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산문학기행
상태바
요산문학기행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6.11.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성래의 시인마을 소묘(18)
조성래의 시인마을소묘 <18> 요산문학기행
이까짓 비가 작품현장 되씹는 맛을 막으랴

 
  요산 김정한 선생의 묘소를 참배한 후 삼삼오오 음복을 하고 있는 지역 문인들.
요산문학기행이 있는 날이었다. 흐린 날씨 속에 '부산작가회의' 회원들과 시민들이 하나 둘 출발장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해마다 요산문학제 기간 중에 실시하는 행사이고 거의 같은 코스를 답사하지만 회원들의 참석률은 높은 편이었다. 도중에 묘소 참배가 있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차가 왜 안 오노?" 장세진 소설가가 바지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투덜댔다. 깍두기머리인 그의 말투는 언제나처럼 조금 무뚝뚝했다. 이런 경우엔 전용버스가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사람들을 태워가기 마련인데 어찌된 셈인지 출발시각이 다 되도록 차가 오지 않았던 것이다. "손님들 아침식사가 조금 늦어서… 아직 해운대에서 출발을 못하고 있답니다." 이미욱 사무차장의 조심스러운 대답이었다.

손님들의 아침식사? 아, 그러고 보니 짚이는 바가 있었다. 전날 해운대의 어느 리조트에서 '전국 문학전문매체 편집자 대회'가 열렸었다. 그러고는 광안리에서 밤늦도록 뒤풀이가 이어졌다. 아마 그 손님 가운데 몇 사람이 요산문학현장을 답사하기 위해 아직 부산에 머무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체로 문인들은 숫기가 좋아 전국 어디를 가도 천연덕스럽게 행동한다. 그래서 한 이틀 어울려 지내다 보면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아니나 다를까. 예정시각보다 40분이나 늦게 온 전용버스 안에는 외지인 세 사람이 점잖게 타고 있었다. 김완하, 양문규, 정공량 시인었다. 모두 전날 행사에 참석한 당사자들이었다. "잘들 주무셨어요? 멀쩡하시네요?" 주객이 전도되어 양 시인이 먼저 부산 문인들에게 인사를 했다. 넉살이 좋았다. "아, 아직 안 갔어요?" 장세진 소설가가 우스갯소리를 하자 "부산이 좋아서요." 하고 이번에는 김 시인이 가볍게 받아넘겼다. 분위기가 한껏 고양되었다.

일행은 먼저 남산동의 요산생가에 들렀다. 2003년 6월에 복원된 생가는 팔작지붕의 아담한 기와집이었다. 뒤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오른편에는 감나무도 있었다. 전형적인 전통 한옥이었다. 감나무 바로 뒤쪽에는 새로 건립되는 문학관 공사가 한창이었다. 조금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조갑상 소설가가 이곳 생가와 범어사를 중심으로 한, 요산의 성장기와 작품세계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곳이 '사하촌'의 무대인 셈이었다.

다음에는 청룡동 왼편의 고부랑길을 넘어 양산으로 향했다. 이 고부랑길, 그러니까 1077번 지방도로 고갯마루가 요산의 작품 '사밧재' 현장이라고 조 소설가가 지적해 주었다. 현실에 밀착된 요산의 작품들은 이렇듯 그 현장 하나하나가 구체적이어서 한층 더 공감의 폭이 넓은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행이 양산의 신불산 공원묘지에 도착했을 때는 기어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묘소 앞에 제물을 진설하고 참배를 했다. 요산의 제자 1세대에 해당하는 수필가 이해주님과 그 친구 한 분이 동참하여 더욱 자리를 빛내 주었다. 그런데 당연히 함께 있어야 할 김완하, 양문규 시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정공량 시인만이 양복 차림으로 비를 맞으며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참배를 마치고 음복하는 때쯤 해서는 빗발이 더욱 거세어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묘소 앞의 잔디밭에 서너 패로 둘러앉아 즐겁게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마치 요산 김정한 선생의 생전 잔치마당에라도 초대된 기분이었다. "빗속에서도 모든 행사는 예정대로 하는 거네요?" 그때 행방불명되었던 두 시인이 나타나 음식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차 안에 숨어 있는 걸 사무처장이 불러왔다고 했다. "이까짓 비는 아무것도 아잉기라요." 장세진 소설가가 그들에게 술잔 권하며 거친 친절을 베풀었다.

악천후 속에서도 일행은 '수라도'의 배경인 화제리와 '모래톱 이야기'의 현장인 을숙도를 둘러보고 기행을 끝냈다. 화제리 명언마을의 큰 동구나무가 내내 요산의 모습으로 일행의 뒤를 받쳐주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