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물결과 문화전략, 그리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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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물결과 문화전략, 그리고 작가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6.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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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웅

연변을 중심으로 주로 동북삼성의 농촌지역에 거주하던 중국조선족들이 동북삼성의 대도시 주변으로, 산해관 이남의 대도시와 해변지역으로 대거 이동하고있다. 북경, 청도와 같은 도시는 각각 10만명을 육박하는 조선족사회를 일구어내고있다. 심지어 발 빠른 조선족의 일부는 한국, 일본, 미국 등 나라에 정착해 새로운 조선족단체까지 만들어내고있다. 이를 두고 조선족사회의 해체이며 붕괴라고 아우성을 치는이들도 있으나 이는 한치보기들의 견해이다. 이제 우리는 이민물결이라는 조선족공동체의 구조적변화에 적응해 새로운 문화전략을 펴야 할 때이고 이에 우리 문인들도 동참해야 할 때이다. 

물론 일찍 중원을 지배했던 만주족이 물에 소금이 녹듯 가뭇없이 사라진 사례가 있다. 그리고 목하 우리 조선족의 이동도 당분간 경제적진출에 주안점을 두고있는 반면 새로운 지역에 있어서의 언론, 출판, 교육의 정립에는 미흡한 실정이다. 바꾸어 말하면 경제적 부를 쫓아간 단순 인력들이 많고 지식인들은 그들과 합류할 대신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민족이동이라는 대세를 수수방관하고있다. 이런 상태가 그냥 지속된다면 이러한 절해고도 형국의 조선족공동체는 주변의 주류문화에 의해 흡수, 동화되여버릴 소지가 많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는 100여년간 어렵사리 지탱해온 연변을 비롯한 동북지역의 조선족공동체를 길이길이 보존하는 길이다. 이 땅을 잃으면 다시 찾을수 없고 이제 조선반도가 통일되고 동북아시대가 열리면 적어도 두만강, 압록강 연안에 있는 연변이나 료동지역은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부상할것이기때문이다. 요즘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에서도 새농촌건설 2년 계획을 내놓았고 연변대학교 재학생들도 여름방학을 리용해 농촌에 내려가 사회봉사를 하고있다. 다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할 다른 하나의 일은 산해관 이남의 대도시에 형성된 조선족사회에 우리의 뿌리를 심는 작업이다. 신문과 잡지를 꾸리고 민족문화단체를 결성하고 유아교육으로부터 시작해 적어도 우리의 자식들이 중학교 단계까지 확실하게 민족교육을 받을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일전에 청도에 갔던 길에 흑룡강신문 지사를 방문하고 큰 감동을 받은바 있다. 박 아무개라는 30대의 젊은 친구가 회사원들과 함께 《연해뉴스》를 경영하는데 이 지역 조선족사회와 재중한국인사회의 구심점으로 큰 인기를 모으고있었다. 그뿐인가. 흑룡강신문사는 주간(週刊)으로 《동북뉴스》, 《베이징뉴스》, 《천진뉴스》, 《상해뉴스》, 《화남뉴스》… 판(版)을 내면서 조선족형제들의 이민물결을 선도하고있다. 연변지역 신문들의 경직되고 단작스러운 작태와는 워낙 통이 크고 격이 다르다.      

요컨대 《연변》을 지키고 산해관 이남에 우리의 씨를 심는 작업만 잘한다면 우리가 얻는것은 조선족공동체의 풍요와 확장이지 잃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외적인 분산가운데서 자신의 내적인 결속력을 다진다면 우리 민족의《삶의 터전》은 한결 넓어질것이다. 또한 이러한 우리 민족문화의 개화와 발전, 확산과 번영은 전반 중화민족문화의 꽃동산에 이채를 더해줄것이다.  

이러한 력사적인 과제를 두고 생각할 때 연변을 지키는 자만이 《애국자》이고 연변을 떠난자는《배신자》라는 편협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제 연변사람들은 향토애와 분발심을 가지고 연변을 굳건하게 지키고 살맛이 나는 고장으로 만듦과 아울러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의식을 가지고 신대륙의 발견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고 연변을 떠난 사람들은 죄의식을 떨쳐버리고 미지의 대륙을 개척하는 선구자― 21세기 콜롬보스로 자부해도 좋을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연변사람과 관내에 진출한 조선족들이 서로 손을 잡고 농촌과 도시, 《연변》과 《관내(關內)》를 아우르는 하나의 폭 넓고 역동적인 민족공동체를 일구어낼 시기는 왔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 연변작가들은 어떤가? 

혹자는 신세타령을 하고 불만, 불평만 늘어놓고 혹자는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중삼중으로 문학단체나 내오고 또 혹자는 산채의 주인행세를 하면서 오만과 오기만을 부린다. 이들 모두 음으로 양으로 남을 내리깎고 자기만을 내세우면서 비생산적인 모임만 가진다. 그리고 명색 좋게 그것을 살롱문화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연변문단이라는 이 자그마한 동네가 구질구질하고 숨 막힐 때가 많다. 연변문단이라는 이 동네가 500여명 작가, 시인들이 살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비좁지 않은가.  

이제 모두 열린 시각으로 민족적삶의 현장에 뛰여들어보자. 말하자면 울고 웃는 농민들속으로, 배낭을 메고 산해관 이남의 도시와 해변, 뜨내기 조선족로동자들이 땀 흘리는 로동현장과 그들의 비좁은 합숙을 찾아가자. 그리고 아직 젊고 튼튼하다면 어선을 타고 저 넓은 바다로 나가 인생수업을 해도 좋을것이다.    

체험의 넓이와 문학의 넓이, 고통의 깊이와 작품의 깊이는 언제나 정비례함은 만고불변의 진리이기때문이다 


김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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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대학교 교수.
Email: jhx53@hanmail.net

1953년 생.
저서:《재만조선인문학연구》
     《문학비평방법론》
     《문학과 인생의 진실을 찾아》
논문:《중국 조선족문학의 산맥―김학철》등 다수.

'SCK포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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