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조원기]나의 인생에서 가장 통쾌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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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조원기]나의 인생에서 가장 통쾌했던 일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7.08.2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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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잊지 못할 한국생활 스토리2

▲ 조원기 : 중국 영길현 출신.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서울=동북아신문]서울 남산 뒤 켠 중턱에 자리 잡고 있던 옛 안기부 5층 건물 청사가 1996년 8월 4일 오전 7시반 전 국민의 생방송으로 지켜보는 가운데서 쾅쾅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일반 국민들 인상 속의 안기부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남산에서 왔습니다”라는 말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고 한다.

날씨도 화창한 7월 중순의 어느 하루, 내가 몸담고 일하던 청무라는 철거회사에 아침 출근을 했는데 내가 가장 존경하고 또한 나를 가장 신뢰해주는 철거업종에서 위망 높은 이 사장이 나를 불러 정중하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우리 포크레인이 남산안기부 건물청사 철거 작업하러 가야 하니 빨리 장비를 챙기세요.”, “예? 안기부 건물 철거하러 간다고요?”
내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같이 일하는 한국동료들과 친구들의 입에서 그렇게 많이 듣던 이야기와 김영삼대통령 후보선거 유세 때도 대통령이 되면 남산 안기부 건물철거를 해서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약속도 했다던데……이렇게 대한민국의 대단한 화제 거리인 안기부 건물을 우리 회사에서 우리가 직접 철거한다? 믿고 싶지 않을 일이었다.

포크레인을 싣고 남산 안기부를 향하는 차안에서 설레이는 나의 심정은 좀처럼 가라앉지를 않는다. 안기부? 안기부라!?……그 안기부가 어떻게 생기었기에 그 많은 사람들의 구술수에 올랐을까?  궁금증이 계속되는 가운데 운송차가 드디어 남산 중턱 안기부 청사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양쪽에 건물이 있고 중앙에 안기부 본관 5층 청사가 있는데 기사 말이 앞쪽에 있는 큰 마당 밑은 모두 지하실이라고 한다. 서둘러 운송차에서 포크레인을 몰고 땅바닥에 내려선 나는 장비를 본관 건물 한 켠에 세워놓고 우선 현장을 둘러보기로 하고 계단을 따라 5층 옥상까지 올라갔다. 남산 중턱 수림 속 아늑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안기부 건물 주위 환경은 매일 오염된 혼탁한 공기 속에서 한시도 조용할 새 없이 돈벌이에 미쳐 뺑뺑이를 돌던 나로서는 너무나 맑고 은은하고 상쾌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자리를 뜨기 싫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나는 층층을 내려오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건물 외곽과 기둥만 남겨두고 간벽 창문 대문을 포함한 모든 내부 시설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짓부셔 포대에 담을 수 있도록 하라는 작업지시를 받은 나는 이 속의 어떤 물건과 시설물들을 포크레인으로 짓부셔버릴 생각을 하니 못내 아쉬운 심정이 들기도 했다.

나는 곧 지상 5층을 다 돌고 희미한 불빛 속에 잠겨 있는 넓은 지하실로 내려갔다. 왠지 을씨년스러운 생각이 들면서 온몸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더 지체하기 싫어서 얼른 밖에 나와 건물 뒷켠 쓰레기 소각장으로 갔다. 거기서 한창 안기부를 둘러싸고 있는 지하벙커 철거작업을 하고 있는 작업인부 몇 명을 만났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이 앞에 있는 둥그런 쓰레기 소각장은 죽은 사람과 쓰레기를 없애는 곳이라고 한다. 말만 들어도 기분이 섬뜩한 곳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대형 크레인이 와서 내가 운전하는 포크레인을 5층 옥상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모든 작업준비는 끝났다. 드디어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입살에 수없이 오르내리던 남산 안기부 청사철거 작업이 나의 운전시작으로 쾅쾅쾅 하는 굉음과 함께 시작되었다.

건물 옥상 중앙바닥에 큰 구멍을 낸 후 장비가 5층 건물 안에 내려섰다. 운전석에서 마주보이는 번쩍거리는 큰 유리정문 앞까지 장비를 몰고 간 나는 추호의 주저도 없이 장비를 휘둘렀다. 와장창,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번들거리는 정문 문짝이 풍비박산이 되어 땅바닥에 흩어져 버렸다. 아마 힘든 타향생활에 싸인 스트레스 때문인지……영문 모를 흥분에 와장창 퉁탕 하고 창문이고 문짝이고 간벽이고 사무실 부장실, 과장실, 화장실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박살을 내고 짓부시기 시작했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통쾌하게 짓부시는 일은 평생 처음, 그렇게도 마음이 통쾌할 수가 없었다.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던 현장 감독관이 잠깐 숨 돌릴 시간에 옆에 와서 웃으며 하는 농담을 했다. “아저씨 참 통쾌하게 짓부시네요. 이참에 평생 쌓였던 스트레스 한방에 다 날려버리는 거 아니에요? 흐흐흐” 듣고 보니 참 맞는 말이다. 젊은 시절 체재가 다른 고국의 광복을 위해 젊음을 바친 아버지의 역사문제로 창창한 젊은 앞날을 다 접고 20세 중반부터 대중 앞에서 밤낮없이 뛰어다니며 사업하느라 쌓인 노고에다 부모와 가정을 위해 20여년이나 고향을 떠나 고국 땅에 와서 돈벌이를 한다고 쌓인 스트레스를 이 사장님의 배려로 만져보지도 못했던 포크레인 기사가 되어 이렇게 온 국민의 화두에 오른 안기부 건물 청사 내부를 휘젓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아까움 없이 마구 박살내고 짓부시면서 평생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방에 다 날려버리고 있잖은가. 참 생각할수록 통쾌한 작업이었다.

한창 신나게 일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촬영장비를 들고 내가 일하고 있는 현장에 왔다. 한 분이 장비 옆에 와서 웃으면서 “시청에서 나왔는데요, 철거작업을 촬영해서 재료로 남겨야 하니 폼 좀 잡아서 운전해주세요”하고 말했다. 그리고 다들 갖고 온 장비를 설치하느라 분주히 서둘렀다.

촬영한다고 하니 나도 장비를 세우고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안전모자도 제 확인하고 장갑도 새것으로 바꾸어 끼고 다시금 작업을 시작했다. 좀 있더니 큰 조명등 두 개가 양쪽에서 내가 작업하고 있는 현장을 대낮같이 비추고 한쪽에선 쾅쾅쾅 하는 간벽을 부시고 있는 나를 영화찍 듯이 촬영하고 있었다. 긴장감에 곁눈 한번 팔지 않고 열심히 부셔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드디어 조명등도 꺼지고 한 분이 곁에 와서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하고는 아래로 철수를 했다. 긴장 속에서 운전하느라 나는 등 곬에 땀이 흥건했다. 장비를 세우고 잠깐 쉬려고 앉았는데 내 뒤를 따라 다니며 짓부신 폐기물 처리 용력 인부 몇 명이 나를 둘러싸고 “아저씨 참 대단합니다. 대한민국 남산 안기부 건물 철거 역사기록에 남겠네요”하고 칭찬을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너무나도 평범한 한 사람으로 고국 땅에 와서 이렇게 엄청난 국민들의 여론 중심에 서있는 안기부 건물 청사 내부를 5층 꼭대기에서부터 맨 아래 밑층까지 몽땅 이 조원기가 집적 때려부신다고 하니 한없는 자부심과 용기가 솟구쳤다. 그 힘으로 더 쉴 생각도 없이 벌떡 일어선 나는 쾅쾅쾅, 하고 또 일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5층에서 4층, 3층, 2층, 1층으로 치고 박고 때려부시고 짓부시며 열심히 일한 결과 위층의 지시대로 건물 폭파 시한 전에 깨끗이 작업 마무리를 지었다.

이튿날 엉성하게 남은 건물 기둥에 구멍을 뚫고 폭약을 장착하는 폭파기술자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하루 밤 지나면 이 건물은 폭파되어 없어지고 앞으로 이 자리는 시민공원으로 탈바꿈한다는 말을 들었다. 

과연, 1996년 8월 4일 오전 전 국민이 지켜보는 생방송에서 천지를 진동하는 쾅쾅쾅 하는 폭파 소리와 함께 언론 중심에 있던 안기부 청사가 몇 초 만에 건물 잔해더미로 변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방송은 끝이 나고 건물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당시 전 국민의 관심사이고 언론의 중심이었던 안기부! 그런 안기부 건물청사 내부 철거현장에서 때려부시고 짓부시며  통쾌한 작업을 벌였던 그때 그 시각의 정경들은 나의 인상에서 지울 수 없는 감개무량한 한 폐지의 추억으로 생생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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