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 붙잡고 호소... 투쟁가 부르며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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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 붙잡고 호소... 투쟁가 부르며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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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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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2003-11-27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에는 50~100여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지난 14일부터 보름 가까이 정부의 강제추방에 반대하며 철야농성 중이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상담소 한 간사는 "이주 노동자들이 잇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혹시나 엉뚱한 마음을 갖지나 않을까 싶어 걱정이다"고 말했다.

창원고속버스터미널 맞은 편에 있는 상담소는 밤낮으로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농성 13일째인 26일 저녁. 인근 차룡공단의 공장은 불이 꺼진 지 오래지만 이곳은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담소 입구에 있는 공중전화를 잡고 한 외국인이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그는 어디에 전화를 했느냐는 말에 "이전에 같이 일하던 사람한테 전화를 했다"면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어 걱정만 하다가 끊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주 노동자가 다시 전화기를 잡았다. "혹시 고국에 전화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러시아 출신인 그는 "더 걱정할까봐 전화 안한 지 오래되었다"고 말했다.


상담소에서 농성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비슷한 처지다. 3층 상담소를 오르는 계단 벽면에는 온갖 구호들이 적혀 있었다. 이주 노동자들이 각자 고국어로 그들의 요구사항을 표시해 놓았다. 굳이 해석을 요구하지 않아도 대충 짐작할 정도다.


상담소 강당에는 50여명이 앉아 있었다. 갓 저녁 집회를 마친 뒤라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모여달라고 했을 때, 흩어져 있던 그들은 순식간에 모여 앉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구호를 외쳤다.


농성장 앞 쪽에는 최근에 자살한 이주 노동자 3명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두 명은 영정을 구하지 못해, 빈 액자에다 이름만 적어 놓았다.


이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낮에는 50여명 가까이 있고, 밤에는 그래도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달려와 함께 농성을 하고 있다. 놀이시간도 갖고 인권교육시간도 갖고 있다. 피부색이며 언어가 다르지만, 이들은 형제나 마찬자기가 되었다.

울음바다 만드는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


요즘 농성자들이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대통령 앞으로 편지쓰기다. 그들이 쓴 편지를 모두들 앞에서 낭독하기도 한다. 그러면 농성장은 울음바다가 된다. 농성 9일째인 지난 22일 쓴 인도네시아 출신 아윙과 유다씨의 편지가 대표적이었다.


"한국 대통령님께 인사드립니다. 저희들은 지금 아주 힘든 상태입니다. 저희들을 도와주세요. 저는 한국에 배 타고 왔고, 6개월 동안 일하다 도망쳤습니다. 배에서 일할 때 월급을 많이 못받았으며 한 달에 220달러 받았습니다. 일도 힘들었고, 매일 맞았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서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으며, 부산에 도착해 도망을 쳤습니다.


한국에 오기 위해 브로커에게 1500달러를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싶은데 노동비자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일할 권리를 주세요." 아윙(인도네시아).


"대통령님! 저는 한국에서 생활한지 4년 되었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도와드리고 싶은데, 아직 빚도 다 갚지 못했습니다. 연수생으로 일할 때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농성장에는 사장님들이 많이 옵니다. 사장님들을 보면서 제가 확인한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일자리를 원하고, 한국 회사들은 저희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님! 노동비자를 주시고 법도 바꾸어 주시기 바랍니다." 유디(인도네시아).


25일 인천 부르혼씨 자살사건에 침통한 분위기


최근 잇따라 이주 노동자들의 자살사건이 알려지면서 이들의 마음은 더 무거워지고 있다. 지난 25일 새벽 2시경 인천에서 자살사건이 벌어진 것.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부르혼(50)씨가 공장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부르혼씨는 올해 7월 30일 관광비자로 입국했는데, 단속이 시작되자 불법체류자라 해고됐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 브로커에게 5000달러를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호주머니 속에는 고국행 티켓이 한 장 들어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돌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다 결국 자살을 택했던 것. 상담소에서 농성을 하는 이들은 부르혼씨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비슷한 처지다.


이어지는 격려 발길... "투쟁가" 개사해 부르기도


이주 노동자들의 농성 소식이 알려지자 격려하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경남도본부(본부장 손석형)와 공무원노조 경남지역본부(본부장 김영길)에서는 쌀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밖에 크고 작은 단체와 개인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25일에는 상담소 이사장인 차정인 변호사와 조현철·김경선·김양순·박영민·문윤수·전용길 이사가 농성장을 찾아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 21일 30대로 보이는 한 여자가 뉴스를 듣고 농성장을 찾았다며, 후원금만 전하고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돌아갔다.


마산 성공회 성당 박찬정 신부, 경남이용기술전문학원, 창원전문대 자원봉사동아리 "어깨동무", 민주노동당 소속 이경숙 도의원, 창원 여성의 전화 이경희 회장, 창원 강내과의원 강미정 원장 등이 물품과 먹을거리를 안고 다녀가기도 했다. 주한 인도네시아 김수길 명예영사도 농성장을 찾아 격려했다.


이주 노동자들은 "투쟁가"에 강제추방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가사를 붙여 부르고 있다. 이 땅에 사는 이주 노동자들이 이 땅의 민중가요를 빌어 이 땅을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강제추방 반대한다 / 함께 모여 싸우자 / 노동비자 모두 받아 / 사람답게 일하자 // 인간사냥 반대한다 / 함께 모여 싸우자 / 노동비자 모두 받아 / 사람답게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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