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발까마귀가 고대 조선민족에게 있어서, 이념적, 심미적, 상징적 의미로 확실하게 자리 잡고 널리 두루 쓰인 것을 고구려 벽화에서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역사는 그 어떤 혈연 내지는 지역적 공동체 감각을 뚜렷이 공유한 一群의 무리가 일구어낸, 지금에 와서도 확인 가능하게 여러 물증에 의해 그 정당성이 확보된 구체적 시공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前 시기를 역사이전 단계, 즉 신화의 세계로 부른다.
그래서 문자적 기록이 그 가치를 긍정 받으며 고고학적 발굴, 유적탐사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문자기록 자체가 다 그대로의 진실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며, 이러한 기반위에서 세워진 역사 역시 전부 진실만은 아니다.
역사는, 그것이 그때까지 살아왔던 사람들이 보기에 기억할만한, 더 나아가 그 가치성을 인정받을 만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선정 및 유기적인 연결이다. 그러다나니 기록하는 자의 기본 입장을 고수하는 견지에서 적혀지고 그러한 과정에서 일부의 왜곡 역시 일어날 수도 있다.
또한, 역사는 어느 특정한 시공간 사건의 전부를 기록할 수 없는 한계도 지니고 있어 역사 자체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모든 사실의 전부 구성도 아니다. 말하자면, “역사적 사건”이 역사라는 거대한 줄기 자체를 구성하며, 그러한 구성의 끝없는 융합과 보완이야말로 역사를 대변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이라고 불릴만한 유의미한 사건들이 엄선되는 행위방식이 필요한 정당성을 갖는다고 수긍할 입장에 서 있어야 할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지속성에 있어서 지금 역시 역사를 위한 “사건”을 만들어 낼 현장이자, 과거와 합하는 줄기가 될 시점이다.
역사를 역사답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더 있다. 전통이 바로 그것이다. 전통은, 그 기저가 분명하고 작용력이 확실해 “역사적 사건”을 그 어떤 줄기에 강하게 접착시키는 연속성을 갖는 무엇으로 속성을 드러낸다. 전통은 대체적으로 물질적, 정신사적, 제도적, 정치적 제반 사항을 포함하며 이러한 것을 다시 취합하여 나타내는 것 중에 상징성을 고도로 획득한 이미지가 있다.
세발까마귀는 이러한 의미에서 전통의 의미를 갖는 동시에 역사적 사건과도 연결된다. 고구려 벽화의 세발까마귀가 역사적 현장에서 있었던 사건이라면, 전통의 내적 근거에도 이를 뒷받침 할만 한 전통 구성의 기저가 있을 수 밖에 없고, 이에 대한 의미를 첫 문장에서 대략 피력하였다.
세발까마귀의 원형적 이미지는 고구려 역사에서 고색창연한 빛을 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대륙의 동북부, 시베리아, 일본에도 그 흔적이 있다.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고대 조선민족의 거주 지역에 세발까마귀 상징이 있었다는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세발까마귀의 상징적, 철학적, 미학적 전통의 의미를 역사의 맥락에서 가장 확실하고 강력하게 구체화했다는데 역점을 둔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은 그래서 굉장히 중요하다. 면면히 흐르는 전통의 제반 요소들이 어느 한 구체적 시공간에서 구체적으로 펼쳐지면서 고구려라는 옛 백의민족의 국가를 탄생시켰다. 다시 말하자면, 고구려라는 역사적 실체가 세발까마귀에 표상된 적절한 의미를 잘 관철시켜 국가형성에 있어서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하고 실천한 쾌거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역사의 흐름에서 고구려만큼 세발까마귀의 의미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국가 또한 따로 없다. 고대 중국에서는 까마귀를 흉조를 여겨 龍과 봉황의 상징성을 극구 높이 산 반면, 三足烏에 대해서는 끝없이 폄하하고 혐오하는 쪽으로 의미를 구체화시켜나갔다.
隨, 唐과 마주했던 강력한 또 하나의 국가로서의 고구려, 세발까마귀로 그 제반 상징을 나타냈던 고구려의 그것과는 달리 당대의 중원은 龍과 鳳凰으로 상응한 상징을 표상하였다. 뚜렷한 문화의 차이였다. 일본 역시 三足烏를 표징의 한 부분으로 삼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고구려만큼 그렇게 강하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세발까마귀가 백의민족에게 있어서 갖게 되는 의미는 그렇게까지도 중요하다. 어떠한 당대의 민족이 세발까마귀의 뜻을 깊게 새기거나, 그렇게 의식적이지 않더라도 몸속에 체화된 생활의 “저절로 그러함”의 관성에 의해 현실에서 구체화나갔는가가 진지하게 성찰되어야 할 몫으로 비중 있게 다가온다.
고구려인들은 건국 초기부터 아니, 건국을 위해 이미 그 전통이 되어왔던 시조신으로서의 태양신과 시조새로서의 까마귀를 연결시켰다. 태양과 세발까마귀를 같은 것으로 보거나, 혹은 후자를 전자의 사자로 보는 설화를 흔히 양오(陽烏)설화라고 부른다.
고구려 왕족과 귀족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세발 까마귀’는 태양 까마귀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네 방위를 지키는 사방신으로 청룡과 백호, 주작과 현무 같은 전설적인 동물들을 등장시켰다. 그러나 그들 위에는 항상 천하를 주재하는 태양과 함께 까마귀가 그려졌다. 그래서 고구려의 까마귀는 용이나 봉황 같은 전설적인 동물들 보다 한 차원 높은 새다.
지금까지 발굴된 거의 모든 고구려 무덤에서 ‘세발 태양 까마귀’가 발견된다. 쌍영총, 각저총, 덕흥리 1호, 2호 고분, 개마총(鎧馬塚), 강서중묘, 천왕지신총, 장천 1호분, 무용총, 약수리 벽화고분, 그리고 다섯무덤(오회분) 4호묘, 5호묘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무덤 벽화 뿐 아니라 출토된 고구려 금관의 장식에도 “세발 까마귀”가 등장하는 걸 보면 당시 고구려인들이 세발까마귀를 얼마나 신성하고 귀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적 고구려의 중심에는 언제나 세발까마귀가 함께 있었다. 세발까마귀의 제반 의미가 깊이와 너비를 더 하면서 고구려 전반에 깊게 체화되고 맥박을 이루어 나갔다는 말이 더 지당할 것이다.
이제는 고구려라는 그 “역사적 사건”이 그 근저로 작용하는 전통의 가반에서 어떻게 구체화 되었으며, 그 구체화가 고구려 이전의 시공간과 고구려 이후의 시공간,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왜 각별한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인가를 두루 살펴보았다.
최초에 어떤 특정집단에 의해 어떠한 상징이 창안되었는가도 중요하지만, 이에 상응한 의미를 독자적 높이와 깊이로까지 승화시키고 현실에 적용하는 의미 또한 더욱 중요하다.

전통은 죽지 않는다. 전통은 과거의 그것으로 완결되어 저 멀리 이전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다. 전통을 뒤져 지적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역사의 훌륭한 부분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생각 또한 적절한 것 같지만 어떤 것이 바람직한 부분이고, 또 어떤 것이 그 반대로 되는 것인가를 변별하기란 쉽지는 않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지금에서 과거의 전통과 역사를 바라보고, 역사와 전통의 시각에서 지금을 바라보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반복 순환의 승화과정이야말로 진정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우리가 만들었다는 근거부족의 독특한 자부심만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세발까마귀의 기원과 구체화에 대한 논의는 그래서 아직 더 논의하고, 생성의 근원지에 대한 고찰 역시 마찬가지로 면밀히 따져보는 작업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전파경로에 대한 후속 논의도 마저 할 수가 있다.
전통이 전통으로 되기 위해 어느 한 시점에서부터 구체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약동을 시작하여 끊임없이 핵이 되는 그 어떤 상징을 생성하고 살찌워 나갔다면, 전통에 강하게 충격을 줌으로써 근거로 작용하던 “역사적 사건”이 있고, 이런 사건 역시 전통의 일부로 변모하여 가는 드라마틱한 흐름을 세발까마귀로서 바라본다. 그 중심에 고구려가 있고 고구려의 세발까마귀가 있다. 이 생성의 장은 “우리를 우리”답게 만든 가장 직접적인 근거로 된다.
전통은 생명력의 근원을 깊게 묻어둔데 그 자체의 경이로움이 있다. 일정시기에는 약동하다 일정시기에는 잠시 망각한 듯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적당한 시공간에서 현실의 의미에 부응하여 새롭게 빛을 보고 소생한다. 한동안 잊어졌던 세발까마귀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과정을 특히 발현이라고 해두고 싶다. 현실적 수요에 의한 요청에 응대하는 식으로만 전통을 대할 수 없음이, 전통 자체가 깊은 생명력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데서 찾아지고, 현실적 수요가 따로 무엇이라고 재촉하지 않아도 전통을 알아서 숨결에서 자신의 가치를 덜 현시적이고 덜 확실하게나마 끝가지 보여준다는 속성에 안도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또 하나의 문제는, 전통과 역사와 어떻게 적절하고 진지하게 대화하여 그 뚜렷한 양상으로 무엇을 생성의 장에서 새롭게 또 한번 넓은 폭과 깊이로 드러내는가에 있지 아니하다고 할 수 없다. 발현을 의식적으로 주도해야 할 당위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세발까마귀와 얽힌 그 많은 사연 역시 마찬가지 범주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세발까마귀를 역사와 전통과 발현과 생성의 장에서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