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그리는 꿈의 고향, 그것이 곧 KBS 6시 내고향 '백년가약'의 아름다운 약속이었으며, 그 결실은 대한민국 농어촌의 꿈과 희망의 공간으로 이루어졌다.
이제 국내를 넘어 해외 동포들에게도 이 희망이 전해져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이 마음속 깊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지난 4월, 러시아 우정마을에선 희망의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4월 20일 "우리가 러시아 건축 역사를 새로 쓴다"
제작팀과 건축팀이 건물 부지를 알아보기 위해 우정마을을 찾았을 때 솔직히 당황했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광활한 러시아 대지 위에 건물을 신축하기란 눈으로 언뜻 봐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게다가 농업기술센터라는 것이, 청국장 작업장이자 쉼터의 용도를 복합적으로 지닌 곳이었기에 마을 주민들의 동선도 고려해야 했다. 마을을 수십 번 둘러본 후, 오랜 논의 끝에 마을 중앙 부지를 선택했다.
 | | ▲ 우정마을 건물이 들어설 부지. | | ⓒ 김현동 | | 4월 말. 한국은 벚꽃이 막 지고 초여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날씨는 가을에 접어든 것 마냥 싸늘했다.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가을을 넘어 초겨울을 느끼게 하는 강풍이었다. 건축팀과 마을 주민들이 러시아의 환경적 요인으로 중간에 공사가 지체될 수 있으므로 빠른 시일 내에 착공을 해야 한다고 했다.
4월 22일. 서둘러 러시아 우정마을 고려인 7명이 주축이 되어, 공사팀을 구성했다. 송슬라바 아저씨가 팀장을 맡아 선두 지휘해 주시기로 했고, 박세르게이 아저씨가 부팀장을 맡았다. 조를 두 개로 나누어 1조는 지마와 루직, 2조는 송보바 아저씨와 라직과 지마가 합류, 총 7명이 우정마을 공동의 집을 위해 마음을 모았다.
의기투합하여 공사 현장을 향해 발길을 돌리는 순간, 밖에는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눈은 쉬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첫날 일정은 무산되었다. 우려했던 일이 첫날부터 벌어지니 모두 당황했지만, 공사팀의 맏형 송슬라바 아저씨의 목소리가 우정마을 가득 퍼졌다. "우리, 고려인의 이름으로 러시아 건축사를 새로 씁시다!"
따뜻한 홍차의 기운에 마을 주민들의 열정까지. 러시아의 차가운 바람이 금세 수그러들었다.
 | | ▲ 고려인들이 주축이 된 공사팀. | | ⓒ 김현동 | | 5월 3일 "어려움을 헤치고 가는, 우리는 고려인 아닙니까"
5월에 들어서자 우정마을에도 봄기운이 살짝 돌았다. 아침, 저녁으로 부는 찬바람은 잠깐 봄을 잊게 했지만, 한낮의 기온은 한국의 5월과 비슷했다. 기초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이번 공사의 총책임자인 류재관 건축가는 이후에 쓸 자재를 구입하기 위해 우수리스크 시내로 나갔다. 통관이 어려워 우리나라에서 자재를 가지고 가는 일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옛 사회주의 때의 모습이 조금씩 남아 있어서 모든 자재가 공급량이 많지 않아, 우리나라처럼 한번에 많은 양을 구입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날, 류재관 건축가와 마을 주민들은 우수리스크의 중국 시장 일대를 포함하여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발품을 팔았다.
5월 초 내내 공사 현장은 부지 아래 구멍을 뚫는 작업으로 분주했다. 기초 공사에서 구멍을 뚫는 것은 배수 시설 때문인데, 우리나라는 추위가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에 약 1m70cm 정도의 깊이로 구멍을 뚫는다. 그에 비해 한겨울,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러시아에서는 그 깊이가 2m 이상이 되어야 건물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다고 한다. 그 구멍을 무려 40개 이상을 뚫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공사팀의 노고를 하늘이 모른 척했던 것일까. 갑자기 구멍을 파는 차가 고장나버렸다. 고작 11개의 구멍을 뚫고 난 뒤였다. 모두가 발을 구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멍에 부을 모래와 자갈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공사팀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망연자실해 있을 무렵, 라직과 루직 쌍둥이 형제가 삽을 들었다. 기계 대신 삽 하나에 자신들의 힘을 싣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묵묵히 일하는 형제를 본 공사팀 전원이 삽을 들었다. 기계만큼 빠르지는 못했지만 그 후로 밤 11시까지 10개의 관을 팠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우리 고려인은 더 어려운 것도 헤치고 살았습니다."
공사 현장을 지켜보던 아저씨의 한마디가 펜을 멈추게 했다. 힘겹게 살아온 그들의 씁쓸하고 고된 삶, 그리고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보이는 의지와 희망의 메아리. 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 | ▲ 배수 시설을 위해 구멍을 뚫는 기계. | | ⓒ 김현동 | | 6월 5일 "이제 우리는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공사를 시작한 지 두 달이 가까워져 온다. 그동안 공사팀의 팀워크는 나날이 좋아졌고, 모든 자재가 제때 도착했고, 몇 차례의 비를 제외하고는 연일 맑은 날씨까지, 우정마을엔 기적적인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느덧 기초공사가 마무리되자 목조가 하나, 둘 올라갔고 그만큼 마을 주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그러나 분주한 모습에 비해 의아하게도 못 치는 망치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내구성을 높이고 악천후에도 견딜 수 있는 건물을 짓기 위해서 목조로 블록을 쌓듯 건물을 세운다고 했다. 쇠못 대신 약 30mm의 나무못을 직접 제작하여 목조의 틀을 갖춰가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는 시간과 비용, 인력이 많이 들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건물이 안정된 형태로 남아있는 그야말로 튼튼한 공법이다.
 | | ▲ 건물 목조가 올라가는 모습. | | ⓒ 김현동 | | 착공한 지 두 달여가 지난 6월 말. 드디어 지붕이 올라갔고, 마을 주민들은 환호했다. 자재 구입부터 현장 시설까지, 모든 것이 열악한 상황에서 시작된 공사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견뎌온 고려인, 우리 한민족이 그곳에 있었다.
또한 한국을 가보지 못한 많은 고려인을 위해 가장 한국적인 건물이자 평생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건물을 짓겠다는 류재관 건축가의 따뜻한 마음이 곳곳에 배어있는 듯했다.
류재관 건축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공사팀의 두 젊은이를 위해 큰 선물을 선사했다. 선물이 무어냐고 묻는 제작팀의 질문에 이제 첫 발을 뗀 것에 불과하다며 쑥스러운 듯 웃기만 한 라직. 과연 그들이 받은 희망의 선물은 무엇인지, 러시아 우정마을의 희망의 공간은 어떤 모습으로 탄생할지, 모두의 가슴 속에 설렘이 가득하다.
밤 10시 30분. 한국 시각으론 밤 12시 30분이다. 우정마을 공사현장은 아직도 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