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고을 - 가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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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고을 - 가랑비
  • 전유재
  • 승인 2006.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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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랑비


내리기에 급급하지 않고, 그렇다고 당분간 그대로 멎을 줄도 모르는 그 비가 있어 내 또한 무엇이나 서두르지 않을 뿐이다.


마침 매캐한 연기가 무릎 밑으로 내리고, 연기 또한 비에 젖어 안개인지 연기인지 분간이 되지 않던 울적한 날, 싯누런 바탕에 자주색으로 잘 채워진 색깔의 손톱 끝을 본다. 가위로 아무렇게나 잘라내며 혼자 껄껄 거렸다. 비오는 날 굴뚝은 흰 연기로 자욱하고, 연기는 위가 아니라 밑으로 내린다. 소리 없이 가라앉는 빗방울과 볏짚 연기, 그들은 자잘하게 안개가 된다.


사실주의와 낭만주의, 리얼리즘과 휴머니즘, 똑 같은 것들을 다르게 부르다가 감상에 젖어보면 센치맨탈이라고 하는가 부다. 센치맨탈, 이러한 기분은 포르말린 냄새와 어떤 연관이 있음직도 하지만 내 그만 게을러져 더 생각할 여흥이 없어졌다.


여기는 서울이었다. 볏짚 연기는 내 추억의 한 토막이었다. 푸른빛 가랑비는 그나마 정말로 내리고 있었다. 제법 쌀쌀하면 날씨를 탓해볼만한 생각에  기운이 나기도 하지만, 너무 더워 날씨 탓도 오히려 하지 않던 여름이 아마 막바지겠다.


“문화대혁명”, 그때를 왜 문화를 혁명하는 시대로 불렀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 같다. 문화는 혁명되지 못했고 대신 사람이 혁명되었다고 들었다. 나는 잘 모른다. 그 시대에 내가 없어 그 사실을 모른다고 자신을 탓할 생각도 없다. 내가 본 것과 내가 느끼던 것은 가랑비만큼 확실하지 않았다.


벗기기를 좋아하는 것은 나만의 묘한 취향이었는지 검증해보고 싶지도 않다. 두터운 바람벽과 진흙, 볏짚, 가랑비, 그것들이 함께 하는 날이면 내 역시 그 곳에서 서성거렸다.


“동네구락부”, 영감어른들이 그렇게 부르면 우리 다 같이 그렇게 불렀다. 동네 한복판의 덩그런 집 한 채, 거기에서 내가 무엇을 벗기고 있을 때 아무도 나를 상관하지는 않았다. 비가 와서 급해진 동네 분들에게 있어서 가던 길을 계속 재촉하는 것이 중요했겠다. 내 따위 존재야말로 피하고 싶었던 가랑비의 번민에 비해 별로 무게감이 없었을 터이다. 다들 급하게 지나갔고, 나는 내 놀이에 골몰하였으며, 각자는 각자답게 움직이는 것, 그것으로 족했다.


“타도하자~!”, 알쏭달쏭한 단어가 흙 판 위에 나타난다. 삭아 절반 닳아버린 종이조박이다. 진흙과 같이 이겨져 있던 붉은 종이조박, 그것이 빛바랬다. 가랑비가 올 때 내 손에 의해 벗겨지니 그 희한한 행위는 영락없이 내 호기심의 소산이었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그렇게 벗겼다. 누구를 타도하는 지는 도저히 알길 없다. 타도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한 겹과 또 한 겹, 대충 예닐곱 번은 족히 바른 듯한 담벼락, 동네구락부를 해마다 한 번씩 칠해지고 벗겨지고를 반복했을 것이다. 가랑비를 빌어 내가 마저 벗겨내면 내년에 더 두텁게 발라주겠지, 부질없이 그 생각도 해보았으니 스스로도 가소롭다.


“만수무강, 만세~!”, 그런 것도 있었다. 더 안쪽의 깊은 곳에 있었다. 내 기억이 분명하다. 무병장수와 장생불로, 그것들과 무슨 연관이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벗겨내는 것이 좋았다. 젊었기에, 아니, 아직 어렸기에 만수무강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오래 더 살아야 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었다고 생각이나 해보았는지, 아마 해본 생각이 아닐 것이다.


“중학생들은 솜 신을 신어야 한다”, 아아, 이 종이조박은 나에게 요긴한 사항이었다. 중학생은 꼭 솜신을 신어야 하다니, 그래야만 한다면 구두는 어찌할 것인가? 중학교가 싫어졌다. 솜신이 싫어 중학교가 싫어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래도 그래야 한다면 3년 초급중학교는 빨리 지내가야 할 시간이라고 내가 결론 내렸다. 내 초등6학년, 신고 있던 신은 고무신, 솜신이 나쁠 것 같지도 않았다. 근사한 솜신, 구두의 전 단계,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대충 만족스러웠다.


비가 오던 어제는 차마 못쓰고 오늘에야 써보는 것, 내 용기가 고작 이러하다니, 역시 게으름 탓이겠다. 가랑비가 확실하여 여운이 오늘까지 남았다는 것, 이쯤에서 내가 자족한다.


가랑비가 올해로 마지막일 것 같은 기분, 가랑비면서도 가을비, 그 비를 피해 하루 종일 드러누웠다가 오늘로 적어보는 것, 여간한 운치가 아니면 터득할 수 없는 것을 오늘 감히 내놓는다.


창문을 껴안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

 

 

 

 

전유재(全宥再, Quan YouZai)연변과학기술대학 생물화공학과 학사. 상명대 정보통신대학원-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STEPI) 협동과정 기술경영학과 석사졸업. 현재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석사과정

메일: yzquan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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