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시나리오 작가 김석(조선족)씨는 시나리오 '까미귀 둥지'로 재외동포재단 공모 시나리오대상을 받았다. 우리는 그가 자신의 끼와 재능을 발휘해 장차 우리 영화(시나리오)계의 샛별로 떠오를 것을 기원한다. '동북아신문'은 오늘부터 작가가 시나리오 '까마귀 둥지'를 인터넷소설로 고쳐 쓴 것을 연재한다. 많은 관심 바란다.
김석(도리):
조선족 영상시나리오 작가. 영화진흥위원회 재외동포 시나리오 대상.
현재 세종대학교 영화학과 일반대학원 연출전공 .
E-mail: kimdoll3412@naver.com http://blog.ohmynews.com/kimdoll/
까마귀 둥지(연재1)
오늘은 12월 30일, 온 하루 전화만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나에게 전화를 안 줍니다. 남방의 파란 바나나 나무도, 북방의 차가운 얼음덩이도. 혼자 밥 먹기는 싫고, 가슴이 텁텁한 게 다 식은 꼬리곰탕 같습니다.
한잔 하고 싶은데 누구도 불러 안 주니 까마귀가 직접 전화를 합니다.
“연이야, 오랜만이다. 아직 퇴근 안 했니? 퇴근하면 오빠가 맛 나는 거 사줄까?”
“오빠, 고마워. 그러잖아도 오빠 생각이 나던데. 근데, 어쩌나. 오늘 저녁 약속이 있어서. 친구 결혼식에 참석해야 돼. 내일은 시간이 날 것 같아. 우리 내일 만나자. 쿄쿄쿄...”
고놈 겨집애, 애교 만점입니다. 까마귀님은 내일이 문제가 아니라 오늘이 문제입니다.
별 수 없이 다음은 오늘저녁을 위해 전화를 합니다.
“향이야, 오랜만이다. 요즘 많이 바쁜가 보구나. 오빠에게 전화 한 통 없고. 오빠가 오늘 맛 나는 걸 사줄까. 우리 양고기 꼬치구이 먹으러 가자.”
“오빠, 미안, 오늘저녁 우리 회사에서 회식이야. 내일도 약속이 있어. 아마 금년에는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오빠, 미안하지만 우리 내년에 다시 보자, 응?”
- 헉, 내년이라니? 나쁜 계집애, 콱 범이나 물어가라.
내키는 대로 여기 저기 전화를 해봅니다. 근데 오늘만은 모두 바쁜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한가한 놈은 나밖에 없습니다.
- 백수도 한도가 있지. 까옥~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왕청’ 같은 고장에서 온 순자에게 전화해 봅니다.
그녀는 고향이 연변의 왕청입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만나 채팅 하다가 친해져 오프 라인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까마귀와 잠깐 데이트를 한 적 있습니다.
벨 소리만 요란할 뿐, 그녀는 전화를 안 받습니다.
- 그녀는 왜 전화를 안 받을까. 지금도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혹시 새로 남자 친구가 생겼을까.
이젠 나의 그녀가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잡치네요.
하룻밤이면 만리장성을 쌓는다는데, 한달 동안 쌓은 만리장성이 이렇게 빨리 무너지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 까옥~.
문뜩 그녀가 생각났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서영이, 중국 아가씨, 잡지사의 기자입니다.
그녀와는 연락이 끊어진 지 반년이 넘습니다. 연락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반년 동안 바보처럼 핸드폰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잃어버려, 그녀의 핸드폰 번호도 같은 운명을 면치 못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올라가 메일 주소록을 번져봅니다.
OK, 찾았습니다.
“안녕, 오랜만이야. 요즘 어떻게 보내? 많이 바쁜 거니?”
“야…… 이 바보야. 너 죽었냐. 왜 이재야 전화하는 거야. 지금까지 대체 뭘 하고 있은 거야. 내가 너와 어쩌더냐. 왜 내 전화 안 받아. 반년 동안 어디 가 숨어있었어.”
각오는 했지만 각오 이상입니다.
“미안해, 나 북경에 없었어. 반년 동안 고향에 가 글을 쓰고 왔다. 오늘 금방 북경으로 돌아왔어. 정말이야. 나 지금 도착하자 마자 너에게 전화를 거는 거야.”
“너 또 나와 거짓말 하는 거지. 이젠 너를 못 믿겠다. 너 생긴 얼굴과 많이 다르다. 어진 것 같지만 반대인 것 같다. 너에게 얼마나 전화했는지 알아. 너 혹시 핸드폰 번호를 바꾼 거 아니야?”
“죄송, 실은 고향 갈 때 기차에서 잃어버렸어. 그래서 전화를 못 한 거야. 혹시나 해서 메일 주소록을 열어보니 니 전화번호가 있었어. 주소록에 저장해놓고 그만 깜빡 했어. ”
“정말이야?”
“응. 내가 언제 너와 거짓말을 하던?”
“그래... 하여튼 목소리 들으니 반갑다. 네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했어.”
"나도.."
“정말, 너 잡지사 편집하고 싶은 생각 없어? 내가 아는 잡지사인데 사람이 필요해. 너 같으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야. 어때? 해보고 싶은 생각이 없어?”
“미안하지만, 음력 설 전에는 좀 힘들 것 같아. 설 쇠고 고려해볼게.”
“싫으면 그만 둬. 정말, 너 여자 친구 없지, 여자 친구 소개해줄까. 나의 친구야. 너무 예쁘다. 금방 실연했거든. 지금 남자 친구 찾고 있는 중이야.”
“정말 예뻐?”
“응. 항주아가씬데 대단한 미인이야.”
“너보다도 예뻐?”
“아하, 나쁜 놈, 그건 니가 직접 만나보고 판단할 일이고, 넌 항주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중국 미인은 소항(蘇杭*소주와 항주를 가리킴)에서 나온단 얘기 못 들었어?”
“글쎄… 근데, 미인도 실연하는 거야? 왜 실연한 여자를 나에게 소개하는 거야. 못난 나보고 위안해주라고? 미안하지만 나 그럴 여유가 없는데. 너 지금 나와 뻥 치는 거지.”
“뻥이 아니야. 진짜 예뻐. 믿지 못하겠으면 한번 만나보고 결정하던지.”
“니 말대로 정말 예쁘다면 나도 좀 생각해볼 수 있지. 근데, 연말이어서 스케줄이 꽉 찼어. 우리 내년에 시간 한번 맞춰보자. 왜 이렇게 바쁜지 나도 모르겠다.”
까마귀는 기지개를 켰습니다.
“쳇, 백수 주제에 뭐가 그리 바쁜 거야. 너 술 먹는 일이 바쁜 거지. 무슨 놈의 팔잔지 어느 놈은 할 일 없이 빈둥빈둥 술이나 퍼 마시고, 어느 년은 팔자가 기구해서 밥 사주는 남자 친구 하나 없고… 나도 이놈의 편집 일을 때려치우고 소설이나 써볼까.”
“소설은 아무나 쓰나. 제발 그만 두세요.”
까마귀님은 그녀와 기 끈 헛소리 치고는 내년에 편할 때 실연한 항주 미녀와 같이 식사를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금년에는 실연한 여자와 한상에 앉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솔직히 중국아가씨들 성격 하나 괄괄해서 참 좋습니다. 인물 체격 또 못 한가. ‘민족란’에 '조선'이란 두 글자만 있어도 금방 그녀에게로 달려갔을 겁니다.
까마귀님은 담배 한대 꼬나물고 더블침대에 누워 흐뭇한 심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 항주미인이라, 만일 내가 서호(西湖)의 선녀 같은 중국아가씨와 결혼하겠다면, 어머니가 승낙하실까.

<다음에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