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기자인 재일본 조선족 연구회 리강철(李剛哲) 박사는 조선족의 국제화를 실현해보자고 하면서, 여기에 미국의 동포들이 앞장에 서줄 것을 바랬다. 그러나 나는 국제화에 앞서 지금 미국의 조선족 동포들은 당초 사회공동체를 형성할 때의 초심이었던 '조선족의 정체성 확립'과 '한인 사회와의 융화', 그리고 '한민족 동질성 회복'이라는 거창하던 건설개혁을 모조리 상실했음을 슬프게 생각한다.
그 누구도 의욕적으로 추진하려고 하지않기 때문이다. 원인은 그 누구도 이 개혁의 지도 지침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알지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적인 동포들의 합의를 추정한다면 조선족은 한국인들과 하나의 핏줄로 이어졌으며, 한 뿌리에서 났으며, 같은 민족이라는데 반론을 제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살아온 사회와 정치적 배경만이 다를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1백여년전 우리의 선조들은 아시아로 밀려들고 있었던 서양문물을 외면하다가 나라까지 잃었고, 그 바람에 중국으로 건너왔다. 대신 발빠른 국제화를 추진한 일본은 한국을 식민화할수 있었다. 그때의 국제화 핵심은 앞선 외국문물을 배워 나도 남과 같이 할수 있도록 자기변신을 하는것이었다면, 오늘은 단순히 남의 것을 배워 소화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과감하게 밖으로 나가 전혀 모르던 타민족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즉 기존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자기 인생 자체를 국제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12억 인구의 운명을 걸고 수십여년동안 추진해왔던 중국의 사회주의도 이제는 기존의 사화주의가 아니다. 결국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하고 국제화 경쟁에 뛰어든 덕분에 옛 사회주의 국가들속에서 제일 먼저 소생했다. 그 곁에 자그마한 거울 하나가 있다. 바로 북한이다. 1백여년전 문 닫아걸고 살다가 나라를 잃어버렸던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못지않은 북한은 자멸로 접어들고 있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피부에 느끼며 보아왔던 조선족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중국이라는 국가는 우리 삶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의 기본 단위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연변의 국경인 두만강과 훈춘의 방천은 우리 삶의 자그마한 테두리를 정해주는 벽이 되어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국경을 넘지 않고 살았으며 평생 한가지 말을 쓰고, 한가지 돈을 사용하고, 한가지 법을 지키고 살다 삶을 마쳐야 했다. 그런데 그 법을 깨버리고 그 시대를 종말지은 것이다. 그리고 그 앞장에 바로 미국의 조선족 동포들이 선 것이다. 누구에 의해, 무슨 정신으로 서있는지 모른다. 삶의 공간이 국경으로 막혔을 때의 인간의식과 사회제도는 삶의 터전이 전세계로 넓어졌을 때에는 바뀌어야 하는데 바뀌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퇴보하여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로 되돌아간 듯 한 느낌을 주고 있다.
'세계조선족네티워크'의 한 멤버로 동참하게 되는 '뉴욕조선족통신'이 해야 할 일이 생겼고 나아가야 할 방향과 취지도 확정된 셈이다. 이때까지 몸에 배였던 재미 조선족 동포들의 중국 국민이라는 의식을 나무라지 않는다. 그 의식과 함께 세계 시민의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제일 큰 문제를 해결해드려야 한다. 그것을 해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무제한의 국제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세계적인 시대에 살면서도 자기가 살다 온 국가가 제도적 보호를 해주기만 너무 기대한다면 잘못이라는것도 깨우쳐줘야 한다.
그렇게하므로써 그 여느 나라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들보다도 의식과 제도의 국제화를 먼저 실현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국제화를 전제로 고쳐가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잠재의식을 좌우하고 있는 낡은 체제, 낡은 교육, 낡은 문화와, 낡은 법제도를 과감하게 고쳐가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러나 고쳐지지 않을 때는 버리게끔 인도해야 한다. 버릴수 없을 때는 외면이라도 하게 해야한다. 나아가 바른 국제감각을 가진 사람들로 또 다른 새로운 사회공동체를 건설하게 하던지, 아니면 기존의 사회공동체를 개변시켜내게 하던지 해야한다. 국제화란 별것이 아니다. 너남이 다같이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글 쓴이: 재미 조선인 작가 유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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