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일전에 재한중국인추석행사에 관련된 문제 때문에 한화(韓華)평화통일촉진연합총회 한성호 회장을 방문했다. 대림웨딩홀에서 개최되였던 2006년 중국인 설날맞이 행사후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한성호 총회장은 어느 한국대통령으로부터 ‘대단한 중국인’이란 칭호를 받은 적 있다. 그의 탁월한 재능과 사랑의 너른 가슴, 무사봉헌(無私奉獻)정신은 조국과 한중(韓中)우호를 위해 거대한 공헌을 하였는바 그는 화교계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모든 중국인의 자랑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1927년생인 한성호 선생은 일찍 ‘중국국민당양명산혁명실천연구원’ 제20기를 졸업생인데 원장은 장중정(장개석)이었다. 그는 국민당과의 파란만장 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1948년 7월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왔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국토 위에 제일 먼저 해외교포들과 뜻있는 지사들을 연합하여 반독촉통회(대만독립을 반대하고 조국통일을 추진하는 조직)를 성립하였으며 제일 먼저 그 기치를 높이 치켜들었고, 또한 제일 먼저 오성붉은기를 추켜들고 한중건교의 길을 열어놓은 분이었다. 때문에 역대의 한국대통령들은 자주 그를 초대해서 말씀을 듣곤 했었다.
얼마 전 중국 산동작가 모회영은 ‘한성호전’을 출판하였는데 후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한성호선생의 풍격을 이렇게 귀납하고 싶다. 우선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유가풍격을 갖추고 있다. 그는 사악과 불공평, 비정의에 대해 맹열히 공격하는, 영원히 타협을 모르는 전사이다. 둘째, 그는 도가의 ‘상선약수(上善若水 )의 풍격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그의 몸에서 조용하고 태연자약하며 고독하고도 담박한 풍치를 엿볼 수 있다. 셋째는 불가(佛家)의 ‘지혜의 피안’의 성품을 갖추고 있다. 그는 마치 봄누에가 고치를 만들 듯 자신 생명의 빛으로 신노화교들을 한데 묶어 길을 개척해 나가는데 그의 카리스마에 누구 하나 존경하지 않은 분이 없다...”
한성호선생은 올해 여든 고령이지만, 지금도 한중우호협력과 재한화교계, 그리고 조국통일을 위한 사업에서 바삐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