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고의 도끼
상태바
반고의 도끼
  • 전유재
  • 승인 2006.08.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반고
혼돈, 혼돈이 광막하게 닫혔다. 있어진 자, 있어진 자는 있어진 것도 몰라 혼돈이다. 정적도 없고 소리도 없다. 흐르는 것이 없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어도 느끼는 자가 없다. 신묘하여 흐릿하고, 흐릿하기에 있어진 것을 망각 당한다. 없다고 아니해도 있어질 것으로 혼돈이고, 그 혼돈이 허공과 같이 한다. 혼돈이 있다. 스스로 있다.

        ... ...


        무엇이 보이는가? 그것은 꿈이었던가? 꿈은 꿈이라고 칭해지길 누가 알 것인가? 주위를 몰라 무엇이 가는지 모른다. 가는 것을 혹시 이름 하라면 무엇으로 해둘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자는 누구인가. 생각하는 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무 것도 모르겠다. 그래도 생각하는 자가 무엇을 느끼는 것 같다. 주위가 지금 둘러쌌다. 주위와 혼곤한 생각의 무엇이 분명하게 갈려지지 않는다. 그래도 그자를 내라고 해두겠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아아, 혼돈이다.


        그래도 가는 것이 있다. 세월이라고 하기로, 내가 생각한다. 가고 있다. 시간이라 아니 해두면, 내 그만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으리라. 놀랍게도 생겨난 박동, 이것이 무슨 소리일거나? 내 그 소리에 의아하고, 그 소리에 숙연해진다. 분명, 그 소리는 내 속에 있다. 한번 듣고, 거듭 들어본다. 듣다가 웃고, 듣다가 환호한다. 듣기를 얼마 했던지, 이제는 뜀박질을 수로 세어둔다. 한번 뛰어 1년이고, 두 번 뛰어 2년이며, 세 번 뛰어 3년이다. 심장이 뛰니 뛰는 자를 느껴서 나는 나로 된다고 해야겠다. 나는 비로소 나다. 주위가 흐릿하다.


        뜀박질이 간다. 18000번, 세어두기에 지쳤다. 움츠린 것을, 내 몸을 움직여야겠다. 주위가 흔들린다. 감촉이 있다. 내저은 손짓에 꽉 조여 감겨든다. 혼돈의 촉감은 끝없는 감김이다. 이렇게 있기만 하여, 나는 과연 나를 알고나 있을 것인가? 가만히 있기보다 내 차라리 이제 일어서리라. 일어서 딛고 몸을 비틀어 본다. 심하게 흔들린다. 밟은 곳의 허무함에 깊게 탄식하다 내 느닷없이 위를 잡는다. 위가 잡힐 듯 하다 그만 몸체가 돌아간다. 돌아가는 것은 느껴진다. 감겨드는 주위, 그래서 돌아가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도, 내 한 바퀴 돌아도 원래 있던 그 웅크린 자리와 무엇이 다른가? 서로 다른 것은 아마도 없다.


        이제 개벽이다. 내가 열어젖혔는지 그대로 열렸는지 잘은 모르겠다. 열려진 세계는 보이지도 않는다. 보이지 않아 나는 광막함을 모른다. 내가 열어보아 그것은 원래 이런 것이었다면 나는 왜 이 서투른 움직임을 해야 했단 말인가? 일어섰으니, 그래도 나는 내 일어섬을 계속 할 것이다. 내가 잡을 수 있는 것, 그것은 앞이 보여야 시작되는 무엇이 되겠건만, 그것이 안 보인다고 내 그대로 몸을 구부려 다시 잠을 자기에는 이미 일어섰다. 나를 둘러보아 머리와 발이 따로 있다. 손에 무엇을 쥐어야겠다.


        오른 손에 것은 크고 묵직하다. 왼손의 것은 작고 날카롭다. 도끼라고, 끌이라고 해두어야겠다. 한손으로 내리치리다. 나는 왜 이렇게 내리치고 있을가를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따로 없다. 왼손으로 찍었다. 왜 찍는 가는 오른손이 하던 버릇에서 대답을 찾았다. 그것 말고는 내가 할 것이 따로 없다. 내려치고 올려 받기, 찌르고 뽑기를 거듭한다. 내 박동이 한번 들먹이면 내 손이 한번 움직인다. 갈라지려는 조짐이 있다.


        갈라진다. 위쪽을 가벼움이라 해두겠다. 위로 올려 보낸다. 도끼가 번뜩이고 끌날이 춤을 춘다. 가벼운 것은 잘려 위로 솟는다. 남은 것은 무거운 것이라고 해두겠다. 그것을 마저 밟아 밑으로 내려 보낸다. 내 박동소리, 내 호흡이 있다. 내 손놀림이 있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다. 내가 할 것이라고는 도끼 짓과 끌질, 그 짓에 휘말려 제법 서로 갈라져 가는 위와 아래, 흐뭇하다. 내가 하고, 내 하는 짓에 생겨나는 것으로 벌써 위와 아래가 있다. 계속 해야겠다.


        심장은 얼마나 뛰었을까? 세어보기에 게으르지 않았으니 그 대답이 있다. 18000번, 그것은 18000년이라는 시간이 아니었던가? 그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내 심장이 뛸 때, 나는 어김없이 내 손짓을 했다. 무거운 오른 손, 날카로운 왼손, 내 심장이 시키는 짓이라도 상관없다. 내가 내 심장의 박동에 맞추어 손을 놀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했던 짓으로, 너무나 달라진 세상이 이제 보인다.


        가벼운 것들, 그것들은 모두 위로 올라갔다. 무겁고 둔탁한 것들, 그것들은 내 발밑에 굳게 밟혀있다. 위로 올라갔으니 하늘이요, 아래로 내려갔으니 대지가 되겠다. 나는 그토록 움직이고 내 키는 하루에 한 장씩  커져가고 늘어만 간다. 대신 하늘도 높아지고, 땅도 두터워졌다. 내 머리는 하늘 끝에, 내 발바닥은 대지에 박혔다. 도끼로 가를 수 있는 모든 것의 모든 것, 끌로 잘라낼 수 있는 모든 것의 모든 것, 그것을 내가 모두 해두었단 말인가? 감회의 미소다. 회심의 미소다. 할 수 있는 것들, 그 정열에 맡긴바 되어 오늘 하늘과 땅이 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아아, 저것이 왜 내 손에 닿지 않는단 말인가? 내 도끼는 왜 저토록 높아진 하늘 끝에 닿지는 않는단 말인가? 언제부터인가 18000년을 같이한 하늘이건만 내 손에 더는 닿지 않는단 말인가? 왜 하늘은 이제부터 저절로 높아만 지고 있는 것인가? 멀어져가고 멀어져가 아득하다. 내 보지 못하는 눈이건만, 빛이 없어 혼탁한 주위건만 내 손에 닿았던 그 가벼운 감촉, 왜 더는 더듬어지질 않는단 말인가? 내 과연 저것을 기어이 끝까지 올려 보냈고, 올려 진 하늘은 이제 혼자 높아만 가는 것일까? 오늘은, 심장이 뛰어도 내 하루 잠자코 있어야겠다. 도끼를 내리우고 끌을 치워둔다.


        심장이 오랫동안 뛰었다. 뛰는 심장을 따라 내 손짓을 더 하지는 않았다. 도끼를 내려두고, 내 손을 다시 위로 올려본다. 아아, 끝끝내 그 위가 닿지 않는다. 18000해 동안 나와 함께 했던 가벼운 것들이다. 그것들은 저절로 내려올 줄은 도무지 모르는 것인가? 이제는 그만 스스로 올라가고 있는 것인가? 내 이제, 더는 저 하늘에 손이 닿지 않는다. 도끼가, 도끼가 필요 없다. 끌이 필요 없다. 도끼와 끌, 닿지 않는데 어디에 더 쓸 것인가?


        차마 생각하기 싫은 지금, 그래도 생각해본다. 손에 있던 두 개, 두 개의 것, 도끼와 끌이다. 전율이 일고 있다. 몸이 그토록 떨린다. 소스라치게 내가 놀라고 있다니, 정녕 그러하던가? 어어, 정열이여~!


        앞으로 무섭게 날아가는 도끼와 끌이 느껴진다. 얼마나 박동이 더 뛰었던지, 깊은 탄식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광음이다. 내가 알았다. 그것들이다. 울부짖는 자로서의 도끼다. 고함치는 자로서의 끌이다. 대지가 흔들리고 내가 흔들렸다. 흔들리다 멈추어 섰고, 주위는 또 조용하다. 18000년 동안 있어왔던 그 적막이다. 광음이 끝나고 그대로 돌아온 내 주위, 나는 여전히 그전과도 같이 공허하다. 18000년 동안의 휘젓고 찍어보던 희열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것인가? 내 심장박동에 내 손이 움직여지던 그 희열, 이제 그렇게 끝나는 것인가? 심장에서 온몸을 긁어내는 처절한 아픔이 한줄기 쿡 쑤셔 입속으로 밀고 나온다. 아아, 놀랍다. 처음 있는 반응이다. 어어, 속이 저릿하고 두 손이 떨린다. 내 그만 고함을 질러본다. 눈에서 무엇인가 부지런히 떨어진다. 대지를 주먹으로 두드리고 입을 벌려 크게 울부짖었다. 아아, 내 이것을 일러 울음이라고 해야겠다. 큰 울음이 터졌다. 심장이 계속 뛰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울었다.


        눈이 흐릿해진다. 원래 세상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눈이 침침해진 것을 느낀다. 심장박동이 예전 같지도 않다. 다시 내 대지에 웅크렸다. 위로 손을 들어보았지만 만져지는 것이 없다. 손을 다시 내리우고 내 심장에 가져다댔다. 예전보다 힘차지 않다. 내 박동, 이 박동의 힘차고 쇠잔함에 내 느낌이 왜 이토록 달라지는 것일까? 이제 앞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 정녕 이후에 내 심장소리를 못 듣는 것은 아닌가? 무섭다. 도끼와 끌을 버리던 그 시각보다도 무서운 시각이다. 이것을 공포라고 하는 것일까? 아마 그렇게 내가 없어질 지도 모른다. 나와 같이 했던 하늘과 대지, 아니, 처음 나와 스스로 있었던 것들, 내가 명명하고 18000년 동안 휘둘러 이제는 닿지 않는 하늘, 그나마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대지, 이것들 속으로 내가 아마 되돌아 갈 것이다. 죽음이라고 해야 하는 내 또 하나의 명명이다. 죽음, 그것이 오고 있다. 내가 안다.


        ― 내 정녕 혼돈에서 태어나 세상을 처음 알았네. 내 정녕 내 심장소리에 흐름을 알았네. 내 정녕 18000번의 박동소리를 듣다 일어서 위를 잡았네. 그것이 안 잡혀 무거운 것과 날카로운 것을 들었네. 내 정녕 18000번 그것들을 휘둘렀네.


        ― 주위는 갈라졌고 가벼운 것은 하늘이 되었네. 하늘은 높아져서 내 손에 닿지 않았네. 뿌려진 도끼와 끌, 이제 찾을 길이 따로 없네. 둔탁한 소리에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네. 땅을 치고 소리 내어 내 끝없이 울었네.


        ― 내 죽어 차마 세상이 그냥 이러하거든, 너희들은 내가 한 일을 더 묻지 말거라. 그것을 느낄 자가 따로 없으면 내 탓에 대해서도 알지도 못할 것일거나. 그러니 내 차라리 욕할 자라도 만들어야겠네. 내 몸이 썩어 많은 것이 되어라.


        ― 호흡은 바람으로, 소리는 천둥으로, 왼눈은 태양으로, 오른 눈은 달로, 사지와 오체는 4극과 5악으로 되어라. 피는 강과 하천으로, 힘줄은 구릉으로, 근육은 전토로, 머리카락은 별로, 피부는 초목으로, 이는 금석으로, 정수는 주옥으로 되어라. 땀은 흘러 호수로, 몸은 여러 곤충으로 되어라.


        ― ...


        ... ...


        바람의 감응이 있어 비로소 많은 사람이 생겨났다. 그 사람들은 반고를 말한다. 반고를 욕하는 자, 반고를 칭송하는 자, 반고를 망각한 자, 반고를 애초부터 모르는 자.


        오늘, 반고를 기려 반고를 적어둔다.



부록:


  천지는 그 혼돈이 계란 속과 같았다. 반고가 그 속에서 살기를 18000년, 천지가 개벽했다. 양은 가벼워 하늘이 되고, 음은 혼탁하여 대지가 되었다. 반고가 거기서 같이 했다. 하루에 변하기를 아홉 번, 그 神聖이 하늘, 땅과 다름없었다. 하늘은 하루에 한 장씩 높아지고, 대지는 하루에 한 장씩 두터워갔으며 반고는 하루에 한 장씩 커져만 갔다. 18000년이 또 흘렀다. 하늘은 더없이 높아졌고, 대지도 더없이 두터워졌다. 반고는 끝없이 높고 큰 체구로 자라났다.

― “오운역년기”


  반고가 몸을 펴자 하늘은 점차 높아지고 대지는 아래로 내려갔다. 천지는 본시 붙어있었다. 왼손에 끌을, 오른손에 도끼를 들어 혹은 휘두르고, 혹은 찍기를 거듭하니 오랜 세월이 지나 천지가 갈라지며 멀어져 갔다. 가벼운 기는 위로 하늘로, 혼탁한 기는 아래로 내려 대지로 되어, 비로소 마침내 혼돈이 열린바 되었다.

― 명조 주유의 “개벽연역”


  천기가 어둡고 가벼워 맹아는 천지의 분리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건곤이 바로 섬은 음에서 비롯되어 양을 감응시킨 것이요, 원기가 가득하니 그 속에 중심이 되고 어울리는 온화를 잉태한다. 인간이다. 먼저는 반고를 낳았다. 죽음에 이르러, 호흡은 바람으로, 소리는 천둥으로, 왼눈은 태양으로, 오른 눈은 달로, 사지와 오체는 4극과 5악으로 되었다. 피는 강과 하천으로, 힘줄은 구릉으로, 근육은 전토로, 머리카락은 별로, 피부는 초목으로, 이는 금석으로, 정수는 주옥으로 되었다. 땀은 흘러 호수로, 몸은 여러 곤충으로 되었다. 바람의 감응이 있어 비로소 많은 사람이 생겨났다.

― “오운역년기”


  天地浑沌如鸡子。盘古生在其中。万八千岁。天地开辟。阳清为天。阴浊为地。盘古在其中。一日九变。神于天。圣于地。天日高一丈。地日厚一丈。盘古日长一丈。如此万八千岁。天数极高。地数极深。盘古极长。故天去地九万里。

― 《五运历年纪》


  盘古将身一伸,天即渐高,地便坠下。而天地更有相连者,左手执凿,右手持斧,或用斧劈,或以凿开。自是神力,久而天地乃分。二气升降,清者上为天,浊者下为地,自是混沌开矣。

― 明人周游《开辟衍绎》


  天气蒙鸿,萌芽兹始,遂分天地,肇立乾坤,启阴感阳,分布元气,乃孕中和,是为人也。首生盘古。垂死化身。气成风云。声为雷霆。左眼为日。右眼为月。四肢五体为四极五岳。血液为江河。筋脉为地里。肌肉为田土。发为星辰。皮肤为草木。齿骨为金石。精髓为珠玉。汗流为雨泽。身之诸虫。因风所感。化为黎甿。

― 《五运历年纪》

 


 

 

전유재(全宥再, Quan YouZai)연변과학기술대학 생물화공학과 학사. 상명대 정보통신대학원-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STEPI) 협동과정 기술경영학과 석사졸업. 현재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석사과정

메일: yzquan002@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