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인생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활을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듯이 나는 요즘 나의 생활을 세모(삼각형)에 비교한다. 세모에서 시작점은 집이고 다음으로 행하는 곳은 직장이다. 퇴근하면 학교로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집, 직장 그리고 학교로 만들어진 단순구조의 나의 세모인생은 매일매일 반복된다. 최근 문뜩 단순하고 반복적인 나의 생활속에 깊은 의미를 찾게 되었다. 그동안 나 자신이 얼마나 유치했던가 출근길 혼자 있는 차안에서 거울 보며 피식 웃는다.
한국에 온 첫날, 내가 제일 처음 찾았던 것은 한국지도이다. 동네 문방구에서 사 온 큰 지도에서 제일 먼저 내가 살고 있는 '인천'을 찾았다. 다음 한국의 수도라고 하는 ‘서울’을 찾아 빨간 펜으로 표시해놓았다. 그 뒤로 11년이 지난 오늘까지 나는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생활해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낮에는 주로 서울에서 생활하고 저녁이면 인천(집)에 돌아온다.
계양산, 관악산 그리고 양화대교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인천의 계양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작은 방 창문을 열면 계양산의 나무들을 잡힐 듯, 우리 집 바로 뒤길-계양길을 건느면 바로 계양산이다. 계양산은 인천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된 석상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계양산은 전하는 말에 의하면 임전왜란 때 명나라 군사가 전투했다는 곳이다.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지금까지 계양산 꼭대기까지 올라가 본 경험이 손꼽을 정도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재학시절엔 통학이 어려워 서울로 이사하려고 몇 번이고 작심했지만 서울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번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후 1년 만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서울대를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서울대는 산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산이 바로 관악산이다. 매번 학교 갈 때마다 나는 산에 가는 기분으로 운동화을 챙긴다.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五岳)에 속했던 산으로,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고 그 줄기는 과천 청계산을 거쳐 수원의 광교산까지 이른다. 북서쪽으로 서울대학교, 동쪽으로 과천 정부종합청사, 남쪽으로 안양유원지가 자리하고 있다. 주봉(主峰)은 연주대(戀主臺)이고, 산정의 영주대(靈珠臺)는 세조(世祖)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산중에는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지로 정할 때 건축하여 곤란에 대처했다고 전해지는 원각사와 연주암(戀主庵)이 있고 그밖에 자왕암(慈王庵)·불성사(佛成寺)·삼막사(三幕寺)·관음사(觀音寺) 등의 산사(山寺)와 과천향교 등이 있다. 이 중 삼막사는 원효·의상 등의 고승들이 수도하였다고 한다. 산정에는 기상청의 기상 레이더 시설이 있다. 산세는 험한 편이어서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한 번도 관악정산까지 올라가보지 못했다.

나는 하루에 두번씩 양화대교를 만난다.
나는 매일 아침 계양산을 출발하여 관악산으로 가기 전 반드시 지나는 다리가 있는데 바로 양화대교이다. 직장이 서울 마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인천에서 마포로 가려면 지하철을 타던 버스를 타든 반드시 한강을 지나야 하는데 나는 매일 양화대교를 이용한다.
매번 지날 때마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자동차 창문을 반쯤 열어둔다. 이유라면 한강의 기적이 나에게도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다.
네모로 바꿔 볼가
나는 가끔 단순구조 세모생활을 바꿔볼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군 한다. 집에서 직장까지 20Km, 직장에서 학교까지 15Km, 학교에서 집까지 20Km. 거의 정삼각형에 가까운 반복되는 생활에 식상하여 가끔 변화를 꿈꾸군 한다. 만약 네모로 만든다면 어떨까?
사실 1년 뒤엔 나의 세모인생에 획기적인 변화가 예고되어 있다. 졸업해야 하는 것이다. 졸업하게 되면 수업 들으러 학교 갈 일이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집과 직장사이를 오가는 단선구조로, 네모이기커녕 세모도 무너질 판이다.
계양산 기슭아래, 오늘 저녁에도 잠 잘 그 곳, 11년째 살고 있다. 양화대교를 지난 회수도 500번이 넘는다. 관악산에 앉아 공부한지도 어언간 4년, 갑자기 어느 학자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반복이 기적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