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홍연숙]言寺의 여승 외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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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홍연숙]言寺의 여승 외4수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8.03.2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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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연숙 약력: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시, 수필 다수 발표. 현재 울산 거주
言寺의 여승

언사에 혼자 사는 여승
곱실곱실 파도머리에
손톱에 봉선화 물 들이고
촌놈이 좋다던 살색 립스틱 허벌나게 섹쉬해
 
낮에는
바람과 란교를
산나무와 선교를
들풀과 들교를
강고기와 수교를
밤에는
촌놈과 성교를
막걸리와 막교를
소맥과 주교를 하며
시간 따라
장소 따라
개교(改教)를 한다
 
언사에 혼자 사는 여승
여물지 않은 언어들을
마당에 말리고
비로 쓸고
다시 입김에 불리고
쌍불에 쪄서
눈으로 씹고
胃大하게 삼키고 되새김질 하다가 뱉는다
아멘~
섹쉬한 입술로 주교의 의식을 치른다
 
 
이유의 존재
 
잘 살아오지는 못했습니다
보이는 건 구질구질한 이유 뿐입니다
이유도 많은 세월에
또 다른 이유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나와서는 살을 비집고 뼈짬을 훑습니다
바람에 휩쓸려가는 낙엽이
꼬나들 이유가 뭘까요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는 걸요
단 한번도 저 답게 살아보지 못했습니다
제 이름의 때국이 오늘따라 많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합니다
살아가는데 왜 이유가 그리도 많을까요
저지르며 사는 게 사람 아닙니까
사랑하다 보면 아픈데 아픈 게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아프다보니 사랑인 걸요
 
 
연리지 나무
 
하늘을 거역한 자
땅을 배신한 자
허공에서 만나
악착같이 서로를 휘감는다
 
옳바르게 곧게 갈 길을
살을 녹이고 뼈를 깎으며 요분질로 시간을 걷는다
 
음지에서 싹을 틔우다
새들에게 쪼이고
쥐들에게 갉히여
흉측하게 벌거벗은 사랑
 
도덕의 눈총을 거둬라
법의 손가락을 내려라
비익조나 비목의 사랑은 전설일뿐
연리지나무의 사랑 앞에서는 침묵하여라
 
 
수선화 나의 수선화
 
수선화와 처음 만나는 날
그 참된 뿌리를 위해
내 족욕통을 내어주었다
플라스틱이나 도자기에
그 진실된 뿌리를 담그는 건
욕이 될 것 같아서였다
오로지 편백나무로 된 내 족욕통이
그것만이 근사해보였다
그리하여 지금
 
수선화,
너의 숨결이
내 발가락들을 간질이고
내 혈관을 따라
가슴의 계단을 따라
올라오며
올라오며
마침내
찌르르 찌르르
어느 벌레의 울음소리로
화하고 있는 줄을
나는 온 몸이 귀가 되어
듣고 있거늘
그런 사연을 너가 아느냐
 
 
내가 시라고 썼던……
 
저 많은 말들을 내가 뱉었던가
 
꾸덕꾸덕해진
언어의 시체들이
신전의 광장에서 가면무도회로
신이 났다
 
영혼 없는 흉내들이
겉멋 부린 유희들이
음악도 없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생식기만 있는 흉물스런 몸뚱이, 쉬지않고 벌리고
낳고 낳고 낳고
또 낳는다
 
득실대는 쓰레기더미에서
넘쳐나는 악취로
퇴화되는 내 가슴에
화초하나 기르지 못한다
 
가난한 자여
가시덤불길을 걸어라
온 몸을 찢은
상처로 꽃을 피워라
그리고
죽어 죽어 죽어서
고사목이 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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