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변창렬]암소의 꿈 외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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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변창렬]암소의 꿈 외5수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7.07.06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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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창렬/시인, 재한동포문인협회 상임부회장, 중국조선족 중견시인, 두만강문학상 등 수상 다수
암소의 꿈 

신이란 신은
다 신어보고 싶다
굽 높은 힐도 신고 싶다
 
네 개 발통에 힐 네 짝 끼고
발통 하나에 색깔 하나씩 만들어서
예쁘장하게 밭에 들어서면
빨간색은 토마토 될 거고
파란색은 오이 될 거고
노란색은 감자가 될 거고
흰색은 박꽃으로 피겠지
 
노을을 한 폭 잘라 치마 만들고
긴 꼬리 숨기면 예쁜 여자가 될 터다
나만의 울타리 둘러 친 다음
끗발 좋은 뭇 사내들 몽땅 꼬셔서
고삐를 그 손에 쥐여 주고
나랑 밭이나 갈게 할 거다
 
밭고랑에 남긴 발자국에 빗물이 고이면
내 발자국 제일 깜찍할 거다
힐신에 파인 그 발자국에
고인 물까지 남새 빛으로 비칠 거다
 
 
 
하나는 왼 팔이고
하나는 바른 팔이다
누군가 안아주고 싶어
미리 구부리고 있었을 뿐
 
그래서 오목한 소뿔
 
누군가는
안기러 온 것이 아니라
덮치러 왔다고
소는 그저 고개 저었을 뿐
절대 뜬 적 없었다
 
자빠진 누군가는
소가 떴다고
개뿔이라 욕을 한다만
소뿔은 언제나 소뿔 일 뿐
 
 
소꼬리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것이 꼬리이다
어쩌다 흔들다 보면
반원인지 동그라미인지
모르고 흔들 때가 있다
 
이 쪽 저 쪽
흔들리는 꼬리에는
나의 것도 남의 것도 엉키여
마구잡이 흔들리고 있다
 
너무 흔들면 요란스럽고
가만 놔두면 흔들고 싶고
싫어도 흔들어야 할 것이다
남이 흔든다고
따라 흔들다 보면
신나서 자꾸 흔들어 대는 꼴
 
감추고
속에서 흔들 수도 없는 고집
우리 안에서 혼자 흔들면
꼬리가 아닐 게다
길든 짧든 흔들리고자 생겨났다
 
 
논개와 파도
 
치마꼬리에 감긴 파도는
촉석루 기둥뿌리에서 출렁인 것이다
 
바위가 낮아도
떨어지고 나면 벼랑이 된다
옷고름이 짧아도
잡아 맨 설음은 너무나 길구나
 
높이 솟는 남강 물줄기는
서슬 푸르게 날 세우고 있었으니
뛰어내린 혼이 몸서리 친 그 빛이
밤낮으로 출렁거리며 끈질기다
 
촉석루 뒷 바위마다
코신자국은 벌써 지워졌어도
옷고름 흔적만은 아직도 선하다
잠든 파도 속에 숨긴 그 혼
물 밑 한 줄기 정기로 싱싱하다
 
촉석루에는 노을빛으로 무르익는다
진붉은 치마폭이 감싸고 있어
노을빛도 파도 빛으로 일렁거리는
또 하나의 풍경이 눈부시다
 
  
그늘
 
넓히는 터전은 얌전하다
그 속의 펑퍼짐한 자리는 외롭다
 
어디까지 뻗을까 헤매는데
발이 열개라도 걸음걸이는 한 발작이다
 
거짓말로 지어놓은 둥지는
바람이 먼저 와서 쉬고 가는 남의 집이다
 
 
지게
 
산이 떠서 간다
두발만 옮겨지는 뒷모습
산보다 더 큰 산이다
 
산의 해묵은 무게에
지게는 산등성이 되였다
노인님 허리도 산등성이다
 
산이 힘들어 쉴 때
둔덕에 올라선 두발
저 멀리 메고 갈 길 찾는다
 
산이 무너졌다
지게목발처럼 꺾인 어르신
감은 듯 뜬 듯
지고 갈 무게에 눌리셨다
 
지게위에 울고 있는 산
눈언저리에 틀고 앉았다
산이 된 어르신
무겁게 쉬고 계신다
산에는 지게뿐인가
지게는 무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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