔고

이촌역을 통째로 옮겨왔고

그날 옆에 있던 당신을

보쌈해서 데려다 놓았습니다

―「매미가 우니일부

시인은 이 여름의 첫 매미 소리를 고국에서 들은 것 같다. 돌아와서 다시 매미 소리를 들으니 매미의 절규는 이국땅에 고국의 하늘’ ‘이천역’ ‘그날 옆에 있던 당신까지 보쌈해서데려다 놓는다. 사물연접법으로 바다 건너에 있는 고국을 연결해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시적으로 표현하였다. 너무 기발하고 아름다운 표현이다.

그뿐만 아니라 매미 울음소리는 동년의 나를 불러왔고/ 그늘 밑에서 먼지 날리며/ 공기놀이하던 친구들을/ 다시 불러 모아주었습니다.”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매미 울음소리 하나로 고국을 마음속에 옮겨다가 그리움을 표현하고 동년(童年)의 추억을 불러오는 이런 감성은 고국을 멀리 떨어져 이국땅에 사는 디아스포라만이 느낄 수 있는 감성이다. 이같이 공간적으로 먼 거리를 심적으로 가깝게 끌어옴으로써 강렬한 그리움을 서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더욱이 그런 매미 울음소리를 따라 잠자고 있던 지난 추억들이/ 하나 둘 일어나 내 옆에 앉습니다라고 한 표현은 기억의 저쪽에 잠자던 추억이 하나하나 떠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하여 묘사하고 있다. 무형의 추억이 의인화되어 살아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추억이 하나하나 나타나는 정경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상상하지 않아도 눈에 보인다. ‘추억이 떠오른다라는 흔한 표현보다 추억이 떠오르는 정경을 훨씬 생동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내용상으로도 예술성으로도 뛰어난 시이다.

시인의 시선은 자기의 내심 세계에만 머문 것이 아니다. 자기 주변에서 마찬가지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시선이 미친다. 후반기가 그런 시이다.

일본에는 한식당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 식당들의 주인들이 다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 건너와 쭈우욱/ 두 손 물마를 틈 없었던/ 한식집 마담”, 그녀가 처음 현해탄을 건널 때는 꿈이 컸을 것이다. 돈을 많이 모아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자매 뒷바라지 잘해서 출세시키고 자기도 부잣집 마님이 되어 잘 먹고 잘살 거라는 꿈에 마음이 뛰었을 것이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되니 칠흑 같던 검은 머리는 염색에 시들어 푸시시 해졌고 대파같이 하얗고 가늘던 손가락은 마디가 나오고 손톱 끝이 꺼칠해 지었다. 남의 땅에서 이방인이라 괄시받으며 일생을 억척같이 일하며 벌었건만 남은 돈으로는 번화한 도쿄에서 집 한 칸 마련할 형편도 못되어 집세가 이곳보다 반은 싸다는 시골로 이사 가야 한다. 고국에 돌아가고 싶어도 고향에는 반겨줄 만한 사람도 없어서 돌아갈 수 없다.

일생을 일했지만 남은 것이란 늙고 병든 몸뿐이어서 지방이나 시골로 저무는 삶을 끌고 가는이가 어찌 한식집 마담뿐이겠는가. 그래서 시인은 또 하나의 나를 본다.”라는 표현으로 그것이 수많은 디아스포라의 운명이고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나의 개별적인 형상을 통하여 일반을 보여줌으로써 전형성을 띠게 하였다.

김화숙에게 있어서 고국은 아픈 이름이고 환한 이름이다.

나를 깨우고 흐르게 하여/ 삶의 찬가를 부르게도 하지만/ 먼 과거로부터/ 아득한 미래에로의 장정/ 그 어느 거리에서/ 춤추며 걷고 있는 나를 깨닫게 해주는/ 아픈 이름이기도 하다.” 고국이 있어서 삶의 찬가를 부를 수 있지만 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이국땅에 사는 디아스포라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그래서 아픈 이름이다.

다른 일면 오랜 풍상의 세월에 많은 이름이 스치고 있지만 뿌리와 힘줄이 생명줄이듯/ 내가 부를 수 있는 이름/ 내 여생의 생명줄이 되어줄” ‘환한 이름은 고국뿐이다.

고국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느껴지는 시들이다.

만약 이 시들을 디아스포라의 시각이 아니라 일반 시각으로 읽는다면 사랑을 읊은 시가 된다. 사랑해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아픈 이름환한 이름이 있을 것이니 말이다. 시의 주인이 독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읽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를 것이니 그런 면에서 이 시들은 넓은 독자층에서 읽힐 수 있는 시이다.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지닌 김화숙 시인, 그의 시에서 디아스포라 의식은 배제할 수 없는 주제이다. 다만 시인이 그런 디아스포라의 유동성에 밀리지 말고 뿌리를 민족의식에 굳건히 내리고 디아스포라의 삶을 철저히 투시한다면 그의 시는 디아스포라의 범위를 초월해서 넓은 세상에서 자기의 빛을 발할 것이다.

 

4. 다시 시로 태어나다

세상의 만물이 다시 태어나는 계절은 봄이다. 봄비 연가는 이런 봄이라는 계절의 특수성을 빌어서 시의 탄생을 노래한 시이다.

 

산과 들을 찾아

봄을 노래하던 빗님이

고맙게도 내가 사는

이곳에도 찾아와

똑똑똑 내 마음을 두드린다

선택된 땅을 걷고 있는 나도

봄에게 선택된 존재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비오는 풍경을 만진다

꽃이 경계에서 피어나듯

풍경과 나 사이에

꽃처럼 시가 피겠다.

―「봄비 연가전문

 

봄비는 만물의 생장을 촉진하는 생명수로서 그런 봄비가 똑똑똑 내 마음을 두드린다”. 즉 시인에게 새 시를 쓰라고 그렇게 독촉하고 있다. 그런 문 두드리는 소리에 시인의 마음이 깨어나서 세상을 살펴보게 된다.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비오는 풍경을 만진다는 그런 세상과의 접촉 관찰을 말하는데 여기서 풍경은 원래 만져지는 물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만진다라고 표현함으로써 세상과의 접촉감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런 관찰과 접촉을 통해 시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준비되었기에 풍경과 나 사이에꽃처럼 시가 피겠다라고 시의 탄생을 예고하였다

더욱이 꽃처럼 시가 피겠다란 표현에서는 꽃처럼피겠다사이에 를 접목함으로써 시가 피겠다라는 이미지가 강해지면서 가 독자들의 눈 앞에 펼쳐지는 과정이 꽃이 피는 정경과 겹치게 하였다이같이 에 해당한 동사 쓰다대신에 에 해당하는 동사 피다를 접함으로써 사람들이 흔히 쓰는 시가 꽃처럼 피겠다라는 일반적 비유의 평면적인 표현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에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어서 살아 움직이는 동적인 형상을 만들어 냈다단어의 위치를 바꾸는 간단한 작업으로 시적 표현이 몇 배로 생동감이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에 비유한 것도 봄이라는 계절 언어와 잘 어울려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탄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어필될 수 있게 하였다.

봄에 내가 하는 일에서도 시인은 꽃을 통해서 시를 말하고 있다

잔치하듯 피어나는 들꽃들을축하하며 바라보는 일에서 세상을 관찰하는 시인의 모습을바라보고 있다가꽃들의 유혹에 넘어가는 일에서 시를 쓸 충동이 생기었음을나도 꽃이 되어사람들을 부르고 유혹하는 일에서 시를 쓰는 과정을, 「사람들 가슴을 불러다꽃을 달아주는 일에서 시로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는 것을세상을 꽃밭으로 만드는 일에서 시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싶은 시인의 염원을 보여주고 있다

봄의 초대에서는 봄마중 떠나기도 전에봄의 포로가 되어버린 나는산소 같은 시들만폭포처럼 시시시시 웃네라고 쓰고 있는데 사람들이 봄맞이로 들떠 있을 때 어느새 시의 포로가 된 시인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시인의 봄날에는 시가 산소가 되고 그렇게 살다 보니 끊임없이 시가 쏟아져서 폭포가 된다더욱이 시가 시시시시 웃네는 동음이의어를 사용하여 시를 쓰는 기쁨을 표현하였기에 유머감도 높아졌다

고목에 꽃 피듯도 시의 탄생을 고목에 핀 으로 비유하며 외할머니가 된 내 몸에서소녀가 봄을 물고사뿐 나오고 있습니다라고 소녀에 시의 탄생을 은유하였다고목외할머니소녀이런 대조적인 어휘들을 통해서 늦게 시를 시작했으나 시를 통해서 새로운 청춘을 맞이하게 된 기쁨을 표현하였다

그러면 시인은 어떤 시인이 되려고 하는가

 

오므렸던 입술을

더는 벌릴 수 없을 만큼

활짝 핀 들꽃

태어날 때 꼭 쥐고 있던 주먹을

힘껏 열어 늘어뜨린 손

 

화강암 같던 내가 깨지고

그곳에 우리가 들어서는 일

번뇌의 삶이

천길 벼랑 같던 사색의 길에

돌 하나가 똑 떨어지듯

얻게 되는 단순함

―「완성전문

꽃은 활짝 피었을 때 나비나 꿀벌을 맞게 되고 사람은 자기가 틀어쥐고 있던 것을 놓았을 때 열린 손에 자유가 들어온다. “화강암 같던 내가내 안에 갇혀있을 때 나는 번뇌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 벽이 깨지고 그곳에 우리가 들어섰을 때 나는 세상을 받아들이었고 번뇌 대신 단순함을 얻게 된다. ‘단순함은 자유를 가져다준다. 이같이 속박된 자아의 틀을 깨버리는 것이 사람들이 자유를 얻는 방법이라면 시인에게 이런 단순함과 자유를 가져다주는 열쇠는 이다.

세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시인은 내 삶에도 작지만많은 문을 열어놓기로 했습니다세상의 많은 바람을무서워하지 않고반기고 때로는 흘려보낼 수 있는열린 문을 가지고 살려고요”(모자의 가르침)라고 열린 삶을 살려는 의지를 표현하였다. 세상을 위한 시를 쓰려면 먼저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해서이다.

그렇게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자기 영혼 속의 쓸어내고 닦아내도끝없이 쌓이는” “끝없는 욕심과 집착을 보아낼 수 있고 오늘이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버리고 비우는것을 통해서 나의 중심을 볼 수 있고죽음 앞에서 나만의꽃을 피워낼 수 있다.”(꽃을 피우기 위해) 끊임없이 버리는 자기 수련을 거쳐야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고 세상을 향한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시를 쓰는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이 되는 조건이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내면의 세계로돌려 물욕이나 경쟁을 버리는 것이라 할 때 모든 사람이 시인이 되면그 세상은 깨끗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다. 물론 시인이란 말도 사라질 것이지만 대신 사랑이란 말이 세상에 넘칠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시인이 없는 세상을 꿈꾸다라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시를 썼다. 판타지 같지만 한번 꿈꿔볼 만한 세상이다.

사람은 땅 위에서 살면서도 늘 비상을 꿈꾼다.

 

길이 끝나는 곳은

천 길 낭떠러지일 것이다

바닥으로 떨어져

모래알처럼 흩어지지 않으려면

끝을 만나기 전에

날개를 키워야 할 것이다

반쯤 곤두박질치다가

스스로 날개를 펴

우주를 들어올리는

비상을 상상해 보라

온 우주가 품안에 들어오고

온 우주에 음악이 흘러나오면

스스로 우주가 된 기쁨에

자유를 만끽할 것이다.

―「비상을 꿈꾸다전문

그래서 비상은 모든 사람의 꿈이다. 사람은 걷게 태어났기에 자신의 두 다리로 걸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걷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게 되어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 비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사람은 날개를 키워야 할 것이다지금 숨 막히는 교실에서 따분한 공부에 힘든 학생들도, 늦은 밤까지 아르바이트하며 취업준비 하는 젊은이들도, 만원 전철에 치이고 상사에게 치이고 하루하루 일에 지치는 회사원들도 언젠가는 날아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 힘을 키우며 오늘을 버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인에게는 시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그래서 사람은 끝없이 노력한다. 하여 어느 날 꿈이 이뤄져 비상한다면 온 우주가 품안에 들어오는 장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온 우주에 음악이 흘러나오면/ 스스로 우주가 된 기쁨에/ 자유를 만끽할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자유를 위해서 비상을 상상해 보라고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시인도 자신의 날개를 다듬고 있다. 더 높은 비상을 위해서 더 튼튼한 날개를 키우기 위해서 열심히 시를 쓰고 있다.

결론

김화숙 시인의 제3 시집 날개는 꿈이 아니다는 시인이 인생과 시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삶의 본질을 투시하고 그런 삶의 본질을 투영한 주옥같은 시로 묶어졌다.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었기 때문에 시에 대한 투철한 비판 의식이 생겼고 그로부터 어떤 시를 쓰는 시인이 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결과 한층 업그레이드한 시들이 탄생 될 수 있었다.

 

다리를 가졌으니

걷는 꿈을 꾸면 쉬웠을 텐데

날개도 없으면서

줄곧 나는 꿈만 꾸었다

날개를 가진 자들에게

나는 것은 꿈이 아니고

생존을 위한 몸짓이고

다만 화려하게 보일 뿐이다

제대로 걸음마하는 법부터

다시 배워볼 참이다

대리석 같은 다리에 의지해

던져놓은 그물을 건져 올리듯

걸음이 담아내는 풍경을

시로 그려가면서

더 이상 날개가 꿈이 아닌

삶의 완성을 엿본다.

―「날개는 꿈이 아니다전문

 

태어나면서부터 날개를 가진 새들에게 있어서 날개는 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몸짓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날개는 꿈이다. 세상 사람들의 능력이 천차만별이듯이 사람마다 꾸는 꿈이 다르고 가지고 싶은 날개가 다를 것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시는 날개이다. 시인도 걷기로 태어난 사람이기에 걸음마하는 법부터 제대로 배우고 던져놓은 그물을 건져 올리듯/ 걸음이 담아내는 풍경을/ 시로 그려가면서부지런히 시를 썼다.

이제 그의 삶에서 시는 더는 이 아니고 삶 그 자체가 되었다.

시인이 이미 라는 날개를 가졌으니 이제 더 높이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시인이 높은 하늘에 날아올라 온 우주를 품에 안게 될 때 그의 완성될 것이다

김화숙 시인의 날개가 더 크게 더 튼튼하게 자라기를 기원한다

출처:  시집 '날개는 꿈이 아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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