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성외국인보호소’를 찾은 것은 이달 17일,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보호외국인과 동감하는 「한마당축제」 ’를 개최한다는 홍보를 보게 되여서이다. ‘보호소’에서 그런 행사를 치른다니? 그런 행사가 어디까지 가능할까? 너무 궁금했고, 그런 행사를 개최한다는 주최 측의 용기에 마음이 끌리었다.
예전에 보호소에 대한 이런저런 일화들을 나는 많이 들었었다. 거기에서 '보호' 되었다가 추방당한 동포들은 "재수 없게 잡혀서" 라고 흔히 말꼭지들을 뗐었다. 남들은 안 잡히는데 하필이면? 하는 뜻이었다. 그래서 큰소리를 치고 배짱을 부리면서 어떻게 직원들을 쩔쩔 매게 했느냐는 이야기까지 엽기적으로 버무려서 호기심을 유발시켰었다. 솔직히 나는 그때까지 ‘보호소’란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외국인보호소’의 안복영 관리계장이 보고를 올려 방문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보호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 과연 그 곳의 실태는 어떨까?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궁금해 났었다.
2. 금정역에서 제부도로 가는 330번 좌석버스에 앉은 내 마음은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이었다. 버스는 때로 시골길을 지나 한 시간 쯤 만에 화성시내와 꽤 떨어진 길가, 외딴 곳에 나를 내려놓았다. 버스정차안내판의 ‘화성외국인보호소’란 글이 인차 내 눈을 찔러왔었다. 따가운 햇볕인데 왜서 가슴이 서늘해질까? 솔직히 화성은 나에게도 은근히 무섭고 신비한 곳이었다.
그러나 보호소정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내 마음은 조금 씩 풀리었다. 넓은 마당에 행사참가들로 흥성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성시 자원봉사센터 ‘사물놀이’패들과 각 엔지오단체 인사들, 기자 및 직원들이었다. 지짐, 순대, 떡, 국수 등으로 손님을 접대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이익금은 불우외국인 돕기에 쓰인다는 홍보 문이 떠올랐다.
식사 중이던 이춘복 소장이 일어나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국 체류심사과 과장을 지내던 그는 금년 5월초에 갓 부임되어 왔다고 한다. 후더분하고 서근서근해서 대화가 잘 풀릴 같았다. 이번에 그는 외계에 잘못 알려진 ‘화성외국인보호소’의 냉혹하고 딱딱한 이미지를 벗어던지려 애 쓰고 있었다.
법무부가 ‘외국인권익증진’에 힘써 오면서 출입국관리국은 예전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저 연초에 일찌감치 변화전략계획을 내놓았고, 잇단 정책변화를 시도해 왔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이춘복 소장도 외국인에 대한 투명한 인권개선이 없이는 과거 그림자에서 탈피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회가 알고 인권단체들이 알아야 더 밝고 투명한 계기가 조성될 것이고, 나아가 법무부나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민간과 국제사회에 긍정적으로 알려질 것이다!
이춘복 소장은 부임되면서 사뭇 실효성이 있는 정책을 펼치는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았다.
3. 식사를 대충 끝내자 나는 이춘복 소장과 인터뷰를 했다.
현제 ‘화성외국인보소’에 갇혀있는 미등록외국인은 310명, 금년도에 이곳을 머물다 떠난(추방) 외국인은 무려 4만 명이 된다고 한다.(인권개선 등 단속이 느슨해진 것이 주원인.) 이는 그래도 작년에 비해 현저히 감소된 추세, 작년에는 21만 명이 거쳐 갔다고 해서 나는 깜작 놀랐다.
‘화성외국인보호소’가 그저 자그마한 ‘보호소’인줄 알았지, 그 많은 외국인들을 떠나보내는 큰 항구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만큼 그들의 어깨도 무거울 것이요 임무도 막중할 것이다. 주최 측이 이번 행사를 알심 들여 준비해 오고 홈페이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부탁해온 진의가 충분히 이해되었다.
이날 행사 일정은 이러했다. 당일 보호소를 일부 개방 및 지역주민, 자원봉사자 등 보호소 견학과 체험; 보호소 4개 운동장을 활용하여 보호외국인과 직원 간 배구, 족구, 배드민턴, 피구 등의 경기 실시; 다양한 종목 및 이벤트성 행사 개최, 화성 시 자원봉사센터 '풍물놀이패' 초청「한마당」공연, 그리고 아침에는 모범 미등록외국인 10명을 선발해서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회사를 참관시켰다고 한다.
그의 초심대로라면, 한국 전통문화 체험을 통한 '국경 없는 행복 만들기' 행사와 연계함으로써 행사의 효과를 배가하는 계기로 활용하고, 지역사회와 더불어 공존하는 출입국관리 문화의 정착과 보호외국인에 대한 친한 감정 유발의 계기로 승화시키며 더 나아가 봄, 가을 체육행사를 보호외국인, 시민, 자원봉사자, 직원이 함께하는 문화행사로 정례화 할 계획이었다.
떠들썩한 풍물놀이패들이라든가 자원봉사자들이 음식 장만해주는 모습들, 그리고 ‘불우외국인 돕기 일일찻집’이라 쓴 차일 안의 성금모금 통이라든가, 는 사뭇 성심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듯 싶었다.
4. 나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빛깔보다 실제상황을 알고 싶었다.
솔직히, 화성보호소 말고도 한국의 기타 외국인보호소들에 대해 일부 언론이나 개별적인 인사들은 더러 부정적인 논평을 펴기도 했었다. 이춘복 소장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은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눈으로 보면 알 수 있잖아요?” 하고, 백번 듣기가 한번 보기보다 못하다는 말이었다.
실제 그들은 나무랄 수 없이 뛰고 있었다. 보호외국인들마다 한 주일에 세 번씩 진료를 해 주고 하루에 6~70명씩 건강 체크를 철저하게 한다. 방마다 공중전화를 설치해서 7개국 언어로 외계와 연락을 하도록 시스템을 가동하고 대형 세탁기를 갖춰 한 번에 40벌의 옷을 빨 수 있도록 조치하며 옷이 더러워지면 수시로 갈아입을 수 있고 샤워도 충분히 할 수 있게 한다. 면회는 하루에 60명 씩, 한사람이 한 주일에 두 번, 매 번 30분 간 하게하고 혹 부부가 같이 보호소에 들어오면 한 주일에 두 번 만나게 해 준다. 또 가족이라면 수시로 만나도록 특별면회 허가를 준다. 식사는 아침에는 우유와 빵을, 점심저녁은 종교관습을 고려해서 밥이든 빵이든 알아서 먹게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일정에 따라 농악무와 한글도 배워주고 배구나 축구도 조직해주며 목사나 장로들이 정기적으로 드나들며 예배도 드린다고 한다.
“체불임금, 혹은 전세보증금을 못 받았거나 산재체류 중인 보호외국인들에게는 근로감독관(노동부) 법률구조공단 직원과 1대1로 만나 고충처리를 해주도록 하지요. 돈을 받아준다든가 일시보호해제 혜택을 줘서 고충을 해결하도록 조치해 힘껏 도와주고 있습니다.”
연초에 설립된 ‘외국인권익증진협의회’의 역할이 크다고 했다.
5. 보호외국인들과 보호소직원, 화성시민들이 함께 하는 축구, 배구, 피구 시합은 이미 오전 10시부터 시작이 되었고, 2시부터는 풍물패들의 풍물놀이가 보호시설 안에서 공연되었다.
보호시설 안의 활동에는 인권보호 및 권익증진협의회 위원, 보호외국인 가족 및 직원가족, 인근지역 주민(一社一村 자매결연 주민 등), 시민단체, 화성보호소 출입목사(사강교회 및 방산산돌교회) 등이 참가했다.
사물패들의 공연은 한 시간 만에 끝이 났었다. 그들은 밖에 대기 중이던 손님들에게 다시 한 번 풍물놀이를 공연을 했다. 북치고 꽹과리 치고 신나서 돌아치는 풍물놀이를 보노라니 우리 사회는 어차피 어우러져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떠올랐었다.
6. 오후 세시 반 쯤, 안 계장의 안내 하에 일행은 보호소 안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종합상황실과 보호외국인 심사실을 지나면서 보니 벽에 보호외국인이 지켜야할 규칙과 그들이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인권사항들을 한글, 중국어, 영어로 조목조목 쓴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내용은 이춘복 소장의 말과 같았었다.
긴 복도를 지나자 보호외국인들이 생활하는 방이 나타났다. 쇠창살을 보는 내 가슴은 조금 떨려났다. 난생 처음 경험해 보는 상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사람, 조선족, 흑인, 혹은 방글라데시나 기타 인종의 보호인들이었다.
한 실에 7~8명 정도, 활동실과 취침 방으로 나뉘어졌는데 방은 기름보일러를 쓰는 구들이란다. 활동 실에는 긴 책상 하나와 그 양쪽으로 긴 의자 둘이 놓여있고 벽에는 공중전화가 있으며 그 맞은편에는 TV가 놓여있었다. 다들 정신 상태들은 좋아보였다. 트럼프를 놀던 얼굴이 검고 머리가 긴 외국인(방글라데시?) 청년이 제법 유창한 한국말로 이렇게 불쑥 한마디 던져왔었다.
“우리 빨리 풀어줘요, 나 돈 벌어야 해요.”
나는 웃었다. 이렇게 ‘보호’되어 있으니 속이 안타겠는가? 그래도 법은 법이니까 어쩌랴!
복도 끝에서 꺾어들자 여성보호실들이 나타났다. 전화를 하거나 TV를 보거나 모여앉아 트럼프를 놀거나, 자주색 ‘보호복장’을 한 그녀들은 사뭇 담담하고 차분해 보이었다. 거의가 조선족인 것 같았다.
보호시설 안을 돌아보는 데는 예상보다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호외국인들은 사뭇 안정돼 있는 것 같았고 보호시설도 소장님의 말대로 비교적 구전돼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 놓이는 것은 그들이 수시로 외계와 연락을 하도록 실마다 공중전화를 설치해 놓은 것, 그만큼 소통의 인권이 보장되어 있다는 말이 된다. 보호소는 외국인이 인권위에 아무 때나 진정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마저 알려주고 있으니 시름 놓아도 좋을 듯싶었다.
그제야 ‘보호소’란 말뜻을 알 수 있었다. 외국인이 안전하게 머물다가 가도록 잠시간 보호해주는 곳!...단지 인신보호의 차원을 넘어 인권지향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때만이 보호외국인들은 섭섭했던 개인적인 감정들을 삭이고 주최 측이 애써 바랐던 것처럼 다시 한국에 오고 싶은 마음이 생겨 날 것이다.
진지하고 책임감 높은 안 계장은 성의를 다해 이번 행사의 의의를 곱씹었다. 한국에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에서, 보호외국인에 대한 친한 감정을 유발 시키고 승화시켜 그들이 한국에 다시 오고 싶은 느낌을 갖고 떠나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7. 귀로에 오른 내 가슴은 한결 개운해 났다. 뭔가 아쉬웠다면 보호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지 못한 것이랄까? 그들이 먹고 활동하는 것 일일이 체크 할 수 없었던 점들(이는 그들 법규에 저촉되는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이 마음에 걸리었다.
나의 욕심인지 모르지만, 보호소직원들이 아무리 잘해줘도 그렇게 ‘보호’받고 있으니 일단은 가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쩔 수 없잖은가. 나라마다 자기의 질서와 법이 있으니까! 미국이나 일본, 서구 같은 선진국들에서도 불법체류자들을 단속하기는 마찬가지잖은가!
내 귀전에는 한 직원의 말이 새삼스레 울려왔었다.
“솔직히 우리 대한민국처럼 잘해주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어쨌거나, 법은 냉철한 것! 그래서 항상 인권과 갈등을 겪는지 모른다. 법치국가에서 법이 바로 서야 나라 기강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고, 또 법치국가에서 법이 최대한 인권을 보장해 주면서 관용을 베풀어주어야 선진국의 이미지가 밝게 설 것이다.
이번의 행사는 화성보호소가 '투명하고도 열린 보호소'가 되기 위한 담찬 행보를 뗀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이춘복 소장과 수하 직원들에게, 그리고 이 번 활동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여건이 허락된다면 시종여일 보다 투명한 시스템을 운영하였으면, 하는 기대감이 생겨났다.
그러자 언젠가 다시 한 번 찾아가서 오늘의 느낌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꼭 한 번은 청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