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눈빛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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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눈빛의 인연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6.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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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인간과의 만남뿐이 아니다. 그런 만남의 소중함과 가슴 뭉클한 연민, 그래서 더 안타깝고 애달파 돌아보게 되는, 우리 가슴 속에 깊이 스며 있는 소망과 한 오리의 따스함 같은 것!…시인은 시와 수필로 그것을 그려내고 있다.>  


슬픈 눈빛의 인연

                            

                                                                 이상규


  운명이라 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순간

  가냘픈 혈관에 꽂힌 링겔줄로

  철창에 갇힌 채 하얀 호흡을 이어간다

  체념인 듯, 두려움인 듯

  나를 바라보던 눈동자를 힘 없이 떨굴 때

  애처로운 네 모습을 더는 바라볼 수 없어

  그만 고개돌려 눈물을 삼켰지


  가랑잎처럼 마른 몸으로 철창에 갇혀

  이 순간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호흡을 멈출 듯 옴추린 네 모습

  안스러 안스러워

  차라리

  죽음으로 행복하거라


  인간세상과 격리된 쓰레기장에서 태어나

  어미의 젖을 빨던 그 때가

  그래도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한 순간

  쓰레기 더미를 넘나들다 깊은 상처를 입고 절룩이던

  그 때의 네 모습이

  내 마음을 더욱 괴롭히는구나


  어미는 어미는

  배고픈 새끼 생각에

  고픈 배도 참고 먹이를 물어다 너희를 키웠지

  그러던 어느 날

  너희들 스스로 살아가라고 냉엄한 어미는

  쓰레기 더미에 너희를 버려둔 채 멀리멀리 떠나가고

  어미마저 떠나간 외로운 빈 터에서

  무섭고도 험준한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보겠다고

  아름다운 내일의 삶을 꿈꾸었겠지


  높은 벽돌담을 힘겹게 뛰어넘어

  가시밭길 세상에 첫 발을 내딛고

  두리번두리번 두려움에 떨며

  이 구석 저 구석 먹다버린 쓰레기로 고픈 배를 채웠지

  그래도 너를 따듯하게 맞아주던 곳

  그 곳에 삶의 터를 잡고 행복하게 살아보려 주춤거렸지만

  불운한 너는 그만

  몹쓸 병에 걸려 길바닥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었지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던 네가 불쌍해

  다급히 병원으로 데려갔건만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던 네가 가련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건만

  입원 하룻만인

  2006년 9월 8일 23시 경

  오! 슬픈 눈빛의 이름도 없는 가엾은 짐승

  기어코 너는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도 저버리고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구나

  마지막 너의 슬픈 눈빛으로

  이 어두운 밤을 더더욱 어둡게 물들여놓고...

 

   “수의사 선생님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습니까?”

  “글쎄요, 최선을 다해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상태로 봐서는 저도 무어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예, 저도 꼭 살려달라고 말씀은 드릴 수 없지만 하여튼 최선을 다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러고는 또 새끼고양이를 이리저리 살핀다. 간호보조원 아가씨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리고 응급처치실로 사경을 헤매는 새끼고양이를 옮긴다. 한참 지난 뒤 수의사가 응급처치 실에서 돌아와 데이터그래프를 펴놓고 말을 잇는다.

 

  “고양이를 검진한 결과 섭씨 33°의 저체온증과 심한 탈수현상으로 인한 혼수상태임으로 앞으로 이 새끼고양이의 생사를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 고양이는 악성 전염병인 「고양이 범 백혈구 감소증」에 걸려있어 백혈구 수치가 1,800개뿐입니다. 정상적인 고양이는 5,000~18,000개인데 비해 이 녀석은 턱없이 적습니다. 그러니까 백혈구 수치가 적어 합병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겁니다. 즉 고양이 에이즈인 셈이지요. 치료 시기가 늦었습니다.”하고 절망적인 검진 결과를 들려주었다.

 

  “예, 저도 이 고양이가 살아날 가망이 희박하다는 건 직감을 했습니다. 하지만 생사를 떠나 수의사선생님께서 최선을 다해주시길 부탁드릴 뿐입니다.” 이 녀석은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도 아니다. 먹이를 훔쳐 먹던 야생고양이 새끼다. 하지만 집 앞에서 한 생명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하찮은 생명일지라도!

 

  7일 오전 일찍 회사 출근을 위해 주차장으로 나갔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고양이 사료를 주었다. 그런데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풀밭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전 같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별다른 생각 없이 무심히 지방의 덕평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출근길 차 안에서 자꾸만 그 새끼고양이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사무실에 출근을 했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급히 집으로 왔다. 도착하자마자 주차장 옆 나무 밑을 찾아보았다. 새끼고양이는 내 손이 닿아도 옴짝도 하지 않았다. 그 새끼고양이는 집고양이가 아니라서 간혹 내가 접근을 하면 두려운 눈빛으로 멀리 달아나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손으로 목덜미를 잡아도 약간의 반항만 할뿐 야성이 없다. 그 길로 고양이를 차에 싣고 가축병원으로 갔다. 우선 고양이에 대한 내력을 대충 말하고 치료를 부탁했다.

 

  그 시각 새끼고양이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도 치료시기를 놓친 것 같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링겔주사를 놓기 위해 혈관을 찾았으니 여의치 않았다. 너무나 마르고 탈수가 심해 혈관에 바늘을 꽂기에 애를 먹는다. 잠시 후 응급조치가 끝난 새끼고양이가 철장 속 입원실로 옮겨졌다.

 

  “저 고양이는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입원을 해야 하는데 선생님께서 경제적인 부담이 너무 클 것 같아 무어라 말하기 매우 곤란합니다.” “네, 그런 건 생각지 말고 우선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해봅시다.” 수의사 선생과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가축병원에 연락을 해 보았지만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다음 날 밤 가축병원에 들려 응급실 철장 속의 새끼고양이를 보았다. 아주 짧은 인연이나마 저의 보호자가 되어준 고마움을 알았던지 새끼고양이는 아주 힘없는 눈동자로 나를 힐끗 쳐다보고 그 이상은 힘에 겨운 듯 움츠린 자세로 초점 잃은 눈을 내려 감고 있었다.

 

  그 순간이 얼마나 가슴 아팠던지 나는 수의사에게 더 이상 말도 못하고 훌쩍 돌아서고 말았다. 수의사 선생은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말하듯 “현재 이 새끼 고양이는 평온한 상태이나 꼭 살아난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오늘 밤이 고비가 될 것 같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도 죽고 사는 게 뜻대로 되지 않는데 여하튼 최선을 다해 봅시다. 나와 큰 인연은 없지만 태어나서부터 정들었던 터라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이 같은 대화를 마지막으로 나는 가축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새끼고양이로 하여 받은 허탈한 마음을 달래려 소주 한 병을 다 비웠다. 그래도 허전한 마음은 풀리지 않고 한층 더 내 마음을 괴롭혔다. 밤11시경 가축병원에서 전화가 왔다고 딸이 전해준다. 순간 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틀림없이 나쁜 소식일 게다. 온 가족이 살아나기를 기원했건만 이렇게 새끼 고양이는 슬픈 눈빛을 가족의 가슴 속 깊게 심어놓고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고 말았다.

 

  이제 고양이는 죽었지만 이처럼 가엾게 떠난 고양이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처참하게 버릴 수는 없다.

 

  “수의사 선생님 이 가엾은 고양이를 마지막 보내는 길 추하게 떠나보낼 수는 없습니다. 비용이 들더라도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아, 네, 그렇잖아도 선생님의 애틋한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목요일 들리는 가축폐기물 수집차량에 넘겨주면 틀림없이 화장을 할 겁니다. 지금 고양이는 냉장고에 보관중이오니 사흘 뒤 선생님의 소원대로 꼭 그 길을 택하겠습니다.”

 

  나는 까닭도 없는 눈물이 돋아나 그 이상의 대화는 할 수 없었다. 그냥 슬픈 마음에 돋아나는 눈물을 감추려 슬그머니 가축병원을 나섰다.



  2006년 7월 중순이었다.

  “여보 이리 와 봐요.”하며 아내가 내게 다가와 옷자락을 끌다시피 하여 옆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집은 5층 다세대 주택으로 맨 위층에 살고 있다.

 

  “저 건너 빈터 가운데 놓인 판자대기 아래를 가만히 봐요.”하며 손으로 잡풀로 뒤덮힌 빈터를 가리킨다. 어디 어디하며 여기저기를 쳐다보다 풀밭 사이에 조그만 물체가 움직이고 있는 게 목격됐다. 그건 다름 아닌 새끼 고양이가 서로 뒤엉켜 뛰노는 모습이었다. 얼마 전 우리 집 주차장에 배가 축 처진 암고양이가 가끔 다급하게 먹이를 훔쳐먹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 암고양이가 쓰레기장으로 변한 공터에 새끼를 낳았던 것이다. 그 옆에 어미 고양이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 공터는 사방이 2미터도 넘는 담으로 둘러싸인 공터다. 지금은 어미젖을 먹고 살아갈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면 어미젖으로는 커가는 새끼 네 마리를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천진스럽게 뛰노는 모습을 창문을 통해 매일매일 바라보는 게 일과처럼 되었다. 땡볕이 쨍쨍 내려 쪼이는 날은 뜨거운 햇볕이 걱정되었고 어쩌다 비라도 쏟아지면 또 그 나름대로 걱정을 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커진 새끼고양이를 바라보며 이 이상은 더 방관할 수 없어 비닐봉지에 사료를 담아 주어 보기로 했다. 이 작전은 명중 했다. 담 위에 올려놓으면 어미가 물고 공터로 내려가 새끼들에게 먹였다. 그러기를 두 달. 그 사이 새끼들을 위한 지극한 어미의 모성애를 바라보며 우리 내외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하루하루의 가장 소중한 화제거리는 물론 고양이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담 위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어미에게 먹이를 주다가 동네 사람으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이렇게 정들었던 고양이들.

 

  이 글은 어느 날 담을 뛰어넘은 새끼 고양이 네 마리 중 두 마리는 차에 치어 사흘 만에 횡사하고 나머지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우리 집 주차장에 와 삶의 터전을 잡고 며칠 살다가 병들어 죽어 떠난 새기 고양이의 슬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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