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바가지 물과 "一心"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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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바가지 물과 "一心"의 세계
  • 전유재
  • 승인 2006.1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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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찢어진 인간육체와 피의 그 비린내에 전쟁의 참상은 끔찍하게 담겨진다. 극단을 피해 조금 내려와도, 보이는 실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또한, 주체 못할 소유욕은 기어코 죽음에 이르러서야 강제로 끊어지니 이 또한 허탄하기 그지없다.

    대저 욕망이란 차라리 잔인하여, 극을 넘어 살육마저 끝까지 부른다. 어차피 그대로 가는 그 세월에 생의 길이가 또한 실로 변변찮아도 “너”와 “나”를 가리니 이 또한 처절하게 비극적이다.

    서기 660년, 대야성(大耶城)을 지나던 원효(元曉)는 전쟁의 폐허만을 우울하게 목도했을 뿐이다.

    인간의 고통은 어디까지 미칠 수 있으며, 인간에 대한 불쌍함과 애처로움의 생각은 어디까지가 깊이와 너비로 재어지는가? 중생은 어디까지 아파할 수 있는가? 그리고 보살의 마음은 어디까지 감쌀 수 있는가?

    “중생이 앓으니 보살이 앓는다”는 유마힐의 명제가 “중생의 병이 다 나을 때 비로소 보살의 병도 다 낳는다”는 화두로 원효의 마음에 그대로 밀어닥쳤다. 주변의 참상에 대해 몸서리치게 묻고(緣), 소스라져 놀라며 기어이 그 법도를 구하려 唐나라로 가던 중(起), 의상(義湘)과 함께 하루 머문 곳은 구함의 시작이요, 구함의 마지막이 이루어진 특별한 빈집(空)이었다.

元曉 대사

    “어젯밤 잠자리는 땅막이라 편안했는데, 오늘밤은 귀신의 집에 의탁하니 근심이 많구나. 알겠도다!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삼계는 오직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떻게 따로 구하겠는가? 나는 당나라에 가지 않겠노라!”

    원효는 깨달았다. 인식의 벼락이 느닷없이 내리쳤다. 땅막 속에서 그대가 달게 마시던 물이 해골바가지에 담긴 그 무엇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침의 광선속에서 새로 분별하여 나타내던 마지막 구토에서 지극히 깨달았다.

    실로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니며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님을 그는 깨달았다. “잠”과 “깸”이라는 이항 대립의 명제가 그때까지 집요하게 강요되다 “한마음(一心)"에서 대융합의 격변을 이루었다. 원효는 唐나라로 유학 갈 필요 자체가 없어졌다.

    신라가 백제(660), 고구려(668)와 대통합을 이루던 무렵, 진평왕, 선덕여왕, 진덕여왕, 태종무열왕, 문무왕, 신문왕 시대를 걸치는 역정 동안 제도권의 안팎을 넘나들며 왕성한 저작활동과 함께 중대한 인식 전환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던 원효였다.

    그것은 바로 그의 一心과 和諍과 無碍로 체현된 일관의 삶 그 자체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보편적 인간에 대한 사무치는 이해, 원효는 거기에서부터 착안하였다.

    一心은 통합과 분열, 사랑과 미움, 동포와 원수 등의 상대적 대립을 회통하는 따뜻한 마음이며 넓은 마음이다. 갈라진 국토와 찢어진 민심, 분열된 정서를 화해할 넉넉한 마음이다. 바로 그 大慈悲, “한 마음”이었다.

    和諍은 一心의 구체적 표현 양상이다. 和諍이 一心의 그것과 실로 다르지는 않고, 어떻게 나타나느냐의 현실적 존재양태였던 것이다. 삼라만상의 모습이 和諍으로 보이면서 一心으로 회통되는 것, 거기에서 本然의 전개가 사실적으로 드러남이 이 세상 자체라 할 수 있다. 우선적인 화쟁의 방법은 언어의 한계를 지적하고 부정을 통하여 집착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만으로 집착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정 자체에 집착할 수 있다. 그렇기때문에 다시 부정의 부정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하여 긍정과 부정의 극단을 떠나게 되면, 결국 자유로움이 생겨 긍정과 부정은 표현의 그 제한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無碍는 一心으로 직관한 세상을 和諍으로 다시 파악해, 현실적으로 실천해나는 모습이다. 귀족과 평민의 본연이 다르지 않고, 위가 아래가 다르지 않으며, 정토와 속세가 결코 다르지 않으니 無碍는 그대로 가능하다. 무질서한 방자함과 이유 없는 정복과는 결코 다른 차원의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無碍는 결코 무분별이 아니었다.

    一心은 결국 모든 존재의 근거로 된다. 말하자면 因 그 자체로서 존재론이다. 和諍은 펼쳐짐의 모든 집합으로서 緣이 되며, 모든 사물과 존재는 본질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 우주에서 극단적인 개별적 존재는 있을 수 없다는 데 대한 인간의 인식론이다. 無碍는 구체적인 펼쳐짐, 즉 실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인간적 입장을 규명, 모든 행위의 법도로서 起가 되며 실천론이 된다.

    존재론과 인식론, 그리고 실천론이 이렇게 원효의 一心에서 和諍과 無碍를 통해 구체적으로, 명징하게 드러난다. 一心은 因으로서 존재론, 和諍은 緣으로서 인식론, 無碍는 起로서 실천론이며 이 또한 大慈悲의 그 갸륵한 마음 자체가 아니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세상의 법도였다.

    21세기의 마지막 분단국가에서, 원효는 지금도 一心을 외치고 和諍을 도모하며 無碍를 주창한다.

    땅막과 무덤을 분별하려는 혼미한 상대적 이분법의 정신에서 벗어나 실로 그 무엇으로 우리를 감싸야 할지 깊이 생각해볼 노릇이다. 해외동포로서의 시각이 한국인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북의 동포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미리 살피기 전에 一心과 和諍과 無碍를 둘러보아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이 서로 바라보는 시각 역시 마찬가지의 근원에 뿌리를 두어야 할 것이다.

    해골바가지에 담긴 그 물은 그냥 물이기도, 특별한 물이기도 하다. 그것으로 갈증을 털고 생명이 본모습으로 약동할 때, 원효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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