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김재연] 별들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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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김재연] 별들의 만남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7.07.06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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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연 프로필: 중국 길림성 반석현 출생 길림성 영길시 조선족고등학교 졸업 교사, 자영업 종사. 현재 아모레 퍼시픽. 1989년 '도라지' 문학지에 수필(처녀작) <천국의 주인은 누구?> 발표. 그후 시 작품 다수 발표. 동포문학 5호 시부문 우수상 수상. 재한동포문인협회 사무국장
[서울=동북아신문]나는 요즘 들어 24시간을 48시간으로 늘려 쓸 정도로 바쁘다. 중학교 때 절친 이었던 상해에 있는 현아를 다시 찾은 후였다. 현아는 현재 상해에서 인테리어 건축자재상을 하면서 사업가로 거듭나고 있었다. 첫 일이년은 적자를 냈지만 몇 년 전부터는 큰 건설회사에서 들어오는 오더로 하여 사업이 몇 배로 확장 되였다고 했다.

인맥이 좋은 현아가 동창생그룹에 나를 초대하자 잠깐만 폰을 못 봐도 수백 개의 문자가 수북이 쌓였다. 눈 뜨는 아침부터 눈 감는 자정까지 때로는 시간을 망각 할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돌아친다.

 동창생들 중에도 인상에 가장 남아있는 친구는 특별히 공부 잘한 친구와 이상한 특징을 갖고 있는 친구였다. 그때 간부 집에서 자란 귀티가 철철 흐르고 공부도 잘하는 우리반장과 악마 같은 존재 주만석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오늘은 현아가 1개월 전 상해에서 동창모임을 가지자고 약속한 날이라 나는 상해항공에서 동방명주며 세계대사관의 전 풍경을 감상하며 풍선같이 부푼 가슴을 눅잦히며 약속장소로 발걸음을 다그쳤다.

상해하면 삼십년 전 인기드라마 <상해탄>의 주윤발과 자오야즈의 사랑이야기로 아름다운 환상이 상해바다에 뭇별들이 꿈을 쏟아 붓는 도시이기도 했다. 고급택시가 상해에서도 어마어마한 고층빌딩 xx 대주점 앞에 나를 내려놓고 찬바람을 획 일구며 사라졌다. 나는 마치 처음 서울구경 온 촌닭처럼 아찔한 건물을 휘휘 둘러보며 다 시 한번 간판을 확인해봤다. 주점의 간판 바로 밑에 커다란 스크린에 빨간 글자가 줄줄이 지나가고 있었다. <87학번 동창모임>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요즘 그리운 옛날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들뜬 마음에 불면의 밤을 새웠다. 피곤한 몸을 가누며 자동도어가 있는 대문으로 들어가자 스르르 문이 열리며 양쪽으로 빨간 치포를 입은 종업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구십 도로 꺾으며 인사했다.

 

“환영합니다. 미녀”중국 호텔식 환영서비스였다.

갑작스런 상황에 어색해서 홀을 쭉 둘러보니 호텔중앙 홀은 황금빛 컨셉으로 인터리어를 한터라 사방이 금빛으로 번쩍번쩍하여 궁전을 방불케 하였다. 안내원을 따라 즐비한 룸을 지나 들어간 곳은 꽤 넓은 또 다른 연회석이었다. 이미 수십 명 되는 동창생들이 삼삼오오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홀 안은 자못 흥성흥성한 분위기였다. 현아가 가장 먼저 달려와 와락 안아주었다. 화장을 진하게 한 그녀의 얼굴은 한 송이 모란꽃 같았다. 나를 알아본 동창생들이 하나 둘씩 다가와 인사하며 반갑다고 떠들썩했다. 홀 중앙 쪽에 서있던 몇몇 사람들도 이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중 몇몇은 쑥 나온 배에 이마가 번들거리는 아저씨들이였다. 나는 그때 몇몇 친했던 친구들과 인사도하며 회포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옛날 우리 반 반장은 여전히 사람 좋은 인품에 신사 같은 모습으로 상해에서 부동산사업을 한다고 했다. 행사를 맡은 현아가 간이 살살 녹는 환영사를 하고 동창생 다시 찾아보는 순서로 소개를 시작했다.

“오늘 첫 순서로 소개하는 친구는 상해토지산업개발회사 주만석회장입니다. 전해드릴 회 소식은 오늘 모임비용전액을 후원하기로 했습니다.”

뜨거운 박수소리와 함께 불룩 튀여 나온 배를 가까스로 감추며 엉거주춤 일어서서 장관이 시찰하듯 좌중을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자리에 앉은 그는 학창시절 주만석 이였다. 그 뒤를 이어 심천전자회사회장 박동수, 광주제약회사 이사 이기원 등등 재력 순으로 시작되는 소개는 수십 명이 되다보니 한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 버렸다. 동창모임이지만 명함 없이 온 친구들은 그런 자리에 두 번 다시 참석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나마 외국에서 갔다고 호명은 해주었다. 소개가 마무리되고 빙빙 돌아가는 원탁에 눈으로 보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올법한 고급 요리들이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주 만석의 건배제의에 따라 술이 서너 잔 돌아가고 끼리끼리 옛날 학창시절이야기로 분위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뒤편에 있는 현관문이 살짝 열리며 짧은 머리에 수수한 반팔차림의 한 남자가 조용히 들어섰다. 반장이 반겨주며“우리 반 송림이 기억나지?”라고 하자 주 만석이가 다가가며“송림이냐?”하고 말을 건네자“만석이냐? 반갑다.” 송림이가 반가운 기색으로 주만석의 손을 마주 잡았다. “야 ! 넌 아직도 그때처럼 모임도 꼴찌로 다니고 그러냐? 그래 가지고 직장생활이나 제대로 하겠냐? 먹고 살기 힘들면 나한테 와서 일이나 좀해라. 옛날 우리 옛정을 봐서 먹고 살만하게 해줄게. 하하하하... 옛날에 너 나 바지 가랑이 밑으로 지나던 기억 나냐?”

처음에는 그래도 담담한 표정이던 반장이 만석이의 얘기가 끝나자 좌중을 한번 돌아보더니 깊게 한숨을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

“오늘 동창회에 참석한 옛 동창들아, 오늘 이 자리를 고향친구들의 옛정과 회포를 푸는 즐거운 자리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무슨 돈 자랑, 권력 자랑을 하려고 모였다면 이건 동창회가 아니지. 만석아, 너 이번 개발구공정항목 통과된 내막을 잘 모르고 있지? 시 토지개발과에 전화 한통하면 네가 저번에 맡아 했던 부실공사에 산재사고까지 해서 위에서 공정항목 절대 너한테 안준다. 그래도 너랑 짜개바지친구로서 같은 도시에서 살면서 네 사업이 점점 기울어져 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만 없다고 뒤에서 송림이가 힘 많이 썼다. 현아의 건축자재도 송림이가 뒤에서 수많은 업체들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해서 여태 말하지 못했다.”이때 현아가 어느새 앞으로 나와서 송림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머~ 세상에, 우리거래처도 네가 뒤에서 밀어주고 있었구나! 다들 물어보면 그냥 동창분이 소개해서 왔다고만 하지 이름을 밝히지 못하게 했다더니 이럴 수가...송림아 너였구나. 너무 고마워.”

 

연회장 안의 모든 시선이 송림에게 쏠리자 그는 현관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작달막한 체구에 은빛머리를 쓴 노인한분이 기다린 듯 들어섰다. 아 ~ 선생님. 류성해 담임 선생님이시다. 좌중은 잠시 술렁이더니 너나 할 것 없이 선생님 앞으로 몰려갔다. “선생님~ 선생님, 저 못 알아보시겠어요. 너무 반가워요. 건강은 어떠셔요? 삽시간에 연회장은 격동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 들었다.

담임 선생님은 좌중을 한번 빗질하듯 훓어 보시더니 그 옛날 온화한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너희가 내 제자지만 아무래도 내가 너희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 같구나. 동창들 서로서로가 박수쳐주고 응원을 해주지 못 할망정 이런 온정의 모임에서마저 계급을 따지고 금전만능주의로 물들이다니 마음이 아프구나. 너희를 가르친 선생으로서 이 자리에 서기조차 부끄럽구나. 송림이는 옛날에 째지게 가난하고 늘 외롭게 따돌림 당하던 소심한 송림이가 아니다. 세상이 변하고 달라져도 사람의 근본은 변해서 안 된다. 송림이는 오늘도 학생이 얼마 남지 않은 고향 모교에 헌금을 하고나서 이 못난 선생을 이 자리에 기어코 데려 오느라 늦었단다. 너희들이 이런 송림이를 웃을 자격이 과연 있느냐 !”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연회장 안은 한동안 쥐죽은 듯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자 삽시간에 연회장은 떠나가도록 커다란 박수의 파도로 이어졌다. 동창생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과 송림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저마다의 마음속에는 이날 이 시각 너무도 선명한 양심의 잣대가 뚜렷이 세워져 있었다.

옛날처럼 온화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두눈에도 어느 듯 맑은 이슬이 가득 고여 있었다.

아~정겨운 동창생들아. 존경하는 영원한 우리담임 선생님 !

환락의 동창만회의 밤은 깊어만 갔다. 연회장의 확 트인 유리창으로 상해의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무리들이 반짝반짝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밝은 빛을 주고 수많은 동경을 주지만 교만도 자랑도 하지 않고 늘 자기의 자리에서 빛을 뿌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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