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때 다니던 초등학교-중국 화남현 이수향 신선조선족소학교가 폐교된지 오래다. 1990년 오상조선족사범학교 졸업 후 배치받아 교편 잡았던 칠대하시 홍선조선족소학교도 폐교 되었다.
1993년부터 2003년, 10년동안 중국 동북3성의 조선족학교가 무려 850여개 학교가 폐교되었다고 한다. 내가 살던 흑룡강의 경우 가장 많은 폐교율을 보였는데 10년동안 폐교된 학교만 250여 개다. 조선족 학교의 폐교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지만 나를 교사로 만들어 준 오상조선족사범학교 폐교소식은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이으로 다가왔다. 어찌 이런 일이?
어렸을 때는 모교라는 의미에 대해 잘 몰랐지만, 나이 들고 학부모가 되어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어릴 때 내가 다니던 학교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언젠가 모교를 찾아보는 것이 꿈이었다. KBS방송의 스승을 찾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모교와 스승에 대한 그리움이 더 간절해졌다. 한국에서라도 스승을 만나 뵜으면 하는 바램으로 KBS에 사연신청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졸업 후 16년 동안 한 번도 찾아가보지 못한 불효제자다. 그런데 올해 4월쯤 중국 할빈의 모 조선족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창과 어렵게 연락이 되면서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가 다니던 오상조선족사범학교가 할빈의 모 사범학대학으로 편입됐어. 인젠 오상조선사범학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 어렵게 연락된 친구와의 첫 통화는 이렇게 서글프게 끝났다. 학교까지 없어졌으니 스승들을 찾는 일은 더 묘연해졌다.
오상조선족학교는 흑룡강성에서 조선족 교사를 양성하는 유일한 교육기관이었다. 그런데 교사양성기관마저 없어졌으니 앞으로 조선족소학교의 교사수급(需給)은 어찌한단 말인가?
일전에 흑룡강의 모 조선족학교의 교장선생님과 조선족학교의 감소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들은 얘기가 아주 인상적이다. "지금 조선족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조선족학교들이 계속 유지되느냐, 폐교 혹은 통합이 되느냐, 하는 생존문제입니다. 생존이 급선무라구요. 학교의 질, 교사의 질을 운운하는 것은 사치스런 생각이라고 봅니다."
요즈음 KBS 일일드라마 "열아홉살 순정"에서 화룡고등학교 출신 양국화씨가 나오는데 국화씨를 볼 때마다 부럽기만하다. 국화씨는 비록 타국생활이 힘들지만 그때마다 화룡고등학교 3호학생'지덕체(知德體)가 전면 발전한 학생'의 명예를 걸고 당당하게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교'라는 것이 얼마나 큰 존재인가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다.
모교를 잃은 것은 부모를 잃은 것과도 같다. 슬픈 일이다.
1906년 길림성 룡정에 최초의 조선족학교-서전서숙이 설립된 이래 한시기 1500번째 학교가 설립될 정도로 양적인 발전을 가져왔었다. 그러나 1990년 초부터 학교가 하나 둘씩 줄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740개 학교만 남았다.(www.oureac.com 의 통계자료 참고)

왜 조선족학교가 이처럼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하였는가?
1. 중국의 산아제한제도
학교의 존재이유는 학생들에게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중국의 산아제한제도는 출산율을 저하시켜 소학교에 입학 할 취학어린이가 줄게 되었다.
흑룡강성 해림시에서 한족학교를 다녔다는 조모 동포여성(29세)의 말에 의하면 소학교 다닐 당시 인근에 4개 한족학교가 있었는데 지금은 2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 2개가 없어진 이유를 묻자 그녀는 아마도 중국의 산아제한제도의 영향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족학교도 산하제한의 영향으로 통폐합이 이루어진 마당에 조선족학교라고 예외였겠는가?
"왜 조선족학교를 다니지 않았어요?" 필자의 질문에 그녀는 조선족학교가 집에서 너무 멀어 다니지 못했다고 하면서 자신이 조선족학교를 다니지 못한 것이 후회되어 자녀만은 조선족학교로 보내려고 했는데 최근에 폐교되었다면서 아쉬워하였다.
2. 개혁개방정책
조선족교육의 역사를 보면 중국의 정책영향에 휘둘렸던 흔적을 많이 볼 수 있다. 1980년부터 시작된 개혁개방정책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좋은 정책으로 평가되지만 조선족교육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대혁명 당시 마을마다 학교설립을 독려해 농촌에 안거(安居)했던 농민들이 개혁개방을 통해 도시로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농촌을 떠나기 시작하였다. 마을 인구가 줄면서 재학학생들도 따라서 줄게 되었다. 이는 곧 학교의 통폐합으로 이어졌으며 학교의 통폐합은 학교감소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3. 1992년 韓-中수교
동북3성에서 주로 농촌에 거주하던 조선족들은 개혁개방과 함께 연해 대도시로 대거 이주하였는데 국내 이주만큼 국외 이주도 상당히 많았다. 특히 1992년 8월 한중 수교를 계기로 인적왕래 가능해지면서 현재까지 친척방문 등 비자로 20만 명 정도 한국에 체류해 있는 상황이다. 그 중 국제결혼으로 이주해 온 여성이 4만여 명인데 이는 단순히 4만 명이라는 숫자를 넘어서 가임(可姙)여성들의 유실로 볼 수 있으며 가임여성들의 유실은 조선족 인구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거시적인 측면에서 조선족 학생들의 유실로 인한 학교폐교원인을 살펴보았다. 학교폐교과정에서 학교구성원- 교육국 정책집행자, 교장, 교사,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의 측면에서도 살펴봐야 하겠지만 이는 당사자들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믿고 생략한다.
분명한 것은, 그런 객관적인 원인에도 불구하고 조선족교육위기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조선족학교의 감소가 아니라 조선족학교의 경쟁력부재에 있다봐야 할 것이다. 조선족학교의 경쟁력은 "조선족" 이란 세 글자에 있지 않다. 조선족학교는 '조선족'의 것이기 전에 교육이다. 교육으로서 교육다움, 학교로서 학교다움이 있을 때야만이 비로소 학생이 모이고 학교가 세워지고 유지될 것이다.
세계화의 물결로 이주가 자유로워진 오늘날, 중국동포가 한국에 20만 여명이 거주하고 있다면 중국에 이주 간 한국동포는 45만 여명이라고 한다. 2008년 중국올림픽을 계기로 중국행 이주가 100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교육열이 높기로 소문난 한국동포들의 자녀교육까지 책임질 수 있는 조선족학교로 거듭날 때에야 비로소 조선족교육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절호의 기회이며 나아가서 한족학생, 조선족학생을 구별하지 않고 받아줄수 있는 학교로 거듭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학생유실로 학교 폐교가 어쩔수 없다는 얘기는 이제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다.
(조선족교육에 관련된 글을 더 보시려거든 http://blog.naver.com/2008china를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