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서 보내는 세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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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서 보내는 세 번째 편지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6.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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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유금호 특별기고>

북위 70도 선상의 Tromso 부근에서는 수평선에 눈 쌓인 산이 보여서 추운 곳에 왔구나, 생각했는데, 동북쪽으로 배가 나아가면서부터 땅의 개념이 없어지고 바다와 거센 바람 소리 뿐이다.
ICELAND가 북위 65도 선상인데 배는 ICELAND의 훨씬 북쪽으로 빠져 나와 북극점을 향해서 가고 있다.
지도를 펴 보았지만 북위 70도 위쪽, 극지의 노르웨이령 SVALLBARD 군도는 선으로만 표시되어 있을 뿐 색깔이 칠해져 있지 않다.

목표점은 북위 79도 34.6N
동경10도 44.7E에 위치한 그 SVALLBARD 군도 중 한 곳인 NY-ALESUND.
현재 기온 4도 C.
기온도 기온이지만 바다 바람이 거세어 체감 온도는 훨씬 더 떨어진다.
흔하게 보이던 갈매기가 70도를 넘어서면서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갈매기의 4분의 1쯤 되는 물새가 서너 마리, 가끔 물 위에 앉아 쉬면서 배를 따라 온다.
만약 녀석들이 물 위에 앉을 수 없다면 바위도 없는 물위에서 어떻게 계속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을 했었다.

싸구려 중국제 점퍼를 샀다. 한국에서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만큼 조잡해 보이는 옷이지만 점퍼를 걸치지 않으면 4도의 기온과 바닷바람 때문에 갑판 위에 나갈 수가 없다.
평소 겨울에 장갑을 끼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장갑을 가져올걸 그 생각을 잠시 했다.

Tromso를 떠나 동북쪽으로 방향을 꺾어 아이스랜드를 뒤로 북진을 시작한 뒤로는 24시간째 20노트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 시야에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 바다가 완전 얼어붙고 깜깜한 밤만 계속되고 있을 때, 이 바다에 잘못 들어 온 배가 얼음이 녹을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시간, 승객들을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겨우 100년 전, 많은 용감한 사람들이 이 얼음 바다에 갇혀 하얀 지옥 속에서 숨을 거두어 갔다는 기록들이 오싹하다.

밤이 없지만 낮게 드리운 구름 때문에 사방은 흐리고, 거칠어진 파도 위로 바람만이 거칠게 달려간다.
나는 두꺼운 옷으로 무장을 하고 발코니에 앉아 혼자 팩 소주를 따서 큰 컵에 담는다.
지구의 온난화가 시작되기 전 여름에도 얼어붙어 있었던 이 바다, 그 이전에는...또 그 이전에는..., 끝없는 상념 속에서 다시 소주 팩을 딴다.

Tromso를 떠나 그렇게 서른 여섯 시간.....북위 79도룰 넘어서면서 시간상으로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 한 순간 거짓말처럼 맑아지면서 물결이 잔잔해지고 수평선 위에 눈 덮인 검은 바위산들의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날이 흐렸으면 우중충한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을 북극의 마지막 섬이 잔뜩 눈을 뒤집어쓰고 나타났다.
바다 위로 작은 빙산 조각들이 떠내려 오기 시작한다.
물까마귀를 닮은 검은 빛에 발이 빨간 물새 한 마리가 뱃전에서 자맥질을 했다.
학명을 알 수는 없지만 보통 갈매기들보다 훨씬 몸이 작은 흰색의 물새들이 물 위에 내려앉았다가 수중으로 잠수하기도 하고, 푸드득대면서 다시 날기를 시도한다, 이상한 것은 그들이 두 마리, 혹은 세 마리 날고 있는 모습이 꼭 나비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바다 건너편 눈 덮인 검은 바위 등성이 어디에 보금자리를 가지고 있는 녀석들일 게다.

북해 최북단의 노르웨이령 스발바드군도의 니 알슨(NY ALESUND)섬.
군데군데 이끼류로 보이는 초록의 얼룩 뿐 깊은 적막의 죽음 같은 검은 바위투성이의 연안에 인공의 흔적이 들어 난다.
작은 보트로 간신히 접안할 수 있는 인공 방파제 뒤쪽으로 만년설과 빙하의 절벽이 가로막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배를 타고 북진이 불가능한 곳까지 와 버린 셈이다.
탐험 장비를 갖춘 쇄빙선(碎氷船)은 빙하를 뚫으며 조금 더 북진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 다음 눈썰매로 영구(永久) 동토(凍土)를 가로질러 북극점으로 향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니 알슨' 섬은 한때 양질의 석탄을 캐내느라 여름 한철 머물었던 인공의 흔적과 현재 세계 몇 나라의 북극 과학기지가 해변 입구에 모여 있을 뿐 영구 적막의 동토.
이십여 채의 연구동 사이의 장난감 같은 꼬마 우체국이 소꿉놀이 장난감 같다.
보트로 옮겨 타고 더 이상 전진이 불가능한 극지의 땅을 밟았다.

흰색 물떼새들이 인기척에 놀라 날아 올랐다.
배에서 갈색 얼룩으로 보이던 해변의 검은 자갈 습지에는 갈색 이끼류들이 조금 덮여 있었고, 자잘한 꽃이 붙은 붉은 색 꽃무더기 몇 개가 이끼 사이에서 햇빛에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흑갈색 땅에 같은 색깔의 알을 낳고 품고 앉았던 물떼새들이 인기척에 놀라 날아올라, 어미가 품고 있던 자리를 확인했는데도 알의 위치를 찾기가 어렵다.
알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했을 때쯤 암수가 한꺼번에 나를 공격해 온다.
계속 날카로운 소리로 적의를 나타내며 나를 공격해 오던 물떼새가 드디어 내 머리 정수리를 두어 번 쪼아대자, 서양 친구들이 신기한 듯 그 광경을 비디오에 담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인적 없는 연구동 건물 사이를 뒤지다가 맨 뒤쪽 건물 현관 벽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태극기와 다산(茶山)기지의 표시를 보고 밀려 온 감격이라니.....
울컥 반가워서 몇 번 문을 두드려 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누구 없어요? 오랜만에 큰 소리로 한국어를 몇 번을 외쳐대자, 2층 창문이 열리면서 검은 머리칼의 동양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뒤이어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고 북극 기지에 와 있던 모국의 젊은 과학자들 얼굴이 드러났다.
한국 말 소리에 환청인가 싶어서 문을 열었다고 했다. 남자 셋, 여자 한 사람.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이 모국의 명예를 걸고 이 북극 불모의 땅에 와 있었다.

9월이면 바다가 꽁꽁 얼어버리기 때문에 기지에 있는 모든 과학자들도 9월에는 철수를 한다고 했다.
왜 태극기라도 달아놓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노르웨이 영토 안에서는 노르웨이 국기 이외엔 달수가 없다고 한다.
남극 기지는 땅 자체에 영토권이 없기 때문에 각 나라의 기지에 자국 국기를 달아도 되지만 북극 기지의 이 섬은 노르웨이령이라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그들 과학자들을 위무하고 격려해야하는데도 빈손에 카메라뿐이어서 연구실 안에 아껴둔 한국산 커피믹스를 나누어 마셨다.
홍일점의 수석연구원 김지희 박사. 직접 내 강의를 듣지는 않았지만 88년에 목포대 생물학과 졸업생, 내 기분이 얼마나 붕 떴겠는가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여섯 살짜리 아들은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이 극지의 땅에 와 있는 것이 너무도 대견해서 몇 번이고 악수를 나누었다.
팀원 중 한 남자는 얼마 전까지 남극의 세종 기지에 있었다고 했다.
젊은 과학자 한 사람의 악천후 속 희생에 대해 물었더니 그때 그곳에서 같이 근무했다고 이야기했다.
도무지 극지는 날씨를 예감할 수 없어서 해가 나와 있다가도 한 순간 거센 돌풍과 비바람이 몰려온다고 했다.
남극기지의 희생도 그 날, 맑았다가 갑작스러운 돌풍과 비바람에 고무 보트가 그 악천후를 견디지 못해서 일어났다고 얼굴이 어두워진다.
더 좋은 장비가 있었으면 급격한 변화에도 대응이 되었으리라 한다.

섬을 떠날 무렵에는 북쪽으로 거대한 절벽을 이루고 있던 빙산 조각들이 부서져 빙하 조각들이 더 많이 떠다니고 있었다.

1912년 8월 28일 러시아의 '세인트 안나호'가 27명의 선원과 함께 북극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찾기 위해 북극해로 향한다.
'시베리라 야말반도' 앞에서 거대한 빙하에 갇힌 채 배는 19개월 동안 북쪽으로 4400킬로를 흘러간다.
항해사 '알바노프(Vlerlian Albanov)'와 그의 뜻에 따르는 선원 13명은 스키와 썰매, 카약에 의지에서 배를 버리고 해빙을 가로지르는 목숨을 건 행군을 시작한다.
배를 떠나 얼음황무지에서 90일간의 사투 끝에 마지막 살아남은 두 사람-'알바노프와 콘라드' 두 사람, 그 '알바노프'의 일기의 기록이 1917년 러시아에서 출간되었다.
영어판 - '하얀 죽음의 땅에서의 위대한 생존'.
이번 여행 중 그 책을 읽으면서 현재 내가 있는 이 위치에서 일어난 100년 전의 비극과 그 동안의 지구 온난화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다.

선원 일부를 떠나보낸 남아 있던 '세인트 안나호'는 그후 행방은 알 수 없지만 1915년 여름이 되어서야 대서양 쪽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있다.
전쟁을 알지 못했던 '세인트 안나호'는 얼음이 풀리면서 연료도 없이 해류에 운명을 맡기고 표류했을 것이다,
그 무렵 독일 잠수함이 8월 한 달, 100척 이상의 선박을 영국 근해에서 침몰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얼음지옥에서 살아남은 그 비극의 선박은 엉뚱하게 전쟁 중의 함포 사격으로 최후를 맞았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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