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화샘, 그녀는 사랑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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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화샘, 그녀는 사랑을 알고 있었다.
  • 이동렬
  • 승인 2006.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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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문맹 탈출 석사과정까지' 한 조선족여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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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중국어 학습
그녀의 눈에는 빛이 있었다. 밝고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숨결, 좀 당돌한 느낌 없지 않으나 어디까지나 감출 수 없는 정열 때문이었다.

“제 앞에 반 컵의 물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얼굴에는 어떤 뜨거움이 익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목말라 죽겠는데 요것 밖에 없는 가고 절망할 수 있지만, 전 그렇게 여기지 않아요. 나한테도 반 컵의 물이 있기 때문에 참으로 다행이다, 행복하다! 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책에서 말한 것처럼! 그런 적극적인 사고가 항상 저의 인생을 지탱해 온 것 같아요.”

유창한 한국말에 좀 이상한 억양이 가미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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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력서는 이러했다. 


‘정금화, 여, 본적-경상북도, 출생지- 중국

학력- 중국에서 초등학교~대학 1학년(한족학교) 수료. 한국에서 영어영문과 학사(독학사)전공, 현제 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중국어교육과 석사과정 재학 중(학기 연속 최우수성적 장학생, 전 과목 A+).

경력사항- 더빙: 최신 전자제품 홍보용 영상자료 중국어 번역 및 더빙; 2001년부터 초, 중등학교 방과 후 중국어 수업 강의; 유치원 중국어 강의; 1:1 중국어 방문교육; 중국어 공부방 운영; 중국어학원 수업 등; 서울시 교육청 홈페이지 우수강사, 외국어대학교 사어버대학 고급 중국어강독 Tutor…'

   
▲ 친구와 함께 학위수여식 행사장에서.
어찌 보면 별로 특이한 이력서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녀가 한국 글을 전혀 배우지 않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1학년까지 한족(漢族)학교를 다녔던 조선족이었다고 생각하면 사정은 다르다. 지금은 유창한 한국말과 문장을 구사할 줄 알 뿐만 아니라 경쟁이 심한 한국에서, 그런대로 자기 영력에서 훌륭한 성과를 따냈으니 얼마나 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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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화씨는 고중을 졸업하고 연변과학기술대학 영문과학부에 입학하였다. 그런데 1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에 여섯 명 동창친구들과 천진에 있는 삼성전자로 아르바이트 갔다가 자기 인생을 바꿀 줄은 몰랐다. 두 달 아르바이트하고 돌아오자고 할 때 회사에서 직원채용시험이 있었는데 여섯 명 친구 중에 두 명, 뜻밖에 그녀가 합격되었던 것이다. 물론 같이 왔던 친구들은 다시 예정대로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 이어갔다.  ‘먼저 돈이나 벌고, 나중에 유학가자.’ 그래서 그녀는 삼성전자회사의 채용을 받아드렸다.


제2의 고향이라고 할 만한 천진시(天津市)에 7년을 살면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전국일간지 천진일보 "동장서망"(东张西望)칼럼지에 산문 10편을 발표했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그녀는 서열차별이 너무 심한 한국회사의 직장 분위기가 싫어서 사직서를 내고 미국부동산 회사로 옮겨 갔었다.


회사에 다닐 때 그녀는 업무관계로 알게 된 한국총각이 있었다. 한국 큰 기업의 천진지사 수석대표, 그때는 단지 관심이었다고 금화씨는 말한다.


또 행운의 기회가 슬그머니 그녀의 곁을 찾아왔었다.

하루는 그녀가 담당하고 있는 외국 고객 중의 옛 스타일의 집(古楼)을 찾고 있는 사십대의 스웨덴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부동산 정보도 없어 애를 먹던 외국인을 기꺼이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녀는 주말시간을 이용해 통역도 해주고 필요한 부동산 정보도 찾아주었다. 외국인과 다니며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고 외국인에게 도움까지 주게 되니 너무 즐거웠다. 나중에 스웨덴아저씨가 수고비를 지불하겠는데 얼마를 줘야 할지 몰라 그냥 액수가 제일 큰 지폐 100원짜리로 꼭 찬 지갑을 열고 마음대로 꺼내가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일전 한 푼 다치지 않고 손을 흔들며 사절했다. 미리 통역비와 수고비를 약속하고 한 일도 아니고 주말시간을 이용해 도와주기로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외국인의 눈에는 너무 사소한 비용이겠지만, 도와드리는 와중에 발생한 교통비는 당당하게 그때그때 청구했었다. 받을 것은 받고, 받지 않을 것은 받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지킨 것이다.  


이에 감동된 스웨덴아저씨는 사무실에서 독일고객과 업무상담하고 있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미스쩡을 통해 중국을 바라보니까, 중국이 더욱 아름다워요!”라고 찬사를 던져왔었다. 귀국하자 스웨덴아저씨는 와이프한테 그녀를 자랑을 했고, 그녀는 곧 그이들 가족과 끈끈한 정을 맺게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스웨텐아저씨네 가족은 금화씨네 가족과 서로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이면 선물 등을 챙겨주고 있다.)


이듬해에 스웨덴아저씨네 가족은 그녀를 스웨덴으로 초청하였다. 

그녀와 사귄지 2년이 넘는 한국총각이 매일 전화를 넣어왔었다. 사랑고백 한 번도 한적 없는 그는 참 점잖고 속이 깊은 성격의 소유자, 라고 금화씨는 말한다. 나중에 프러포즈할 때 알게 되었지만, 마음속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으나 그렇게 능력 있어 잘 나가고 있는 애인을 한국에 데려다 고생시킬 것을 염려해 감히 사랑한다는 말조차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스웨덴에 간지 일주일 만에 그는 보고 싶다고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고 전화를 해왔었다. 아, 얼마나 기다렸던 고백인가! 그녀는 얼굴을 싸쥐고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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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수업생들과 시간이 끝난 후 교실에서

                             

결혼 후, 아내를 너무나도 아끼는 남편은 그녀의 학업소원을 들어 주기위해 여기저기 대학의 편입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하자마자 임신을 하게 되었고, 잇따라 아들과 딸을 낳게 되었다. 임신시기 심한 입덧에 시달려 그녀는 숨쉬기조차 힘든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얼마 후에는 맏아들한테 계시던 시어머님까지 모시게 되었는데, 시도 때도 없이 사랑방 문을 열어젖히며 큰소리 치고 욕을 해대며 못살게 굴기에 병원에 모셔가 종합검진을 받아보게 하였더니 치매라고 하더란다.


마지막에는 노인의 대소변까지 받아내며 돌아갈 때까지 효성을 다 했는데 가끔 정신이 들 때면 노인은 그녀의 손을 잡고 이렇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니가 낮선 땅에 와서 애들 키우며 사는 것도 힘들 텐데, 젊은 애가 무슨 죄가 있어서 나 같은 늙은이 때문에 이렇게 고생이냐. 얘야, 미안하다…”


기실 금화씨는 남편과 주위사람들로부터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아들딸을 출생해서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뭔가 현실에 안주할 수 없는 욕망이 항상 그녀를 불안케 만들었다. 대학을 못 마친 것이 곧 한이었다.


아들이 다섯 살, 딸애가 세 살 나던 해에 남편이 유명 대학에 편입정보를 알아보고 있었지만, 금화씨는 한국방송통신대학 독학사 영어영문과에 입학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런데 영어보다도 생소한 제3국어인 한국어로 영여영문과를 독학하고 시험을 통과해야 하기에 시작부터 걱정이 많았다. 남편과 애 둘을 돌보면서 가정살림을 맡아해야 함으로 독학이 제일 적합했지만 어려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면 된다는 자신의 신조를 굳게 지켜나갔다. 남편이 믿어주고 밀어주어 너무 감사했다. 짬짬이 배운 한국말과 글이 차츰 신심을 북돋워 주었다. 그녀는 자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남편에게는 현재의 상태에 안주하는 아내가 아닌, 항상 미래를 준비하는 현명한 아내가 되고 싶었다. 삶에 대한 자신감, 미래에 대한 기대, 이것이 독학사를 통해 얻어낸 값진 수확이었다.


이렇게 4년제의 영어영문학과를 2년 반의 노력 끝에 원만히 졸업했다. 그녀는 스스로 기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2005년 2월 4일, 교육인적자원부 한국방송통신대학에서는 제13회 학위수여 의식을 거행했는데 당시의 김진표 교육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님이 오셔서 식사(式辭)를 하셨다. 그녀는 영광스럽게도 전체 졸업생 대표로 나와 인사말을 하게 되었다.

 

▲ 김진표 전 부총리의 축하를 받고 있는 정금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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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영어영문학을 독학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시작한 중국어강의범위를 대학졸업 후에 본격적으로 넓혀갔다. 유치원중국어강의, 초.중등학교 방과 후 중국어강의를 하며 중국어교육경험을 쌓아나가는 과정에 인기강사로 소문나 학교 측의 추천으로 ‘서울시 교육청 홈페이지 우수강사’의 영예까지 수여받게 되었다.


가르치는 일이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에 그녀는 중국어교육이 바로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전문적인 교육지식을 습득 하고자 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의 석사과정 중국어교육과에 치열한 입시를 거쳐 입학하게 되었는데, 현제 바로 재학 중이다. 이론지식을 확실하게 배우는 가운데서 그녀는 한국의 중국어교육에 더욱 자신감 넘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중국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과의 교류의 장을 만들고자 싸이월드에 ‘찐화중국어교실(club.cyworld.com/jin-hua)’라는 클럽을 개설해서 지금 열심히 운영해 나가고 있다.


2002년에 그녀는 ‘니하오 中國’ 중국어회사의 교재기획을 맡아 유치원 중국어교재 9권 출판을 경험했었는데, 거기에다 다년간의 강의경험을 바탕으로 주1~2회 초.중등학생 전용 중국어교재  2권- ‘영애가 중국에 가요’(英爱去中国),그리고 ‘영애가 중국에서’(英爱在中国)를 출판하였다, 현제 교보문고, 영풍문고에서 그런 데로 잘 판매되고 있다.  


‘영애가 중국에 가요’는 영애라는 한국학생이 해외발령을 받은 아빠를 따라 온가족이 중국에서 생활하는 것을 이야기로 글을 엮어나가면서 실용적이고 입에 착착 붙는 대화형식을 구성하였다.

 

교재는 내용이 쉬워 보이면서도 난이도가 신축성이 있어 상황에 따라 사용하기 편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보통 중국어교재들은 강사가 강의함으로 필요 없고 복잡해 보이는 문법 설명이 많아 어려워 보이지만, 그녀의 교재는 학생들이 신나게 본문내용을 외울 수 있고, 전체적인 디자인이 학생들의 EQ(감성)과 눈높이에 맞춰 예뻐서 학생들은 좋아한다. 삽화도 낙서가 쉽지 않은 화풍으로 학생들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 게다가 강사님들이 더욱 체계적으로 중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얼마 전의 공개수업 끝난 후, 학부형들이 기쁘고 놀라운 표정으로 찐화샘의 앞에 다가와 이렇게  말씀을 하였다. "어떻게 이십 몇 명 아이들이 모두다 책을 줄줄 외우다 시피 신나게 낭독해요? 선생님! 너무 놀랍고 감사해요!" 그래서 그녀는 더욱 많은 강사님들이 이 교재를 통해 같은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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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싸이월드 홈페이지에는 누군가 선물한 이런 시구가 적혀 있다. ‘행복- 너와/ 같은 하늘을 보며/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 사소한 것일지는 몰라도/ 나에겐/ 엄청난 행복이야.'


▲ 귀여운 아들딸로부터 학사학위취득 축하를 받는 정금화씨
그녀는 사랑을 알고 있고 행복을 알고 있기에 단지 건강 하나만으로도 우리 인생은 행복한 것이다, 고 말하고 있다. 임신 입덧때문에 숨쉬기조차 힘들 때 느꼈던 신체적 고통이나, 치매 든 시어머님을 간호할 때의 정신적 고통과 비기면 이겨나가지 못할 어려움이 무엇이랴! 때문에 그녀는 어떤 일에 부딪쳐도 쉬이 짜증내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일을 추진해 나간다고 한다.

 

찐화샘(금화선생님), 이제 그녀의 앞날은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약속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을 충분히 믿고 대담히 실천해 나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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