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의 조선족교회 방문은 예정에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노 대통령의 조선족교회 방문은 조선족 문제에 대한 자신의 "두 번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10분 문희상 비서실장, 문재인 민정수석, 유인태 정무수석, 박주현 국민참여수석 등을 대동하고 구로구 조선족교회를 방문해 지난 14일부터 이곳에서 16일째 단식농성을 벌여온 300여명의 조선족 동포들을 위로했다.
참모들은 "기대치 높일 수 있다"며 농성장 방문 반대
전격적인 조선족교회 농성장 방문은 참모들의 건의보다는 노 대통령의 결단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이 농성장을 방문함으로써 이들의 기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으나 대통령이 "위로 차원에서라도 가자"고 해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민정수석도 이와 관련 "사실 이곳을 방문함으로써 기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대통령께서) 위로 차원에서라도 가자고 하셔서 추진했다"고 방문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경호상의 문제 등을 이유로 방문일정은 청와대 기자들에게도 일체 비밀로 했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점을 의식해 처음부터 "제가 여기 왔다고 특별히 큰 기대는 갖지 말라. 저는 여러분을 위로하기 위해서 왔다"고 전제하고 "(국적취득 문제가) 당장 안 풀리더라도 (한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 안했으면 좋겠다"고 이들을 위로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방명록에도 "중국 동포 여러분 힘내세요. 국경과 법.제도가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의 믿음은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건강 잘 돌보십시오"라고 썼다.
노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부터 당시 중·소(러시아) 동포들의 국적 취득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농성장을 방문해 조선족 국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변호사 할 때 중국동포가 한국여성과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는데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여성과 결혼한 남성에게 국적이 허용되지 않을 때다. 그래서 그 일이 맡아해본 일이 있다. 사건 맡을 때는 당연히 정부가 해줘야 할 일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고 싶어 중국에 갔나. 독립운동 하고…. 그 자녀들인데 왜 안되나 했다. 그래서 (이 문제 해결 위해) 법무부 담당 검사를 만났더니 법을 가지고 토론하면 그 사람이 나한테 밀린다.
결국은 그 검사 자신도 참 이해하기 어렵다 하더라. 그 당시만 해도 노동자 일자리 경합이 있던 때라 어렵다 했는데 이 검사도 맘먹고 문제 풀려고 하더라. 그런데 국내만 걸리는 게 아니라 중국 주권을 존중하는 국제 문제가 생기더라. (그 뒤로) 저는 국회로 돌아오고 그 사람은 결국은 다른 방법으로 귀화해서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했다. 그때부터 이 문제 해결해야겠다고 맘 먹었다. 인도적인 문제 뿐 아니라 실제 중국동포 문제 잘 해결하면 한-중 우의도 돈독히 할 수 있고 그래서 소중히 가꿔가야 할 자산인데…."
후보 시절에도 "재중동포들은 귀중한 인적자원"이라며 문제해결 약속
노 대통령의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애정은 방명록을 쓰면서 "글발만큼이나 희미하게 써지네요. 마음은 진한데…"라고 아쉬움을 피력한 데서도 드러났다.
노 대통령은 이어 "(그 때부터) 스스로 풀겠다고 맘먹은 것을 대통령이 되어도 못하니 안타깝다. 대통령만 되면 맘대로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라면서 "역사가 가로막고 국제질서가 가로막고 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조선족 국적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변호사 시절부터 다짐했던 약속을 일부나마 지킨 셈이다.
이처럼 조선족 국적 회복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 후보 시절에도 조선족 친인척 초청 및 자유왕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표나지 않는 약속"을 한 바 있다.
당시 노무현 후보의 정책담당 비서로 재중동포들을 상담해온 이재영씨는 "다른 재중동포 정책은 몰라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중국동포들에 대해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내국인과 차별하고 있는 "친인척 초청 불허조처"만큼은 후보께서 집권할 경우 해결하겠다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조선족 동포들에게 약속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주간 오마이뉴스>를 통해 노무현 후보의 공약을 "한국으로 시집온 "옌벤댁" 6만명의 표심은?" 제목으로 단독보도한 바 있다.
당시 문재인 부산선대본부장 밑에서 일했던 이재영씨는 "현재 한국 국적을 취득한 중국동포들에게만 행정편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친인척 초청 불허조처는 재외동포법과 출입국관리법 어디에서도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법개정 없이도 해결할 수 있다"고 그 배경을 밝혔었다.
조선족 동포들 "노무현 후보가 조선족 문제 잘 이해해 줄 것 같았다"
이처럼 노무현 후보측이 재중동포들과 국내 체류중인 조선족 동포들 그리고 귀화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중국동포들 모두의 염원인 "친인척 초청 문제의 해결과 자유왕래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개선 조처를 약속했기 때문에 이런 약속을 믿고서 불법 체류중인 중국동포들 가운데 일부가 당시 민주당에서 노무현 후보를 돕는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당시 자원봉사자 중에서 지난 96년 한국인 사위와 결혼한 딸과 함께 한국에 왔지만 "불법 체류자" 신세를 면하지 못한 김혜선(48·중국 흑룡강성 당원현 출신)씨는 "TV에서 노무현 후보가 얘기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들었다"면서 "(노 후보가) 조선족 문제를 잘 이해해 줄 것 같아 자원봉사를 나왔다"고 말했었다.
또 지난 2000년 친척 방문 형식으로 남편과 함께 한국에 입국했지만 1년 연장 기간이 만료돼 불법 체류중인 김복실(56·중국 흑룡강성 당원현 출신)씨도 "노 후보의 언행을 보면 약자의 심정을 잘 대변하는 것 같다"면서 "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여러 가지 문제로 바쁘겠지만, 우리 조선족 교포 심정을 조금이라도 챙겨줄 것 같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조선족 동포 농성장 방문은 이들의 이런 기대와 바람에 대한 두 번째 약속을 일부나마 지킨 셈이다. 노 대통령 방문 계기로 농성중인 조선족 동포들은 단식농성을 풀었고, 정부 또한 조선족 불법체류자는 연말까지 강제추방을 유보하기로 했다.
/김당 기자 (dangk@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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