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을 통해 떼거지로 쫓겨나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연한 뒷모습만 다루고, 그 뒤로는 모든 신문과 방송이 침묵하는 이 주제에 대해 함께 토론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마이뉴스>는 직접 명동성당을 찾아갔다.
김C가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늦가을 한파는 엄동설한의 그것보다 훨씬 더 했다.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네팔 남부 등 주로 더운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아마도 해마다 겨울을 겪는 한국사람들보다 훨씬 더춥고 시릴 지 모른다. 언 땅에서 손과 발을 꼼지락 꼼지락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고통은 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머리에 목도리를 칭칭 감고, 솜바지에 두꺼운 파카 그리고 조끼와 장갑…. 그래도 그들의 코끝은 새빨갛게 식어 있었다.
명함을 들고 머쓱하게 서 있는 기자에게 주먹만한 귤을 건네며 빙긋 웃는 그들은 필경 생존권이 걸린 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인데 넉넉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명동성당에서 13일째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매우 여위어 있었지만, 그들은 정말 가량가량했다.
"외국인노동자들 명동성당에서 농성한다면서요. 그거 어때요?"
김C는 매니저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주제로 <김C의 시사콘서트(이하 시사콘서트)> 2회분을 촬영하면 어떻겠냐고 먼저 물어왔다.
지난 27일 저녁 7시 "오마이포럼"이 주관하는 <김C의 시사콘서트> 2회분은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본사 3층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지난주와 달리 이번 주 초대손님들은 "명동성당에서 광화문 본사까지" 007작전을 방불케 하듯 모셔왔다. 경찰의 단속이 심화된 마당에 어느 순간 인천공항으로 내몰릴 지 모르는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 7월부터 본격 고용허가제가 실시되기 때문에 3년 이상 4년 미만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1년을 더 연장해 일할 수 있는 비자를 주지만, 그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오래 된" 이주노동자들은 "이 땅을 떠나라"고 경고했다. 8년, 9년씩 뼈빠지게 일하면서 이제야 한국말과 음식, 문화, 사람들, 기술에 익숙해진 이주노동자들은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그 분노와 절규를 <김C의 시사콘서트>에서 토해냈다.
사마르(SAMAR)씨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그는 95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으며 지금까지 9년동안 플라스틱 사출기, 유리문 새시 일을 해왔다. 그는 현재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장을 맡고 있으며, 명동성당 농성단의 대표도 겸직하고 있다.
소하나(SYOHANA)씨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여성이주노동자다. 그녀는 서울 구로 3공단에서 전자칩 관련 공장을 다니고 있다. 소하나씨도 한국에 온지 벌써 8년. 그녀의 월급은 80만원이다. 사마르씨처럼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왔다가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 여기저기 떠돈 공장만 해도 꽤 된다.
"시장·도로 그냥 아무데서나 잡히면 쫓겨나요"
김C : 두 분 안녕하세요? 와, 소하나씨, 이름이 참 예뻐요. 무슨 뜻인지 아세요? 하나는 원(1), 소는 그 음메∼하는 소를 얘기하는 거예요. (모두 웃음) 한국에도 소씨가 제법 있어요. 한국에는 소유진이라는 탤런트가 있기도 하죠. 오늘, 두 분 참 어렵게 모셨는데,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옆쪽에 앉아 계신 분, 외국인은 아니죠?
이금연 : 네, 저는 한국사람이에요. 안양 전진상복지관에서 일하고 있구요. 그동안 이주여성 문제에 대해 관심 갖고 일해온 사람입니다.
김C는 농성장에서 출발한 그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려는지 농담섞인 인사로 분위기를 주도해갔다. 간혹 김C를 따라 그들도 웃긴 했지만, 좀체 표정이 녹아내리지는 않았다. 그만큼 그들이 처한 상황은 위험했다.
김C : 명동성당에서 농성중이라고 들었어요. 정부가 말한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 있나요?
사마르 : 4년 이상 된 이주노동자들은 모두 강제추방 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집중단속이 시작되면서 여러 곳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은 재래시장, 도로, 집 아무 데서나 잡히면 일단 사진 찍고, 쫓겨나요.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는 우리들은 대부분 8년∼9년씩 한국에서 일한 노동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왜 나가라고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돼요.
김C : 이런 상황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금연 : 아무래도 정부로서는 명동성당 농성이 언론에 집중 보도되는 게 두렵겠지요. 그리고 보도는 조선족 동포들의 국적회복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형편이구요. 명동성당 농성은 그저 TV뉴스의 자료화면 정도로 활용하는 식입니다.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생존권이 걸린 문젠데, 큰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게 참 안타깝네요. 현재 추산으로는 8만∼12만 정도의 이주노동자 인구가 한국에 상주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들을 강제로 출국시킬 수 있을까? 그러나 정부는 별 문제 아닌 걸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제가 보기엔 그렇게 많은 인구가 한꺼번에 간단히 나갈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싼값에 실컷 부려먹고 한국에 익숙해질 만하면 나가라?
김C : 맨날 중소기업 인력난 얘기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을 대체인력으로 쓰잖아요. 그러면서 도대체, 정부는 왜 이 사람들에게 나가라고 하는 거죠?
이금연 : 영주권 문제가 있어요. 산업연수생제도는 잘 알려진 것처럼 "연수"라는 미명하에 싼값에 이주노동자들을 부려먹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도 8∼9년씩 한국에 살다보면 이것저것 알게 되고, 그럼 정부가 이들을 컨트롤하기 참 힘들어져요. 또, 그들이 한국에 눌러앉아 살겠다는 걸 미연에 방지하려는 거죠. 일 잘하는 숙련공 내보내고 미숙련공을 "연수"라는 미명으로 데려와 실컷 부려먹고, 좀 익숙해질 만하면 "나가라?" 이건 대단히 미련한 정책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법무부가 계속 반복하고 있죠. 근본적인 문제는 꽁꽁 문을 닫고 한국은 우리끼리 잘 살아보자는 거죠. 그러나, 이미 한국은 "다민족이 함께 사는 나라"가 됐어요. 그러나 한국사회의 인식은 "다양성"이 매우 부족하지요.
김C : 아니,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 만든다면서요. "세계화"를 그렇게 부르짖는 나라에서 왜 그러죠? 세계화라는 건 나라마다 색깔이 있을 때 가능한 거잖아요. 오죽하면 제가 음악판에서 이런 말도 했어요. 우리는 "김치공화국"이다. 다양성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주노동자들을 존엄한 인격체로 대우한다기보다 소모품 취급하는 거네요?
사마르 : 이런 일 있었어요. 네팔에서 온 친구 얘기입니다. 남편은 4년 이상이 돼서 강제추방 대상이고, 부인은 3년 미만이라서 1년 더 있을 수 있어요. 아기는 엄마랑 같이 살 수 있지만, 아이도 태어나자마자 불법체류자가 된 거예요. 국적도 없으니까. 한 가족을 이렇게 헤어지도록 만들어야 하나요? 또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아버지를 집에까지 찾아와서 경찰이 잡아갔어요. 외국인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이렇게 슬픈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전 지금 벌어지는 강제추방,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하나 : 연수생으로 올 때, 저도 95년도에 210달러, 그러니까 15만원(?) 정도 받고, 다른 수당 다 합치면 40만원 정도 받고 일했어요. 또 전 여자니까, 월급 안 주고, 또 손 만지고, 욕도 하고, 그런 일 많이 겪었어요.
김C : 그럼 성폭력 같은 걸 당했다는 건가요? (점점 화를 내는 김C) 정말 부끄러운 나라에 살고 있군요. 아, 내가 이거 왜 하자고 그랬지? 미치겠네 정말. 그런데요, 이런 게 있어요. 너 일본 사람 닮았어, 그럼 그래? 그러면서 우쭐해해요. 그런데, 야, 너 진짜 인도네시아 사람처럼 생겼어, 그럼 으이구 뭐야∼ 그런단 말이에요. 그 기준이 뭐냐면, 돈이 많은 나라냐, 아니면 가난한 나라냐 그 차이예요. 부자냐, 가난하냐, 네? 한국에서 살면서 차별도 많이 당하셨죠?
"식당에 공짜 밥 먹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눈치 봐야돼요"
사마르 : 나는 한국사람이니까 너보다 돈 더 많이 받아야 돼. 식당 가면 눈치봐야 돼. 반말해.... 우리도 똑같은 사람인데, 식당에 공짜로 밥 먹으러 가는 것 아닌데 우리가 왜 그래야 돼요? 이런 차별 당할 때, 차라리 당당하게 우리나라 가서 살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여태까지 이 고생하면서 여기서 살았는데, 이제 익숙해지니까 왜 나가야 돼?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맞아도 참고, 욕해도 참고, 다 참고 고생하면서 살았는데....
소하나 : 공장에서 돈 줄 때, 사람들이 그런 말 많이 했어요. 이거 여기서는 작지만, 니네 나라 가면 큰돈으로 바꿀 수 있잖아. 그러니까 이거 많은 거 아니야. 그리고, 돼지고기 그런 거 우리도 다 아는데, 두부라고 그러고...
김C : 진짜 먹는 것 가지고 그러는 거 아닌데. 왜 그러지? 진짜.
이금연 : 언어폭행, 임금노동관계는 이미 해묵은 얘기구요. 문제는 최근에 스리랑카에서 연수생이 왔는데, 그 친구도 94년과 마찬가지로 40만원 받고 왔다는 겁니다. 진짜 인권침해범은 정부예요. 반말이나 경멸하는 말투 이런 건 뭐 일상화 된 거죠.
김C : 우리도 예전에 이주노동자들이었던 적 있잖아요. 우리도 예전에 똑같은 고통을 겪었을텐데, 그런 문화가 바뀌지 않는 건 왜 그럴까요?
이금연 : 얼마전 독일에 갔던 광부를 한 분 만났어요. 그분 말씀이 독일에서도 인간적 차별은 있었다, 그러나 독일정부가 한국광부들에게 정책적 제도적 차별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어요.
김C : 그러니까 2만불, 3만불 하는데, 정말 중요한 건 돈 많은 나라가 잘 사는 게 아니고 행정이나 사회시스템이 선진화 돼 있을 때, 그때 정말 잘 사는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거겠죠.
사마르 : 한국에도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 있잖아요. 이런 문제 해결하려면 노동 비자 합법화 해줘야 해요. 사회적으로 안전하게 노동자로 대우해주세요. 우리는 노동자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은 인권침해 안 하는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 이런 대책 자꾸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인간답게 살고 싶어요.
"배타적인 행동으로 남의 맘 아프게 하는 거, 진짜 나쁜 거예요"
이금연 : 8만∼12만이나 되는 이주노동자들이 지금 불안 속에 방치돼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하는 것을 방치하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가해자로서의 한국이 아니라 관용이 있는 사회가 돼야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과감한 정책을 기대해봅니다.
김C : 오늘 토론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참 부끄럽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도 명동성당에서 노숙농성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에 관심 갖자는 얘기를 했대요. 같은 사람으로서 따뜻한 방에서 잔다는 게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배타적인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나쁜 것 같아요. 우리 스스로 먼저 마음을 열어야 세계화도 잘 될 수 있는 거예요. 지난주에 <연예저널리즘> 다룰 때, 홍석천씨가 입고 온 옷에 성조기 그려 있다고 어떤 네티즌 분이 댓글을 올리셨더라구요. 전요, 그런 게 참 그래요. 그렇다고 홍석천씨가 미국을 사랑하겠습니까?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건 8, 9년씩이나 된 숙련 노동자들을 무작정 내보내고 소모품으로 전락시킬 게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방안을 정부가 마련했으면 합니다. 마칩니다. 다음주에 뵈요∼.
사마르와 소하나씨는 다시 명동성당으로 가야했다. 늦은 밤, 김C가 나섰다.
"저희가 차가 있으니까 가면서 내려드리고 갈게요. 그게 낫겠어요. 명동이면 얼마 안 걸리니까요. 하여간 힘내세요."
"우리는 쓰고 나면 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다"
"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아∼아∼민주노조 우리의 사랑, 너와 나, 너와 와, 철의 노동자....."
명동성당 붉은 계단에 앉아 몇몇 이주노동자들이 노래를 불렀다.
"빨리∼빨리∼."
친구들이 불러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하던 이 사람은 결국 친구에게 "강제연행"됐다. 그는 지난 27일 저녁당직. 어제는 네팔음식, 오늘은 인도네시아의 치킨카레다. 감자를 썰고, 양파와 풋고추를 잘게 썰어 커다란 양은솥에 넣은 뒤 펌프질로 가스에 불을 당긴다.
앞에 닥칠 어둡고 캄캄한 미래. 그래도 그들의 얼굴은 밝다. 명동성당 들머리에 비닐천막으로 만든 농성장. 전기불도 없고, 물도 없어서 잘 씻지 못하고 그냥 뒹군다, 헝클어져 있는 신발들처럼. 그래도 그들의 연대감은 훨씬 강고해졌다.
"한국사람들은 우리를 한번 쓰고 버리는 쓰레기처럼 생각하겠지만, 우린 사람입니다. 우리도 사람이에요. 인간답게 살고 싶어요. 정말, 정말로...." 한 이주노동자의 이 말이 가슴을 후려친다.
오늘도 한국사람들은 무심코 명동성당 앞을 지나가지만, 비닐천막에 살고있는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단은 한국에 살고 있는 8만∼12만 이주노동자들의 "강제추방을 반대한다"는 구호를 걸고 즐겁게 투쟁하고 있다.
단 하나,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장윤선 기자 (sunnijang@OHMYNEWS.COM)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