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서 보내는 편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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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서 보내는 편지(5)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6.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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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서 보내는 다섯 번째 편지

과학자들 외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NY-Alsund에서 한국의 북극 과학기지 '다산'을 찾은 최초의 한국인이었다는 자부심과 그곳 극성스럽게 사납던 물새, '북극제비갈매기'의 공격, 그런 기억 속에 일출과 일몰이 없는 여러 날을 바다 위에서 지냈다.
얼음에 덮였다가 들어 난 땅, 육지의 끝자락, 안개와 거센 북극 바람 속의 그 Honnigsvag의 삭막하던 풍경과 이끼류의 생명들, 순록, Troll 요정들... 그리고 잊을 뻔했던 기억 하나.
식물의 자취를 볼 수 없었던 그곳, Honnigsvag 부두의 길가에 노랗게 핀 민들레 꽃무더기를 보았다.
한국 민들레와 같은 모습인데 몸체가 대 여섯 곱, 억세고 큰 민들레가 Tromso의 거리 언덕에서도, Honningsvag 부두 포장도로 한쪽에서도 노랗게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한국민들레와 종이 다른 것인지, 민들레의 자생지가 원래 북구의 추운 곳인지 그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안개와 거센 바람의 육지의 끝에서 배는 다시 북극해로 빠져나와 남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다시 수평선과 바다만이 시야를 채운 시간이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수평선조차 구별 안 되는 바다에서 드디어 스칸디나반도의 해안을 몇 굽이 들락거리며 밤을 지났다.
그리고 아침. 발코니 건너편, 수면에서 직각으로 솟아오른 절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만년설과 구름으로 휘감긴 산 정상으로 부터 만년설이 녹아 내리면서 직각의 절벽을 타고 하얀 띠를 이루며 쏟아져 내리는 긴 폭포들이 보였다.

구름에 휘감긴 절벽 안쪽에 숨어 있던 작은 포구, GEIRANGER.
일출 3;15. 일몰 11;28.
드디어 배는 백야의 공간에서 3시간 여의 밤이 있는 곳까지 남하를 한 것이다.
14층 데크에 올라가 오래간만에 바라보는 푸른 식물들과 절벽과 폭포, 흰 구름에 휘감긴 산들을 바라보며 여러 잔의 커피를 마셨다. 산에 식물이 푸르게 자란다는 당연한 일이 그때는 그렇게도 가슴이 뛰도록 벅차 오르는 감동이었다.

작은 보트로 해안에 내렸다. 바다 쪽을 바라보니 바다가 작은 호수처럼 보였다.
산아래 별장처럼 20여 채의 집. 뒤로 고개를 뒤로 꺾어야 눈에 들어오는 까마득히 높은 눈 쌓인 산들..,..
버스로 옮겨 타고 산등성이를 따라 지그재그로 움직여 갔다.
안내서에 써 있는 'dizzying'과 'dazzling'을 한국어로 정확히 옮기면 무슨 단어가 될지...너무 가파른 길이어서 창 밖을 내다보기가 겁이 난다. 10분을 달려도, 20분을 달려도 지그재그로 산을 오르다보니 창 밖은 계속 같은 풍경이었다.
남미 안데스 산정의 마추픽추를 올라가면서 느꼈던 그 지그재그의 산길을 생각했다. 대단한 운전 실력이 아니면 방향을 꺾기가 힘든 절벽에 바짝 붙은 좁은 도로를 기사는 그러나 여유롭게 운전해 갔다.

바다에 접해서 갑자기 높이 솟아오른 독특한 산세로 해발 800미터 이상에는 식물이 자라지 못해서 삭막해 보이는데, 산정에 쌓여 있는 눈이 녹아 곳곳에서 절벽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폭포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몇 굽이 산길을 돌아 산을 넘자 눈 쌓인 산 중턱에 통나무로 지은 작은 집 들이 보였다.
여름철 별장으로 지은 집들이라 했다.
추워지면 길 자체가 폐쇄된다니 접근도 못하겠지만 여름철인데도 별장에는 전혀 인기척이 없다. 짧은 2,3일의 휴가를 지내고 비워두는 것이려니 그런 짐작이 왔다.
산아래 쪽은 전나무와 자작나무 군락이더니 산세가 험해지면서 산 중턱은 키 작은 잡목들이 눈 밭 사이에서 바람을 맞고 있다.

험한 산세와 눈 구경을 하고 산아래 쪽 호수가 박물관으로 내려 왔다.
이 지역 야생 동물 표본을 주로 모아 놓은 건물 지붕은 흙을 얹어 풀이 자라게 한 그 바이킹 식 지붕이었다.
지붕 위에 야생화들이 멋대로 피어 있었는데 추운 곳이어서 몸집이 작아진 질경이와 클로버가 눈에 띄었다.
그 클로버 흰 꽃 사이로 생김새가 같은 붉은 꽃들이 보여 클로버의 일종인가 했으나 줄기 모습이 다른 종류였다. 꽃 모습이 클로버와 같은 붉은 꽃들이 한족에 무더기로 핀 마가렛 흰색에 대조되어 인상적이었다.

다시 몇 굽이 산을 돌아 올라가자 완전한 설원, 버스의 키 보다 길 양쪽에 쌓인 눈의 높이가 더 높다.
쌓인 눈이 녹아 내릴텐데 주변이 질척거리지 않는다. 쌓인 눈은 안 쪽으로만 녹아 지표를 적시지 않고 낮은 곳으로 모아져서 폭포를 만드는 모양이었다.
여름 스키를 즐기는 한 떼의 젊은이들이 멋진 폼으로 설원을 미끄러져 내리는 모습에 잠시 차를 멈추고 키 보다 높이 쌓인 눈을 두 손으로 움켜 뿌려 본다.
노르웨이가 겨울 올림픽 종목에 강한 것은 이런 자연조건과 관계 있으리라는 짐작이었다.

아찔한 구비의 산길을 여러 구비 돌아 드디어 1,500미터의 정상, 노르웨이 국기가 휘날리는 공간에 차를 세우고 눈 아래로 산 중턱을 휘감은 흰 구름과 눈 덮인 산들을 내려다본다.
현기가 일어날 것 같은 1,500미터 산정의 발 아래는 그대로 깎아 내린 절벽이다.
800미터 이상으로는 식물이 살지 못해 눈이 쌓여 있지 않으면 아마 Honingsvag의 그 삭막한 풍경이나 다름이 없을 듯 했다.
흰 눈에 질릴 때가 되어 버스가 출발했다. 그러다가 출발 5분 여...., 승차감이 좀 이상하다 했는데 차가 그 1,500고지의 좁은 절벽 길에 멈추어버렸다. 고장이 난 것이다.

1,500미터의 산 정상에서 자동차 고장이라니....승객들은 차를 내려 다른 버스가 데리러 올 때까지는 완전 미아였다.
모처럼 맑은 공기 속에서 담배를 피웠다. 쌓인 눈 위에 발로 다져가며 커다랗게 KOREA를 쓰느라 한참 힘을 뺐더니 발이 완전히 눈에 젖어 버렸다.

다른 버스가 와서 어두워진 뒤에야 산을 내려왔고, 우리 일행 때문에 배는 출항을 늦추며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보트가 접근해가자 선실 발코니와 높은 층의 데크에서 망원경을 들고 있던 승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밤 내내 배는 다시 더 남쪽으로 내려가 아침이 되면서 BERGEN 항에 정박했다.
Bergen은 산을 등지고 바다에 접해 있어 한때는 노르웨이의 수도이기도 했던 곳.
1070년부터 도시 기반이 형성된 이 나라 두 번째 크기의 항구.
인구는 20만.
현대적 건물과 시가지에 18세기의 목조 건물들이 보존된 거리가 있고, 인파가 북적이는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
2주일 이상을 거친 물결의 바다와 황막한 땅만 바라보았던 시야에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반갑고 정겨워졌다.

항구에 내려 세계적 작곡가 그리그의 생가가 가깝다고 해서 찾아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숲 속, 자연적인 지형의 골짜기를 이용해서 지은 연주실이 인상적이었다.
바이킹 식 지붕이어서 밖에서 바라보면 풀에 뒤덮인 지붕만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계단식의 멋진 연주실이 숨어있고, 그의 유언에 따라 집 가까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구멍을 뚫어 시신이 안치된 무덤이 있었다.
중국 소수민족 중 절벽에 관을 안치하는 종족이 있는 것을 르포 화면에서 본적이 있었지만 '그리그'처럼 절벽에 구멍을 뚫어 그 구멍 속에 관을 집어 넣어두는 무덤은 생소한 것이었다.
그가 평소에 거실을 나와 산보하던 그 숲길,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절벽에 자기 시신을 넣어두겠다는 생각을 그는 생전에도 늘 했었던 듯 싶다.

점심을 북적이는 시가지로 나와 모처럼 중국음식점에서 먹었다.
세계 어느 곳에나 파고드는 중국인들의 그 놀라운 상술과 적응력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백인 손님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았을 때 장사를 꽤 잘하는 가 싶었다 .
볶음밥을 먹었는데, 쌀알이 풀풀 날리는 그런 쌀이기는 해도 오랜만에 쌀로 만든 음식을 먹은 셈이었다.

SEA Princess 호의 전속 브로드 웨이 수석 무용수 크리스티나

BERGEN은 수산시장이 유명하다고 해서 오후에는 자유롭게 시장 구경을 했다.
거리는 이곳 스칸디나비아 인종들의 특색인 잘 생긴 젊은이들의 활기로 넘치고, 시장은 여러 나라 관광객들로 붐볐다.

한 동안 텅 빈 자연에 익숙해졌던 시선이 사람들의 표정이며, 시장의 잡다한 물건과 과일들에 쏠렸다.
다른 곳에서도 관광객이 꽤 많이 이 도시를 찾은 듯 시장 안은 인종 전시장이 되어 늘어놓은 상품들만큼이나 다양한 피부와 언어들이 뒤섰였다.
각종 말린 생선이며, 수확해 온 싱싱한 과일들을 구경하면서 시장을 한바퀴 돌아 '채리' 한 봉지를 사서 거리를 걸으면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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