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평 협찬, 빅토르 최 27주기 추모콘서트 성황리에 마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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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평 협찬, 빅토르 최 27주기 추모콘서트 성황리에 마쳐
  • 강성봉 기자
  • 승인 2017.08.2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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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최기념사업회, ‘27주기 맞아 대중의 거리로 찾아가는 원년’ 의미 부여
▲ 지난 8월 13일 서울 신촌 창천문화공원에서 개최된 빅토르 최 추모콘서트의 한 장면.

[서울=동북아신문]빅토르최기념사업회(대표 유은재)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동북아평화연대가 협찬해 개최된 빅토르 최 추모콘서트가 지난 8월 13일(일요일) 서울 신촌 창천문화공원에서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빅토르최기념사업회는 2016년 10월 발족하여 빅토르 최 부모님과 러시아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창립기념음악회를 열었고, 빅토르 최 사망 27주기를 맞아 이번 첫 번째 추모 음악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벡인들과 고려인들이 다수 참여하여 눈길을 끌었다.

1부에서는 콘서트 주관사인 유스테이지(YOU-STAGE)의 러시안 뮤지션으로 구성된 허니밴드(Honey Band)가 빅토르 최의 대표곡과 한-러 우정의 테마곡을 연주하는 가운데 빅토르 최 공연실황 영상을 함께 상영했고, 2부에서는 빅토르 최 주연 영화 이글라(Игла, 바늘)를 상영했다.

콘서트는 록가수 윤도현이 번안곡으로 불러 한국팬들에게도 익숙한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으로 시작돼 관객들이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거나 함께 부르는 호응을 받았다.

쇼스타코비치 왈츠가 연주될 때엔 관객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흥겹게 춤을 추었고, 가수 심수봉이 역시 번안곡으로 부른 바 있는 ‘백만송이 장미(Миллион роз)’가 러시아어와 한국어로 각각 연주되는 동안엔 주최측에서 나눠준 불꽃을 리듬에 맞춰 흔들며 성대한 대미를 장식했다.

이번 추모 콘서트를 함께 준비하고 협찬한 (사)동북아평화연대 도재영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이런 문화행사를 통해 한국과 러시아의 우의를 더 돈독히 다지고 고려인 동포들에게 작으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서 빅토르최기념사업회 유은재 대표는 비소식이 있어서 의전은 모두 생략하고 프로그램만 진행했다며, 빅토르 최는 한국과 러시아의 자랑스러운 세계적인 문화자산인 만큼 내년엔 더 잘하겠다는 약속으로 인사를 갈음했다.

한편, 이날 빅토르 최 추모콘서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데에는 날씨의 도움이 컸다. 행사를 진행하는 내내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비는 영화상영까지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행사장 철수를 끝낸 후부터 왔다.

□ 빅토르 최는?

빅토르 최는 1962년 러시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고려인 3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엔지니어로 일하던 고려인 로베르트 막시모비치(한국어 이름 최동렬), 어머니는 교사로 재직 중이었던 우크라이나계 러시안 발렌티나 바실레브나 구세프. 빅토르 최는 레닌그라드의 세로프 예술학교(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문화예술대학)에 입학하여 목각을 전공하다 퇴학하였다.

당시(구 소련),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록음악과 서구식 대중음악에 심취하여 보일러실 화부로 일하면서도 록밴드에서 연주를 맡았고, 록그룹 키노(KINO)를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1986년~1990년 냉전체제의 (구)소련에 자유의 물결과 바람을 불러온 영웅적 로커가 되어 당국의 삼엄한 경계 하에서도 유럽, 미국, 일본 등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1990년 8월 15일, 꿈에도 그리던 서울공연을 2개월 앞두고 라트비아 리가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28세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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