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명학술원 류동학 교수가 인문명리학으로 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연재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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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학술원 류동학 교수가 인문명리학으로 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연재 1, 2)
  • 동북아신문
  • 승인 2019.10.11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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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학술원 류 교수는 누구인가?
-전국시대 종횡가의 비조 귀곡자와 명리학자 이허중
1. 혜명학술원 류동학 교수는 누구인가?
 
류동학 교수는 동양학 칼럼리스트로, 현재 혜명학술원장이자 인문명리학자이다.

류교수는 1992년 불교에 입문하고 1996년 지리산 구례 불락사에서 명리학에 입문, 2000년 36세부터 부산대, 고려대, 대전대에서 역사학과 동양철학으로 석ㆍ박사과정 이수하고, 28년간 동양학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인문명리학’이란 인문학과 명리학을 결합한 말이다. 인문학이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는 학문이라면 명리학은 사주에 근거해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명리학에는 이런 두 의미가 들어있다. 또 류 교수는 역사와 명리학을 결합하는 학문체계를 만들었다.
 
류 교수는 한국과 중국의 전통 사상과 중국사, 한국사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류 교수는 지난 1996년에 명리학에 입문하고 20여 년간 연구한 명리학 지식과 변화가 많았던 인생에서 배운 삶의 철학을 동원해 ‘대통령의 운명’이란 책을 저술했다.
 
특히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갖고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가치관과 그들이 삶을 인문명리학으로 풀어가고 있다.
 
그가 풀이하는 사주명리학은 사람을 깜짝 깜작 놀라게 할 만큼 예측을 잘한다.
사주명리학은 일기예보를 보고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를 대비하듯이 하늘의 조짐을 미리 알아내어 천태만상의 인간사의 흐름에 대처하고, 삶의 궤적을 추적하여 현재와 미래를 밝히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주상담은 명리학 활용방안의 한 방법론일 뿐이다.

예하면, 그는 ‘대통령의 운명’이라는 책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예측했고, 박근혜 대통령당선과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시기와 탄핵을 예측했다.
 
이 책 저서에서 그는, 그동안 부산대학교, 고려대학교, 대전대학교 대학원 석사와 박사과정에서 배운 불교와 유학 등을 비롯한 사상과 동양철학을 기반으로 사주 명리학의 학문적인 기초를 보탰다. 이런 점에서 역사적인 인물의 궤적을 명리학과 역사학의 지식으로 풀이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인물평가의 동기를 제공하고 있다.
 
2018년 4월에는 그는 또 <혜명 류동학의 '인문명리 정치열전'>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박근혜ㆍ이명박ㆍ 노무현ㆍ김대중ㆍ전두환 전 대통령 등에 관한 내용도 실었다.
 
또 1987년 대선에 출마한 영원한 2인자 김종필 신민주공화당후보, 1992년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또한 2017년 대선 및 후보 경선 출마자 중 몇몇을 실었는데,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손학규 등과 지역을 가꾸는 정치인의 운명도 함께 실었다.
 
류교수는 역사적인 인물이나 현존하는 정치지도자의 궤적을 명리학과 역사학의 지식으로 풀이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인물평가의 동기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본지는 류동학 교수가 제공한 글에 따라, 그동안 여러 언론에 연재한 200여 편의 칼럼과 글을 선별해서 실으니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갖고 인문명리학을 깊은 이해를 통해 우리들의 삶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류동학 약력

△1965년 경북 영양 출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한국사학과 사상사 전공 박사과정 수료 △대전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명리학 박사과정 수료 △2004년부터 현재까지 부산대, 경북대, 창원대 등에서 강의 △경북개발공사, 삼성생명,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대구지회 등 기업체 및 관공서 500여 회 특강. 혜명학술원, 혜명인문명리학자 원장.
 

2. 전국시대 종횡가의 비조 귀곡자와 명리학자 이허중
 
춘추시대(B.C 770~B.C403)를 마감하고 전국시대(B.C 403~B.C221)가 시작되면서 중국 천하의 판도는 서서히 7대 강대국으로 재편된다. 7대 강대국 가운데 효산 부근의 함곡관을 기준으로 서쪽의 섬서성․ 감숙성․사천성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진(秦)이 효공(재위:B.C 361년 ~ B.C 338년) 시절 상앙(?~ BC 338)의 법가를 채택하여 강대국으로 부상한다. 한편 함곡관 동쪽의 6대 강대국은 주 무왕의 아들 당숙우가 세운 춘추시대 진(晉, B.C 1100년 대 ~B.C349년) 으로부터 분리된 한(韓)․위(魏)․조(趙)가 중원지역을 장악하고 있었고, 산동지역에는 제(齊), 현재 베이징을 근거지로 하는 동북방에는 연(燕), 양자강 중․하류 및 양자강 이남을 통치하던 초(楚)가 있었다.
 
제가백가 가운데 종횡가(縱橫家)는 서쪽의 진에 대항하여 동쪽의 6강대국이 연합하는 전략을 짠 합종(合縱)과 합종에 대항하여 진(秦)이 개별적으로 각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각개격파하는 전략인 연횡(連橫)을 합친 말이다. 이러한 합종가와 연횡가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소진(蘇秦, ? ~ 기원전 317년?)과 장의(張儀 ? ~ 기원전 309년)이다. 사마천의『사기』「열전」편은 소진과 장의편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소진과 장의열전은 1973년 호남성 장사에서 발견된 마왕퇴 제3호 한나라 무덤에서 발견된 「전국종횡가서」에서 소진에 관한 내용이 발견됨으로서 역사적인 진실이 아닌것이 몇 군데 발견되었다.
 
소진은 일반 소시민으로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으로 국제상황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여 여섯 제후국의 승상자리를 차지하고 강대국 진나라가 기원전 334년부터 기원전 320년까지 무려 15년간 함곡관 동쪽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산동 6국의 상호 방위조약의 탄생을 이끌었던 외교가이다. 한편 장의는 동문수학한 소진의 합종 전략을 파괴하려는 연횡 전략을 구사하여 진의 승상이 된 인물이다. 소진과 장의의 스승이 바로 설득의 천재였던 귀곡자 선생이다.
 
귀곡자(鬼谷子) 선생은 귀곡에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귀곡자는 사마천의 사기에 처음으로 언급되는 인물로 귀곡이란 지명은 하남성 등봉, 섬서성 한성, 절강성 영파, 섬서성 삼원 등 여러 곳이 있는데 하남성 등봉현이 가장 유력하다. 필자도 2011 15박 16일 중국여행 중에 귀곡자가 은둔했다는 귀곡을 다녀온 적이 있다. 산 정상에 역학대학을 설립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편 귀곡 선생이 저술했다는 20여 권의 저술은 대부분 후세인들이 귀곡자를 가탁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 가운데 『수서(隋書)』「경적지」에 보이는 『귀곡자』는 종횡가 일파의 설득술을 종합하여 정리한 내용으로 전국시대와 같이 정치․경제․군사․외교 등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는 매우 각광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귀곡자라는 인물은 도가의 심리수양서, 병법,무협소설 등에도 자주 등장하는 전국시대의 실존인물로 소진과 장의 외에 『손빈병법』을 쓴 손빈과 위나라의 장군 방연을 배출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귀곡자는 명대의 문학가인 풍몽룡 (馮夢龍,1574~1646)의 역사소설 『동주열국지』에는 길흉화복을 맞히는 것이 귀신과 같았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명리학의 비조로도 평가받는 인물이다. 귀곡자가 귀곡산장에서 배출한 제자들인 소진과 장의 및 손빈과 방연 등은 모두 상대의 적으로 현실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열전속의 인물들이다.
 
한편 귀곡자가 찬(撰)했다는 『이허중명서』 3권의 구본(舊本)은 당나라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의 벼슬을 한 이허중(李虛中 761~813)이 주석(註釋)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허중명서』는 조공무(晁公武, 1105~1180)의 『군재독서지(郡齋讀書誌)』(1151)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명리서이다. 한유(韓愈 768~824)의 『창려문집(昌黎文集)』에 이허중묘지명(墓誌銘)을 지은 것이 보이는데 여기서 한유는 “오행서(五行書)에서 가장 심오하여, 사람이 처음 태어난 연월일이 만난 일진(日辰) 지간(支干)의 상생상승(相生相勝) · 쇠사왕상(衰死王相)으로 짐작(斟酌)하여, 사람의 수요(壽夭) · 귀천(貴賤) · 리불리(利不利)를 추론하였는데, 한두번의 실수도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이허중 간법(看法)은 『삼명통회』의 만육오(1522~1603)가 주장한 생년에서 생일로 간명한 것이 아니라 생년중심으로 간명했다. 왜냐하면 唐代(618~907)이후 오대를 거쳐 북송(960~1126)초의 모든 명리학 체계는 여전히 년주(年柱)중심으로 간명하였는데, 특히 당사주와 각종 신살이 그렇다. 이허중은 「3柱 6字」로 년지를 중심으로 오행의 생극 왕쇠 등으로 인간의 운명을 간명한 명리학자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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