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박수산]오렌지 먹기(외 2편)
상태바
[시/박수산]오렌지 먹기(외 2편)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7.07.18 05: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수산

▲ 박수산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시분과장. 재한동포사회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디아스포문학의 시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인. 동포문학(4호) 시부문 대상 수상.
오렌지 먹기 

껍질 벗기기가 귀찮아
통째로는 먹지 못할까 엉뚱하게 생각하다
손톱으로 뜯고 또 뜯어 겨우 껍질을 벗겼다
하얀 혈관으로 피를 주고받으며 붙어 있는 알맹이들
맨살은 물렁하다
입에다 넣고 단물을 넘기는데
갑자기 산 뱀이 목구멍에서 넘어가는 느낌이다
우린 서로 너무 많이 껍질을 벗겼다
항상 쪽으로 가르는 데 열중했던 과거가 목구멍에서 꿈틀거린다
원래 하나였는데 두부처럼 여러모로 가르고
같이 숨을 쉬는 땅인데 공기조차 골라 숨을 쉬고
한끝을 쥐고 종점까지 당겨야 하는데 한 줄을 놓고 서로 양쪽에서 당겼다
가르다 못해 제 핏줄도 대담하게 남의 족보에 버젓이 올려놓았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사방에서 통 것들이 입맛을 다신다
 
 
혈압 재기
 
현장에 일찍 출근해 보면
안전교육장에서 혈압을 재보느라 분주하다
정상으로 나올 때면 아무 말 없다가
간혹 혈압이 높거나 낮으면
저마다 자동혈압계기가 문제가 있다고 우긴다
 
엊저녁 술을 과음했거나
갑자기 운동했을 원인도 있을 텐데
자기 몸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기어코 혈압계기가 문제가 있다고 우긴다
 
생각해보면
자신을 뒤집어 보지 않고
항상 남을 가해자로 생각하는 우리
그래서 충돌에 휘청거리고
고착에 목을 매고 있지 않을까
깊이 고민해본다
 
2017년 6월 26일 초고
 
 
재건축 건설현장
 
삽차로 깊숙이 땅을 파헤치면
몇 천 년 전에 묻혀있던 자갈들이
모래 속에서 민낯을 드러낸다
 
기나긴 흐르는 물속에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어떤 건 주먹만 하고
어떤 건 달걀만 하고
어떤 건 메추리 알만하다
 
돌이 자갈의 모체라면
저마다 각을 세웠을 텐데
부딪침에 견디지 못했을까
각이란 각은 다 문드러져
돌의 모양은 사라져 땅속에 묻혔구나.
 
돌도 세월을 건너가려면
날이 섰던 자존심들을 다 내려놓아야만 했나 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