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중국이야기> “모두 관(모자)의 끈을 끊어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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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중국이야기> “모두 관(모자)의 끈을 끊어버리라!”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6.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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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만리장성과 진시황릉에서 출토된 장군상.
중국의 민족성에서 포용성을 본다.
밀고 당기고 하는 “6자회담”이 별 진전은 없지만 의연히 장거리 경주마냥 계속된다. 이 세계의 이목을 끄는 6자회담의 “중개인” 주인공은 당연이 중국이다. 그래서인지 매 차례 회담장도 계속 중국 땅에서만 열린다. 몇 년 전만해도 미국은 강경한 자세로 북한을 악에 축으로 규정하고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여기에 맞서 최근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까지 쏘아 올리며 응전에 기를 쓰면서 짙은 화약 냄새를 풍기고 있다.

이처럼 동북아 정세에 세계는 부산이 돌아가는데 뉴욕타임스가 26일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의 사설을 게재하고 백악관이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공화당 국방위 소속 의원들의 주장이 또한 여론의 말밥에 오르고 있다.

이런 격돌하는 비상사태에 중국은 중개자의 역할로 화담에 푸른 등을 켜 올릴 수 있을까? 하는 것도 관심사이지만 이 문제는 뒤로 미루고 회담 참가국 6개국가운데, 더 나아가 세계의 많은 나라가 있는데 왜 하필 중국이 중개자의 역할을 맡게 되는가 하는 문제를 짚어 보자. 물론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필자는 중국의 중개자의 역할은 중화민족의 중요한 특징인 포용성에서 찾아보아도 무리 없이 재미있을 것 같다.

중화민족이 자기의 수천 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사상의 하나가 중용지도(中庸之道)를 표방한 포용력이다. 중국인은 대자연속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조화를 추구해왔다. 중국인은 어머니 품과 같은 대륙적인 대국적 기질의 하나로 포용력을 꼽고 있다. 이런 포용력은 현실 중국사회와 국제 문제에서도 크게 작게 영향력을 미쳐가고있다.

중국에 포용력을 시사하는 이런 유명한 역사 이야기가 있다.

2천여 년 전 중국의 춘추시대에 초(楚)나라에는 장왕이라 부르는 배포가 큰 왕이 있었다.
어느 날 밤 장왕이 신하들을 모아놓고 연회를 배설했다. 술자리가 무리익자 장왕은 좌우 신하들을 둘러보며 “제군들, 오늘 밤은 마음 내키는 대로 놀며 즐기세!”라고 하며 잔을 높이 들었다. 이윽고 “부어라, 마셔라,” 권주가에  연회는 흥청망청이 된 이 무렵,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방안의 모든 등불이 꺼져버렸다.

이 때 그 틈을 타서 왕의 애첩을 희롱하는 자가 있었다. 기고만장한 애첩은 그자의 관(冠)의 끈을 끊어 쥐고 왕에게 일러바쳤다. “페하! 불측 하나이다. 저를 어루만지며 능욕하는 작자가 있사오니 속히 불을 밝혀주십시오. 관에 끈이 없는 자가 바로 그 범인이 옵니다.” 마침 이 자석에 있던 법무대신도 공을 세울 절호의 기회로 포착하고 나졸을 불러 눈에 쌍심지를 커고 범인을 잡으려 들었다.

 왕이 무겁게 입을 연다. “잠깐, 따지자면 내가 술을 많이 마시도록 한  때문이야, 여자와의 정을 위해 부하에게 수치를 줄 수 없어.” 왕은 큰 소리로 명한다. “신하들, 들으라. 모두가 당장 관의 끈을 끊어 버리라!” 이어 불이 들어 왔다. 그런데 왕을 포함하여 한사람도 끈이 달린 관을 쓴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몇 년 후 초나라는 강대한 진(秦)나라와 싸움이 붙었다. 불행히도 초나라의 장왕이 진나라 군사에 겹겹이 포위 되여 위기일발의 시각을 맞았다.  이때 초나라의 한 젊은 장수가 나타나  좌충우돌하며 죽기로서 싸웠다. 장수는 구사일생으로 싸워 포위망을 뚫었고  끝내는 장왕이 구출되었다.

그러나 그 젊은 장수의 온 몸에 난 활촉과 칼자국 상처들에서 마지막 남은 피가 낭자하게 흘르고 있었다. 젊은 장수는 더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통나무 넘어지듯  왕의 발 앞에  쓰러졌다. 왕이 좌우를 물리치고 무릎을 꿇고 자기의 구명은인인 이 신하를 와락 끌어안고 통곡한다. “죽지 마라, 자네 죽으면 안 돼!.....”

젊은 장수가 간신이 눈을 떴다. “아닙니다. 페하! 저는 기쁘게 죽습니다. 전에 페하께서 저를 살려주지 않았다면 저는 진작 죽었던 죄인입니다. 제가 바로……. 제가 바로, 그날 밤 애첩을 능욕 했던 자입니다.” 말을 마치고 이 충성된 신하는 피 못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성경을 읽은 사람이라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예수가 아니었다면 분노한 군중들의 돌팔매에 그녀는 진작 저승으로 갔을 것이다. 그때 예수는 “죄 없는 자가 나와 돌로 치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결국 여인은 구원되고……. 그 후 성경에는 비록 기록되지 않았으나 우리는 가히 이 여인이 한평생 예수님께 충성한 것으로 생각해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예수님의 인간 죄인에 대한 사랑에 기반을 둔 포용력이리라.


인간의 삶에서 포용력은 이처럼 중요하다. 지도자에 한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게 한다.  우리에게 이 중국 역사 이야기는  찐한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다.

           (후일계속)

/동북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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