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고 많아져서 어지간한 여행 이야기는 신기할 것도 없지만 아마존 밀림 속 원주민 인디오들과 악어를 잡아 본 분들은 많지 않을 듯싶다.
악어고기가 닭고기 맛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들었겠다, 그 흉물스러운 몰골도 몰골이지만 가죽 값이 만만치 않은 악어를 손수 잡아 직접 구워 먹어 보았으면 하는 상상은 참 오래해 왔었다.
더구나 아마존에는 식인고기 ‘삐라니아’가 우글거린다니까 그 녀석 생김새도 직접 보고 싶어 그쪽으로 나갈 기회를 노렸는데 남미 쪽과의 인연이 그리 쉽지 않았다.
몇 번 시도 끝에 96년 7월, 비행기 예약까지 되었는데 출국 이틀 전 덜컥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여정을 취소한 뒤, 슬슬 오기가 발동해서 드디어 해가 바뀐 1997년 2월 단독 여행을 떠났었다.
우선 L.A까지 나간 뒤, 이왕이면 멕시코에서 마야문명의 흔적이라도 맡아보고, 아마존으로 들어갔다가 ‘이과수 폭포’를 보고, ‘마추픽추’에서 잉카의 냄새까지 맡을 셈이었다.
이과수 폭포에서
L.A도 사방이 금연(禁煙) 구역이어서 하루 한 갑 이상 담배를 피우는 습관 때문에 영 기분이 편치 않았는데 L.A에서 멕시코 소속 비행기를 갈아 타고나서는 만사형통이었다.
그간 한국과 미국에서 주눅이 들어 뒷자리 흡연석에 자리를 잡고도 담배를 피워도 괜찮은지 조심스럽게 묻는데 웬걸, 스튜어디스가 자기도 한국 담배 좀 피워 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그녀가 갑자기 왜 그렇게 예뻐 보이던지...... 숨통이 트였다.
담배에 관한 한 세계에서 미국과 한국만이 제일 고약하게 군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멕시코 ‘소깔로 광장’에서는 꽁초를 버리려고 쓰레기통을 찾았더니 멕시코 친구가 이상한 사람도 있다는 듯, 꽁초는 길에다 버리고 발로 비비는 것이 원칙이란다. 순간 담배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싹 가셨다.
‘해의 피라밋’, ‘달의 피라밋’. ‘데킬라’.....
그리고 나서 멕시코시티에서 아마존 강 하구에 있는 브라질의 작은 공항 ‘마누스’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탔다.
그때는 그 ‘마누스’에 한국 사람이 딱 한 사람밖에 살고 있지 않았다.
오래 전 가족이민을 가서 남편은 죽었고, 아이들도 자라 도시 학교 기숙사로 떠난 뒤 혼자 살고 있다는 그 여자를 여행사를 통해 공항에서 만나 내 안내를 해주기로 약속을 했었다.
계절과 밤낮이 뒤바뀌고 마침 삼바 축제가 막 끝난 이상한 열기가 감도는 그 이국 땅 2월의 새벽 두시.
약속했던 여인은 그러나 공항에 그림자도 나타내질 않았다.
할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예약된 호텔로 찾아가기는 했다. 그런데 호텔에는 방 예약이 되어 있지도 않았고, 빈방조차 없다는 거였다.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의 황당한 새벽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프론트 한쪽 빈 의자에서 날이 새길 기다리려고 등을 기대고 있는데 참, 흑인들도 인종이 여럿이지만 눈 흰자위하고 이빨만 빼면 어둠 속에서 형체가 안보일 만큼 시커먼 색깔에, 몸 크기가 나보다 세 곱은 될만한 거구의 친구가 내 곁에 짐을 부리고 자리를 잡으면서, 싱긋 웃는 거였다.
그때 온 몸에 돋던 소름을 생각하면 지금도 으스스한 기분이 된다.
텍사스에서 혼자 정글 트레킹을 왔는데 자기도 방을 못 구했다고 했다.
유유상종이라더니 별 이상한 유유상종으로 그러나 아마존 밀림에 머무는 동안 내내 그 친구하고 사이좋게 지냈다.
새벽이 되면서 호텔 앞으로 펼쳐진 거대한 흙탕물의 소용돌이와 수평선을 보고 나서야 내가 상상했던 강의 개념이 싹 바뀌었다.
강에서 보는 수평선. 브라질은 넓고도 거대한 땅이었다.
이젠 성까지 잊어먹은 그 고약한 아주머니는 빵 몇 조각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강의 지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배표를 구한 후에야 나타났는데, 사실 그때쯤에는 안내 같은 것이 별 필요가 없었다.
배의 승객 모두가 각종 인종들이어서 언어가 쓸모가 없었고, 브라질 어느 곳에서나 '따봉' 한 마디에 엄지손가락만 세워 보이면 ㅡ 좋은 아침이다, 기분 좋다, 너, 미인이다, 음식 맛이 좋다. ...등등,이 해결되는데다가 정글 속에서 언어라는 것이 쓰일 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두 시간쯤 지류를 거슬러 올라가서야 열대 우림의 숲과 강이라는 느낌의 공간이 나왔다. 울창한 밀림 강 한쪽에 긴 말뚝들을 박고, 나무 중간들을 연결시켜 숙소를 만들어 놓은 정글 타워에 도착했다.
ARIAO AMAZON TOWER.
정글에 묵는 동안의 본부 캠프였던 셈.
식당으로 사용하는 커다란 홀은 전체를 굵은 철망으로 덮어씌워 있었디. 거기에서 나무와 나무 사이를 밧줄 사다리로 연결, 새 둥우리 같은 작은 오두막을 나무들 중간에 한 개씩 만들어 놓았는데 그 나무 가지 사이의 숙소에 짐을 풀었다.
여러 종류 원숭이들이 곧바로 철망을 씌운 지붕위로 몰려든 후에야 그 철망 의 용도가 이해되었다. 종류도 각가지인 수 십 마리 원숭이들에 둘러싸여 지내는 동안 꽤 친해진 녀석들까지 생겼다.
그곳에서 사흘.
숲 속 곳곳, 원숭이들과 나무 들보, 앵무새 떼들......문명과는 완전 차단된 원시 밀림 속, 원주민 인디오들의 삶은 그곳 강이나, 숲의 일부로 동화되어 있었다.
끼니때면 뜰채를 들고 나가 두어 번 수초를 훑어 한 끼 먹을 물고기들만 잡고, 껍질이 빨간 야생 바나나가 흔한데다가, 아무렇게나 주변에 뿌려둔 옥수수를 따오고.....벽이 없이 지붕만 풀로 덮은 집, 졸리면 기둥에 걸쳐놓은 그물침대에 올라가 아무 때나 자는 생활이었다.
옷도 형체만 걸쳤을 뿐, 가슴을 들어낸 젊은 아기엄마는 젖을 물리면서 작은 뿔 피리를 불고 있었다.
이상하게 영혼 깊은 곳을 긁어내는 듯한 그 음률이 가끔 떠오르는데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 지금도 내 연구실 책장에 꽂혀 있다. 방문객들은 그 사진을 보고는 꼭 한 번씩 고개를 갸웃하고 나서 내 얼굴을 살피곤 한다.
아마존 밀림의 인디오 가족
.. 내 가족 사진이우.
잠시 나는 꿈결처럼 아마존 강 어구의 뿔피리 소리를 떠올리곤 한다.
나도 낮에는 ‘삐라니아’ 계통의 물고기를 뜰채를 빌어 몇 마리 잡았는데, 고추장 같은 게 없어 그냥 삶아 소스에 찍어 먹어 보았지만 맛은 영 아니었다.
그날 밤, 저녁달이 떠올라 왔을 때 인디오 청년 둘과 작은 쪽배를 타고 강가 수초사이에 엎디어 있다는 악어를 잡으러 갔다.
큰 회중전등으로 수초 사이를 비치고 다니기 20여분. 팔 길이 정도의 악어 한 마리가 죽은 듯 엎디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청년 둘과 같이 바지를 벗고 다가간 우리는 한꺼번에 녀석의 목과 허리와 꼬리 부분을 눌러 덮쳐 배 위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갑판위로 올라온 녀석이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는 거였다. 박제라도 된 듯 움직임이 없어 슬쩍 내가 발로 배를 찼는데, 순간 휘어치는 꼬리의 힘이라니.....발목 부분을 얻어 맞고 나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앉았다. 지금도 그 흉터가 남아 있다.
아마존 강의 악어잡이
결국 악어가죽 벗겨서 핸드백 만들 꿈은 포기했지만 그 숲과 물 냄새, 원숭이 떼와 그 시커멓던 거구의 미국 친구 기억은 언젠가 작품 속에 고향의 한 장면처럼 인디오 여인네의 뿔피리 소리와 함께 다시 살아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