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작가포럼/2019 작품 특집] 살춘각의 단편소설 '다시 빅 프레스트' 외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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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작가포럼/2019 작품 특집] 살춘각의 단편소설 '다시 빅 프레스트' 외2편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9.01.2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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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창작노트

[서울=동북아신문] 소설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살춘각 약력 : 본명 량영철, 1994년 소설로 등단. 해란강문학상 등 수상 다수. 연변작가협회 이사, 재한동포문인협회 소설분과장. 현재 강남구에서 소설 창작 전념.

다시 빅 포레스트

살춘각


1

    작년 8월 9일에 개봉한 영화 “청년경찰”의 제작사 <무비락>을 상대로 1억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던 중국동포공동대책위는 지난 9월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보기 좋게 패소했다.
    리유는 간단했다. 원고들과 범행에 관여한 조선족 배역을 련관 지을만한 묘사가 없다, 그리고 이 영화를 상영한 행위가 원고들에 대하여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는거였다.
    했지만 중국동포공동대책위측 조영관변호사는 “판결문 30페이지중 27페이지가 법정에서 주장한 우리측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면서, 이번 판결문은 력사에 남는 공적 문서이고 변호인단과 증인으로 나섰던 신정아교수, 기타 외부 전문가들의 마음이 담겨있는 의미있는 기록이라 생각한다”면서 1심 판결에 대한 소견을 피력했다.
    설명회를 열고 항소 여부를 결정짓겠다고 말은 했지만, 이미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만큼 쓸데 없이 힘을 빼지 않겠다는 뜻일것이다.
    패소할것을 미리 알고 떠난 출항이였다면 닻을 내리는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 조선족은 이미 너무 잘 알려졌으므로. 돈 쓰며 더 알릴 필요가 없으므로.
    서두에 이 심판내용을 적는것은 내가 “대림동에서”란 소설을 썼었고, 또 그 소설에서 영화 “청년경찰”이 등장하기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것은 별로 이상할게 없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변론이 있은 그날에도, 심판이 있은 9월 14일 오후 두시에도 법정에 가지 않았다.
    교대역과는 정반대인 대림역에서 한마장쯤 되는 거리에서 나는 옛친구를 만나고 있었다. 구로역 2번 출구.
    “야, 우리 언제 마지막으로 봤던가?”
    “글쎄다... 언제였지?”
    우린 누구도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던지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에는 한 20년만에 만났다는걸로 애매하게 결론을 내버렸다.
    “나는 한국에 온지 2년 됐다. 너는?”
    “한 1년 됐나?”
    “나는 간병인 일을 한다. 너는?”
    “뭐 이것저것?”
    녀석의 확실한 어조에 비해 나의 대답은 어딘가 애매모호했다.
    “그럼 지금은?”
    “놀고 있는것 같은데?”
    “놀아? 놀고도 밥을 먹어?”
    “한 반년 쭉 놀았지, 아마도?”
    “용하다. 그래 가지고 가족을 어떻게 먹여 살리냐?”
    “가족? 무슨 가족? 마치 니가 가족을 만들어준것처럼 말한다?”
    “너 설마...?”
    “왜 나는 리혼하면 안되냐? 너는 되고?”
    “헐. 넌 안할줄로 알고 있었지.”
    “다투면서 괴롭게 사느니 혼자 외롭고 편한 길을 택했다.”
    락엽이면 이럴가. 우리는 갈 길 잃은 가랑잎처럼 식당을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날려다니고 있었다. 도대체가 먹을거리를 찾지 못해서다. 왜 이렇게 먹고 싶은 게 없지? 하며 가랑잎 하나를 발로 걷어차다 언뜻 눈에 들어오는 회집이 있었다.
    “저거 먹을가?”
    “회? 못먹어봤네... 맛있나?”
    “먹어보고 평가하자. 입맛은 각각이니까. 안그래?”
    나는 맛있다. 하지만 내 입에 맛있다고 네 입에도 맛있으라는 도리는 없다. 나도 회집에 들어가 일하면서야 회 맛을 알았으니. 너도 회에 맛 들여봐라. 아마 세상에 살아남을 생선이 없을거다. 근데 어떻게 된 놈이 한국에 온지 2년이나 된다는게 회 한번 못먹어봤다냐.
    나는 저으기 불쌍하다는 눈길로 녀석을 바라봤다.
    녀석은 2G폰을 쓰고 있었다. 이른바 할배폰. 치고 받는걸로 만족하고있었다. 이름 저장할줄도, 사진 찍을줄도 몰랐다. 그러니 위챗 같은건 더구나 있을리 없었다. 녀석의 이마엔 돼지주름이 깊게 건너가 있었다. 나는 20세기 할아버지를 보는것 같아 몹시 안쓰러웠다.
    “간병인 일은 할만 하냐? 듣자니 휴일도 없다던데?”
    “그러니까 벌지. 먹여주지 재워주지 밖에 못나가지... 번 돈 고스란히 다 남는거지. 너도 나하고 같이 할래?”
    “너나 많이 벌어라. 근데 너 8살이나 더 많은 여자와 산다면서?”
    “안그러면? 어디 여자가 있어야지...”
    그렇다고 여덟살이나 더 많은 망구씨와 살아야 하겠냐 라는 말이 나오는걸 나는 억지로 참았다.
    “그래도 나한텐 떡이다야.”
    녀석은 술이 셌다. 들면 원샷이다.
    녀석에겐 “5.1”절에 낳았다고 해서 이름이 오일인 아들이 있다. 그 오일이 한돐이 좀 지났을 때 마누라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가출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러다 돌아왔는데, 돌아왔을 적엔 배가 오지독만큼 불러있었다. 인공류산을 시키고 다시 데리고 살았지만, 세상이란게 참으로 요상해서 이 녀자가 또 다른 남자를 만나 가출을 할줄이야. 그제서는 녀석도 어쩔수 없었던지 녀자를 포기하고 먼데로 이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녀석은 사라졌고, 그게 내가 녀석을 본 마지막이였다.
    “그나저나 우리가 청한 회는 왜 아직도 안오른다냐?”
    녀석이 꽁치구이 한점을 집어들며 말했고 나는 그러는 녀석의 눈을 재밋게 바라봤다.
    “너 그 커다란 접시의 것이 회야. 광어, 농어, 참돔, 우럭...”
    “오~ 생것으로 먹는 거네.”
    광어를 가져다 초장에 찍어 먹으며 녀석은 이상하게 얼굴을 찡그렸다.
    “익혀서 줄가?”
    내가 웃었고 녀석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가서 한대 태우고 들어오자.”
    나보다 못지 않은 용고뚜리다. 초중시절에는 벼락수색에 담배가 걸려나와 퇴학을 맞기도 했지.
    DUNHILL을 뽑아 올리는 녀석에게 老巴夺를 내밀었다.
    “그런걸 어떻게 피냐. 이런거 피워야지. 한대 피워봐라. 괜찮을거다.”
    “그건 어데서? 할빈담배 아니야?”
    “다 얻는 수가 있지. 한국담배는 매가리 없어서 못펴.”
    “맞다, 값도 비싸구.”
    “쭝화보다 못하지 않을걸.”
    “맛 좋구나. 나도 좀 얻어주라.”
    “너 천안에 산다 했던가.”
    대답 대신 되물으며 나는 지금이라도 교대로 간다면 빠듯하지만 법정에 들어갈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고 어딘가에 전화를 넣고 있었다.
    “무슨 전화야?”
    “아리따운 과부 한분 모셔오려고 그런다 왜. 오늘은 술이나 실컷 마시자!”
    그러자.
    아리따운 과부란 말에 녀석도 어느새 삼식이처럼 풀어져있었다.
    그래, 껍데기는 가라.
    우리는 술이나 마실란다.
    아리따운 과부는 오라.
    킬킬. 클클.

 

2

    “오빠, 치치할이 누구예요?”
    “치치할이 누구라니?”
    나는 짐짓 자다가 깬 눈을 했고 그녀는 칫 하면서 코바람을 내불었다.
    “오빠 소설속의 그녀 말이예요. ‘동병상련’인가 뭔가...”
    “아~ 그거야 허구지. 넌 소설도 모르고 현실도 모르냐.”
    “허이고, 오빠야. 웃기지 마셔. 그런 말은 남들한테는 통할지 모르나 나한테는 안통합니다. 허구? 허구 좋아하시넹. 칫.”
    “아님 말고.”
    나는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만지며 영보사와 명동칼국수 사이 골목을 바라봤다.
    “예서 잠간 기다려. 한대 피고 올게.”
    종로3가 2번 출구다. 출구에서 10메터 이내는 담배를 못피운다. 여기만 그런게 아니다. 모든 한국이 다 그렇다. 골목에서는 담배를 피워도 괜찮지만,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10만원 벌금이다. 처음 한국에 와서 담배를 피우다 잡혔던 기억이 있는 나는 이 방면에 대해서 도사가 되여있었다.
    골목에 들어서며 동시에 담배를 뽑아 올리는데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섰다.
    “잠간 쉬지 않을래요?”
    보니까, 60살은 넘고 70살은 안돼 보이는 망구씨다. 머리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길렀고 화장은 퍼그나 요염하게 했다. 옷차림새는 가벼웠다.
    혹시? 하고 섰는데, 아니나 다를가 내 앞으로 박카스 한병이 날아왔다. 소문으로만 듣던 박카스할머니가 내 눈앞에 현시된것이다.
    “아니요.”
    100분의 200은 뽕을 넣었을 망구씨의 가슴을 슬쩍 곁눈질해보며 나는 박카스를 밀어냈다.
    “중국총각?”
    나는 어마뜨겁게 박할머니를 바라봤다. 중국총각이면 쭈그랑 젖을 만지며 자야 합니까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는 더 올라오지 못하고 울대 바로 아래에서 뜀박질하고 있었다.
    “2만원이면 거의 공짜수준이구만...”
    어랍쇼.
    나는 담배에 불을 턱 긋고는 지하철입구쪽을 가리켰다. 그새 중절모 한분이 게 앉아있었다.
    “저는 됐구요. 저기 저 어르신한테 가보시죠? 박카스 드시러 온것 같은데.”
    내가 뭐 녀자가 없나. 넘쳐나서 걱정이구만.
    가을날씨치곤 꽤 더운데, 하면서 슬쩍 곁눈질하려니까 이건 서너마디 안짝에 중절모의 손을 잡고 답삭 일어서는 것이였다.
    헐.
    어르신의 옆구리를 부축하고 내 앞을 지날 때 망구씨는 나한테 외눈을 찡긋해보였다. 그러면서 어르신의 귀에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걱정 마요. 약은 무료로 드립니다.”
    바짝 마른 망구씨의 허벅지를 보며 나는 그래도 녀자는 늙어도 돈벌이 구멍수는 있구나 생각했다.
    “몇대 폈길래 이리 늦었어요? 두대 피웠남?”
    “아니. 저기서 박카스할머니를 만났어.”
    “박카스할머니는 또 뭐예요?”
    “그런게 있어. 뭐랑 뭐랑 막 공짜로 주는.”
    “뭐랑뭐랑?”
    “응. 근데 우리 이제 어디로 가지?”
    나는 하마트면 박할머니를 따라 모텔에 들어갈번 했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종각역에 들러서 오빠가 보고싶은 <우미관>을 보고 성북동에 가서 내가 보고싶은 <길상사>를 구경하자 했어요.”
    “아, 그랬지. <우미관>, <길상사>.”
    “오빠.”
    “서두르자. 늦어지겠다.”
    “박카스할머니가 뭐랑뭐랑 공짜로 줘요? 그것도 마악~”
    “넌 몰라도 돼.”
    종각역으로 가자면 종로3가 5번 출구로 나와서 도보로 십분쯤 걸어야 한다. 종각역 12번 출구에서 출구쪽으로 3분 거리 지오다노 옆에 알라딘중고서점이 있다. 우미관은 알라딘중고서점 오른손편에 있다고 들었다.
    우리는 2번 출구로 도로 들어가서 5번 출구쪽을 향해 걸었다. 종로3가역 안에는 특별히 중절모를 쓴 할배들이 웅긋쭝긋 많이 보였는데 그것은 이 지역이 왕년의 신사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로인들에게 주어지는 지하철 무료승차혜택 때문이기도 했다. 따라서 년세 든 로인들은 한낮이 되면 이 곳으로 모여들었고 박카스할머니가 성행한 리유이기도 했다.
    화장품가게앞을 지날 때였다.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어 내가 물었다.
    “재경아, 바디워시는 뭐구 바디로션은 뭐야?”
    “왜요? 사려구요?”
    “아니, 선물 받은 게 있는데 쓸줄을 몰라서.”
    “워시는 세정작용을 하는 거라 그냥 물비누라 생각하면 되구요. 로션은 크림, 목욕후 발라주면 보습효과도 좋고 피부가 촉촉해져요. 근데 어떤 여잔지 오빠를 잘 챙겨주네요. 혹시 치치할?”
    “우루무치다, 왜.”
    “맞네, 흥!”
    “워시는 비누, 로션은 크림. 여자들은 씻고 난 다음에 다 바르는 모양이네?”
    “그렇다고 봐야죠.”
    “그러니까 그 말은 남자들이 로션을 빨아 먹는다 그 뜻이구나. 그치?”
    “그럼요. 립스틱도 빨아 먹구. 잘 하면 마스카라도 빨아 먹을걸요.”
    우미관 옛터는 찾기가 쉬웠다. 관철동 15-1번지. 알라딘중고서점을 나와서 바로 왼손편에 있다.
    우미관은 조선주먹들의 주 활동장소로 주먹황제가 되면 자연스레 우미관에 입성을 했다. 우미관은 1912년에 일본인이 상설영화관으로 세운것으로 알려졌는바, 설립초기의 명칭은 고등연예관이였다가 1915년에 우미관으로 바뀌였다고 한다. 2층 벽돌건물로 돼있었으며 천여명을 수용할수 있었다고 했다. 인기 또한 대단했는바 주변에는 항상 고물장수, 엿장수, 떡장수들이 들끓었다고 했다. 여기에 김두한을 중심으로 종로꼬마 이상욱, 책사 김영태, 구마적, 신마적 엄동욱, 그리고 전설의 주먹 시라소니 이성순 등이 일제치하에 일본야쿠자 오야봉인 하야시와 그의 중간보스인 김동회 패거리와 대립하면서 민족적 자존심을 건 중심지로 유명했던 곳이기도 하다. 1923년과 1959년 두번의 화재로 겨우 그 명맥만 유지하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 유명음식점과 호텔로 거듭나게 되였다.
    우미관HOTEL.
    “근데 난 무슨 이야기인지 한마디도 못알아 듣겠어요. 집만 번듯하게 6층으로 지어놓았구만요.”
    “너 드라마 <야인시대>도 안봤냐?”
    “못봤는데요.”
    “아하~”
    나는 재경이를 참 재미있게 바라봤다. 이런 희한한 놈도 있나...
    “그럼 저 안에 들어가 볼래?”
    “안에 들어가서 뭐 하게요? 들어가 봤자 호텔방인데.”
    “들어가서 마주보며 앉아있지. 대실 2만원이라잖아.”
    “돈도 흔했소.”
    “못본지 1년도 더 됐잖아. 볼 데도 많을것 같구만.”
    “봐봐요. 여기서 실컷 봐요.”
    재경이가 내 코앞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그 바람에 나는 참지 못하고 풉~ 웃어버렸고 나의 침방울은 려과없이 그녀의 얼굴에 날아가 박혔다.
    “으~ 드러워!”
    그녀가 침을 닦으며 나를 찔 빨았다.
    “배도 고픈데 뭐 좀 먹을가.”
    청계천 쪽으로 할머니순대국집이랑 무슨무슨 국수집이랑 보였다.
    몇걸음 들어가니 오른손 편에 자동인출기가 나왔다. 나는 그리로 걸어 들어갔다.
    “낼 친구 장례식이 있는데 부의금 내야 돼서 말이야.”
    “여기선 다 10만원씩 하죠?”
    “상가집은 모르겠어. 다른 데는 다 그렇다고 들었어. 애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지.”
    “조선족들의 허영심이겠죠. 중국에서도 통 크게 노는 건 조선족들이잖아요.”
    재경이는 한국행이 7년만이라고 했다. 한국에 와서 5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지긋지긋하게 돈 벌어다 빚 갚고 나니 다시 한국이란 곳에 오고 싶지 않더란다. 그런데 이번에는 괜찮은 장사거리가 생겨서 어렵게 발걸음을 하게 되였다는 것이다.
    “오빠, 여기 돈이 있어요.”
    보니, 그녀가 내 옆 인출기스탠드우에서 5만원권을 집어들고 있었다.
    “횡재했네요. 우리 이걸로 밥 사먹으면 되겠어요.”
    “안돼.”
    카드와 금방 뽑은 지폐를 지갑에 넣으며 나는 112에 신고전화를 넣었다.
    “여기 관철동 알라딘 부근인데요...”
    신고를 마치고 우리는 자동인출기 밖으로 나왔다.
    “그거 꼭 신고를 해야 돼요?”
    그녀는 주은 돈이 아까운 모양이였다. 대답 대신 나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냥 가도 될걸 가지고...”
    “씨씨티비가 다 지켜보고 있어. 그냥 가면 절도죄에 걸려. 너 한국에 와서 그리 오래 있었다면서 그것도 모르냐.”
    “돈을 주어봤어야 알죠. 5년동안 꼬리 없는 소처럼 일만 했는걸요.”
    한 십분 기다리고 있노라니 순라를 돌던 경찰차가 우리 앞에 와서 섰다.
    푸른 제복을 입은 경찰 두명이 차에서 내렸다.
    경찰은 돈을 줏게 된 경위를 상세히 물었다. 그리곤 나의 신분증과 전화번호를 차례차례 적었다.
    “신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은 돈은 형법 제360조 <점유이탈물횡령죄>에 근거하여 6개월 동안 유실물 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습득자몫으로 법적 처리가 됩니다. 다시 한번 신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찰들은 례절도 바르게 거수경례까지 붙이고 사라졌다. 덕분에 시간은 반시간 넘게 지체되였고 우리는 본의 아니게 형법 제360조와 “점유이탈물횡령죄”라는 것을 배우게 되였다. 습득절차를 거치지 않고 유실물을 횡령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에 처한다.
    “우쒸, 하마터면 5만원 줏고 300만원 벌금할번 했네. 괜히 주었어. 그냥 놓고 갈걸 그랬어요. 밥은 오빠가 사요. 오빠 좋은 노릇만 했으니.”
    “뭐 먹을래?”
    “아무거나 먹어요. 따질게 뭐 있어요. 두시가 다 됐구만.”
    그녀는 난데없는 경찰들의 등장이 저으기 불만스러웠 던것이다. 그녀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자주 확인했다.
    그녀는 길상사를 가보지 못할가봐 걱정을 하는것이다. 내가 먼저번 소설에서 길상사를 멋지게 광고했기때문이라는것을 나는 알고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번 가봤기때문에 두번씩 가고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오늘처럼 늦어버린 시간에는 더구나 그랬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때로는 요렇게 간사한 것이다.
    종각역에서 동대문역까지 세정거장, 동대문역에서 한성대역까지 두정거장, 거기서 02번 마을뻐스로 십여분 이동. 빠듯하겠지만 그런대로 얼추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짜장면 먹자.”
    그녀는 해물짜장, 나는 간짜장. 소주 한병 시키려고 막 주문하는데 그녀가 입속으로 짧은 혀를 굴렸다.
    “이 더운데 무슨 술이예요. 마시지 마요.”
    “이런 밴댕이.”
    “그런데 오빠는 왜 하필이면 짜장면이예요? 짜장면은 연길에도 많은데.”
    “주변에 이것밖에 먹을 게 없어서... 너 혹시 옆에 순대국밥집이랑 보고 그러냐?”
    “그 옆에 국수집도 있던데.”
    “나 한국에 와서 두가지 절대 안먹는 음식이 있다? 뭔줄 알어?”
    “그게 저 순대국밥과 국수라고요?”
    “와~ 머리 좋구나. 하나 말하면 둘 알아듣고.”
    솔직히 그랬다. 연변순대는 돼지피에 비게, 허파, 싸래기 등을 넣고 속을 꽉 채우는 반면에 한국순대는 그 주재료가 당면과 채소다. 돼지피도 들어갔는지 말았는지 보일락 말락이다. 랭면이라는것도 그렇다. 연변랭면은 메밀가루에 전분을 넣어서 누른거라 쫄깃하면서도 탄력이 있는데 한국국수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뭉덩뭉덩하고 육수 또한 연변것처럼 톡 쏘는 맛이 없이 밍밍하고 슴슴하기만 하다. 이러니 가뜩이나 입이 까다로운 내가 어떻게 먹어낼수가 있겠는가.
    “하긴, 오빠의 그 촌스러운 입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3

    친구는 이틀 전에 죽었다. 봄에 살짝 뇌경색에 걸렸다고 했으니, 그 몸으로 이 가을까지 버틴걸 보면 꽤나 악이 있는 놈이다. 무슨 힘이 친구에게 악을 먹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친구는 여름 내내 땡볕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태양을 꼭뒤에 이고서도 살아남았던 친구가 가을 잡아 날씨가 서늘해져 좀 살만해지자 그만 덜컥 죽어버렸다. 29층 꼭대기, 세멘트 작업을 하다가 말이다. 병명은 뇌출혈이였다.
    장례식장은 동인천에 있었다. 나는 그날 출근이였으므로 장례식에 가서 조문이나 하고 인차 되짚어와야 했다. 회집에 취직하여 출근한지 이제 겨우 나흘밖에 안되였던것이다. 주방장인 내가 빠지면 카운터에 있던 사장이 들어와 대신 주방을 봐야 하는데 사장은 내가 쉬는 일요일에만 주방을 맡기로 계약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요일은 어제였고 나는 친구의 부음을 어제 재경이를 만나기 직전에 들었다.
    일기예보에는 비 내린다는 소식이 없었는데 서울의 하늘엔 가랑비가 을씨년스럽게 내리고있었다. 동인천 하늘에도 비가 내리고있을가. 나는 비속에 우두커니 서서 친구 와이프 그리고 몇몇 친구들에게 일찍 갔다가 인차 와야 한다는 사정과 장례식 뒤풀이에 참석을 못해 미안하다는 사실을 한데 묶어 전했다. 그렇게라도 갔다 와야 죽은 친구에 대한 례의일 것 같아서였다.
    내가 일찍 가서인지 장례식장에 조문객들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친구 와이프는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많이 울었는 모양이다. 한쪽 얼굴이 핼쓱하게 야위여있었다.
    “오셨어요?”
    그러면서 아미를 숙여 고개를 꺾어보이는데 유난히 흰 목덜미가 눈에 청초하게 안겨왔다. 아마도 머리에 꽂은 하얀 댕기때문이 아닌가싶었다.
    “자식. 뭐가 그리 급해서 제수씨를 혼자 두고 먼저 갔는지...”
    나는 친구 와이프의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재경이였다.
    “응, 재경아, 무슨 일이야?”
    “나 지금 언니한테 가는 길. 오빤 어디예요?”
    “나야 오늘 장례식장에 온다 했잖아.”
    “아, 그랬지, 정말. 그런데 오빠.”
    “응, 말해.”
    “어제 길상사에서 돌아오다 이상한 일이 발생했어요.”
    “무슨 일?”
    “지하철에서 내려 친구 집 가려고 택시 탔는데 있잖아요. 택시운전수가 교포인가구 묻겠지요. 그래서 옳다고 그랬더니, 내 손이 이쁘대요. 잡아보고 싶대요. 이런 게 성추행이 아닌가요? 어제처럼 <112>에 신고해야 하는거 아닌가구요?”
    “그래서 손은 잡았구?”
    “내가 바본가요? 족제비 같은 령감쟁이한테 손목 잡히게?”
    “그럼 됐네 뭐. 고만한 일에 무슨 신고씩이나. 그럴 땐 있잖아, 내 발이 손보다 훨씬 더 이쁘니 발이나 실컷 잡아 보시오, 해야지.”
    “푸하하하!”
    갑자기 들려오는 락수물 쏟아지는 듯한 웃음소리에 나는 흠칫 놀라며 친구 와이프를 바라봤다. 재경이가 핸드폰 저쪽에서 큰소리로 깔깔깔 웃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친구 와이프는 나의 전화에 별관심이 없어 보였다.
    “알았어요, 오빠. 다음부터는 그럴게요. 발을 잘 씻고 다녀야겠네요. 재밌어요, 오빠. 일보세요.”
    그러면서 재경이는 또 한번 핸드폰에 금이 가도록 웃어 제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입가에 느긋이 웃음을 흘리고 있었는데, 말도 안되는 상황이였다. 친구 장례식장에 와서 친구 와이프 속살이나 훔쳐보고 어린 계집애와 노닥거리고 있었다니...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리해가 안될 일이였다.
    “그래 춘식이 이놈은 보험이나 들었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건 생각도 할줄 몰라요.”
    “앞으로 어쩔려구? 그냥 여기서 살려구?”
    “간 사람은 가고 산 사람은 살아야죠. 남은 인생이 얼만데... 나도 다른 사람 만나야죠.”
    다른 사람?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친구가 아직 떠나지도 않은 이 마당에?!
    아이러니라도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수 없다. 나는 친구 와이프의 육덕진 엉덩이와 가슴을 떠올리며 살아생전 저 해반주그레한 얼굴 때문에 항상 시름을 못 놓았을 친구 녀석을 떠올렸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래. 앞으로 종종 연락하고.”
    나는 간단한 작별인사와 함께 부의금을 전달하고는 그 자리를 떴다.
    가다가 돌아보니 친구 와이프는 나를 보내는 건지 아니면 다른 누구를 기다리는 건지 그 자리에 그냥 서있었다.
    나는 얼결에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래놓고선 나도 모를 웃음을 쿡 웃어버렸다.
   
    그렇게 급히 돌아왔는데도 20분이나 지각이였다. 사장과는 미리 전화가 있었으므로 사장은 나를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미스 유는 바닥청소를 끝내고 의자들을 정리하고 있었고 찬모는 주방에서 한창 바쁜 모양이였다.
    나는 2층에 올라가서 얼른 옷부터 갈아입었다. 아침에 비 오던 날씨답지 않게 비는 뚝 그쳐있었다.
    “바닷소리”라는 이 회집은 구조가 1, 2층으로 돼있었다. 점심에는 보통 식사하러 오는 손님들뿐이므로 주로 1층만 사용하고 2층은 저녁에 예약을 많이 받았다. 손님이 없을 때에는 2층이 비어 있을 때도 있다고 한다. 2층이 조용했기에 나는 이 곳에 온 첫날부터 여기서 옷을 갈아입었다.
    가운을 걸치고 막 주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사장이 불렀다.
    “자네 보건증이 있는가?”
    “있는데, 잃어버린 같은데요?”
    “그럼 내일 나하고 같이 가서 떼오자구. 식약청놈들한테 걸리면 나만 벌금 문다구.”
    “그럴것 없이 제가 내일 출근할 때 한장 다시 뽑아 올게요. 3,000원이면 뽑는데요 뭘.”
    “자네 집이 어디라 했지. 양재동? 도곡동?”
    “서초구보건소에 가야 합니다.”
    “멀구만. 그럼 그렇게 하자구.”
    사장은 50대 초반으로 성은 박씨였다. 회집을 경영한지는 7년차에 난다고 했다. 중국사람들이 이곳 대림동을 점령하면서 어지간한 한국인 가게는 다 문을 닫고 떠나는데 아직도 버티고있는걸 보면 용한 재주가 있다고 생각되였다. 중국사람들은 습성상 회집을 잘 찾지 않는다. 회집에 오는 손님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한국사람들이다. 그만큼 박사장은 단골을 많이 보유해두고 있다는 뜻일게다.
    대충 아점을 먹고 손님들을 한 고패 치르고 나니 얼추 쉬는 시간이 되였다.
    식당에서는 보통 오후 세시부터 다섯시까지 영업을 하지 않는다. 두시간 휴식하면서 에너지를 보충받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리듬이 깨져서 배겨나지를 못한다. 이 시간에는 손님이 와도 받아주지를 않는다. 아예 문을 닫아거는 가게들도 많다.
    쉬는 시간에는 잠을 잔다. 잠이 오지 않더라도 누워서 눈을 붙인다. 2층에는 올라가지 않고 다들 1층에서 방석을 깔거나 덮고 잔다.
    “어이, 실장. 자네는 잘텐가? 나는 미스 유와 함께 시장을 좀 봐와야겠네.”
    “아니오. 저도 지금 나가겠습니다. 저 아래 대림문고에 좀 다녀오려구요.”
    미스 유는 사장의 말을 빌면 40대 중반으로 한국사람인데 이 가게에서 일한지 6년이 된다고 했다. 지배인격이니 모를게 있으면 미스 유와 직접 상의해도 된다는것이였다. 나흘동안 같이 일을 해보니 그럴만도 했다. 홀에서부터 주방, 카운터에서 시장까지 모르는 게 없었다. 홀에서는 서빙을 따로 쓰지 않았는데 일손이 모자라면 사장이 집에 전화를 넣어 마누라를 불러냈다. 그래도 모자라면 아들을 불러내는 것이였다. 될수록 사람을 쓰지 않고 인건비를 줄이자는 것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는 가게 밖에 있었으므로 나는 밖으로 나와서 올라갔다. 올라가서 옷을 갈아입고 지갑을 챙긴 다음 천천히 대림문고 쪽으로 걸어갔다. 며칠 전에 주문을 넣어둔 책이 도착했다는 메세지가 아점을 먹는데 왔던 것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 했다>와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회집으로 돌아와서 가게로 들어갈가 하다가 2층으로 올라갔다. 괜히 잠든 찬모가 깰가봐 서이다. 1층은 온돌방 하나에 식탁 여섯개이지만 2층은 통온돌방에 네개의 식탁이 제각각 널려있다.
    화장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문을 열었던 나는 그만 몸이 턱 굳어버렸다. 안에 별개의 장면이 펼쳐졌던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기까지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시장 보러 간다던 박사장과 미스 유가 온돌우에서 살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급히 문을 닫고 아래로 내려왔다. 회집 맞은켠 나무그늘아래에 서서 담배를 붙여 물었으니 놀란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문을 급히 닫은것 같지만 그게 아닌 모양이였다. 내 머리 속에 그들의 행동이나 자세가 상세히, 그것도 또렷하게 기억돼있는 것을 보면. 사장은 옷을 홀딱 벗고 나를 등진 반면 미스 유는 나와 정면이였다. 미스 유는 웃옷은 벗지 않고 있었는데 젖가슴은 훌렁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얼굴을 들었는지 나와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내딴에는 안 보려고 했겠는데 어떻게 나는 미스 유의 음부까지도 다 기억하고 있었다.
    련거퍼 담배 세개비를 피웠지만 도대체 이 상황을 어찌 수습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박사장은 개처럼 헐떡거리느라 뒤에 있는 나를 보지 못해서 괜찮지만 미스 유는 볼걸 다 보고 눈까지 마주쳤으니 이런 빼도 박도 못할 일이 또 어데 있겠는가.
    진퇴량난에 빠진 나는 온 오후 주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저녁 먹을 때에도 미스 유가 나타나기 전에 먼저 후다닥 먹어버리고 일어났다.
    일할 때에도 그랬다. 전에는 손님들 주문이 들어오면 필지 찍기전에 소리를 치던것이 소리도 치지 않았고 주문한 회를 내보낼 때에도 내 얼굴이 안보일 때 잽싸게 빼가는것이였다. 그러다가도 혹시 눈길이 부딪치면 바로 눈을 아래로 깔고 불에라도 덴듯 꼬리를 뺐다. 그녀로서는 모를 사내한테 자기의 알몸을 그것도 대낮에 적라라한 성행위를 다 보여주었다는 것이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건 나도 같았다. 그녀를 보면 그녀의 알몸이 생각났고 도망치는 엉덩이를 보면 희멀쑥한 허벅지가 떠올랐다.
    결국 저녁 퇴근시간도 안됐는데 사장이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온 얼굴에 난색을 퍼올리고 담배를 풀풀 피워대던 사장이 드디여 결심한듯 어렵게 말을 내놓았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실장, 나도 자네가 마음에 들어서 오래도록 같이 일해보자 했는데 하필이면 이런 일이... 미스 유가 도저히 안되겠다는데 어쩌겠는가. 미스 유 나하고 6년 살았다구. 자네 똑똑한 사람이니까 알겠지. 보지 말아야 할것을 봤어.”
    “알겠습니다. 제가 나갈게요. 대신 계약대로 위약금을 주셔야 합니다.”
    “좋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 계좌번호를 적어주게. 위약금에 일한 값에 내 넉넉히 넣어주겠네. 미안하네.”
    “다음부턴 문단속 좀 하고 하시지요.”
    본것이 죄다. 한것은 죄가 안된다. 한 놈은 죄가 없고 본 놈에게 죄가 되는 더러워도 뱉을 침조차 없는 세상을 나는 지금 살고 있는것이다.
    투웩투웩~
    간통죄가 폐지된 이래 매년 불륜률이 20%씩 증가하지만 리혼률은 오히려 줄어드는 형국이라니 이 아니 요상한가.
    간통죄는, 간통죄 조항이 생긴지 110년만인 2015년 2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재판관 9명중 7명의 일치로 형법 제241조 “간통을 처벌한다”는 조항을 위헌이라고 결정하고 선고하면서 정식 폐지됐다.
    덕분에 대한민국이란 이 나라의 5,000만 사랑스런 국민은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가지게 되였고, 성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존중받는 시대가 되였다.

 

4

    그날 밤, 나는 어디서 술을 먹고 취했는지 영동2교옆 은행나무아래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세우고 택시운전수와 실랑이하고 있었다.
    “어이, 형씨. 형씨는 연애두 안 함둥? 이 좋은 날에, 이 기쁜 날에, 은행나무잎이 노랗게 휘날리는 날에 말입꾸마...”
    “어이, 형씨. 형씨는 간통죄도 폐지된 이 나라에서 씹질도 안 하구 돈 벌어서 엇다 쓰자구 그램둥?”
    “어이 형씨, 저 흩날리는 낙엽 좀 봅소. 참말로 사랑스럽지 않슴둥...”

                      2019.1.8
                 서울시 강남 어느 하늘아래에서.

 

2.  수캐



    “우리 빨리 리혼하자. 응?”
    벌써 이게 며칠째인지 모른다. 그녀 미금이를 만나고 돌아와서, 그날 밤 바로 던진 말이였으니 열흘은 넘어도 착실히 넘었다. 입에 부스럼이 나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놈의 녀편네는 바위라도 삼켰는지 끄떡도 하지 않는다.
    “싫다는걸 억지로 붙잡고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나? 빈껍데기가 아니겠나. 빨리 리혼해주라, 응? 집이고 뭐고 다 준다고 했잖아! 난 그냥 리혼만 해주면 된다고!”
    미금이와는 반년전에 만났고, 우린 둘 다 리혼하고 재결합하기로 약속을 했다. 우리는 서로의 사랑에 대해 절대 믿어 의심치 않았고 굳이 확인할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하고있었다. 나는 미금이와 살수만 있다면 지금 이대로 죽는다 해도 좋았다.
    “내 마음은 이미 널 떠났다고! 니가 싫어졌다고!! 그러니 리혼 좀 해주라고!!! 이놈의 녀편네야!!!”
    나는 악에 받쳐 소리쳤다. 이미 수백번도 더 쏟아놓은 말이다. 수백번? 아니, 수천번을 토해내면 어떠하랴. 입에 칼을 물고 길길이 뛰면 어떠하랴. 마누라의 동의만 이끌어내면 그것으로 내 목적을 달성하는게 아니겠는가. 나는 화약에 불을 달고 작두우를 걸으라 해도 걸을것 같은 심정이였다.
    해도 이놈의 녀편네는 귀구멍에 말뚝을 틀어박았는지 내 쪽을 돌아다 보지도 않았고 코바람 한번 힝 내불지 않았다. 정녕 태산이면 저럴가싶었다.
    “집에 불을 확 질러버려? 가장집물을 다 부숴버려?!”
    내 목소리가 어마지두 컸던것일가. 아니면 집에 불 지르고 물건 부숴버린다는 그 소리가 의외였던것일가. 그것도 아니면 저 새끼가 드디여 미쳐가는구나... 이거였을가. 안해가 급기야는 빨래를 개키던 손을 놓고 나를 멀뚱히 쳐다봤다.
    그러나 내 잘난 상판때기에서 별다른 이상한걸 발견하지 못했는지 3초도 안돼서 이내 자신의 얼굴을 돌려가는것이였다. 아마도 내 우유부단한 성격을 알고 니까짓게 가장집물을 부숴버려? 손에 불씨를 쥐여 줘도 불을 못지를 놈이? 흥! 이랬을지도 모른다.
    그랬다. 안해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수 있었다. 안해의 눈에 비친 나는 그냥 아무것도 할줄 모르는 무지렁이에 지나지 않았다. 시걱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밤이 되면 안해 품을 파고드는 삼식이. 처치 곤난한 쓰레기. 버리기에는 아깝고, 그래도 제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화장실의 <뚫어뻥> 같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였을것이다.
    그래서 결혼후 아이가 돐이 지나자 안해는 세집생활을 청산하고 새집을 마련하는 길은 한국행밖에 없다며 나보고 집에서 아이나 보면서 2, 3년만 버텨달라고 했을 때 나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고개를 주억거려주었다.
    물론 나는 안해의 말씀대로 자동차운전학교의 월급도 얼마 안되는 코치직도 과감히 버렸고, 열심히 아이를 보고 집을 지키면서 외박 한번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안해가 돌아왔을 때에는 은행대출이지만 집도 그럴듯 한걸로 한채 갖추게 되였다. 당연히 안해의 공로였고 나의 노력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헌데 안해가 돌아온지 얼마 안되여 내가 미금이를 만나게 될줄이야.
    미금이를 만나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보같이 살아왔는지를 다시다시 깨달아야 했다. 남자는 나가서 돈을 벌고 마누라한테 인정을 받아야 행복한것인데 나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으니 천치라도 이런 바보천치가 없었다. 이제라도 내가 남자로서 우뚝 서는 길은 마누라와 리혼을 하고 미금이와 재혼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마누라의 눈에는 내가 천년 가도 병신에 머저리를 벗어나지 못할 터이니까.
    처음에 안해는 내가 리혼 말을 꺼내자 이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냐며 펄쩍 뛰였었다. 리산가족을 만들면서까지 자기가 한국에 가서 돈을 번게 이따위 결말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면서 리혼은 절대 안된다고 천정이 낮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미금이가 있는걸 알고서는 금새 태도를 바꿨다. 안해는 자기로서의 도리를 내세우며 나를 구슬리기 시작한것이다.
    즉, 자기도 남자를 안다. 자기가 한국에 나가있는 3년동안 내가 남자로서 얼마나 녀자가 그리웠겠는가. 자기도 한국에서 그런 상황을 수태 보아왔다. 녀자들도 외로워서 남자를 찾더라. 물론 자기는 그러지 않았지만. 한국에 나가있는 남자들은 거의 200%가 녀자를 찾고 또 같이 산다. 그러니까 자기는 나를 십분 리해한다. 남자로서 녀자를 만날수도 있다. 잠시 정분이 날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니다. 자기 보건대 미금이는 나를 사랑하지도 않거니와 같이 살 생각조차도 없다. 그냥 잠간 놀아본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것을 사랑으로 오인하고있는것이다. 정신 차려라. 이건 사랑이 아니라 스쳐 지나는 바람이다. 더 웃기고 비참한 꼴을 당하기전에 어서 말을 거둬들여라.
    사랑? 웃기지 마라. 사랑이 어디에 있냐. 오늘 있다가 래일 없어지는게 사랑이 아니더냐. 나이 잔뜩 먹은것들이 사랑타령이나 하고... 삶아놓은 놀가지 대가리가 웃겠다. 설사 사랑이 있다고 치자. 사랑이 밥을 먹여준다더냐. 그 녀자 열흘도 못살고 나하고 헤여지고 말것이다. 아니면 자기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
    정 그 녀자와 죽고 못살겠으면 한쪽 눈을 감아줄수도 있다. 잠시잠간 나가서 즐기고 들어와도 된다. 그리고 자기가 그토록 싫거든 각방 쓰자. 요즘 현실에 부부 각방 쓰는건 이상할것도 없다. 다들 그렇게들 살고있다. 무늬만 부부인 윈도우 부부들이 주위에 널렸다. 우리도 그렇게 살면 된다.
    굳이 리혼까지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녀자니까 하는 말인데, 녀자 만나봤자 거기서 거기다. 벗겨봤자 그 몸이 그 몸, 배 째보면 똥으로 꽉 차있을것이다. 조강지처 함부로 버리는게 아니다.
    “그래서, 리혼을 못해준다고? 바람 피는걸 봐줄지언정 리혼은 못해준다 이거야? 그런거야?!”
    나는 마누라의 바위 같은 얼굴앞에 내 일그러져있을 상판때기를 바싹 갖다 댔다. 생각 같아서는 한대 팍 쥐여박고싶다만은 그러면 일이 더 버그러질것 같아 그럴수도 없었다.
    역시 안해는 드팀이 없었다. 천년만년 비바람속에 견뎌온 바위 같았다.
    말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뇌가 급속도로 돌아갔다. 다음 순간 나는 용수철마냥 튕겨 일어났다.
    “좋다! 내가 나가주마! 그래도 안해주나 어디 두고 보자!!!”
    나는 내 방에 들어가서 손에 잡히는대로 옷 몇견지 챙겨들고 나왔다. 그랬어도 안해는 나를 잡기는커녕 개키던 빨래만 그냥 개키고있었다.
    나는 문을
    쾅,
    떨어져 나가도록 닫았다.
    “두고 보자고!!!”
    안해 몰래 충당해두었던 비상금을 털어 세집을 맡으며 나는 남자들은 이래서 비상금이란게 있어야 되는구나 머리를 끄덕였다. 그게 없었더라면 어쩔번 했냐 하며 비상금을 모아두었던 자신이 제법 대견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미금이한테 문자를 넣었더니 남의 눈에 띄여 좋을 일이 없단다. 인내심 가지고 기다리잔다.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베개를 안고 자라, 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귀엽고 깜찍한 회신이 왔다. 그것으로 나는 족했다. 암~ 그럼그럼. 아무렴 그래야지. 암~ 암~
    이튿날부터 나는 안해한테 하루에도 수십통씩 리혼메시지를 넣으면서 닥달했다. 하지만 돌아오는건 무반응에 따른 무시일뿐 아무것도 없었다. 전화를 해봤더니 차단했는지 걸려지지도 않는다. 무시라도 이런 개무시가 어데 또 있겠는가.
    화가 났지만 화를 낼수도 없는 일. 도깨짐승 같으면 목을 매서 끌고라도 가겠건만 이건 사람의 새끼가 아닌가. 죽여버릴수도 없고 환장할 노릇이다.
    나는 머리를 싸쥐고 술을 물처럼 들이마셨다. 여기서 포기하면 내 인생은 그야말로 개털 되고 마는것이다. 킹크랩도 맛있게 먹자면 그만한 값을 지불해야 하고, 또 그에 따른 시간과 가시에 찔리는 위험도 감수해야 할게 아니겠는가.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입술을 술로 추기며 나는 매일매일 리혼메시지를 안해에게 날리는 일만 반복했다. 중이 돌부처에게 배알하듯. 크리스찬이 하나님께 기도하듯. 응답 없을줄 알면서도 말이다.
    그 사이 나는 미금이를 네번인가 만났고 미금이는 조급정서는 몸에 안좋다며 내 푹 꺼져들어간 배를 손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두달이란 시간은 사정이란것을 봐줄줄을 몰라서 내 이마빡에 기어코 주름 한줄 더 남기며 지나갔다.
    그제서는 나도 더 이상 참을수가 없었다. 무슨 일인가라도 저질러야 할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가뜩이나 많지 않은 머리가 다 빠져버려 대머리가 될것 같았다. 몸무게도 7키로나 빠져버렸다.
    점심이였다. 어딘가로 가려고 집문을 나서는 안해를 나는 다짜고짜 붙잡았다.
    “야, 할 말이 있어. 십분만 시간을 줘. 아니 오분이면 돼. 아아니, 삼분. 이분.”
    안해는 이 인간은 누구지? 하는듯한 눈빛으로 나를 뻔히 바라보고 섰다. 그동안에 벌써 잊은건 아닐텐데 말이다.
    “미금이가 임신했어. 진짜야. 벌써 7주 됐어. 거짓말이 아니야.”
    안해의 눈섭이 움찔 하는게 보였다.
    “죄 없는 애를 애비 없는 자식으로 만들수는 없잖아? 안그래, 여보야?”
    “가지가지 한다. 꼭 그렇게라도 하고싶냐.”
    안해가 깊이 한숨을 내쉬였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일별하고는
    “... 조금만 기다려.”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녀자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할 때는 한시간이 마치 일초처럼 흘러간다, 그러나 뜨거운 난로우에 앉아있을 때는 일초가 마치 한시간처럼 느껴진다. 이 말을 누가 했던가?
    아리스토텔레스?
    아인슈타인?
    어느 아氏가 했던간에 상관없다. 나는 드디여 뜨거운 난로를 벗어나게 된것이다. 나는 어렵게 결정을 내려준 안해가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다. 남의 눈만 아니라면 와락 안아주고싶었다.
    리혼하는데는 반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서로 감정이 맞질 않는다. 집은 녀자에게 준다. 아이의 부양비는 아이가 자립할 때까지 매달 천원씩 준다. 이게 다였다. 이렇게 간단한걸 그렇게 오래 끌다니!
    민정국을 빠져나오며 나는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다 담아서 안해에게 인사했다.
    “내 꼭 잘 살게! 잘 사는걸로 오늘 이 은혜에 보답할게!”
    안해는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세우더니 간다는 소리도 없이 가버렸다.
    나는 택시가 사라지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미금이한테 리혼증 사진부터 찍어보냈다.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적어보냈다.
    “미금아, 나 해냈어! 드디여 리혼했다고!! 이 좋은 날 축하파티 해야지? 문자 보는대로 당장 달려와! 오늘 우리 기념일이야. 와인에 킹크랩 먹자! 넌 손 대지 마. 내 다 발라줄게!”
    하지만 내 사랑 미금이는 달려오기는커녕 답신도 없었고 이틀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사흘뒤에야 그녀는 철남 어느 으슥한 골목으로 나를 불러냈다. 저녁이였다.
    “무슨 일이야? 왜 답이 없었는데?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킹크랩을 열번도 더 덥혔다구! 전화를 하지 말라고 해서 전화도 못하고 말야.”
    그녀를 보자 나는 화가 나서 따지기부터 했다.
    “앉아봐.”
    미금이가 턱짓으로 걸상을 가리켰다. 우리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맞주 앉았다. 조선말로 죽어라고 욕해도 못알아듣는 한족이 운영하는 국밥집이였다.
    “말해봐, 대체 무슨 일인데?”
    “우선 뭘 좀 시켜. 먹으면서 얘기해.”
    “지금 먹는게 중요하니? 나 리혼했다고! 넌 기쁘지도 않아? 우리 결혼할수 있다고!”
    “흥분하지 마.”
    “내가 흥분 안할수 있어? 어떻게 한 리혼인데. 난 너와 결혼하기 위해 거러지가 되는것까지 감수했다고!”
    “누가 거러지가 되라고 했어? 난 그렇게 말한적이 없어!”
    갑자기 미금의 입에서 쇠소리가 울렸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의 입을 바라보았다. 항상 다정다감하고 온화하던 미금이의 입에 쇠쪼각이 물려있었다니.
    “미안해. 내 목소리가 높았네.”
    미금이의 목소리가 다시 차분해졌다.
    “나 요 두달사이 고민을 많이 해보았어. 니가 집을 나와서 세집을 잡은 이후로 나는 한번도 제대로 자본적이 없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현실적이 아닌것 같았어.”
    미금이는 나와 동갑이였다.
    “현실적? 현실적이란게 뭔데?”
   “우선 사람이 살아가자면 먹고 살아야 할거잖아, 근데 보다시피 너는 알거지야. 일전한푼 없이 나왔어. 게다가 직업도 없지. 어떻게 날 먹여 살릴건데?”
    그 말은 옳았다. 나는 현재 직업이 없다. 안해가 한국에 나가면서 나는 자동차운전학교 코치직을 때려쳤던것이다. 그리고 집에 들어앉았던것이다. 그렇지만 직업이란건 다시 구하면 되는게 아닌가.
    “너 설마 나한테 빈대 붙으려는건 아니겠지?”
    “뭐, 빈대? 내가 그럴 사람 같아 보여?”
    그녀로선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었다. 그녀는 꽤 큰 병원의 간호장이였고 월급도 어지간히 높았다. 그러니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건 이상할게 없었다.
    “니가 그렇게 생각했다고는 믿지 않아. 그러니 내 말 곡해하지 말어. 하지만 나로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어. 나까지 리혼하고 빈털털이가 되여 나오면 우리 어느 천년에 집을 갖추고 차를 산단 말이야. 그리고 내 딸은 류학까지 보내야 하는데 그 뒤바라지는 어떻게 하고? 이 모든걸 생각하니 나는 차마 신랑한테 리혼하잔 말을 못하겠었어.”
    “그... 그럼, 너... 너 나를, 갖고... 갖고 논거였어?”
    나는 사맥이 탁 풀리는 감을 느끼며 잔등을 걸상등받이에 기댔다.
    미금이가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옆으로 고개를 돌려갔다.
    “아니, 아니야. 내가 널 좋아했던건 진심이였어. 너하고 결혼하겠다고 말한것도 진심이였어. 난 너하고 같이 살고싶었어. 내 신랑이 비록 직업은 번드르르하다만 너처럼 날 잘해주지는 못했어. 이것만은 널 속이지 않아. 절대로.”
    “야, 이 미친 년아. 그러면 내가 리혼하기전에 언녕 말주었어야지! 이제 나보구 어떡하라구? 이제 난 어떡하라구!”
    “미안해. 나도 일이 이렇게 커질줄은 생각 못했어. 설마 니가 리혼하려 할줄은... 근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실적이 아니잖아?”
    “현실적? 이 개쌍년아, 그럼 현실적이란게 뭔데? 어떤게 현실적인건데?!”
    “애엄마한테로 돌아가.”
    “악!!!”
    나는 그만 리지를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그녀의 얼굴에 물을 끼얹고 상을 뒤엎었으며 식당을 뛰쳐나왔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며칠후, 나는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안해앞에 무릎을 꿇고서 있는 눈물 없는 코물 다 쥐여짜고있었다. 면도하지 않은 얼굴에 최대한 가련상을 지어보이며 소파에 앉은 안해의 종아리를 그러안았다.
    “왜 그 미금인가 하는 죽고 못살겠다던 사랑이 결혼해주지 않으시던?”
    “여보야, 그년이 날 갖고 놀았어. 내가 거렁뱅이여서 같이 살수 없대. 엉엉.”
    나는 더 짜낼 무엇이 없는게 한스러웠다.
    “여보야, 내가 미쳤어. 헤까닥해서 미친 년도 알아보지 못했어. 이렇게 좋은 여보야를 두고 그런 몹쓸 짓을 하다니! 그년이 임신했다는것도 다 거짓말이야. 리혼하기 위해 꽝포를 분거야. 나 다신 안그럴게. 한번만 봐주라. 응? 그년의 감언리설에 깜빡 속았어.”
    “...”
    “난들 그런 년인줄 어떻게 알았겠어. 원숭이도 나무우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나 여보야가 없는동안 잘했잖아. 애도 잘 보고 집도 잘 지키고 외박 한번 안하고. 여보야도 알잖아. 그니까 이번 한번만 용서해주라?”
    “...”
    “애를 봐서라도 우리 이러면 안되지. 모든 벌은 내가 달갑게 받을게. 여보야는 마음이 곱잖아. 마음이 너르잖아. 내 다신 안그럴게. 다시 그럴 땐 날 죽여도 좋아. 응? 여보야.”
    “다시? 또?”
    “아니. 다시가 아니야. 절대 다시는 없어. 여보야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절대 이런 일은 반복, 반복하지 않는다는거야. 믿어줘. 그냥 집 나갔던 개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하면 안될가? 여보야, 애가 불쌍하지도 않아?”
    “개?”
    “응. 개!”
    비루먹은 개면 이보다 더 처참할가.
    나는 안해의 허벅지에 얼굴을 와락 파묻었고 안해는 그러는 나의 머리를 한번 내리 쓸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나 혼자 처리할수 없지...”
    “어디다 전화하는거야?”
    “오빠들한테 전화했어. 기다려봐. 인차 올거야.”
    “처, 처남들?”
    나는 우락부락한 처남들을 떠올렸고 안해의 무릎을 훌 놓으면서 한옆에 곱다라니 떨어져 앉았다.
    이제 나는 맞아 죽을 각오를 해야 했다. 한때 주먹을 꽤 날렸던 처남들이 이 일을 알면 날 가만두지 않을것은 불 보듯 뻔했다. 나는 간당간당하는 마음을 억지로 추스르며 눈을 질끔 감았다.
    “목이나 추겨. 어쩌면 송장처럼 싹 쪄먹게 됐냐.”
    안해가 물을 떠다주었다. 나는 감지덕지 빌빌거리며 물을 마셨다.
    미구하여 처남들이 들이닥쳤고 안해에게도 시말의 자초지종을 듣더니 큰처남이 대뜸 주먹을 뻗어왔다.
    “그래서 말해봐. 이새끼를 어째달라고? 죽여달라고?!”
    큰처남이 안해를 보고 물었고 작은 처남은 주방에 달려가더니 식칼을 들고 왔다.
    “걔한테 뭘 물을게 있소, 형님. 이놈이 앞으로 남자구실을 못하게 아예 거시기를 뿍 뽑아버립시다!”
    “여보야!”
    그 소리에 나는 혼겁하여 화닥닥 뛰여일어나 안해의 등뒤에 딱 붙었다.
    “나 좀 살려줘. 여보야, 이러는건 아니잖아. 말로 좋게 해결해야지. 살려줭...”
    “입 다물어.”
    안해가 나를 꾸짖더니 두 오빠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는 무슨 결심을 내린듯 옷매무시를 가다듬더니 조용히 말했다.
    “오빠들, 들으시오. 이 사람은 내 사람이오. 어차피 나와 살을 섞고 살았고 애도 낳았소. 일이 어떻게 되였던간에 내 선택이였던건 분명하오. 그러니 나는 이 사람을 책임져야겠소. 내가 오늘 오빠들을 부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오늘 이 일에 대해서 증거를 서달라는거요. 이 사람이 다시 사람으로서 못할 짓을 할 시 그땐 내가 이 사람을 책임 못진다는거요. 그땐 오빠들이 이 사람을 껍질을 발라 죽이던 칼로 거시기를 뽑아 죽이던 마음대로 하시오.”
    “여보야, 무슨 말을 그리 무섭게...”
    “뚝!”
    안해가 나를 꾹 눌렀다. 다음, 나를 자기 앞으로 불렀다.
    “당신 오늘부터 6개월간이 집을 한발자국도 못나간다. 하루에 세번 방바닥을 닦아야 하고 설거지는 몽땅 당신이 책임진다. 용돈은 한푼도 없고 전화통화는 오직 나하고만 해야 한다. 이 집에서 내 말은 곧 법이다. 이것을 어길시 나는 당신을 오빠들한테 맡길것이다.”
    “알았어. 그대로 할게. 그대로 할게. 나 열심히 살거야. 방바닥도 하루에 여섯번씩 닦을게.”
    “여섯번 닦을것까진 없고...”
    안해가 흠 하고 일어서더니 달력 한장 떼여다가 내 앞에 놓았다.
    “그 뒤면에 각서를 써.”
    “각서?”
    “그럼 이대로 넘어가려구?”
    “아니 쓸게. 쓸게.”
    나는 안해가 건네주는 매직을 손에 잡고 잠간 생각해보고는 달력 뒤면에 될수록 커다랗게 써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개다
    다시 이런 일이 생길시 나는
    미친 개, 똥개, 삽살개보다 못한 잡종개이고
    백번 맞아 죽어도 싸다

    그리고 밑에 나의 이름을 박았다.
    “고마워, 여보야. 진짜 고마워!”
    나는 이시각 안해가 그렇게 거룩해 보일수가 없었다. 맑스·레닌보다도 더 위대해 보였다.
    “고마울게 없어. 이건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니까.”
    안해가 급기야는 눈에 물기를 번들거렸고 나는 이건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야를 복창했다.
    “솔잎 먹고 살자. 송충이는 다른 잎을 먹으면 죽어!”
    큰처남이 나의 뒤통수를 툭 소리나게 쳤고 나는 그 말도 옳다 오늘부터 안해만 먹고 살자 복창했다.
    “제 주제를 알아야지!”
    작은 처남도 가만있지를 않고 식칼로 내 허벅지 안쪽을 툭 건드렸다. 나는 저 말은 소크라테스인지 말크라테스인지 하는 사람의 말인데 하면서 그 말도 복창했다.
    다음 나는 아주 경건한 심정으로 각서를 거실에서 가장 눈에 띄이는 곳에, 가장 잘 보이는 정중앙에 턱하니 붙여놓았다.
    개라는 글자가 유표하게 눈에 들어왔다.
    드디여 나는 한시름을 놓았다.

                 2018.12 도곡동에서

 

 3. 참 고운 발
 


상편


    그녀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듯 슬슬 뒤걸음질 치고있었다.
    이게 누군가!
    그리고 이게 얼마만이란 말인가?!
    "너 정말 계, 계, 계경숙이야?"
    초중 2학년때 보고 못보았으니 30년도 넘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럼. 경숙이가 맞지. 나 계경숙 맞아. 호호호."
    "<5·7농장>의 그..."
    "그러엄! 룡문중학교 3반을 다니던."
    "아..."
    나의 입에서 드디여 비명 비슷한 탄성이 터졌다.
    맞구나.
    그녀가 맞구나!
    "야, 반갑다야, 계경숙. 얼마만이야? 설마 이게 꿈은 아니겠지?"
    "30년도 넘었지. 꿈은 무슨. 하늘이 새파랗구만."
    그래서 쳐다본 하늘은 정말 쥐면 묻어날듯 새파랬다.
    "너 지금 어디야? 우리 당장 만나자!"
    "급하기는... 나 지금 공항이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너한테 전화부터 치는거야. 알겠어?"
    "공항? 어디서 오는데?"
    "한국. 일이 있어서 잠간 들어온거야. 오늘밖에 시간이 없어. 래일은 일 마무리 짓고 나가야 돼."
    "그리 급히? 그럼 당장 만나지 않으면 안되겠네. 나 지금 공항에 갈게. 기다려!"
    "그래. 뛰여와. 기다릴게. 나도 널 빨리 보고싶기는 너만 못지 않을거야. 호호호."
    전화 저켠에서 그녀가 파란 하늘에 금이 실리도록 맑게 웃어제꼈다.
    나는 손목을 들어보았다. 시간은 열한시를 가리키려 하고있었다. 택시를 타면 어림잡아 20분이면 도착하리라.
    나는 내 옷차림새를 스윽 훑어보았다. 반소매에 반바지였다. 그리고 슬리퍼.
    동켠에 있는 성자산성을 한번 바라보고 나는 히쭉 웃고나서 그대로 택시에 뛰여올랐다.
    그녀는 연한 살색원피스를 입고있었다. 채양이 너른 모자를 쓰고있었는데 그늘이 얼굴 전체를 다 가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유표한건 원피스 치마자락이 나팔꽃처럼 들려있어 허벅지부터 종아리가 다 보인다는것이다. 
    그녀는 나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공항 정문에 서있는 그녀를 보고 머뭇거리는 나한테 그녀가 두팔을 활짝 펼쳐보였다.
    "용하게 알아보네?"
    "당연하지. 누군데 못알아봐."
    "난 널 못알아보겠던데..."
    "넌 옛날 그대로야. 어쩜 늙지도 않냐? 나 많이 늙었지? 실해지고?"
    "실해진건 모르겠는데 얼굴이 많이 변했어. 길에서 그냥 보면 모르고 지나치겠다야."
    "그래? 할망구가 되였으니 그럴수도 있겠지. 혹시 너 소녀적 내 모습을 기대했던건 아니야? 실망했겠네. 하하하."
    그러면서 그녀는 또 한번 하늘을 쳐다보며 해바라기처럼 터지게 웃어주었다.
    그녀의 행장은 단촐했다. 쪽걸상만한 케리어 하나가 다였다.
    "팬티 두장밖에 없어. 궁금해 하지 마."
    택시에 앉자 그녀가 케리어를 훔쳐보는 내 눈을 의식했는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쿡 웃었다.
    "콘돔이라도 한박스 담어왔나 생각해보았지. 크크크."
    그녀가 내 옆구리를 찌르더니 눈을 석자나 빨았다.
    "속은 파래가지구... 누나보고 못하는 소리 없네."
    계경숙은 나보다 한살 더 많다는것을 그런 식으로 말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때 우리 반 애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한살이나 두살 더 많았었다. 당시엔 락제제도라는게 있어서 시험에서 급제를 못하면 가차없이 한학년 내려앉혔기때문이였다. 초중에 붙지 못하여 한해 더 다니고 이듬해 다시 올라오는 애들이 많았다. 우리는 그런 애들을 "묵은 돼지"라고 불렀다.
    "묵돼라는 소리를 듣고싶은 모양이구나?"
    "묵돼가 뭐야? 아~ 야, 나 묵돼가 아니야. 아홉살에 늦게 학교에 입학해서 그래."
    "그래? 뻥 까는거 아니야?"
    "믿던지 말던지.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거야?"
    "호텔 간다 왜. 30년만에 만났는데 묵은 회포부터 풀어야제?"
    "야, 나 지금 배고퍼. 시간을 봐. 열두시가 넘었어. 밥부터 묵자."
    "그건 한국시간이고, 여긴 아직 열두시가 안됐어. 조금 참어."
    "야, 안된다는데두. 야, 차 돌려. 경숙이가 배가 고프다구!"
    택시는 옛날 체육장을 뒤에 떨궈놓고 혁명렬사릉원을 흘겨보며 발전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고있었다.
    "도대체 여가 어딘데? 날 어디로 데려가는거야?"
    경숙이가 짐짓 울상을 하고 내 무르팍을 종주먹으로 쥐여박았다.
    "그냥 가만있어봐. 원래 절에 가면 중이 하라는대로 하는 법야."
    "니가 중이가?"
    "오늘만은!"
    "켁."
    "쿡."
    갑자기 계경숙이 고개를 숙이며 내 몸에 쓰러질듯 웃었다. 보니가 그녀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은 내 사타구니였다. 내 사타구니가 엄청 부풀어있었다.
    "야, 너 지금 선거야? 내가 옆에 있는데도?"
    내 얼굴이 붉어졌는지 어쨌는지 보지 못하는 나로선 알길이 없다. 다만 망신스럽다는 생각은 좀 들었다. 그러나 이내 아닌보살하고 저으기 화끈거리는 낯을 그녀쪽에 던지며 깐죽거렸다.
    "그러게 누가 너더러 팬티가 다 보이는 치마를 입으라던."
    "어머머!"
    그녀가 반사적으로 치마자락을 끄당겨 허벅지를 가렸다. 그러더니 나한테 속히운줄 알았는지 꽤나 정색한 낯빛으로 말했다.
    "장난도 그런 장난 치지 마. 나 그런 여자 아니거든."
    "다 왔어. 내려."
    택시에서 내리자 그녀가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여가 어디야? 호텔은 아닌데?"
    "발전이다."
    "발전? 아버지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산다던 그 발전?!"
    "웅. 그래. 그 발전이 지금 이렇게 코리안타운이 돼버렸다. 맛집거리로."
    "와~ 발전이 빠른데! 발전이 그 이름값을 한다야."
    뭘 먹을가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갈비집으로 아퀴를 지었다.
    "젤 잘하는 집으로 가! 오늘은 이 누나가 쏜다!"
    <마포갈비>, 내가 자주 찾는 곳이다. 주인장하고도 면목을 튼지 오래다. 한국에서 돈 벌어가지고 여기에다 가게를 차린지 7년째라고 했다.
    "환경이 좋은데? 인테리어도 근사하고."
    경숙이가 자리에 앉더니 들어오길 잘했다는 어조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면서 보니까 간판들이 한국인지 중국인지 안알릴 정도로 한국을 그대로 떠옮겨왔데?"
    "그니까 코리안타운이라는거지."
    그녀는 기어이 소갈비 4인분을 시켰다. 칠레와인 한병과 함께.
    "그래봤자 한국에서 한끼 먹는 반값밖에 안돼. 걱정 말고 먹어. 나 그만한 돈은 있어."
    그녀는 내 의견따위는 아예 무시하고있었다.
    "오늘은 실컷 먹자. 30여년만에 너를 만났는데."
    "그래. 먹고 죽자."
    "강산이 세번 변했는데 너는 그대로네."
    "지금은 하루밤이면 강산이 변해. 어느 옛날 소리를 하냐. 나도 늙었어. 반백이야."
    "그런가?"
    우리는 쨍그랑 잔을 부딪쳤다.
    "근데 너 날 어떻게 찾았지?"
    아까부터 궁금했던 물음을 나는 이제서야 묻고있었다.
    계경숙이 나를 뜨아하게 바라보았다. 마치 그것도 물음이냐고 묻기라도 하는듯이.
    "넌 알려진 사람이잖아. 인터넷에 검색해도 나타나는 사람."
    "그래도..."
    "니 소설은 꾸준히 읽고있어. 니가 쓴 모든 글을 다 봤다고 감히 장담할 정도로 말이야. 이러면 믿겠노?"
    "잘 믿어 안지는데?"
    갑자기 그녀가 소리내여 웃었다. 그러더니 부끄러운듯 량볼을 싸쥐며 말했다.
    "너와 나 그런 사이 아니잖아. 잊은거야 아니겠지?"
    "참..."
    그러면서 나도 살짝 어깨를 비틀었던가 말았던가. 와인잔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녀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근데 너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설마 정말로 날 좋아했던거야?"
    "소녀의 순정을 의심하다니! 그래 갖고도 작가냐?"
  15살의 어느날, 막 하학하여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나를 불러세웠다. 그녀, 계경숙이다.
    "너 좀 나를 집에 데려다줄래?"
    나는 잠간 머뭇거렸다. 그녀와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 정반대였기때문이였다.
    집으로 곧추 가는 길을 놔두고 그녀는 산등성이를 타고 가자고 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걸었다.
    내가 15살이였으니 그녀는 16살이였을것이다.
    그때 나는 멀리 고모벌 되는 녀자애가 한반에 있었다. 그런 연고로 나는 반급 녀자애들과 잘 섞여 놀았다. 그러나 계경숙하고는 처음이였다.
    산등성이에서 내려와 약수동에 들어서자 그녀가 말했다.
    "사실은 전학철이가 나한테 련애편지를 보내왔어. 그래서 너보고 데려다 달라 한거야. 무서웠어."
    그러면서 그녀 계경숙이 내 곁에 딱 붙어섰다.
    "아, ..."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전류가 발끝으로부터 등곬을 타고 머리우로 치달아오르고있었다.
    "2반의 전학철이가 너한테 련애편지를 썼다고 했지, 아마?"
    "응. 기억하고있네."
    그녀가 쿡 웃었다.
    "편지내용도 단마디명창이였어. <우리 약혼하자>. 우스워. 웃겨. 하하하."
    무서웠다는 그 말에 나는 묘하게 흥분되였을것이다. 그때의 그 전률을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있다. 짜릿하면서도 달콤했던.
    <5·7농장>으로 들어가는 마을어귀 우물가에 우리는 나란히 앉았던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를 통해 콩닥콩닥 뛰는 가슴소리를 듣고있었다.
    고개를 숙이고있던 그녀가 반짝 얼굴을 들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있었다.
    "너 혹시 여자 손 잡아봤어?"
    나는 덴겁해서 손사래를 쳤을것이다. 그때 나는 확실히 많이 놀랐었다. 그녀가 그런 어뚱한 물음을 제기해 오리라곤 전혀 상상도 못했으니깐.
    "잡아볼래?"
    나나 그녀나 얼굴이 빨개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녀자의 손이라는걸 쥐여봤다. 작고 보드라운 손을.
    "젖은 더구나 못쥐여봤겠구나?"
    나는 하마트면 심장이 밖으로 튀여나올번 했다. 가슴이 뛰다 못해 아팠고 금방이라도 터질것만 같았다.
    "쥐여볼래?"
    수전증환자의 손이면 그럴가. 사시나무가 떨면 그렇게 떨가.
    더듬더듬
    더듬더듬
    장님 코끼리 만지기.
    어둠속에 길 찾기.
    "어땠었어? 그때 그 감각이?"
    그날 묻지 못했던것을 경숙이가 30년도 더 지난 지금 와서 묻고있다. 그것도 부끄러움이 전혀 없이. 얼굴이 다소 붉어진건 술기운 탓이리.
    "어떻긴. 심장이 터져서 죽는줄로 알았구만."
    "아니 그거 말고. 만져본 느낌."
    "밤알만 하데. 크크크. 손바닥안에도 안차. 크크크."
    "그렇게 작았어? 난 큰줄로. 풉~"
    "브래지어도 없이."
    "시대가 워낙 그런 시대였잖아. 나 그때 생리를 시작한지도 얼마 안되였었다?"
    "그렇게 귀한 몸을 내가 만지는 영광을 지녔었나? 너 어떻게 그렇게 용감할수가 있었지?"
    "나도 몰라. 니가 너무 좋아서였겠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어. 니가 첫남자야. 나한테는."
    "자지도 않았는데?"
    "꼭 먹어봐야만 맛이야?"
    그러더니 카운터쪽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언니! 여기요, 언니!!"
    "네에~"
    아가씨가 다가오자 경숙이가 눈초리에 힘을 주었다.
    "아까부터 벨을 눌렀는데 못들었어요? 이 집에선 장사를 어떻게 하는거예요? 손님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거예요?"
    "얘, 그러지 마라. 손님이 많으면 그럴수도 있는거지 뭘 그래. 고만한걸 갖고 야단치지 마라."
    "재수없잖아. 한국에선 이러면 안돼."
    경숙이가 복무원 보고 말했다.
    "와인 하나 추가하구요, 갈비살도 더 내주세요. 그리고 사장님하고 물어봐요, 서비스가 있나 없나."
    "니가 말 안해도 서비스가 나와. 나 여기 단골이야."
    "그런 기본적인거 말구.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 돈을 더 쓰잖아."
    경숙의 얼굴에 달이 뜨고있었다. 달이 빨갛게 머리를 얹고있었다. 달무리.
    "근데 너 연변말을 잘한다? 한국에 간지 몇년 됐다 했지?"
    "20년 거의 돼. 글고 사람은 자기 고향 버전은 안잊어먹게 돼있어. 연변에 오면 자연적으로 연변말을 하게 돼. 몇번 오지는 않았지만."
    오,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가 현성으로 전근하는 바람에 너와 떨어졌지만, 난 널 잊은적이 한번도 없었어. 물론 한동안 지나니까 자연스럽게 잊혀졌지만, 그래도 널 많이 생각했어. 갑자기 문득문득 니가 떠오르는거야. 그러다가 한국에 왔는데 그때부터는 니가 미치게 그리운거야. 그런데 너한테 련락할 엄두는 못내겠는거야. 내게는 훌륭한 남편에 좋은 아들이 있었거든."
    "그래? 축하한다야! 좋은 남편에 좋은 아들. 난 리혼하고 외토리신세인데."
    "글쎄 그렇더구나. 왜 리혼했냐. 그냥 살거지. 그래도 처음 만난 사람이 최고야. 다시 만나봤자 그놈이 그놈이고 그년이 그년이야. 더 더러운 꼴만 보게 돼."
    "재혼할 생각은 없다. 나 자유로운 지금이 좋아."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걸 보고 그렇게 생각했어. 얘가 편하게 사네, 하고."
    그녀의 눈이 풀리고있었다. 와인이 두번째 병도 반나마 내려가있었다.
    안주는 불판우에서 앗뜨거를 열창하고있었다.
    우리는 서비스로 나온 꽃게무침과 과메기는 손도 대지 않고있었다.
    "난 니 글을 다 읽었어. 인터넷에 널 검색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였어."
    "보러 올거지."
    "오면 안되지."
    "왜 안되는데?"
    경숙이가 고개를 반드름히 들고 몰라 묻느냐는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몰라서 그래. 왜 안되는데?"
    "젖까지 만져봤으니 이번엔 아래를 탐할게 아니야. 이 바보야."
    "아, 그렇구나..."
    나는 내 머리를 쿡 쥐여박았다.
    "나 바보 맞네. 근데 어떻게 이번엔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된거야?"
    "사실은..."
    경숙이가 의미심장한 얼굴을 만들어가지고 나한테 보내왔다.
    "아들이 일본에 있거든. 일본에 가게 하나 차렸는데 힘든가봐. 우리 량주 보고 들어오래. 아마도 일본에 갈것 같아서...."
    "아, 잘됐네. 축하한다야. 경숙아."
    나는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뜻으로 술잔을 쳐들었다.
    "이번이 아니면 너를 영영 보지 못할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 그래서 불문곡직 련락한거야. 나 잘했지?"
    "잘했어!"
    "잘했다니까 기분 좋네."
    우리는 나머지 와인을 두잔에 똑같이 나누어 부었다.
    경숙이가 약간 비틀거렸다.
    "가자. 우리 이 잔 쭉 내고 2차 가자. 오늘은 죽도록 마시는거야!"
    "2차는 무슨. 너 술도 된것 같은데 호텔 가서 자."
    "안돼. 어떻게 만든 기회인데! 너 오늘 하루를 나한테 바쳐야 돼. 각오해라. 오늘 우리 3차, 4차까지 간다! 잘하면 5차까지 갈수도 있어. 다시 보지 못할텐데 영원한 추억을 남겨야지. 안그렇냐, 이 바보야?"
    결국 나는 그녀에게 끌려 2차, 3차, 4차까지 가게 되였다.
    그녀는 마치 돈을 쓰지 못해 신들린 사람 같았다.
    4차 커피숍에서 나와 보니 밤은 이미 시커먼 날개를 땅우에 널어놓고있었다.
    "5차는 못가겠다. 내 몸이 술을 받지 못하네."
    "그래. 호텔에 가서 푹 자. 덕분에 오늘 너무 잘 놀았어."
    "오히려 내가 고맙지. 옹근 하루 시간을 나한테 할애해준 니가."
    "니 돈을 너무 많이 썼어. 그게 마음에 걸린다. 날 좀 쓰게 할거지. 미안하게스리."
    "괜찮아. 나 돈 많잖아. 우리 둘을 위해 쓴건 안아까워. 흐흐흐."
    그녀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
    "한가지 청이 있는데 들어줄래?"
    "열가지라도!"
    "내 이름 한번 불러줘? 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내 이름을 직접 두귀로 듣고싶어."
    안아달라는 뜻이구나.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그녀의 통통한 어깨를 그러안으며 내가 조용히 불렀다.
    "경숙아~ 우리 경숙. 고맙다. 이렇게 날 찾아줘서. 계, 경, 숙."
    그녀 계경숙이 내 허리를 두팔로 감싸안고있었다. 얼굴은 내 가슴에 묻은채.
    "호텔에 데려다줄가?"
    "아니. 안돼."
    그녀가 내 몸에서 화들짝 떨어져나갔다.
    "그것만은 하지 말자. 난 널 내 기억속에서 가장 멋진 남자로 남기고싶어. 내 남자로 만들고싶지 않아. 되지? 그렇게 해줄거지? 계경숙 인생의 가장 멋진 남자. 응?"
    "그래."
    나는 경숙의 머리칼을 가만히 만져주었다.
    "춥겠다. 얼른 가."
    치마아래로 그녀의 하얀 발이 눈에 들어왔다. 샌들을 신은 발이였다. 웬 일인지 그녀는 양말도 받쳐신지 않고있었다.
    그녀가 뒤걸음으로 택시를 향해 다가가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있었다.
    밤의 무릎사이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떠나고있었다.
    이튿날 오전.
    열시가 되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지금 공항."
    "응, 그래. 잘 가라. 만나서 즐거웠어."
    "나도 좋았어. 잘 있어라."
    이제 한시간뒤면 그녀는 떠나리라. 핸드백만한 케리어를 끌고서 떠나가리라. 그리고 두시간뒤면 인천공항에 내릴것이다. 그녀는 한국에, 나는 중국에 서로 다른 하늘을 떠이고 살아가리라. 혹은 아들이 있는 일본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자는 인사말따위는 하지 않았다.


하편


    쇼허룽에 동래사라는 절이 섰다. 개관식때 가려다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못가고 동창들 모임을 핑계로 동래사에 올랐다. 세그루 천년송은 용하게 보존돼있었다.
    점심은 성자산성이 내다보이는 토닭집으로 자리를 정했다.
    성자산성을 넘겨다보며 나는 잠간 동하국과 거란의 영웅 포선만노를 떠올렸다. 1233년 몽고군에 포위되여 포로될 때까지도 포선만노는 저 산성안에 있었다지. 왕후 리선아는 몽고군에 겁탈당할가 겁나 산성 남쪽 벼랑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하였으니 해란강과 부르하통하가 합쳐지는 바로 그 여울목이였으리라. 천년을 두고 흐른 로리커호에서 발원한 해란강은 그렇게 저 곳에서 자기 사명을 다한다.
    동창이라 해봤자 네명이뿐이였다. 다들 외국에 돈벌이로 나가있었기때문이다.
    밖에 나와 담배 한대 꾸질려니까 경철이가 따라나왔다.
    "야, 나 며칠전에 이상한 일을 목격했다?"
    "뭔?"
    "경숙이 비슷한 사람을 봤어."
    "경숙? 계경숙?"
    "응."
    "무슨 소릴 하는거야. 걔 지금 한국에 있거나 일본에 있을텐데 어떻게 여기에 있어?"
    "아니야, 진짜야. 내가 왜 경숙을 못알아보냐? 수상시장 끝자락에서 선지를 팔고있더라구. 마스크를 했지만 난 대번에 걔를 알아보았지. 학교때 나 걔를 좋아했거든."
    "미친 소리를 하고 자빠졌네. 나 몇달전에 경숙이를 만났었다. 일본에 있는 아들한테로 갈거라 그러던데? 아마 지금쯤은 일본에 있을걸. 근데 너 걔를 좋아했다는건 좀 뜻밖이다?"
    경철이가 키득키득 웃었다. 가뜩이나 작은 눈이 아주 붙어버렸다.
    "창피해서 말 안했지. 이젠 나이 먹으니까 부끄러운것도 사라지고... 흐흐."
    "뻔뻔해지고?"
    "그런데 계경숙이 왜 너한테만 련락하냐? 너 둘이 무슨 일이 있어? 걔 누구도 안만나는 애야. 동창들중에 아무도 걔를 만났다는 애가 없다?"
    경철이가 의뭉스런 눈을 만들어왔다.
    나는 담배 한대 꼬나물며 짐짓 그 눈길을 피했다.
    "그렇다구?"
    "아무래두 수상해."
    하긴 수상하긴 했다. 경철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경숙이가 수상시장에서 선지를 팔고있다니?
    내 앞에서 호기를 떨던 천하의 계경숙이가 수상시장 끝자락에서 선지나 팔고있다니?!
    나는 경철이의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자식, 말도 안될 소리를!
    나는 허청 한번 웃고나서 다 피운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끈 다음 그래도 남은 불씨가 있을가봐 침을 찍 뱉어주었다.
    경숙이가 나한테만 련락을 했다고?!
    며칠 지나면 7일 련휴 국경절이다. 어떤 이에겐 좋고 어떤 이에겐 나쁜 그런 긴 련휴가될것이다.
    대충 장이라도 봐와야 할터.
    국거리감이라도 몇줌 사와야 할터.
    그러나 그보다도 나는 경숙이를 보았다는 경철이의 말이 귀에 걸려서 좀히 있을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릴것 같았다. 안그랬다간 귀에 나무가 자라나서 가지를 칠것 같았다.
    급기야 나는 참지 못하고 아침 5시를 겐또하여 수상시장을 찾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경철이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수상시장은 컸다. 연길시의 아침시장중에서는 가장 클것이다. 경숙이는 그 끝자락에 앉아있었다. 그러니까 북쪽 끝자락, 사범학교쪽으로 말이다. 아마도 집이 그쪽 방향에 있지 않을가싶다.
    그녀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자기 앞에 선 나를 올려다보면서도 추호도 놀라거나 하는 기색이 없었다. 마치 이런 일이 있을줄을 미리 예상이라도 했었던듯이 말이다. 오히려 놀란 쪽은 나였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을것이다. 너무나 당당한 경숙이 앞에서 내사 허둥대고있었으니.
    "왔구나~"
    드디여 경숙이가 입을 열었고, 마스크를 내렸다.
    나는 이 국면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몰라서 손만 후들후들 떨고있었다. 같은 연길의 하늘아래서 30여년을 함께 살아왔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꼬딱지만한 연길에서. 말이나 되나 말이다.
    "저쪽에 가서 담배나 피면서 기다려봐. 나 이 선지를 마저 팔고 갈게. 몇덩이 안남았으니까 잠간이면 돼."
    나는 그녀로부터 여나문 걸음 물러서서 담배 한대 꼬나물고 섰다.
    그녀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여있었다. 옷차림부터가 할망구다. 몇달전에 보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그녀가 선지를 파는 모습만 바라보고있었다. 머리속은 텅, 빈채 하나도 정리가 안되고있었다. 조금 뒤면 그녀가 내 앞에 말뚝처럼 설터인데 그러면 나는 이 난국을 어떻게 파헤쳐나가야 한단 말인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가자."
    그녀가 다 팔고난 짐을 머리우에 이더니 내 앞에서 쥉쥉 걸었다.
    나는 그 뒤를 지떡지떡 따라갔다.
    사범학교쪽이 옳았다.
    "며칠전에 경철이를 봤었다. 순간 니가 찾아올줄 알았지. 그리고 기다렸어."
    "말하더라, 경철이가. 믿지 않았어."
    사범학교를 지나자 무장경찰부대 건너편으로 샛길이 나졌다. 그녀는 그 길로 나를 인도했다.
    놀랍게도 거기엔 굴뚝이 있는 단층집이 있었다. 그녀가 그 집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 이런 곳에서 산다."
    미닫이로 웃방 하나를 만든 그런 집이였다.
    나는 아직도 잠이 덜 깬 기분이였다.
    그녀가 서둘러 구들을 정리하더니 아직도 아래에 서있는 나를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단촐한 술상이 차려졌다.
    "사는 꼴이 이렇다 보니 먹을것도 없구나. 그런대로 먹어."
    황당했다. 모든게 황당했다. 그러나 그녀앞에서 황당하다고 대놓고 말할순 없었다.
    달랑 김치뿐인 술상옆에서 계란이 삶겨지고있다.
    "근데 너 혼자 사냐?"
    술 한모금 훔치고서 내가 물었고,
    "아니, 남편이 있어."
    경숙이가 턱짓으로 웃방을 가리켰다.
    어, 하면서 일어서는 나를 그녀가 제지시켰다.
    "인사 안해도 돼. 산송장이야. 중풍에 걸려 드러누운지 7년째야. 아참, 기저귀를 갈아야겠구나. 미안하지만 잠간만 기달려."
    미닫이문이 열리자 눈이 한뼘은 되게 들어간 산송장이 나타났다. 온몸에 눈밖에 없는것 같았다.
    그녀가 재빨리 기저귀를 갈아채우더니 드르륵 웃방문을 닫았다.
    "먹는데 냄새를 풍겨서 미안해."
    "괜찮아. 인간의 생리인데 뭐."
    세번째로 맞은 중풍이라고 했다. 더구나 놀라운것은 그 남편이란 사람이 바로 경숙이한테 련애편지를 썼던 화제의 주인공 전학철이란것이다.
    내가 어마지두 놀란 눈길을 웃방에 던지자 채 닫혀지지 않은 미닫이 틈새로 전학철의 퀭한 눈이 내다보고있었다.
    "상관하지 마. 듣기만 할뿐... 숨만 붙어있는 송장이야."
    그녀가 술을 씹고있었다. 잘 삶겨진 계란도 옷을 벗고 올라왔다.
    그녀는 전혀 안주를 집지 않고있었다.
    "나는 술이 없인 살지 못해. 너를 만나기 위해 이틀동안 안마신게 아마 최고의 기록일거야."
    먼지 쌓이듯 그녀의 과거가 술상우에 차곡차곡 내려쌓이고있었다. 그속에서 그녀는 자기의 아픈 이야기들만 골라서 양파껍질 까듯이 까고있었다. 그리고 껍질과 함께 토해내고있었다.
    그녀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고 했다. 거의 강제로 이뤄진 결혼이 행복하면 얼마나 행복할가. 아버지의 전근으로 현성에서 학교를 다니던 그녀는 얼마뒤 그 학교에서 전학철을 만난다. 전학철의 아버지도 현성으로 조동되여 왔기때문이다. 그때부터 전학철의 협박이 이어졌다. 친구들을 데리고 길을 막는가 하면 집문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말 안들으면 경숙네 가족을 전멸시킨다는 말까지도 서슴치 않았다고 했다. 전학철이 두려웠던 그녀는 결국 반강제에 가까운 수락을 하고 만다. 수락과 함께 그녀는 자기의 인생을 포기했던것이다.
    그녀는 자기를 아는 사람은 누구도 만나기 싫었다고 한다. 그저 아들 하나만 의지하고 믿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20여년을 키운 그 아들이 어느날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잃었고, 두 다리를 잃은 아들은 어느날 끝끝내 5층 베란다에서 뛰여내려 자결을 하고 만다. 그 충격으로 남편 전학철은 몇번이나 쓰러졌고, 그녀 경숙은 반 정신병자가 되여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마신 술이 오후 늦게까지 갔고, 술상도 거두지 못한채 한켠에 널부러졌다. 술상도 거두지 못한채 널부러졌다는것은 눈을 떴을 때 본 광경이 그랬기때문이다.
    내가 눈을 뜬것은 누군가의 손이 내 몸을 더듬었기때문이였다.
    경숙이닷!
    내 몸이 순간적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경숙이닷. 그런데 이건? 하면서도 내 몸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경숙의 손을 받아들이고있었다. 이래도 되나...
    얼굴을 만지던 경숙의 손이 아래로 내려와 가슴에 멈추고있었다. 그다지 매끄러운 손은 아니였다. 가슴팍을 어루쓸던 손이 차츰 아래로 향하고있었다. 헙~ 나의 근육들이 펄떡펄떡 살아나고있었다.
    그녀도 내가 깨여난걸 알고있을것이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과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엔 온갖 회환 같은것이 담겨있었다. 그녀의 손이 내 팬티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갔다.
    경숙은 내 얼굴에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불끈 일어선 내 양물을 그녀는 거칠게 부여잡았다. 나는 가늘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녀의 눈길은 마치 해도 되냐고 묻는듯 했다. 나도 눈으로 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묵인.
    그것을 읽었을가. 그녀가 내 가슴팍을 핥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래동안 굶주렸을것이다. 걸신 들린듯 걸탐스레 핥고있는 모습만 봐도 알겠다. 애무가 거의 광적이였다. 그럴것이다. 그녀는 많이 허기져있으리라.
    나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아 뒤로 눕혔다. 그리고 그녀의 허벅지사이로 허겁지겁 쳐들어갔다. 그녀는 이미 푹 젖어있었다.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몸을 짓이기던 내가 뭔가를 느낀것은 그때였다. 뭔가 이상한 감촉이 뒤통수를 찌르는것 같아서 머리를 돌려보니 웃방 조금 열려진 미닫이 틈새로 전학철의 우멍한 눈길이 형형히 내다보고있었다.
  살아있었구나!
    소름이 순식간에 등곬에 쫙 퍼져나갔다. 하지만 나는 그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보며 경숙이를 짓이기는걸 멈추지 않았다.
    드디여 삽질은 끝났고, 나는 경숙의 몸우에 널부러졌다. 널부러져서는 전학철의 눈길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전학철도 눈길을 돌려가지는 않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였다. 경숙이도 아마 알았을것이다.
    서둘러 뒤정리하고 경숙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들었다. 샤워소리와 함께 그녀의 간간한 흐느낌 같은것을. 두 귀를 쫑긋 세우고 그것이 정말 울음소리였는지를 확인하려 하자 그 소리는 마치 내 행동이나 생각을 알기라도 하듯이 더 들려주지 않았다. 나왔을 때 그녀의 눈언저리는 살짝 붉어져있었다.
    "가자.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보여줄게."
    전신무장을 하고나서 그녀가 말했다. 팔에는 기다란 토시를 했고, 발에는 두꺼운 장화를 신었다.
    시계를 보니 열두시를 조금 넘어서서 반을 향해 달리고있었다.
    "이 새벽에?"
    그러면서도 나는 어정쩡 따라 일어섰다.
    "응. 내 일이란게 이렇다."
    밖은 추웠다. 나는 오싹 몸을 떨었다.
    달빛이 째듯했다.
    그녀는 자전거를 끌었다. 자전거 짐받이에 커다란 네모난 통이 두개 달려있었다.
    우리는 이름도 모를 실개천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연길에서 그렇게 오래 살면서도 이런 개천이 있다는것을 나는 왜 몰랐을가.
    "어디로 가는거야?"
    "도살장."
    "도살장?"
    "응. 돼지랑 소랑 잡는 곳."
    그렇게 나는 모르던데로부터 알고있었다. 연길에 이런 실개천이 있다는것과 그 실개천을 따라 가노라면 돼지랑 소랑 잡는 도살장이 나온다는것을.
    그녀는 소의 피를 받으러 다니고있었다. 즉 다시 말해서 선지.
    피를 끓는 물에 넣어 익히면 선지가 된다.
    "선지가 맛이 있자면 피를 받기전에 통에 소금을 좀 넣어줘야 해. 그러면 선지가 비리지도 않고 나긋나긋해져서 맛있어.
    "한통에 보통 40모 정도 나와. 썰면서 한통에서 5장 정도가 깨진다고 생각하면 두통에 70장이 나온다고 보면 돼. 한장에 1원씩 팔면 70원이야. 이런 마른 벌이가 어디 있어?
    "도살장에서 피는 버리는거니까 받아오는건 공짜야. 근데 피가 돈이 된다는걸 알고 도살장측에서 5원씩 받으려 한다는 소문이 돌고있어. 웃기지?"
    그런데 나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웃기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다. 그냥 경숙이 그녀가 안쓰럽기만 했다.
    도살장에는 소들이 자동차로 실려 들어오고있었다. 거의 다가 흑룡강성에서 들어온다고 했다. 료녕쪽에서도 혹간 온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먹는 연변황소고기가 기실은 대부분 안쪽소고기였다는 말이 되는것이다. 어쩌면 속혔다는 느낌이 든다.
    마당에는 소 십여마리씩 실은 자동차들이 수태 서있었다. 이제 곧 죽을 소들이였다. 늙어서 이빨이 빠진 소부터 몇달 안된 송아지까지 별별 소들이 다 있었다.
    소를 잡는 방법도 흐름식이였다. 뒤다리를 묶은 다음 걸쇠로 걸어서 형틀에 달면 소들을 거꾸로 매달려서 자동으로 흘러나온다. 그런것을 전기 방망이 한대로 기절시키고 목에 한칼을 넣는다. 그러면 선지가 대번에 콸콸 쏟아지는것이다.
    일렬로 나오는 소의 대렬사이에 가이드라인이 있다.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것이다.
    그녀는 잽싸게 팔을 뻗어 선지를 받았다. 선지 받는 사람은 어림잡아 20여명. 소가 흐르고있었으므로 그녀도 같이 흘러야 했다. 그러나 몇걸음만 따라가며 받다가 안받는것이였다.
    "처음에 나오는 피는 안좋아. 물이 많이 섞여있어. 나중에 나오는 피는 찌거기가 많아. 그래서 가운데거로 조금만 받는거야. 소가 많으니까 조금씩 조금씩 받아도 반시간만 받으면 두통에 골똑 채울수 있어."
    녀자가 하기엔 거친 일이였다. 선지 받는 사람중 유일한 녀자였다. 그런데 녀자 하나가 남자 스믈보다 더 억셌다. 그녀는 몸에 피가 튀는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피를 두려워하면 이 일을 못해. 조금 뒤로 물러설래? 넌 피가 튀면 안되니깐."
    그녀의 말대로 반시간 되니까 선지가 골똑 찼다.
    집에 오니 새벽 네시.
    경숙은 물부터 끓였다.
    물이 끓자 통을 들어 조심스레 쏟아넣었다. 네모반듯한 선지 두덩이가 물속에서 익고있다.
    선지는 오래 익었다. 무려 반시간.
    다 익은 선지를 그녀는 맨손으로 썰고있었다. 그 뜨거운 선지를 손바닥우에 올려놓고 칼질하는데 용하게 손이 베이지 않고있었다. 가히 달인 수준이였다. 잽쌌고, 가쯘했다.
    두께는 대략 5cm.
    길이 15cm.
    너비 10cm.
    "뜨겁지 않아?"
    던져놓고 보니 바보 같은 물음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뜨거운지 어떤지 감각도 없다. 이젠."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마지막 한장이 손바닥우에 남았을 때 그녀가 나를 돌아다보았다.
    "먹어볼래?"
    약간 깨져있었다. 귀퉁이가.
    양념간장과 귀 떨어진 선지 한모를 상우에 올려놓고서 그녀가 말했다.
    "이로써 너는 나의 일상을 다 보았어. 더 이상 나에 대해 볼것이 없다. 난 너한테 나의 모든것을 발가벗겼어."
    "음~"
    선지가 어떤 맛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녀 앞에서 먹는 선지가 어떻게 맛이 알리랴.
    "다 보았으니 이젠 됐다. 가라. 난 지금 한통 배달하고 남은건 시장에 내다 팔아야 돼. 빨리 가."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다시 날 보러 오지 마라. 니가 오면 난 여기서 못산다. 그리고 내 말 누구하고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빨리 가."
    빨리 가, 를 복창하면서 손에 든 칼을 휘둘렀다. 마치 말 안들으면 죽여버리기라도 하겠다는듯이.
    그녀의 눈길은 서늘했다. 전에 못보던 눈빛이였다. 그 눈빛엔 아무런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와 영원히,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는것을 느꼈다. 일종 말못할 서글픔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나오면서 보니 경숙은 나한테 등을 돌려대고 양말을 갈아신고있었다.
    발.
    그리고 보았다, 나는. 경숙의 어깨너머로, 그리 못나지 않은, 하얗고 조그마한 발을.
    "간다?"
    "..."
    경숙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로써 우리는 영원한 리별인가.
    손목을 들어보니 시간은 아침 5시를 가리키고있었다.
    대한민국 서울시 강남구 양재동이다.
    나는 지금 다이소에 있다. 다이소에서 생활용품 몇가지를 사다가 한곳에 뚝 머물렀다.
    <참 고운 발>.
    발크림이였다.
    나는 그 앞에 이윽히 서있었다. 세상에...
    크림은 얼굴에만 바르는줄 알았더니... 손에만 바르는줄 알았더니... 발에도 바르는구나... 하고있었다. 나로선 놀라운 발견이였다. 그리고 모르던데로부터 알고있었다. 크림은 얼굴이나 손만 아니라 발에도 바른다.
    발. 그렇다. 인간의 온몸을 받쳐주는 지탱점이 발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발이 건강해야 하리라.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발부터 건강해야 하리라. 그리고 이뻐야 하리라. 비록 양말속에 감춰줘있다 하더라도. 신발속에 숨겨져있다 하더라도. 발이 건강해야 인간도 건강하리라.
    나는 저도 모르게 <참 고운 발>을 손에 집어들었다.
    그녀 경숙의 발이 어떻게 생겼던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럴것이다. 나는 그녀의 발을 상세히 보지 못했으니까 생각 안나는것이 당연할것이다.
    <참 고운 발>.
    샀다.
    그녀를 주려고 산건 아니였다.
    내가 바르려고 산것도 아니였다.
    그냥 산것이였다.
    이 시각 그녀는 연길에 살고 나는 한국에 산다. 서로 다른 하늘아래.

    2018년 2월 1일 서울시 도곡동에서. 


 

[작가노트]

일하면서 글쓰기
살춘각

 

   최○○이란 동창생이 있었다. 언젠가 한번 만났더니 이 녀석이 글쎄 허풍을 꽝꽝 쳐대는것이였다. 한국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하고서 가봤다고 돈이랑 펑펑 써재끼는것이였다. 처음에 나는 정말로 믿었다. 그러다가 사실을 알고 나서는 큰 충격을 받았다. 녀석은 시장에서 선지를 팔고있었던것이다.
   나한테 들키고 나서 녀석은 도살장을 구경시켜 주었다. 덕분에 나는 도살장 구경을 잘했다. 소들이 거꾸로 매달려 피를 뿌리면서 흐름식 생산선을 통과하는 과정을 보면서 나는 이런것이 소설이구나, 하고 언젠가는 써야지 마음 굳혔다. 물론 그때부터 나는 선지를 먹지 않았다.
   이 소설을 구상한지 15년이 넘어 된다는것을 예서 감히 고백한다. 그 사이 나는 인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왔다. 그럼에도 쓰지 못했던것은 내 게으름 탓일것이다.
   십년동안 눕혔던 붓을 다시 세웠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것이 이 소설이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회피하고있었다. 아마 편집부에서 독촉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또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백산"에 더구나 감사한지도 모른다.
   오십대가 쓴 글 하고 사십대가 쓴 글은 다르다. 내 나이가 오십대란 말이다. 어딘가 달라도 달라져야 할것이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온밤을 하얗게 새우던 2016년 12월 31일이 생각난다. 이 밤만 지나면 오십대에 들어선다는 현실은 나더러 안절부절 방안을 바장이게 했다. 방안은 담배연기로 꽉 찼고 나는 혹 아래층에서 내 한숨소리라도 들을가봐 조마조마해 하고있었다. 나는 창문 카텐을 열어젖히고 어스름한 달빛아래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 성자산성을 하염없이 바라보고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5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고있었다. 양로원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마지막 방문길에 허리춤에서 지린내에 절은 빨간 돈 몇장을 꺼내 내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힘없이 자리에 누우셨다. 아마도 아버지는 나를 만나 아버지의 전 재산을 쥐여줄 그 순간을 애타게 기다렸을것이다. 이튿날 바로 세상을 등졌으니 나는 그렇게밖에 생각할수밖에 없었다. 나를 향한 기다림이 그날까지 아버지를 지탱하게 하였을것이다.
   2017년 1월 1일, 급기야 오십대의 회오리바람은 플라이어를 들고 달려와 내 녹슨 이발을 뽑아갔다. 그리곤 내 지나온 세월의 귀때기를 힘껏 후려쳤다. 결국 나는 내 지나온 비틀비틀 50년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눈물을 훔치고있었다. 자문했다. 나는? 왜? 하필? 새해 정초에 아버지를 떠올렸을가? 나는 나의 후반생을 재설계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고 3월 17일 이른 새벽, 푸름한 달빛속에 글을 쓰고있는 나를 나는 용하게 바라보고있었다. 그날은 내 아들의 생일이였다. 나는 자못 진지한 자세로 잠을 자고있는 아들을 한번 바라보고는 한줄 쓰고 또 한번 바라보고는 한줄을 쓰고 하고있었다. 그렇게 해서 씌여진것이 "장백산"에 나간 살춘각계렬수필과 "킬리만자로의 달"이란 소설이다. 몇편의 발표도 안할 칼럼과 쓰레기같은 시도 배가했다. 그리곤 소설이 발표되는것도 보지 않고 주저없이 내가 발 딛고있던 연길땅을 떠나 연태행 비행기에 올랐다. 연태서 2박3일 체류하고 청도서 장학규와 몇몇 문인들과 짧은 시간 회동한 다음 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날은 잊지도 못할 7월 22일이였다.
   인천국제공항에 몸을 내리며 나는 다짐했다.
   이제부터 나는 다른 삶을 살리라.
   나는 달라지리라.
   물론, 글도, 달라지리라.
   내 서재의 한낱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살춘각(殺春閣)이 오늘부터는 걸어다니는, 살아 숨 쉬는 살춘각으로 되리라... 했다.
   한국에 온지 반년이 되였고, 일을 시작한지는 석달이 되였다. 일을 하면서 글을 쓴다는건 말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소설의 경우는 더 하다. 분량이 많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들어오는 청탁은 소설이고 나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있었다.
   일하면서 쓴 두번째 소설이다. 일하면서 쓴거라 그런지 특별히 애착이 간다. 특별히 두번째 소설을 쓸 때는 소설 못지 않은 아픔을 주기도, 겪기도 했다.
   하나는 "도라지"에 줬고, 하나는 "장백산"에 줬다. 둘 다 톱으로 나간다는 기별이다. 안떠지는 눈을 잡아 뜯으며 쓴 보람을 예서 느낀다.
   일하면서 글쓰기.
   한국에서의 내 일상이다.
   아니, 작가로서의 숙명이요, 운명이다.
   인간의 복합성을 구현하기 위해 상하편으로 나눠 썼다.
   하편에서의 반전을 이끌어내기 위해 상편을 설치했다. 따라서 상편은 의도적인 부분이 많다. 마지막 한줄을 위해 나는 앞에다 천마디의 헛소리를 쳤던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이의를 제기할지 모르나 나는 나름대로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너무 헛소리는 아닐것이다.
   처음에 나는 하편만으로 소설을 만들려고 했었다. 하편만으로도 소설은 가능했기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나는 상편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인간은 단순동물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줘야 할 일이 생겼던것이다.
   결국 또 다른 동창생을 떠올렸고, 나는 그 둘을 오버랩시켜버렸다. 이것이 이 소설이 탄생한 과정이다. 아무튼 나왔으니 판단은 독자들한테 맡기련다.
   창작후기인지 작가노트인지 참 쓰기가 싫다. 이것을 읽어줄 독자가 있을가, 하고 잠간 생각해본다.
   그래도 써야겠지? 이것도 창작의 일부이고 보면??
   그래,
   너는
   써야 해.
   너한테 다른 길은 없어.
   아픈 눈을 집어뜯으면서라도 너는 쓰거라. 하하하.


   2018.2.25.
   서울시 도곡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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