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롱고스’ 무지개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로 몽골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 ‘솔롱고스’라는 어감이 주는 기묘한 어감이 너무 유혹적이어서 몇 해 전 여름, 무작정 비행기를 갈아탔다. 중국 심양에서 열린 ‘문학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베이짱에서 ‘울란바토르’ 행 비행기 편이 있는 걸 확인하고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베이짱으로 내려가서 ‘친기스칸’의 말 발자국 흔적이 있는 몽골 대초원 쪽으로 여정을 바꾸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럽 일부까지를 지배했던 이 위대한 민족이 남겨 놓았을 유적과 문물의 흔적에 가슴을 두근거렸던 나는 ‘부양우카(Buynt-Ukaa)’ 공항에 내리면서 당혹감에 빠졌었다. 텅빈 공간에 하늘만 너무 푸르렀던 것이다. 역사의 위대한 흔적을 기대했던 내 눈앞에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았던 바로 그 색깔의 푸른빛과 흰 구름의 하늘과 초원만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더구나 여름 평균 기온 17도C, 엷은 스웨터를 꺼내 입으면서, 한 순간으로 아무 것도 없으면서 있음에 대한 새로운 개안(開眼)의 기회를 가진 셈이 되었다.
너무도 푸른 초원위의 하늘 정말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질리게도 계속되는 초원과 지평선, 거기 수 백 마리, 수 천 마리의 양떼와 말들, 띄엄띄엄 서 있는 그들의 천막집, ‘겔’. 그 사이를 말 등에 올라 짐승들을 몰고 있는 어른들과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소년들. 다섯 살 때부터 말 타기를 배웠다는 ‘암부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에게서 나는 초원을 뒤덮고 있는 개양귀비를 닮은 작은 흰 꽃의 이름이 ‘지츠크‘라고 불린다는 것을, 보라 빛의 작은 꽃은 ‘옵스’, 강가의 버들강아지를 닮은 키 작은 나무는 ‘모르갓스’라는 것들을 배웠다. 돌무더기를 쌓아 푸른 천의 깃대를 꽂아 놓고, 돌멩이며, 돈이며, 심지어는 집에서 잡아먹은 말 머리뼈까지 올려놓고, 그들 소원을 비는 우리들 성황당 역할의 장소가 ‘어와’이고, 거기 꽂아 둔 푸른 천의 깃대가 ‘하득’이라는 것도 배웠다. 우리나라 '성황당'과 비슷한 '어와'. 잡아 먹은 말머리뼈에 목발까지...
그 초원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계속 반쯤 술이 취해 지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집에서나 ‘아이릭’이라고 불리는 마유주(馬乳酒)를 항아리에 가득 담아놓고 약간 맛 지난 막걸리 비슷한 이 음료를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두 잔, 석잔 권하는 바람에 나는 계속 취해서 반쯤은 꿈꾸는 기분의 여정을 계속했다. 겔을 꾸미는데 1시간, 뜯는데 30분이라는 기동성.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승마대회에는 세 살짜리 꼬마 애들부터 35k 거리를 달린다고 했다. 거기에 소 한 마리를 건포로 말리면 배낭 두 개에 다 들어갈 수 있다는 그들의 갈무리 습성이 과거 지구의 절반을 휘달릴 수 있는 역동성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왔다. 남녀 구별 없이 말 등에 오르면 초원을 나르듯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그 속도 앞에 과거의 한 시기, 정착 농경민족들이 감히 그들을 대항할 수 없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짐승이 움직여 가는 데로 그 뒤를 따라가 거기 잠시 머물고, 다시 떠나는 유랑의 습관을 지켜 가는 동안 다른 세계는 빠르게 변해 갔고 그들 역사는 천천히 화석처럼 묻혀 갔으리라. 유목민족답게 그들은 그 초원 어디에도 ‘친기스칸’의 무덤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 오랜 수도였던 ‘으르헌’ 강가의 ‘하라호름’도 낡은 불교 사원인 ‘이르덴주’ 사원이 남아 있을 뿐 그냥 광활하고 텅 빈 초원뿐. 나는 그 초원에 서서 180마리의 표범 가죽을 덮었다는 그들 황제의 겔을 중심으로 수만, 수 십 만개의 겔이 질서 정연하게 수도로의 위용을 자랑했을 상상 속의 도시를 마음껏 그려 볼 수 있었다. 아무 것도 없음으로 해서 자유롭게 펼쳐지는 웅장한 도시와 말 발굽소리와 그들의 숨소리...... 무덤을 갖지 않음으로써 ‘친기스칸’의 시신은 유럽까지 진출했던 넓은 영토 어디에서나 수십, 수백 개로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넓은 초원을 뛰어다니는 주인 없는 낙타와 말들이 있었다. 그 낙타를 붙잡는다고 헐떡대며 뛰어 다니기도 했고, 양 한 마리를 통째 요리해 먹은 기억도 쉽게 잊히지는 않을 성싶다. 양 한 마리를 잡아 간을 날 것으로 먹고, 양 머리를 들고 極樂往生을 빌고...
그들이 양을 잡는데도 물을 사용하지 않고 한 방울의 피도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다루는 데는 기가 질렸다. 결국 막 숨을 거둔 양의 간을 꺼내 준비해간 초고추장에 찍어 소주 안주로 먹었던 그 맛이라니... 마침 부근에 왔던 일본인 몇 사람이 김이 무럭무럭 나는 날 간을 먹는 내 모습을 비디오로 찍고 있길래, 붙잡아다가, <...사시미...사시미...>하면서 소주 한잔씩에 간 한 점씩을 강제로 먹였더니, 처음에는 죽을상을 짓던 그 친구들이 맛을 보고 나서는 더 달라고 덤벼들어서 그 참에 민간외교도 했지 싶다. 모닥불에 돌을 달구어 뜨거워진 뒤에 고기와 돌을 한꺼번에 찜통에 넣은 뒤, 한 한 방울의 물도 넣지 않고 야채만 다져 넣어 그대로 말똥 불에 익혀낸 <호르흑>이라는 요리는 독특한 그네들 초원의 요리였다. 물에 대해서는 지나칠 만큼 경외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은 한 방울의 물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초원 곁으로 맑은 시내물이 흘러가는데도 그들은 적은 양의 물을 길러 와서 사용하고 그 물을 초원에 뿌려 자연 속에 그대로 다시 여과시켜 버린다. 한 컵 정도의 물로 칫솔질이며 세수까지 해결하는 그들에게 시냇물에 함부로 직접 몸을 씻는 것은 엄청난 불경에 해당한다고 한다. 시원스럽게 흐르는 물에 몸을 씻지 못하는 불편함도 우리 식의 굳어진 관습일지 모른다. 강한 햇볕 때문에 얼굴이 타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날고기 비계를 얼굴에 그대로 문질러 대는 그들을 야만스럽다고 비웃을 수만은 없는 게 아닐까. 어둠이 덮여오는 초원에 둘러 앉아 ‘호모스’(말똥)과 ‘알라가스’(소똥)로 모닥불을 피워 놓고, <호르흑>이라고 불리는 양고기 찜에, 한국에서 가져간 소주를 마시며 바라보았던 주먹만큼씩 하게 보이던 새벽 별들 아래서 나는 ‘로마’나, ‘아테네’, ‘카이로’에서 보았던 거대하던 역사의 흔적들 보다 더 많은 것을 보았던 듯싶다. 아무 것도 없음으로 해서 더욱 많은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기묘한 깨달음이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