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중국 이야기> 비단 찢는 소리를 즐긴 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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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중국 이야기> 비단 찢는 소리를 즐긴 미인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6.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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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찢는 소리를 즐긴 미인
중국역사 "미녀 삼총사"의 종말

 

▲ 중국 섬서성 흥평현 마외파에 있는 미인 양귀비 묘
중국역사에는 양귀비, 서시, 왕소군, 초선 등 4대 미인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은 중국은 오랜 역사 동안 많은  미인들이 얼굴을 쳐들었으나 역사 속에 깊은 흔적을 남긴 미인이라면 아래 "3총사 미인"이 아닌가한다.

 

 

1. 중국의 주왕조시대 포사라는 절세의 미인이 있었다.
당시의 왕은 난폭하고 주색을 좋아한 유왕이었는데 미인 포사에게 반해 그를 귀비자리에 앉혔다. 유왕은 포사를 위해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았다. 유왕은 그녀의 환심을 사고 그녀의 웃음을 보기위해 원래 정비에게서 난 아들 의구의 태자책봉을 페하고 포사가 낳은 아들 백복을 다시 태자로 세우는 일까지 벌렸다. 그러나 미인 포사의 얼굴엔 별로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웃는 것을 보면 뼈가 녹을 것 같은 상상에 사로잡혀 어느 하루 유왕은 포사에게 “도대체 어떻게 해야 너를 웃길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미인 포사는 애절한 목소리로 왕께 아뢰기를 “저는 좋아하는 것이 없사옵니다. 다만 비단 찢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조금 좋아질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유왕은 그날부터 매일 비단 백 필씩 가져다 팔 힘이 좋은 궁녀들을 선발하여 그녀 앞에서 비단을 찢게 했다. “짜르륵! 짜르륵…….”소리가 계속 들렸어도 포사의 아름다운 얼굴에선 다만 희미하게 입술이 약간 벌려질 뿐이었다.
매일 산더미처럼 비단을 찢어내니 왕국의 창고는 바닥을 내고 온 성안에 원성이 터져 나왔다.

이에 성차지 않은 포사는 유왕을 꾀여 봉화를 올려 달라 했다. 국가의 위기를 표하는 봉화가 오르자 적군과 싸우려 각 제군들의 군사를 이끌고 황망한 달려왔다. 각 제군들이 속아 속 터지는 모습을 보고 미인은 약간 웃을까 했다. 그런데 이런 가짜봉화가 자주 일어나자 각 지역 제군들이 더는 군사를 끌고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유왕 집권11년에 진짜 신후의 반란군 1만 5천명이 왕궁에 쳐 왔을 때 봉화를 올려도 구하려 오는 자가 없었다. 결과 유왕은 왕궁에 돌입한 적장 칼에 죽고 나라는 멸망하고 만다.


2. 절세의 미모에 꽃도 부끄러워했다는 양귀비
중국 당나라 712년에 현종이 즉위하여 초기 훌륭한 정치를 펴서 문화가 꽃피고 당나라가 번영하였다. 그런데 736년 현종이 사랑하던 무혜비를 잃고 말년에 양귀비에 대한 무분별한 총애로 하여 안일과 쾌락에 빠졌다.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대해 사람들은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꽃도 부끄러워했다”고 전했다. 양귀비는 원래 현종의 18번째 아들인 이모의 아내로서 현종의 며느리였다. 양귀비에 반한 현종은 방법을 다하여 양귀비를 궁중에 끌어들여 자기의 귀비로 삼는다. 이로부터 양귀비는 사실상 황후 이상의 권세를 떨쳤으며 자기 양씨가문의 형제자매를 모두 끌어들여 관직을 주고 부화타락과 아첨을 일 삼케 했다.

이때 변방의 일개 군졸에 불과했던 안녹산이 승승장구하며 군 절도사에 올라 왕궁연회에 참가했다가 왕귀비의 눈에 든다. 몸집 좋은 40대의 안녹산이 20대의 양귀비를 “엄마”라 부르며 변태적인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후에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장안에서 도망하던 현종과 양귀비 일족들이 또 호위병들의 반란에 걸려든다. 결국 양귀비는 배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결한다. 그때는 왕귀비의 나이 38세, 서기 755년이었다.


3. 중국의 여황제를 꿈꾼 강청
20세기 중국의 여황제를 꿈꾼 강청도 미모의 여인이었다. 중국에 영화예술이 초기 개발될 때 몇 안 되는 꽃다운 영화배우로 등장하여 인기를 누렸다. 그 후 그는 모택동의 혁명근거지 연안에 들어와 모택동의 눈에 들었다. 국민당군의 포위로 주변에 폭탄이 터지는 연안 동굴 속에서도 강청은 모의 무도 반려가 되어 즐겼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강청은 후에 모택동의 3번째 부인이 되며 모의 둘째부인은 정신질환자로 취급되어 치료차 소련에 보내지게 된다.
그는 야심에 찬 여인이었다. 어릴 때 벌서 담이 크고 남을 욕보이던 맹랑한 소녀였다. 동네친구 단운전이란 애가 강청을 ‘첩의 딸이라’ 놀리자 이에 경찰국 소속경관이었던 이복 오빠 이건훈을 시켜 그 애의 삼촌을 죽게 만든 일화도 있다.

문화혁명 때 무소의 권력을 행사하던 강청은 임표(반란이 폭로 되어 비행기로 도망하다 몽골에 추락하여 죽음)와 단짝이 되어 중국의 고전저작을 불태우고 명승고적을 파괴하였으며 그 후에는 또 4인방을 묶고 최고 권력을 찬탈하려 들었다. 그러던 중 주요 장애물이자 적수인 주은래 총리를 무함하려다 시민들의 분노를 야기 시켰고 모택동이 사망하자 4인방과 함께 잡혀 나왔다. 도고한 강청은 수갑을 차고도 최고법정에서 고래고래 소리 질러 항변하다가 1981년 사형선고를 받았고 2년 후 무기직역으로 감형되었으나 1991년 자살로 끝내 여황제의 꿈을 접었다.

중국역사 3총사 미인의 공동한 특점은
교만, 잔인하며 기고만장 야망을 가지고 권력을 이용하여 야욕을 채웠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이세벨이란 왕의 아내가 나온다. 온갖 악한 짖을 다하며 선한자를 박해한다. 결국 국가를 타락시키고 자기와 남편 자식까지 파멸시키고 만다. 그리하여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인간의 형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 인간의 중심을 보신다고 가르친다.


물론 인간이 겉과 속이 모두 아름다우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이들 미인 3총사가 꽃다운 미모에도 불구하고 인생 말로가 모두 비참하게 끝냈다는 것이 온갖 화장술과 미용수술, 미인 대회가 판을 치는 오늘 사회에도 의연히 교훈으로 남는다.

동북아뉴스/후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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