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수기] 지성의 덕목
상태바
[인물수기] 지성의 덕목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6.11.0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조성일 회장을 말한다

 <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교수 김호웅>

   조성일 회장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한국의 독지가(篤志家)들을 가끔 만나게 되는데 나는 구구히 설명하지 않고 “연변의 대표적인 지성이요, 최후의 애국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조성일 회장만은 좀 도와달라고 청을 든다.

 

   고작해야 대학교의 평교수인 내 힘이 얼마나 먹혀들어 갈가마는, 윤동주사상선양회 박영우 회장과도 그렇게 청을 들었고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한양원 리사장과도 그렇게 말씀을 드렸으며 심양 한국총영사관 오갑렬 총영사와 함께 한 자리에서도 그렇게 간곡히 부탁을 드렸다.

 

   왜냐하면 조성일 회장은 지성의 덕목을 갖춘 우리민족사회의 참 지도자이기 때문이요, 내 개인으로 말하면 김학철, 정판룡 선생 이후로 가장 존경이 가는 원로이기 때문이다. 


불의에 저항하는 지성


    지식인과 지성인은 다른 개념이다.

 

    지식인은 어느 한 분야나, 지어는 여러 분야에 걸쳐 해박한 지식과 기능을 갖고있는 사람을 말한다. 경제학을 전공해 대기업의 안방살림을 맡아하는 사람도 지식인이라 할수 있고 언론학을 전공해 큰 일간지의 사장이나 편집국장 직을 맡은 사람도 지식인이라 할수 있으며, 대학교의 교단에 서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교수도 지식인이라 할수 있고 시를 쓰고 소설을 엮고 평론을 하는 문인도 지식인이다.

 

    공자는 인(仁), 의(義), 례(礼), 지(智), 신(信)이라는 선비의 덕목에서 의로움을 최고의 가치(義爲最上)로 삼았다. 공자의 말씀은 여전히 오늘날 지식인과 지성인을 가르는 시금석으로 된다 하겠다. 지식인은 정의감과 사회적 책임감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완연히 성격이 다른 두 부류의 인간으로 갈린다. 어느 한 분야의 권위자라 해도 그 지식을 팔아 일신의 부귀와 영달만을 꾀한다면 그야말로 단순한 지식인에 머물게 된다. 개중에는 부패한 권력에 빌붙고 조동모서(早東暮西), 조진모초(早秦暮楚)로 간에 가 붙고 쓸개에 가 붙는 지식인들도 적지 않은데 그들은 썩은 선비, 더러운 지식인이라 하겠다.

 

    지성인은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진리를 추구하고 민중을 대변해 악에 저항하는 의로운 사람이다. 지성인이라면 아무리 존귀한 임금이라 해도 그가 벌거벗었다면 벌거벗었다고 말하고 아무리 무서운 왕님이라 해도 그의 귀가 말귀면 말귀라고 말한다. 지성인은 천만 사람이 서쪽으로 달릴 때 홀로 해 솟는 동쪽으로 걸어가는 사람이다. 지성인은 고리끼의 소설에 나오는 단꼬처럼 자기의 심장을 뽑아 횃불을 만들어 높이 쳐들고 민중의 앞장에 서며 권력과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지식과 의로움의 결합이라는 지성의 첫째가는 조건으로 볼 때 조성일선생은 무엇보다 먼저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학자이다. 그는 천품이 총명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 연변대학교 조문학부 출신들가운데서 손꼽히는 수재로 정평이 나있다. 연변대학교의 교수로 발탁되였지만 사교성과 활동성이 강한 자기의 기질과 능력을 잘 알았기에 교수직을 버리고 사회에 진출했다. 그는 발로 뛰는 연구를 해서 《시론》(1979),《민요연구》(1983), 《조선민족의 다채로운 민속세계》(1986), 《조성일문화론 1-3》(2003)등 무게 있는 저서를 펴냄으로써 민간문학연구에서도 일가(一家)를 이루었고 1958년부터 조선족문학사 편찬사업에 몰입해 갖은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조선족력사상 최초로《중국조선족당대문학개관》(1988),《조선족문학사》(조성일, 권철, 김동훈, 최삼룡 공저, 1990) 등 장편논문과 저서를 펴냈다.

 

    문인의 무대는 문단이요, 문인의 정의감과 사회비판성은 그의 글을 통해 구현된다. "문화대혁명” 시절 조성일선생 역시 많은 문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른바 '계급투쟁’의 리론에 기대어 문학작품에 대한 정치적 평가에만 급급”1)한 적이 있었지만 그는 자신을 반성할줄 아는 문인이었으며 탈퇴환골의 변화를 가져올줄 아는 문인이었다.

 

    우선 그는 개혁개방 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문단의 중심에 서서 작가들을 선도해나가고있다. 우리는 1985년 용정에서《당대문학평론좌담회》를 열어 고루한 문학관을 깨고 새로운 문학관을 정립할데 대해 호소하던 조성일 선생의 열띤 목소리를 잊을수 없다. 특히 2001년 눈 먼 망아지 워낭 소리 따라가듯 일부 얼빠진 문인들이 친일문인 김문학씨를 세기적인 영웅으로 추대하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할 때 "노!" 하고 제동을 걸고《‘김문학현상’과 비교문화의 시각과 방법론》학술회의를 발기하고 조직한 사람 역시 조성일 선생이였다.

 

    다음으로 그는 언제나 약한 자의 편에 서주고 시비가 전도돼 양지가 있고 재능이 있는 작가들이 부당한 대접을 받을 때 무섭게 항변한다. 그는 문단의 비리, 비정과 타협할줄 모르며 언제나 부패한 권력에 도전장을 던진다. 한 때의 실수로 직업마저 잃은 리광인과 같은 문인을 거두어 주고 그의 재능과 열정이 빛을 발하게 한 사람이 바로 조성일선생이며 김관웅과 같이 진리를 고수하다가 피해를 입은 학자를 위해 항변을 하고 그를 우리문단의 재능 있고 용감무쌍한  "흑마”라고 공정하게 평가한 사람이 바로 조성일선생이다.   

 

그래서 조성일 선생이 있는 자리는 기본과 상식이 통하고 조성일 선생이 기치를 들면 군사가 모인다.



위기 극복의 해법을 찾은 지성


    사회가 발전을 하자면 지성인들이 주축이 되고 중산층을 바탕으로 각양각색의 민간단체를 결성해 탄탄한 시민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시민사회 내지 시민단체는 민주주의적인 대화와 논쟁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고 목표를 설정하며 그 실현을 위해 매진함으로써 하나의 자율적인 사회적 역량으로 부상한다. 시민단체는 대중의 힘과 지혜를 모아 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과 특정 영역에서 전반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일을 벌이기도 하고 또 정부의 권위는 존중하되 일부 지도자의 도덕적 부패를 꼬집고 사회의 비정과 비리를 고발하면서 시민의 권익을 대변하고 보호한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이 건전한 사회는 정부와 시민단체가 갈등과 충돌을 통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공존, 공생한다. 하기에 국가나 지역의 현명한 지도자는 시민사회의 역할을 중요시하며 열린 행정을 구사해 시민사회의 건설적인 의견을 수렴해 당국의 정치를 개선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민사회의 구축은 해당 국가나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 발전의 주춧돌이 된다.

 

     우리 조선족사회의 경우, 이러한 시민단체의 효시(嚆矢)로 되는 것이 언제 어디서 발족했는지는 좀 더 깊이 있는 조사와 비교를 해야 하겠지만, 아무튼 그간 그럴듯한 민간단체가 많이도 나왔었다. 혹자는 출범잔치만 요란하게 하고 우야무야 자취를 감추었고 혹자는 인격이나 자격 미달의 문인이 만든 단체라 폐가(廢家)처럼 썰렁하고 또 혹자는 비슷한 단체들을 이중삼중으로 만들어 공연히 정직한 시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