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일출: 오전 2시31분/ 일몰: 없음.
현재 북위 69도 34분/ 동경 0.16 의 위치의 바다 위에 배가 떠 있다.
아침해가 새벽 2시 반에 뜬 뒤로 앞으로 당분간은 해가 진다는 개념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공식적인 내일 일기예보는 6월 23일 일출: 없음/ 일몰: 없음.
새벽에 해가 뜨고, 서쪽 수평선 방향으로 움직여가던 그 태양이 한참만에 고개를 들어 확인했을 때, 머리 바로 위로 다시 돌아와 있을 때의 기묘한 기분이라니....
거기다가 북위 60도를 넘어서 북극해 쪽에 들어서면서 늘 안개가 바다 위를 덮었고, 흐리고 비가 자주 뿌렸다.
해가 지지 않는다고 해도 계속 안개가 끼고 구름에 덮여있는 채 간헐적으로 비가 뿌리다 보니 수평선이 확인되지 않는다.
바깥 경치가 안개로 몽롱하기만 하고, 해가 뜨고 지는 개념이 사라지자 낮과 밤, 바다와 하늘의 경계까지 무너져 버린다
오늘은 종일 영상 9도에서 10도 사이.....두꺼운 점퍼를 껴입고 발코니에 나와 앉아 차가운 바람과 흩뿌리는 북극의 차디찬 빗방울이 얼굴에 부딪쳐 오는 가운데 팩 소주를 큰 컵에 가득 따라 서울에서 가져간 풋고추를 안주로 천천히 마신다.
참으로 아무 것도 없다, 물결 소리에 섞여 물 위를 달려가는 바람 소리....내일 아침에는 TROMSO 에 도착할 것이다.
다행스럽게 아침 시간 구름 속에서 해가 나오자 세상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 생기를 찾는다.
아름다운 작은 섬, 동화의 나라 같은 트롬소에 기항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녹색으로 싱싱하고 깨끗하다.
섬과 연안을 연결시키는 아치형 다리를 지나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성당 한 곳에서 잠시 쉬다.
섬과 연안으로 이루어진 작은 도시는 빙 둘러 만년설의 산들에 아늑하게 싸여 있다.
가이드인 Anna 양은 북구 미인의 특색을 모두 갖춘 날씬한 키에 금발과 푸른 눈, 계속 깔깔거리며 웃는 그 경쾌함이 다른 사람들의 기분까지 밝게 해준다.
Amunsen 박물관에 갔을 때 창으로 짐승을 잡는 사냥하는 사람들의 등신대 모형 앞에서, 저 사람이 네 조상일라고 그랬더니 깔깔거리며 maybe...란다.
케이불 카로 도시의 뒷산 꼭대기에 올라갔다.
산꼭대기는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으로 덮여 있고, 땅바닥에 붙어 자라는 키 작은 고산식물들이 하얗고 작은 꽃은 달고 있었다. 눈이 녹은 지표 위에는 보랏빛의 작은 꽃도 흔했다. 늘 구름에 휘감겨 있던 축축하던 공기의 남아프리카 캐이프 타운의 Table MT. 꼭대기의 전경과 많이 닮아 있는 풍경이었다.
결국 지구의 남쪽 끝과 북쪽 끝 부분에 발을 딛은 셈이 되었다.
지구의 끝자락. 옛날 용감한 사내들이 물개와 백곰 사냥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찾았던 그 전초 기지에서 소박한 아문젠 박물관을 찾아 기념 사진을 찍는다.
박물관에는 아문젠이 당시 탔다는 가죽으로 감싼 카약과 노, 당시의 총기류까지 전시되어 있었고, 썰매를 끄는 에스키모 개와 바다코끼리, 백곰과 물개들의 표본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그 앞에 서 있으면서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모험심 강한 젊은이들과 같이 섞여 있는 듯한 미망에 젖는다..
거리에는 워낙 적은 인구 탓도 있지만 거의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를 않는다.
두꺼운 겨울옷으로 몸을 감싼 몇 사람 행인들 중에는 뚱보가 하나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바이킹의 땅에서 그들이 유럽 곳곳을 노략질하면서 미인들을 납치해 왔고, 그들 후손들이 또다시 미인들을 납치해 오면서 북구 인종들은 세계에서 제일 잘 생긴 우성이 되었을 거라는 가설 역시 근거가 있는 듯 생각되었다.
사실 러시아도 북구 쪽 젊은 백인 여성들이 아름답다는 것은 상식이 되어 있지 않는가.
이번 같은 배에 탄 미국인들 중에 걸음걸이가 힘들만큼 엄청난 뚱보들이 많은 것은 그들 최근의 식 습관과 관련해서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위 정크식품이라고 이야기되는 햄버거와 피자로 미국인들을 비정상적인 뚱보들로 만들어 가는데 비해서 옛날의 전통적 음식에 생선을 많이 먹는 이곳 사람들의 식생활과도 관계되리라는 짐작이었다.
오후 5시 출항.
이제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북극해를 행해 나아간다.
하루 밤 내내, 다시 낮과 밤을 달려갈 것이다.
적어도 만 하루 반이나 이틀을 꼬박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잠시 구름이 엷어지면 떠오르는 수평선과 파도 이는 바다, 다시 흐리고 비가 뿌리면 그 수평선과 하늘조차 구별이 안 되는 공간에 갇혀 버린다.
상상해 보라.
어두워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낮이라는 기준이 오는 맑은 하늘이나 태양이 보이지 않는 그런 공간의 바다 위에 흔들리면서 이틀이고 사흘이고 움직여 간다고 생각해 보라.
지구의 온난화가 시작되기 전, 100여 년, 저쪽에서는 이 부근까지 올라온 배들이 얼음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고 1년 이상 있기도 했으니...연료까지 떨어져 배의 기관실만 빼고 모든 것을 부셔서 불을 지피다가 바다가 일부 녹기 시작한 한 여름, 동력이 없어서 해류에 떠밀려 하얀 지옥을 빠져 나오기는 했는데, 세상이 그 동안 바뀌고 세계대전이 한창이어서 멀리 지나던 배를 발견하고 구원의 함성을 지르는 순간, 어느 편 함대에서인지도 모르게 날아든 함포에 지루한 2년의 바다생활을 마감해야 했던 비운의 배도 있었다고 한다.
여름인데도 이렇게 우중충한 하늘과 바다이니, 한 겨울 아예 태양이 자취를 감추어버리는 어둠의 계절은 어떠했을지 상상이 잘 안 된다.
거기에 그 겨울, 북극의 오로라 현상 앞에서 자칫 인간들은 그대로 절대자에 대해 기도하다가 환각 속에 쓰러져 죽어 갔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